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6
096화.
「쿠와아아아아!」
분노한 크라켄의 괴성이 다시금 장내를 떨어 울렸다.
상당히 불쾌한 것 같다.
아, 당연한가?
마녀가 데려오라고 한 인어공주와 왕자가 도망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도 양보할 수 없다.
이번 시련을 완수하기 위해선 저 생선 인간과 왕자를 반드시 육지로 피신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촤아아악!
물살을 가르는 소리.
크라켄의 다리 하나가 휩쓸 듯이 쇄도했다.
그 거대한 몸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어마어마한 속도.
피하기엔?
‘늦었다.’
당장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
검을 세로로 세워 크라켄의 다리가 쇄도하는 곳을 막았다.
쾅!
“흡!”
엄청난 충격이 몸 전체에 전해진다.
촤아아악!
그와 함께 충격을 흘려내지 못한 육신이 한참이나 밀려났다.
‘강해!’
강하다.
그 말 이외에는 할 게 없다.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놈의 괴력은 내가 상정한 것 이상이었다.
분명 마녀에게 육체가 구속되었을 텐데도 막강하기 그지없다.
‘만약 놈의 다릴 묶은 족쇄가 아니었다면.’
저 끔찍한 괴력의 다리가 쉴 새 없이 난타하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할 수밖에 없었다.
으득!
공진단 한 알을 씹었다.
인어들을 상대하느라 조금 저하된 원기를 보충했다.
그나마 다행한 점은 그게 삼성 강화된 공진단이라는 점이다.
대폭 강화된 원기 회복으로 인해 순식간에 인어들을 상대로 쌓았던 피로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지금 내 힘으로 놈의 외갑을 뚫는 건 무리.’
잠깐 대치하는 사이, 빠르게 머릴 굴렸다.
부드러운 듯 꿈틀대는 놈의 몸뚱이는 단단한 외갑으로 보호를 받고 있었다.
지금 내가 어떻게 발악해도 그 외갑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어떻게든 버텨내며 시간을 끈다.’
어차피 이번 목적 자체가 놈을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인어공주가 육지에 도달할 때까지 버티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버틴다.
물론 크라켄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캬아아아아아악!」
조금 전과는 다른, 엄청난 기파가 파도처럼 넘실댄다.
그 순간.
“흐읍!”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잠깐 육신에 경직 현상이 일어났다.
‘피어(Fear)?!’
일부 괴물들, 재앙이라 불릴 만한 놈들이 발현할 수 있는 고유 권능이었다.
사람, 짐승, 괴물, 종족에 가릴 것 없이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존재감이라는 것을 가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개체에 따라 그 존재감은 다르다.
지금 눈앞에 있는 크라켄, 놈은 모든 존재를 압도하는, 거대한 존재감을 지닌 괴물이었다.
그 존재감을 담아 기파로 발사한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작은 모든 생물에게 심적인 위협으로 일으켜 능력의 하락, 사기 저하, 공포 상대 유발 등 다양한 효과를 일으킨다.
분명 다른 각성자라면 피어에 당해 꼼짝없이 전력이 하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놈이 생각하지 못한 것.
“흐아압!”
기합성을 내지르며 그 공포를 깨뜨렸다.
“이 새끼가 날 뭐로 보고. 인마, 내가 지금은 이러고 있어도 회귀 전에는 네깟 녀석쯤 오징어 맥반석 구이로 만들 수 있을 정도였거든.”
존재감의 크기?
내가 더 컸으면 컸지, 작지 않다.
지금이야 이 나약한 육신 안에 갇혀 있어도 회귀 전에는 빌어먹을 오대 위상 중 하나를 처치할 정도의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내가, 인류 최후의 생존자 중 하나인 내가 이깟 오징어보다 존재감이 작을 리가 있나.
놈이 내게 퍼뜨린 공포를 순식간에 몰아냈다.
“기껏 생각한 게 이런 잔재주라면 실망인데?”
그리고 그 말이 거슬렸을까.
「쿠오오오오!」
괴성과 함께.
촤악, 촤아아악!
양쪽에서 두 개의 다리가 나를 덮쳤다.
스으으으!
이상한 띠의 검, 그곳에 박힌 검은 보석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기운이 나를 감쌌다.
그 순간 세상이 붉게 변했다.
원탁의 기사 중 하나인 모드레드의 능력인 광폭화.
그것만이 아니다.
번쩍!
하늘색 보석이 반짝여.
『운천필승(運天必勝)』
절대승리와 운수대통, 두 가지 기벽을 합한 조합 기벽이 완성되었다.
‘전력을 아낄 필요는 없다.’
전력을 끌어내 시간을 번다.
촤아아악!
물살을 가르며 쇄도하는 놈의 다리를.
카앙!
이상한 띠의 검으로 받아냈다.
“크으!”
손아귀가 찢어질 듯한, 그리고 육신에 가해지는 부담은 여전하다.
그러나 분명 조금 전보다 줄었다.
광폭화로 육체의 능력이 향상됐고, 운천필승의 힘으로 크라켄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다.
그 모든 게 합쳐져야 겨우 받을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그러나 안심하긴 이르다.
솨아아아아!
녀석이 뿌린 먹물이 사방을 잠식한다.
찰나, 투명한 바닷속은 한 치 앞도 분간이 불가능한 어둠의 공간으로 뒤바뀌었다.
먹물을 뿌려 주변의 시야를 차단.
‘오징어답지 않게 전투 센스가 있단 말이야.’
당장 지금만 봐도 증명하고 있듯이 크라켄의 전투 센스는 뛰어난 편이었다.
자신만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건 물론.
촤악, 촤아악!
청각에 집중할 수 없도록 계속 다른 소음을 내어 혼란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놈은 모를 거다.
내게는 육감이라는, 청각보다 더욱 발달한 감각이 있다는 사실을.
‘온다!’
덕분에 느낄 수 있다.
조용히 물살을 가르는 크라켄의 다리, 그 움직임을 말이다.
스윽!
잔뜩 힘을 준 검을 휘둘렀다.
카카카캉!
놈의 다리, 오돌토돌한 빨판에 부딪힌 검에서 불똥이 일어났다.
그런데 충격이 덜하다.
조금 전과는 달리 어느 정도는 받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달라진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왜 충격이 줄어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중.
‘아하!’
뒤늦게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일월성신(日月星辰) – 낮에는 공격력이 보통 증가하고 밤에는 방어력이 보통 증가』
헌원의 고유 효과 중 하나.
낮에는 공격력이, 밤에는 방어력이 상승하는 효과가 발휘된 것.
물론 지금은 밤이 아니다.
하지만 먹물로 인해 세상이 온통 어둠에 물들어 헌원을 그것을 밤으로 인식했다.
그로 인한 방어력 상승이 충격을 완화해 주고 있었던 것.
‘오히려 좋아.’
어차피 버티는 것이 목적이라면 공격력보다는 방어력이 낫다.
촤아악!
최대한 육감에 집중하며 크라켄의 움직임을 파악하려 애썼고, 전력을 발휘한 횡 베기로 놈의 공격을 상쇄했다.
그러나.
쾅, 콰앙!
격랑을 만난 배처럼 몸 전체가 흔들린다.
크라켄의 괴력은 일개 인간, 그것도 아직 2단계 진화밖에 이루지 못한 내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쾅!
아프다.
아무리 능력치와 방어력이 증가했어도 그 공격을 연이어 받아내야 하는 건 엄청난 부담이었다.
처음에만 해도 받아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충격이 쌓이면 쌓일수록 이게 뭔가 아닌 것 같다.
온몸이 부서질 듯한, 뼈가 욱신대는 고통이 찾아온다.
더는 버티기 힘든 수준이다.
그리고 그건 공진단의 원기 회복으로 어떻게 회복할 수 없는 것.
“쯧!”
가볍게 혀를 찼다.
웬만하면 몸의 부담 때문에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젠 별수가 없다.
모르핀을 투여했다.
삼성으로 초월 강화된 이 마약은 진통 효과는 상승하면서 대신 부작용을 줄였다.
『초월 효과(★) : 통증이 심해질수록 신체 능력 향상
초월 효과(★★) : 극히 낮은 확률로 환각 상태에서의 미래시 발현
초월 효과(★★★) : 10분 동안 모든 통증 완전 무시』
게다가 삼성 초월 효과, 그것은 10분 동안 통증의 완전 무시였다.
쉽게 말해 무감각.
지금의 나는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않는 상태가 된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삼성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도 투여했다.
『초월 효과(★) : 낮은 확률로 페널티 완전 무시
초월 효과(★★) : 낮은 확률로 신체 능력 향상 대폭 증가
초월 효과(★★★) : 3분간 근력이 대폭 상승』
근력이 대폭 상승하는 굉장한 효과가 추가된 스테로이드.
이 두 개의 약물 투여로 인해 전력은 한층 상승했다.
“하아압!”
기합성을 터뜨리며 검을 휘둘렀다.
콰앙!
지금까지 나를 내리누르기만 했던 놈의 거대한 발이 조금 밀려났다.
통증?
그딴 건 느껴지지 않는다.
모르핀의 효과가 탁월해 육신에 전해지는 충격을 완전히 차단했다.
다만.
‘아프지 않은 거지, 피해가 쌓이지 않는 건 아니라서.’
버티고만 있을 뿐이다.
아마 모르핀의 효과가 끝나는 10분이 지난다면 걸레짝이 된 육체로 인해 어마어마한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아무렴 어떤가.
지금은 놈들이 도주하는 시간을 버티는 게 중요한데.
「쿠아아아아아-」
분노한 크라켄의 외침.
그와 함께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놈의 먹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시야를 차단하는 그 공격이 내게 전혀 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광폭화로군.’
마침내 드러난 크라켄의 몸이 붉게 달아올라 있다.
광폭화는 나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유 능력이 아니다.
각성자는 물론 괴물도 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크라켄이었다.
광폭화를 이룬 놈의 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단지 외형만 변한 게 아니라 이 순간, 크라켄의 공격력은 대폭 상승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모르핀으로 모든 고통을 차단했으니 공격력이 강해지든 말든 버티기만 하면 된다.
설령 나중에 육체가 으스러지더라도, 당장 지금의 위기만 넘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으아아아아!”
나의 외침과 더불어.
「쿠아아아아아-」
분노한 크라켄의 괴성이 한 데 뒤섞인 바다는 그 기백으로 넘실대기 시작했다.
*
촤아아!
재차 덮쳐오는 크라켄의 다리를.
쾅!
이상한 띠의 검으로 상쇄했다.
모르핀으로 인해 충격이 없어야만 한다.
하지만.
욱씬.
‘이런!’
난데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빤하다.
‘10분이 지나고 있다.’
모르핀의 약효 시간인 10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
붉게 달아오른 크라켄은 족쇄에 묶이지 않은 두 개의 다리를 이용하여 계속 나를 공격했지만, 모든 약물을 투여한, 모든 보구의 힘을 끌어낸 나를 단숨에 죽이진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한계에 왔다.
이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모르핀의 약효가 다할 테고, 한 번에 고통이 찾아올 것이다.
그것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는 둘째 문제다.
‘아직도 육지에 도착하지 못한 건가?’
10분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계산 착오였던 건가?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해도 자꾸만 불안함이 찾아오는 건 그만큼 현재 상황이 매우 위급하다는 뜻일 터다.
“후욱, 후욱-”
턱까지 차오른 숨을 뱉어낸다.
촤아아아악!
끈질기게 나를 노리는 크라켄의 다리를 바라본다.
막 그 다리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던 순간.
“크윽!”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한 느낌과 함께.
“끄아악!”
피어나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모르핀의 약효가 다했다.
한 번에 찾아온 고통은 끔찍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의 고통이었지만.
휙!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콰앙!
다시금 몸을 덮치는 엄청난 충격.
“크으윽!”
약효가 완전히 사라졌다.
충격으로 인해 팔이 옆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고, 그 순간 빈틈이 생기고 말았다.
물론.
촤아아악!
빈틈을 발견한 크라켄의 다리가 몸통을 후려갈기기 위해 쇄도했다.
그리고.
퍼억!
내 검을 튕겨낸 크라켄의 다리가, 그 거대한 빨판 중 하나가 육신에 닿았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