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1
081화.
72좌의 악마.
지옥을 다스리는 최고위 악마를 뜻한다.
각 층을 관리하는 ‘계층의 지배자’ 일곱을 제외하면 가장 사위에 있는, 어떻게 보면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중 눈앞에 나타난 단탈리온은 71좌를 차지한 악마로 세상의 모든 비밀과 지식이 담긴 비밀의 서를 소유한 존재.
‘바포메트에 단탈리온? 아주 난리도 아니네.’
지옥문을 봉인하기 위해 나타난 바포메트.
그리고 그 지옥문에서 튀어나온 71석의 단탈리온.
두 녀석 모두 신격에 다가선, 초월의 영역에 있는 존재였다.
이 대단한 양반들을 종말이 시작하기도 전에 마주칠 줄이야.
「오호라?」
단탈리온, 놈이 나를 응시한다.
「이거, 무척 재밌는 분이시로군요.」
그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참으로 기이하군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법칙을 뒤트신 겁니까?」
놈은 알고 있다.
나의 회귀를, 법칙을 뒤틀어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떤 대가를 바쳤기에….」
“그게 중요한가?”
놈의 말을 끊었다.
어떻게든 내 속을 파헤치려는 그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만?」
충분히 불쾌할 수 있을 텐데도 여전히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모습 그대로다.
“중요한 일이라. 뭐, 말해 주지 못할 건 아니지만 진체(眞體)도 아닌 영체(靈體)를 보낸 그쪽에게 알려 주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그 순간.
「….」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내려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호오? 알고 있었습니까? 이것이 영체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당연한 거 아냐? 아직 제대로 열리지도 않은 지옥문에서 72좌의 악마라니. 가당치도 않은 일이지.”
아무리 카타콤의 지옥문이 거대하다 해도 다 열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단탈리온을 소환할 정도는 아니다.
온다고 한다면 진체가 아닌 영체, 그것도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파견된, 일종의 환영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 정도의 관찰력이라니. 과연 보통이 아닙니다.」
“칭찬은 됐고. 그쪽이나 나나 피차 바쁜 몸 같은데 이제 본론을 꺼내는 게 어때?”
놈이 영체까지 보내 가며 모습을 드러낸 건 협상을 위한 것.
「…하하하!」
그것까지 파악하고 있냐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이쪽의 심기가 많이 불편해 보이는데.」
흔들어 보려는 속셈일까?
놈은 바포메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닌 게 아니라.
-악의 종자와 대화하지 말지어다.-
조금 전부터 바포메트의 의지가 뇌 속에 전달되고 있었다.
-놈은 거대한 악. 뱀의 혓바닥과 같은 말로 너를 현혹할 것이니.-
그 내용이란 건 경고였다.
대화하지 마라.
놈을 멀리해라 등등등.
조금 전부터 계속 단탈리온을 경계하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그럴 순 없지.’
하지만 무시했다.
비록 단탈리온까지 예상한 건 아니지만, 협상을 위한 누군가의 등장은 내가 기다렸던 순간.
“그 사실을 언급하는 건 지양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흔들리면 그다지 좋지 않은 방향의 결과가 나올 수 있을 텐데.”
「결과라. 마치 제가 어떤 제안을 할지 알고 있다는 말투로 들리는군요.」
“잘 알지.”
「그게 무엇입니까?」
“거래.”
「….」
“흔히 말하는 악마의 거래를 제안할 셈이겠지.”
고양이의 눈과 같이 일자로 보이던 놈의 동공이 확장된다.
「…제가 거래를 제안할 걸 알고 있었습니까?」
“모를 리가 없지. 아니면 그 귀하신 몸이 영체까지 보내 가면서 이곳에 나타날 리가 없으니까.”
웨이브는 실패했다.
놈, 그러니까 악마 쪽은 다급해질 수밖에 없고, 이에 단탈리온의 영체까지 보내는 최후의 수까지 두었다.
그 이유란 게 빤할 수밖에 없다.
거래.
이 지옥문을 봉하고 있는 주체를 찾아 거래하려 하겠지.
「하하. 이거 어째 계속 말리는 것 같은데, 맞습니다. 제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귀하에게 한 가지 거래를 제안하기 위해서입니다.」
악마의 거래.
문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태다.
대표적인 예로 들면 교차로 악마나 파우스트 등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 소원을 이루지만, 결국은 파멸한다는 이야기.
「혹여 인간 세계의 기록에서 나온 것처럼 이것이 함정이니, 결국 불행을 불러온다느니 그렇게 생각하시면 참으로 곤란합니다.」
“알아. 거래는 어디까지나 거래. 서로 정당한 대가만 지급한다면 불행이니 뭐니, 다 헛소리에 불과하지.”
「이런! 귀하는 아주 말이 통하는 분이었군요. 세계에 만연한 암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아주 훌륭한 분 말입니다!」
악마의 거래는 위험하다.
결국엔 불행을 일으키고 마는, 인간을 타락으로 이끄는 불행의 씨앗이다.
그건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암시였다.
‘악마라는 존재를 악으로 정의하려는.’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깟 악마에 대한 인식이 뭐?
하지만 이러한 암시가, 그 작은 인식이 종말의 양상을 뒤바꾸어 놓았다.
물론 인류에게 아주 좋지 않은 방향으로.
그때의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고 말았던 것.
‘지금부터는 다르겠지만.’
회귀 전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일부에 불과하나 진실의 역사를 알고 있는 내가 있으니까.
물론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붙는다.
“대화가 통할지 말지는 거래 내용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단탈리온은 내게 악마의 거래를 제안했다.
거래라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조건이 부합될 시 성사되는 것.
놈이 내가 만족할 만한 조건을 내걸지 않는다면 언제든 그 방향은 바뀔 수 있다.
「좋습니다! 아주 좋고 말고요. 거래는 우리 악마들에게 있어서 신성한 의식과도 같은 것이지요.」
놈의 미소가 짙어진다.
「제 조건은 간단합니다. 지금 즉시 사바트의 염소를 공격하여 주문을 취소시켜 주십시오.」
“….”
그 말에 내가 아닌, 일행이 동요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들 또한 암시의 대상이고, 악마와의 거래는 매우 위험하다는 것으로 믿고 있을 테니까.
“동요하지 말게.”
대화하고 있는 나를 대신하여 강회장이 나섰다.
“우리의 방향성은 윤찬 군이 정하는 것. 그의 선택에 어떠한 동요나 의문을 품어선 안 될 일이야.”
과연 강회장.
태왕 그룹이라는 굴지의 대기업을 굴려 본 수장답게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
그가 중심을 잡아 준 덕분에 일행의 동요가 가라앉았다.
척.
엄지를 추켜올리며 강회장의 행동에 특급 칭찬을 전해 주었을 때였다.
-악마의 유혹이다. 그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마라!-
조금 전과는 달리 조금 다급한 바포메트의 의지가 전해진다.
하지만 계속 무시하며 말을 듣지 않자.
-속지 마라. 단탈리온은 지옥의 참모. 너를 속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하고 있다.-
다음에는 회유.
-보물을 원하느냐? 그렇다면 네게 세상에 없는 보물을 주도록 하마.-
다음에는 보상의 권유였다.
참,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다.
하지만 무시했다.
당장의 위험함 때문에 내게 거래를 제안하고 있었지만, 놈이 그것을 지키지 않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악마의 거래가 아닌 이상 놈은 약속을 지켜야 할 강제성이 없다.
거래를 한다면 악마와 하는 게 맞다.
게다가.
‘놈이 가장 탐나는 걸 가지고 있으니.’
바포메트보다는 단탈리온과 거래를 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일 수밖에 없었다.
“이거, 아주아주 무서운 일을 감당하라고 떠미네.”
「글쎄요. 이게 아주 큰 일입니까? 그저 주문을 취소하는 것….」
“큰일이고 말고. 무려 사바트의 염소를 건드리는 일이잖아. 초월의 영역에 있는 존재를 건드리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지. 게다가….”
살짝 말끝을 흐리며 단탈리온의 반응을 살폈다.
여전히 여유 있는 척 미소 짓고 있지만, 살짝 굳은 표정.
‘어딜 여유를 부리려고.’
적어도 이번 거래에 한해서는 내가 갑, 그리고 녀석이 을일 수밖에 없다.
그 잘난 혓바닥을 아무리 굴려도 진실을 알고 있는 내겐 통하지 않지.
“…너희 입장에서는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일이잖아. 지옥문, 아니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전초작업일 텐데.”
「….」
대답이 없다.
덤덤한 척 애쓰고 있지만, 속으론 무척 놀랐을 것이다.
‘대악마를 소환할 지옥문? 웃기고 있네. 이 모든 건 앞으로 일어날 신마전쟁을 위한 포석.’
물론 완전한 거짓이라곤 할 수 없다.
지옥문이 설치되어야 대악마를 소환할 수 있는 건 맞으니까.
하지만 여기에, 그리고 세계 곳곳에 설치된 지옥문의 역할은 단순히 소환을 위한 문이 아니다.
앞으로 있을, 그리고 인류가 종종 마주할 두 세력, 빛과 어둠의 전쟁을 위한 영토 전쟁의 일환이었다.
「하하하!」
굳은 표정이 풀리고, 웃음을 터뜨린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법칙을 뒤틀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 정도의 비밀에 접근하신 분이었을 줄이야.」
“비밀이라니. 진실이라고 해야지.”
「…그렇지요. 거짓된 역사가 아니라 진실. 그것이 바른말이지요.」
놈의 두뇌가 맹렬하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가진 단탈리온이라 해도 이 불리한 거래 상황을 타개할 만한 돌파구를 찾을 순 없다.
「혹,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그게 너무 불합리한 게 아니라면 기꺼이 조건을 수용할 의사가 있습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 것 같네.”
「하하하.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바포메트의 분노를 살 정도의 일을 위한 대가라….”
거래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가 무엇일까.
그건 상대를 안달 나게 하는 것이다.
해 줄 듯 말 듯, 애를 태우며 반응을 이끌다 보면 어떻게든 원하는 조건을 받아 낼 수 있다.
그래서 계속 말끝을 흐리는 방식으로 놈의 애간장을 태웠다.
이 거래는 언제든 깰 수 있다는 것을 놈의 머릿속에 주지시키는 것이다.
“…한 가지 있긴 하네.”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어째 말이 더 공손해진 것 같은 건 내 착각만은 아니겠지?
“지금 네가 가진 것 중 하나.”
그 공손함에 보답하기 위해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제가 가진 것…?」
“그래. 네가 현재 지니고 있는 것 중 하나를 대가로 가져갈게.”
한차례 단탈리온을 훑었다.
단안경을 시작으로 허리에 찬 두 자루의 검, 손에 쥔 법전, 그리고 박쥐 날개가 장식된 신발, 살아 있는 것처럼 펄럭이는 붉은 망토, 그리고 10개의 손가락을 모두 장식하고 있는 찬란한 보석 반지.
놈은 최고위 악마이자 지옥을 다스리는 71석의 대악마다.
당연히 착용하고 있는 것 또한 평범한 것이 있을 턱이 없다.
‘악마는 보물을 좋아하거든.’
거래를 좋아하는 악마들은 드래곤과 함께 가장 탐욕스러운 존재다.
자신의 부를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항상 최고의 것만을 착용한다.
그중 하나를 거래 조건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그리 나쁘지 않은 조건일 것이다.
그것이 설령 바포메트와 척지는 일이라 해도.
「흐음….」
고민이 되는지 턱을 쓰다듬는다.
고민이 많을 거다.
지금 이 시기에 자신이 지닌 보물을 푼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게 상당히 부담스럽겠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결국, 승낙할 수밖에 없다.’
주문을 취소하면서도 보물을 주지 않는 상황을 알고 있을 테니까.
그 좋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게 빤하기에.
「좋습니다! 그 정도 조건이라면 승낙하지요.」
역시!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그럼.」
놈이 손을 내밀었다.
악수.
그것은 악마의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것.
저 손을 잡는 순간 나는 이 거래에 종속된다.
만약 바포메트의 주문을 취소하지 않으면 임무 실패에 대한 대가로 영원히 안식을 얻을 수 없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은 없다.
지익.
메고 있던 배낭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온 건.
“….”
여전히 겁에 질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주위를 살피고 있는 진우.
그나마 배낭 안에 있는 동안 마음의 여유를 찾은 것 같다.
아니었으면 비명을 지르며 나가겠다고 한바탕 난리를 피웠을 테니까.
“자, 이제 네가 힘을 쓸 차례야.”
솔직히 이런 상황까지 고려하지 못했으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대규모 포탈 특성의 각성자 박진우.
녀석은 반드시 빠질 수밖에 없는 단탈리온의 함정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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