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5
085화.
“….”
계속되는 권유에 물끄러미 윤찬을 응시했다.
그리 오랜 세월은 아니지만, 나름 살 만큼 살았고, 여러 사람을 겪어 봤다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속을 알 수 없군.’
눈앞의 윤찬, 고작해야 20대 젊은이다.
그런데 왜일까.
나름의 통찰력을 지닌 정도환은 윤찬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지 못했다.
20대 사내가 아니라 속에 시커먼 능구렁이를 품은 듯한 동년배를 보는 듯하다.
‘틀린 말은 아니지.’
회귀.
믿기지 않지만, 윤찬은 미래에서 과거로, 또 다른 평행 세계에서 이곳으로 회귀했다고 한다.
들은 바에 의하면 회귀 당시 나이가 지금처럼 20대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동년배도 아닐 것이다.
‘대체 어떤 기분인가?’
사람에게 좀처럼 관심이 없는 그였지만, 궁금했다.
회귀한, 또 다른 미래를 맞이해야 하는 막대한 사명감을 대체 어떤 기분인지.
자신이라면, 보통의 사람이라면 과연 그 무게감을 견뎌 낼 수 있을까.
‘대단한 사람.’
대단하다.
비록 나이는 그보다 어릴지 모르지만, 윤찬은 큰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그를 따르고 있었다.
물론 그 이유에는 손녀를, 윤서영을 다시금 부활하게 해 준 이유도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
“안 받아요?”
그런 거대한 존재가 보물을 건네주었다.
어딜 봐도 범상치 않은, 엄청난 보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결국, 건네준 책을 받았다.
그리고 그 순간.
「GRRRRR!」
귓가에, 아니 뇌리에 직접 울리는 어떤 음성이 있었다.
“…?”
좀처럼 동요하지 않는 그의 평정이 깨졌다.
그 음성은 인간인 정도환이 저항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절로 움츠러드는, 공포와 절망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미지의 것이었다.
마치 들여다볼 수 없는 심연을 들여다본 듯한, 그런 근원적인 두려움이었다.
지이잉!
약간의 현기증과 함께.
“…이곳은?”
온통 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마치 태초의 우주와 같은 곳.
하지만 이상하다.
정도환은 분명 지면과 같은 무언가를 밟고 있었다.
딱딱하지 않은, 무언가 조금 말랑한 것만 같은 어떤 지면을 말이다.
그가 의문을 품고 있을 무렵.
그그그그극!
우주가 진동했다.
그 진동의 중심지를 바라보자.
번뜩!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 거대한 눈이 나타났다.
붉게 물든, 혼돈을 담은 눈동자가 정도환을 응시한 순간.
부르르.
몸을 떨었다.
심연을 대하는 미지에 대한 공포가, 그 두려움이 전신을 감쌌다.
아마 그가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면 그 시선을 바라본 순간 심장 마비로 죽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랜 시간 장의사로 지내며 죽음을 겪은 정도환은 그 심적 압박감을 버텨 냈다.
그렇게 한동안의 정적 이후.
「GRRRR!」
의미를 알 수 없는 어떤 음성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다르다.
「???…인간…나약한…???」
의미를 알 수 없던 소리에 점차 의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들리는가.」
알 수 없는 여러 단어가 조합되며 언어가 되었다.
“….”
정도환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미지의 존재가 호의적인지, 적대적인지, 애초에 어떤 존재인지 분간할 수 없기에.
입을 열면 당장에라도 생각을 간파당할 것 같았기에.
「들어라.」
흐릿하던 음성이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시작이며 끝, 낳아지지 못한 자, 자존하는 근원, 형태가 없는 백치 조물주의 부산물이라.」
물론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도환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가 내뱉은 이명을 가리키는 존재가 무척 대단한 것이라는 것.
인간의 영역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초월적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나약한 존재여. 위대한 옛 존재의 말을 들어라.」
꾸물꾸물.
우주가 움직였다.
아니, 그건 우주가 아니다.
쿠쿠쿠쿵!
검다고 생각한 건 미지의 존재, 그의 몸이었다.
세상을 덮어 버린 그 거대한 존재가 파도처럼 꾸물거리며.
스으으.
셀 수 없이 많은 촉수 중 하나가 다가왔다.
미지의 존재, 그의 몸체는 그 수많은 촉수로 이루어진 것.
「받아라.」
푸확!
보이지 않는 검이 자른 것과 같이 촉수의 끝이 잘렸다.
신기한 건 그게 끝이라는 것.
츠츠츠!
상처는 금방 재생되었고, 조금 전과 같은 촉수가 자리로 돌아갔다.
“이건…?”
떨어진 촉수를 받아 든 정도환이 의문을 표했다.
자신 신체를 건네준다는 건 보통의 의미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왜?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곧 때가 올 것이다.」
“때?”
「나약한 존재야. 곧 너희에게 위기가 닥칠 것이다.」
“….”
협박인가?
아니.
정도환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의지를 전하는 미지의 존재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물론 그게 어떠한 목적성을 띠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거짓을 담고 있진 않았다.
「그때가 되면 이 몸이, 위대한 옛 존재가 필요할 것이니. 그때 주문을 외쳐라.」
잠깐 뜸을 들인 후.
「바치-비라지. 이 주문을 거꾸로 외우면 위대한 옛 존재가 강림할지니. 이것은 그 증표이다.」
꿈틀.
정도환은 자신 손 위에서 꿈틀거리는 촉수를 바라보았다.
「기억하라. 바치-비라지. 너와 네 동료들이 가장 위급하다고 느낀 순간, 그 순간에 이 주문을 거꾸로 외운다면 위기를 한 번의 기회를 얻을 것이니.」
그 말과 함께.
쿠쿠쿠쿠쿵!
미지의 존재가 내뿜는 거대한 존재감에 의해 공간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명심하라. 이것은 인과율의 법칙을 뒤흔들 수 있는 나의 오만. 만약 이 비밀을 누군가에게 발설한다면 모든 것이 거품처럼 사라질지니.」
한마디로 비밀을 지키라는 말이었다.
「이제, 깨어나라. GRRRRRR!」
화악!
마치 빅뱅처럼 중앙에서 터져 나온 섬광과 함께.
“헙!”
비명과 같은 신음성을 내뱉은 정도환이 눈을 떴다.
“…괜찮습니까?”
귓가에 파고드는 익숙한 음성.
“….”
그곳에 있는 건 윤찬과 동료들이었다.
꿈이었나?
아니.
꿈틀.
꽉 쥔 손안에 느껴지는 감각.
그건 분명 조금 전 얻은 잘린 촉수였다.
‘꿈이… 아니었다.’
오른손에 쥔 네크로노미콘, 그것을 바라보는 정도환의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
‘뭔가가 있었다.’
뭔가 감이 온다.
갑자기 생성된 안개와 함께 정도환은 이곳에서 잠깐 이탈했었다.
물론 그건 그의 힘이 아니다.
외부에서의 누군가가 정도환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 짧은 순간 이 세계를 벗어난,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정도의 존재라면.’
초월자밖에 없다.
바포메트나 단탈리온, 그들보다 훨씬 상위의 존재.
“…괜찮습니까?”
어떤 변화를 겪은 정도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
하지만 답이 없다.
그는 물끄러미 손에 쥐고 있는 네크로노미콘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설마?’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다.
회귀 전, 단탈리온이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소환한 괴물.
현자 율리우스도 파악하지 못한 그건 네크로노미콘에 봉인된 미지의 존재 중 하나였다.
“아무 일도….”
마침내 입을 여는 정도환.
“…없었네.”
그는 진심을 감추었다.
왜?
보통은 배신을 떠올릴 테지만.
‘뭔가 연유가 있다.’
복잡한 눈을 보아하니 뭔가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하다.
사람을 너무 믿는 게 아니다.
흔들리는 눈동자, 거칠어진 호흡, 그리고 불안한 동작 등 그건 감추고 싶어서 감추는 이의 모양새가 아니었다.
‘신인, 놈의 계약처럼 말 못 할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건 분명 조금 전, 이 세계에서 잠깐 사라진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래.”
더는 묻지 않았다.
아무래도 깊게 파고들면 그가 곤란할 것 같으니까.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내가 파고들어야지.’
굳이 말해 줄 필요 없이 내가 진실에 다가가면 그만이다.
비록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현자의 정보에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부분도 아주 약간은 존재하니까, 조금 연구하면 파고들 수 있을 테지.
“왜? 무슨 일인데?”
“순식간에 불길한 안개로 뒤덮였습니다. 정말 괜찮습니까?”
“정말 괜찮네.”
영웅과 윌리엄이 의아함을 보냈다.
우린 동료들에게 대충 얼버무렸다. 다른 동료들도 의아하지만, 이유가 있겠거니 하면서 넘어가는 듯했다.
당장 다 같이 그가 말할 수 없는 이유를 파고들고자 해도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네크로노미콘은 어떤 것 같습니까?”
내 물음에.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매우 강력한 혼이 느껴지네. 지금껏 느껴 본 적이 없을 정도의 존재가.”
죽음의 인도자이기에 느낄 수 있을 거다.
네크로노미콘에 봉인된 다양한 존재를, 그 혼의 크기를 말이다.
뭐, 당장은 금서를 사용할 일이 없어 그 혼의 크기만 느끼고 있겠지만.
‘잠시 뒤 사용해 보면 알 수 있겠지.’
네크로노미콘이 일으킨 변화로 인해 잠깐 발이 묶였다.
하지만 이제 나아가야 한다.
진우를 비롯해 이곳에 온 목적,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네크로노미콘과 정도환에 관한 의문은 잠시 뒤로 미뤄 두었다.
캐물을 수도 없고, 지금 당장 머리를 쥐어뜯어 봐야 나올 게 없으니까.
저벅.
그렇게 걸음을 재촉했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어?”
“으음?”
모두가 의문을 표한다.
그럴 수밖에.
“…막다른 길인데요?”
예일의 말처럼 지금 도착한 곳은 카타콤의 끝, 정확히는 폐채석장의 끝이었다.
막다른 길, 그곳에 보이는 건 벽밖에 없었다.
아니,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
‘여기서 일곱 걸음, 오른쪽으로 네 걸음, 다시 뒤로 돌아서서….’
머릿속에 입력된 일정한 규칙을 토대로 걸어갔고.
“여기!”
막다른 길, 그곳의 벽을 힘껏 밀었다.
그 순간.
그르릉-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이 위로 올라갔다.
“…여긴?”
마침내 드러난 입구에 강회장이 의문을 토한다.
“미치광이 연금술사가 사는 연구실로 가는 길입니다.”
고대 로마 때부터 사용해 왔던 폐채석장이 카타콤으로 변모했던 이유.
사람들은 그걸 루이 16세의 미화 작업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연금술사. 그가 뒤에서 루이 16세를 조종했기 때문에.’
그 모든 배후에는 루이 16세가 아니라 한 연금술사가 존재한다.
물론 평범한 연금술사가 아니다.
연금술이라는 분야를 정점까지 올린, 그리하여 마침내 ‘현자의 돌’이라는 꿈의 물질을 만드는 데 성공한 이.
비단 그것만일까.
호문클루스라는 살아 있는 인형을 토대로 한 전투 병력 양산.
4대 정령을 처음으로 분류했고, 그곳을 이용하는 정령술을 전파하였다.
그야말로 연금술의 아버지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존재.
‘파라켈수스.’
하지만 그는 그 업적만큼 위대한 이가 아니다.
죽음의 순간까지 연금술을 놓지 못하여 금단의 술법을 발휘, 생명을 연장하게 된 미치광이 연금술사.
이윽고 루이 16세를 조종하여 자신의 연구에 적합한 카타콤을 건설케 만들었으며, 그곳에 은밀히 연구실을 만들어 금단의 연구를 거듭하였다.
지금부터 상대해야 할 이가 바로 그였다.
금단의 마법을 통해 저주받아 버린, 미치광이 연금술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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