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6
086화.
저벅.
비밀 버튼을 눌러 열린 입구, 그곳에 펼쳐진 건 끝없이 이어진 계단.
아래로, 아래로,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어둠이 펼쳐진 그 길을 밝혀 주는 건 은은한 빛을 발하는 발광석이었다.
푸른 빛을 발하는 그것으로 인해 겨우 앞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
그 어둠을 헤치며 한참 동안 내려가면서 볼 수 있었던 것.
“꺅!”
발광석 옆,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본 예일이 비명을 터뜨린다.
“맙소사!”
“이건…?”
다른 이들의 반응도 마찬가지.
벽에 걸려 있는 게 사람의 인체였기 때문이다.
마치 사냥한 짐승을 자랑하기 위해 박제한 듯 인체가 대못에 박힌 해 걸려 있다.
어딜 봐도 인체 실험을 거친 듯한 실험의 부산물.
‘위대한 발전 뒤에는 잔인한 실험이 있기 마련이지.’
전쟁을 통해 인류는 발전했다.
그건 종말에서도 마찬가지.
다양한 특성의 성장을 위해 잔인한 인체 실험이 자행되었다.
내가 한 모든 강화와 전신 강화 또한 여러 번의 실험을 거쳐 그 확률과 효과를 알아낸 것.
연금술 또한 마찬가지.
파라켈수스, 놈이 완성한 호문쿨루스는 인체 실험을 거쳐 완성되었다.
지금 여기에 걸려 있는 인체는 그 호문쿨루스를 더욱더 완성에 가까운 존재로 만들기 위한 것.
‘이거, 기대되는데.’
하지만 그 끔찍한 광경은 내게 아무런 감상도 줄 수 없다.
그것에 대한 불쾌감보다는 기대감이 충만하다.
왜냐하면 파라켈수스, 놈은 황금 고블린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보물을 가진, 그것도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전해줄 아주 고마운 녀석.
‘놈을 통해 그간 정체되어 있던 부분을 성장시킬 수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간 정체되어 있었던 부분, 나와 정도환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줄 것을 구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만큼 상대하기 어려운 녀석이기도 하다.
‘계속 빚어대는 호문쿨루스에 정령 소환, 게다가 마법까지.’
보상이 달콤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카타콤에 오기를 꺼렸던 이유, 그건 온전히 파라켈수스 때문이었다.
지금껏 상대했던 그 어떤 존재보다 강력하며, 또한 까다롭다.
조금 전이었다면 상대하는 것을 망설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변수를 손에 넣었으니까.’
네크로노미콘.
성장형이며 정도환을 위한 능력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강력한 보구.
그것을 잘 이용한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게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상황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고전을 생각하며 나아간 내 앞에 나타난 건 석실의 입구.
그리고 그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석상이었다.
사자 머리, 박쥐 날개, 그리고 인간의 몸을 한 기형적인 석상은.
‘가고일.’
우리나라의 해태와 같이 악귀를 쫓는 용도.
하지만 석실, 파라켈수스의 입구를 지키는 가고일은 단순히 미신을 위한 용도가 아니었다.
저벅.
입구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자.
「캬아악!」
비밀 연구실을 지키는 임무의 가고일이 깨어나.
펄럭!
곧장 날갯짓하며 쇄도했다.
단순한 석상이 아니다.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 파라켈수스가 빚은 호문쿨루스 중 하나였다.
‘날붙이가 통하지 않는 적.’
가고일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내구성이다.
특히 날붙이, 검, 도, 창 등에 전혀 물리적 영향을 받지 않기에 그것을 사용하면 안 된다.
이상한 띠의 검을 빼내지 않은 채 맨손으로 전투를 이어 가려 했다.
전신 강화를 통해 향상한 육체는 충분히 둔기류의 무기를 대신할 수 있으므로.
하지만 나보다 더 빨리 움직인 이가 있었다.
파라락!
금서를, 네크로노미콘을 펼친 정도환의 눈이 유백색으로 물들었다.
‘…뭐?’
예상치 못한 변화에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스으으으-
정도환이, 정확히는 네크로노미콘이 뿜어낸 검녹색 기운이 나를 지나 가고일의 주변을 감쌌다.
그리고 다음 순간.
「키이익?」
「킥, 키익-」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혼란에 빠진 듯 고개를 갸웃하던 녀석들이.
쿵!
갑자기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으며 예의를 표한 것이다.
“…이게 뭡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일.
놀란 나의 물음에.
“심화 소환.”
정도환이 간단히 답했다.
“심화 소환이라면 네크로노미콘의 3장?”
“그렇지.”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언가.
“설마 사역마 강탈입니까?”
종종 보곤 했다.
보다 수준 높은 흑마법사가 상대의 사역마, 즉 소환수를 강탈하는 광경을 말이다.
그런데 그건 좀처럼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수준의 차이가 상당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서로 다른 특성을 개화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시작점은 같다.
그렇기에 부쩍 성장한 특성으로 상대의 소환수를 강탈하는 건 좀처럼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 파라켈수스의 호문쿨루스를?’
그것도 파라켈수스라는 수준 높은 소환사의 사역마를 빼앗았다.
그게 가능한가?
이제 갓 1단계 특성을 진화한 정도환이?
“네크로노미콘이 길을 알려 주었다.”
심화 소환이라고 하더니.
아무래도 사역마 강탈과 같은 고급 능력도 가능하게 만들어 주나 보다.
“…진짜 심화 소환법이네요.”
“그런 셈이지.”
“하하.”
의외의 상황이었으나 그게 나쁜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할 일이었다.
네크로노미콘의 능력이 증명된 셈이니까.
도무지 무슨 효과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이 금서는 확실히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강령술개론에 저주의 이해, 그리고 심화 소환.’
각기 다른 흑마법에 관한 지식이 쌓인 금서는 정도환을, 그리고 우리의 전력을 한층 향상해 줄 것이다.
「캬아악-」
가고일도 동의하는 듯 괴성을 질러댄다.
확실히 파라켈수스에게서 강탈해 완전히 자신의 소유로 만든 것 같다.
그렇다면.
“더는 기다릴 필요가 없겠네요.”
석실의 문을.
콰앙!
그대로 걷어찼다.
본래 강력한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었지만, 그 마법의 힘이라는 것도 더욱더 강한 힘 앞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우르르-
넘어가다 못해 완전히 박살 나 버린 문을 지나쳐 안으로 진입했다.
각종 플라스크와 색색의 액체, 그리고 온갖 인간의 신체가 널린 실험실 안.
「오, 이런!」
그곳에서 우릴 반기는 존재가 있었다.
보통의 의사들이 착용하는 것과 대조되는 검은 가운을 입은 그는.
“…해골?”
“으음….”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었다.
오랜 세월로 인해 피부와 근육 등이 모두 사라져 버린 해골.
특이하게도 하얗지 않은, 푸른 광택의 해골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둠을 품은 눈두덩이에서 빛나는 건 녹색 귀화.
‘리치(Lich).’
고위 망자 중 하나.
지식을 지닌 일부 이들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자신 육체를 망자화한다.
그것은 금단의 술법.
망자화가 진행된 이는 모든 피부와 살점, 그리고 근육이 사라진 백골의 형태로 영생을 누리게 된다.
파라켈수스 또한 연금술이라는 하나의 지식에 묻혀 그것의 끝에 도달하길 원했고, 그 결과 리치가 되는 길을 택했다.
「마침 실험체가 필요한 참이었는데, 참으로 잘 됐구나.」
그리고 망자화가 진행되어 리치가 된 놈은 이미 예전의 인간성을 버렸다.
그렇기에 같은 인간을 보고서도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실험을 위한 실험체로만 바라보는 것.
“준비해요.”
단단히 주의를 준 후.
스릉-
검을 빼 들었다.
비록 적은 하나이지만, 하나가 아니다.
곧 있으면 놈이 소환한 엄청난 수의 호문쿨루스와 정령 등으로 인해 실험실 안이 채워질 것이다.
강력한 소환수, 그리고 후방에서 놈이 발현하는 마법을 상대하는 건 상당히 까다로운….
「오오오오오!」
…일이 될 텐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왔다.
격한 감동이 어린, 리치가 아니었다면 당장 눈물을 흘렸을 법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녹색 귀화가 향한 곳에 있는 건 정도환이었다.
「그, 그것은 암흑의 성전!」
정확히는 정도환이 손에 든 네크로노미콘에 꽂혀 있었다.
그런데, 이것 봐라?
조금 전 사역마 강탈이며 지금의 반응은 어떤 한 가지 결과를 가리키고 있다.
‘가능할까?’
설마 그게 가능할까?
의구심을 담은 채 놈이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흑마법의 궁극적 보고이며, 세상의 모든 불길함을 담은 책!」
저벅.
홀린 듯 네크로노미콘을 향해 걸어간다.
“….”
동료들의 시선이 내게 모인다.
어떻게 하냐는 듯한 그 시선에.
“가만히.”
가만히 있으라고 주의를 주었다.
파라켈수스 정도 되는 능력자가 굳이 이런 연기를 해 가며 혼란을 줄 필요가 없다.
놈은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네크로노미콘이라는 고대의 보고에 이끌리고 있었다.
홀연히 정도환에게 다가간 파라켈수스는 1m 앞에서 멈춰선 채 더 다가가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선이 있는 것처럼 그곳에 멈춰 선 놈은.
「이것이 정녕!」
「실로 놀랍구나!」
「이렇게 감격스러울 데가!」
연신 감탄을 내뱉으며 네크로노미콘의 형태를 구경하기에 바빴다.
“….”
침묵을 지키는 정도환은 물끄러미 파라켈수스를 응시했다.
「…너는, 아니 그대가 이 지식의 보고를 차지한 주인인가?」
“그렇다.”
「도대체 어떻게? 아직 무르익지 않은 힘이거늘. 대악마들의 손에서 어떻게 이것을?」
궁금한 게 많은 듯하다.
그리고.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네?’
정확히 단탈리온의 소유라는 건 모르는 것 같지만, 대악마들이 그것을 지니고 있다는 건 알고 있는 것 같다.
하긴.
오랜 시간 망자로 살아온 만큼 암흑의 성전을 모를 턱이 없지.
‘망자란 말이지….’
조금 전 상황을 떠올린다.
혹시 모른다.
“어르신 잠시….”
그 가능성에 도전하기 위해 귀를 빌렸다.
“….”
내 귓속말을 들은 정도환의 눈동자가 이채로 번뜩인다.
「놀랍군, 놀라워.」
귓속말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여전히 네크로노미콘을 구경하는 데 여념이 없는 파라켈수스.
파라락!
정도환이 네크로노미콘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스으으으으!
책에서 뿜어져 나온 검녹색 안개와 같은 기운이 파라켈수스를 감싸기 시작했다.
‘이게 될까?’
막상 내가 제안했지만, 될는지 모르겠다.
분명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문제는 심화 소환이 어느 정도의 영역까지 닿을 수 있느냐는 점인데.
오랜만에 두근대는 심정으로 정면을, 파라켈수스를 응시했다.
「오오오오오!」
자신의 주변을 감싼 검녹색 안개의 기운을 마음껏 만끽하는 파라켈수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주륵.
정도환의 이마에서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렵나?’
상황이 그리 좋진 않은 것 같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현실성 없는, 지금의 그에겐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애초에 날로 먹으려 한 게 잘못이지.’
아무래도 방법이 잘못된 것 같다.
“이제 그….”
정도환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말을 꺼내려고 할 때.
털썩!
검녹색 안개를 만끽하던 파라켈수스가 돌연 무릎을 꿇었다.
“…어?”
갑작스레 펼쳐진 상황에 당황한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이게 진짜 된다고?
「미천한 종 파라켈수스가 마스터를 뵙습니다.」
녹색 귀화로 불타오르던 눈동자는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그것은 각인의 증거.
“됐다!”
나도 모르게 소릴 지르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지금 정도환은 파라켈수스라는 연금술사를, 고위급 망자인 리치를 사역마 강탈로 자신에게 귀속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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