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4
084화.
쿠쿠쿠쿠쿠!
대기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촤아악!
공간이 갈라졌다.
어둠을 품은 그 공간은 점차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고, 이내 거대한 문을 완성하였다.
척.
포탈,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
염소 머리와 인간의 몸, 그리고 검은 날개를 단 사바트의 염소 바포메트였다.
윤찬의 계략에 의해 강제로 포탈로 이동한 그는 지금 매우 분노한 상태였다.
「내 진명을 걸고 맹세한다. 반드시 네 놈을 찾아내어 존재 자체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리라.」
분노의 대상은 윤찬.
콰콰콰콰콰콰!
그 분노는 파도가 되어 사방을 휩쓸었다.
그럴 수밖에.
일찍이 시작된 신마전쟁의 초석이 놈으로 인해 어그러지고 말았다.
고작 한 인간, 그 미천한 존재로 인해서.
하필이면 빛에 합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실책.
그로 인한 문책이 있을 테고, 그렇게 되면 어렵사리 얻게 된 자신의 지위가 흔들릴 수도 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절로 탄식이 나왔다.
중립의 신격으로 점차 그의 신앙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누가 바포메트를, 기억에서 잊힌 신격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을까.
신앙은 신격의 힘, 그리고 지위와 마찬가지.
단지 힘이 아니다.
신앙을 잃은 신은 결국엔 존재가 사라지는 소멸의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 운명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조아렸다.
과거 그가 내려다보았던, 일개 피조물에 불과한 ‘하얀 날개’에게 고개를 조아렸고, 그 세력에 합류하였다.
다시금 시작된 빛과 어둠, 그 영원한 전쟁에 합류한 그는 그나마 존속할 수 있는 약간의 신앙을 나눠 받을 수 있었다.
자존심마저 굽히며 얻은 기회.
그 기회를 얻기 위해 바포메트는 선봉장이 되었다.
‘균형’이라는 명목하에 어느 정도 자유로운 현신이 가능했다.
그래서 약간의 자유를 이용하여 카타콤에 설치된 지옥문을 파괴하려 했다.
그런데 웬걸?
하찮으며 미천한 인간의 방해로 인해 모든 것이 무산되고 만 것이다.
콰드득!
그의 존재의 무게에 짓눌린 대리석이 박살 났다.
하지만 바포메트, 그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으니.
철컹철컹.
금속음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주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들.
전신을 가리는 순백의 풀 플레이트 아머, 가슴에 십자가 문양을 그려 넣은 기사들이 주위를 감싸기 시작한 것.
「허?!」
그제야 주위를 둘러본 바포메트가 기함을 토하고 말았다.
「이단!」
「심판하라!」
머나먼 과거, 종교의 지배권을 위한 명목으로 시작된 거대한 종교 전쟁.
그 중심에 서 있었던 십자군(十字軍)의 병력인 크루세이더들었다.
윤찬이 바포메트를 이동시킨 곳은 그들의 유해와 흔적이 묻힌 십자군 전당.
비록 바포메트가 빛에 합류했다곤 하나 크루세이더의 목적은 이단을 처치하는 것.
과거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은 바포메트를, 이단의 기운을 흘리는 존재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놈-」
주위를 빼곡하게 둘러싸는 크루세이더를 본 바포메트의 분노가 전당 안에 메아리쳤다.
*
‘고생 좀 해라.’
들리지 않겠지만, 바포메트의 고함이 들리는 듯하다.
조금 전, 진우에게 적어 준 좌표를 통해 바포메트를 이동시킨 곳, 그곳은 십자군의 전당이다.
과거 종교 전쟁으로 죽은 기사들의 유해가 묻힌 그곳에 이단의 기운을 물씬 풍기는 놈을 던져 놨으니 아주 난리도 아닐 거다.
아예 그곳에서 소멸해 버리면 좋겠지만.
‘아무리 신앙을 잃었어도 나름 신격에 가까운 존재라.’
놈이 소멸할 확률은 극히 낮다.
아니, 아예 없다고 봐도 될 거다.
다만 그 힘을 소진하여 현세에 돌아다닐 수 없도록 하는 게 부차적인 목표였다.
지옥문 봉인의 주문도 취소시키고, 놈의 힘도 약화해 활동을 제한하게 한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거든.’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조금 있으면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딜 가는 거예요?”
걷고 있는 도중 진우 녀석이 물었다.
이 당돌한 꼬맹이는 이번에 겪은 일로 인해 꽤 겁을 집어먹은 것 같다.
지금 표정만 봐도 당장 이 카타콤을 나가고 싶어 하는 게 눈에 훤하다.
“어딜 가긴. 고생한 만큼의 보상을 얻으러 가는 거지.”
“보상이요?”
그 순간 겁에 질려 있던 눈동자에 이채가 스치고 지나간다.
‘…이것 봐라?’
그건 탐욕이었다.
보상이라는 단 한 마디로 인해 태도가 바뀌었다.
‘고아에, 어린 시절부터 굶주렸다곤 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광기인데?’
왜 녀석이 보물을 찾아 헤맸는지, 피라미드와 카타콤에 출입했는지 그 이유를 잠깐의 대화를 통해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고아.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 없이 자라난 탓에 기본적으로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인다.
그런 녀석이 포탈이라는 특성을 각성했다.
‘보물 사냥꾼…인 건가?’
보물 사냥꾼.
두 번째 전조와 함께 나타난 보물과 보구를 전문적으로 노리는 사냥꾼.
물론 지금은 없는 단체다.
하지만 곧 있으면 보구가 묻힌 곳을 노리는 사냥꾼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우, 이 녀석은 그러한 성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었다.
물론 겁도 없이 혼자 돌아다닌 건 영락없는 꼬맹이라 부를 만하지만.
“방금 그 괴물은 굉장히 강력했죠?”
괴물이라.
바포메트가 들었다면 입에 게거품을 물겠는데?
“그렇지.”
하지만 녀석의 근원이 뭐든 인류에 악영향만 끼친다는 점에서 괴물과 다를 바 없다.
“그럼 이곳에 묻힌 보물도 굉장하겠네요?”
“묻힌 건 아니고.”
“그럼…?”
“욕심 많은 늙은이 하나가 가지고 있거든.”
“그럼 우린 그 늙은이를 터는 건가요?”
“털어? 어째 어감이 좋지 않긴 한데, 그게 사실이긴 하니까.”
사실 내가 알고 있던 카타콤의 시련은 바포메트나 단탈리온이 등장하지 않는다.
미로 어딘가에 숨겨진 성유물을 찾아 과거, 그러니까 루이 16세 때부터 이곳에 살아온 ‘욕심 많은 늙은이’를 정화하는 것.
단탈리온과의 거래를 통해 지옥문이 유지가 되었으니 이제 본래의 시련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남은 셈이다.
그러기 전에.
“잠깐만요.”
걸음을 멈춘 채 배낭을 뒤적거렸다.
잠시간 뒤져 꺼낸 건 네크로노미콘.
너무도 불길한, 검녹의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는 암흑의 성전이었다.
‘강화하면 어떻게 변할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번쩍!
강화를 시도했다.
현자의 정보에 의한 추론이지만, 아마 내 예상이 맞다면 강화를 하면 분명 무언가 달라지는 게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성 초월까지 마쳤고, 확연히 변화된 네크로노미콘을 확인할 수 있었다.
『+99(★★) 네크로노미콘
분류 : 마술서(보조)
등급 : 중급 보구
내구도 : ∞
고유 효과 : 책을 펼칠 때마다 무작위 효과 발생
1장 – 강령술개론
2장 – 저주의 이해
3장 – 심화 소환
4장 – 封
5장 – 封
??? – 封
설명 : 이것은 결코 존재해선 안 될 금단의 서이다.』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하급 보구였던 네크로노미콘은 강화를 통해 중급 보구가 되었다.
등급의 상향.
그건 쉽사리 볼 수 없는 것으로 오직 하나의 보구에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성장형 보구』
강화를 통해 하급에서 중급, 중급에서 상급으로 상향되는 특별한 현상을 나타내는 보구를 일컫는다.
네크로노미콘이 하급에서 중급으로 변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게 좀 애매하다.
보통의 성장형 보구면 보는 순간 와, 소리가 절로 나와야 하는데.
‘여전히 잘 모르겠네.’
회귀 전, 단탈리온은 네크로노미콘을 이용해 ‘미지의 존재’를 소환했다.
그 강력한 존재의 강림으로 네크로노미콘은 찢어졌고, 다신 종말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세상의 정보에 통달한 현자라 해도, 존재해선 안 될 금서를 파악하는 건 힘든 일.
그렇기에 지금 내 머릿속에도 금서에 관한 정보는 없다.
물론 감정사의 눈으로도 정보를 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사용할 만한 게 아니라는 것.’
그건 각 장의 내용만 봐도 알 수 있다.
강령술개론, 저주의 이해, 심화 소환 등.
이건 누가 봐도 주인이 따로 있는, 임자가 있는 보구였다.
“받으세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정도환에게 금서를 내밀었다.
“…내게?”
“예.”
“무척 중요한 물건인 것 같은데.”
“네. 무척 중요하다 못해 현존하는 보구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가능성을 지닌 것이기도 하죠.”
괜한 말이 아니다.
성장형 보구는 상급을 넘어선 최상급, 그리고 어쩌면 최후까지 몇 개 등장하지 않은 ‘초월급’에 준하는 성능을 자랑할 수 있다.
물론 당장은 아니지만, 네크로노미콘은 그렇게 성장할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그 대단한 보구를 넘겨주는 것이니 생색을 내야지.
“그렇다면 나보다 자네가….”
“혹시 그 말 아십니까?”
중간에 말을 끊으며.
“진정한 보물은 주인을 직접 선택한다는.”
보구는 지금껏 인류가 누리지 못한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게 해 주는 보물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사용자를 가리지 않지만, 특별한 몇몇 보구는 주인의 손을 타기도 한다.
전용 보구, 그리고 일부 성장형 보구가 그렇다.
그리고 네크로노미콘이라는 성장형 보구는 정도환에게 딱 맞는 보구였다.
그건 각 장에 적힌 내용만 봐도 알 수 있다.
강령술이라든지, 저주, 그리고 소환이라든지 말이다.
그 모든 건 죽음의 인도자인 그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과 관계가 있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사양하던 정도환, 그가 네크로노미콘을 집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사아아아!
네크로노미콘에서 뿜어져 나온 검녹색 기운이 안개처럼 사방을 잠식했다.
“음?!”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수상쩍은 안개.
누군가는 평범한 안개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육감을 지닌 나를 속일 순 없다.
‘…놈이다!’
신마전쟁의 마지막 전투.
단탈리온이 소환한 존재로 인해 처음으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절망과 대면해야만 했다.
‘미지의 존재.’
그것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자이며, 언급해선 안 될 존재.
눈앞의 안개에서 그때 느꼈던 공포와 절망, 그리고 위압감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정도환은?’
감각을 확장했다.
지금 퍼진 안개는 시각과 청각을 방해하고 있었지만, 감각의 영역은 다르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미칠 영향을 생각해 정도환의 행방을 찾았지만.
‘…없어?’
분명 존재했지만 순간 감각에서 사라졌다. 예민한 감각이 아니었다면 착각이었다 싶을 정도로.
다른 동료들, 영웅이나 윌리엄, 예일, 리우옌, 진우마저 감각에 걸렸지만, 정도환에 대한 감각만은 예외였다.
마치 땅으로 꺼진 것처럼, 그의 흔적이 잠시나마 완전히 사라졌었다.
‘대체 무슨 일이…?’
그건 나도 예상치 못한 일.
분명 내 손에 있을 때는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았던 네크로노미콘이 지금에서야 반응하다니.
‘네크로노미콘이 정도환에게 반응을 보인 건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상황은 하나.
보물이 주인을 선택하는 것처럼, 어쩌면 이 암흑의 성전이 정도환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쪽으로 작용할지, 혹은 불행으로 작용할지는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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