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8
098화.
적색 경기장.
「자, 벌써 준결승까지 왔군요. 이번 경기는 러시아의 괴력가 알렉세이와 영국의 젊은 검사 윌리엄의 매치 업입니다!」
사각의 경기장 위, 허공에 뜬 진행자가 온갖 제스처를 취해가며 입장할 선수를 소개했다.
저벅저벅.
양측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경기장을 향해 걸어간다.
쿵, 쿵!
그중 압권인 건 2m 신장을 훌쩍 넘어서는 거구의 사내였다.
러시아 군복을 입고 있는 그는 전쟁 용병 출신인 알렉세이.
하지만 지금은 헤라클레스라는 신화적 존재의 특성을 개화한 강력한 각성자였다.
“….”
경기장 위로 올라온 그는 고개를 들어 다가오고 있는 이를 응시했다.
‘나약해.’
보통의 성인 남자보다 건장한 체격이라 할 수 있겠으나 알렉세이의 기준에선 나약하다 못해 비실해 보일 정도다.
사내라면 모름지기 신장은 2m 그리고 운동으로 근육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어야지.
균형 잡힌 몸?
웃기는 소리.
결국 세상은 근육과 힘으로 지배된다.
알렉세이는 준결승까지 올라온 상대를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태어날 때부터 괴력을 지니고 있었던 그는 헤라클레스 특성을 개화하여 그야말로 괴물이 되었다.
한주먹거리도 되지 않는 윌리엄이 눈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어이, 비실이.”
도발하듯 상대를 가리킨다.
“긴장할 필요 없어. 금방 끝장낸 줄 테니까.”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도발한다.
“….”
물론 잔뜩 겁을 먹은 윌리엄, 이 허약한 녀석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흐흐. 이번에는 어떻게 할까. 허리를 꺾어버릴까, 아니면 사지를 분질러버릴까.’
음침하게 웃는다.
사실 그는 변태다.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그리고 비명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가학을 즐기는 변태.
처음에는 몰랐으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에 재미를 느꼈고, 그것이 결국 전쟁 용병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
그것이 그의 유일한 삶의 낙이며, 유흥이었다.
그건 지난 경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처음에는 서서히 허리를 꺾어, 그 비명을 즐기며 그대로 압사시켰다.
다음에는 사지를 분지르며 항복하기를 기다렸고, 그다음에는 상대의 중요 급소(?)를 터뜨렸다.
그의 전투는 가학적이었으며 그것은 관중들의 환호를 끌어냈다.
피가 튀기는 경기야말로 사람들의 검은 욕망을 드러내게 하는 촉매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고, 그건 이번 준결승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적어도 내 상대가 되려면 그 녀석 정도는 되어야지.’
알렉세이는 윌리엄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그의 관심을 산 이는 일본의 혼다.
자신과 같이 근육으로 이루어진 몸은 아니지만, 스모로 단련된 몸집, 그리고 그 엄청난 괴력은 자신과 겨루기에 합당해 보였다.
“애송아, 덤벼라.”
이 시시한 경기를 끝내기 위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
하지만 상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 쓰는 언어가 달라서?
그럴 리가.
진행자가 펼친 신비한 힘을 통해 이곳에선 어떤 언어를 쓰든 참가자끼리는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왜?
“크흐흐. 겁을 먹은 거냐?”
알렉세이가 다시금 음침한 웃음을 보였다.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인 녀석이 겁을 먹은 게 틀림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란 말이냐!’
지금까지 펼친 경기로 인해 비실이가 겁을 먹었다.
그는 자신의 힘에 흠뻑 취했다.
“흐흐. 금방 끝내줄 테니….”
“시끄러.”
고개를 든 비실이가 꽥 소릴 질렀다.
“듣자 듣자 하니까 시끄러워서 원. 이래서 뇌에 근육만 찬 것들과는 상종하면 안 된다니까.”
빠직!
그 순간 이성이 끊겼다.
뇌에 근육만 찼다.
어렸을 때부터 그 말만 들으면 유독 흥분했던 알렉세이다.
그런데 그 말을, 자신을 아는 모두가 단 한 번도 지껄인 적 없는 그 말이 나오다니.
“이런 썅-”
거친 욕설과 함께 보폭을 넓혀 다가간다.
쿵쿵쿵쿵!
움직일 때마다 울리는 지축의 굉음.
본래 무게는 힘과 비례하는 법.
헤라클레스 특성은 엄청난 무게를 순간적으로 부여하여 상대를 파괴하는 특성이다.
지금 그의 무게는 10t이 넘는다.
물론 그 무게를 버틸 만한 체력이 필요하지만, 단련된 육신은 그 무게를 감당하게 만들어 주었다.
“흐아아아아압!”
괴성과 같은 기합성과 함께 내뻗는 주먹.
콰아아앙-
그 엄청난 주먹이 경기장에 꽂히며 폭발하였다.
굉음 수준이 아니라 정말 폭발할 것만 같은 충격파와 함께 경기장 전체가 들썩였다.
그 주먹을 온전히 받아내려고 했다면 그 어느 누구라도 쥐포 신세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음?”
하지만 알렉세이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아래, 그곳에 죽어 있어야 할 윌리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쥐새끼….”
도망친 녀석을 향해 욕설을 내뱉던 그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스윽.
허공에 그려지는 적색 궤적.
팟.
다행히 수상쩍은 기운을 일찍 감지하여 그 궤적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알렉세이는 힘만 센 멍청이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반사신경, 그리고 전투 센스를 갖춘 천부적인 전사였다.
“어딜!”
의기양양.
하지만 그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퐁, 포퐁!
허공에 그려진 궤적에서 피어나는 꽃.
그것이 매화라는 건 모르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위험하다!’
그것이 매우 위험한 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잔뜩 긴장한 채로 몸에 힘을 준다.
언제든, 빈틈만 보이면 녀석을 깔아뭉갤 심산으로.
하지만.
스스스스스-
궤적에서 피어난 꽃, 그것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가만히 맞아줄 정도로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으아압!”
괴성을 지르며 다시금 주먹을 뻗는다.
부웅, 후웅!
연속으로 내뻗는 그 주먹이 대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꽃잎을 짓뭉갰다.
그런데 웬걸?
화악!
손끝에서 피어나는 화끈한 고통.
핏!
단단한 그의 주먹에 피의 선이 새겨졌다.
‘어떻게?’
믿을 수 없었다.
헤라클레스 특성을 개화한 이후 그는 상처라는 것을 입지 않았다.
헤라클레스 특성은 괴력도 괴력이지만 특유의 내구성이 장점인 특성이었기 때문이다.
단단하다 못해 강철처럼 단단한 내구성을 부여하기에 그것을 뚫은 이는 없었다.
‘간부 중에도 내 피부를 뚫은 녀석이 없었는데!’
심지어 그가 속한 검은달 내, 간부라 불린 이들도 그의 단단한 육체를 뚫은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나약해 보이는 검사 녀석이 어떻게 피부를 뚫었을까.
별거 없어 보이는 저 낡은 검으로 말이다.
“믿을 수 없다!”
아니, 믿기지 않는다.
이 나약한 녀석이 감히 자신에게 상처를 입힐 순 없다.
쿵쿵쿵!
알렉세이는 자신을, 그리고 헤라클레스 특성을 믿었다.
그렇기에 불도저와 같이 저돌적으로 윌리엄을 향해 다가갔다.
핏, 피핏-
흩날리는 꽃잎에 의해 전신에 새겨지는 상처.
하지만 무시했다.
어차피 자잘한 상처다.
고작 피부가 검상 정도를 주는 정도라면, 목숨에 지장이 없다면 무시해도 그만.
중요한 건 이 요상한 꽃잎을 흩날리는 그 주체, 윌리엄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잡았다!”
마침내 윌리엄을 거리에 둘 수 있었다.
비록 꽃잎에 의해 온몸이 피에 물들었지만, 그런 건 상관한 바가 아니다.
“으아압!”
양손으로 놈을 덮치려던 그 순간.
스팟!
검광, 그곳에서 피어나는 게 있으니.
화아악!
그건 거대한 매화였다.
검 끝에서 피어난 매화가 알렉세이를 강타하였다.
“….”
만개한 매화와 함께 알렉세이의 움직임이 멎었다.
“뭐야?”
“왜 안 움직여?”
그것을 관전하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알렉세이의 성향이라면 당장 윌리엄을 잡아 허리를 부러뜨렸어야만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내 그 의문은 해소되었다.
쿵!
알렉세이, 그 육중한 몸이 경기장 바닥에 엎어졌다.
그리고.
촤촤촤촥!
지금껏 그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강인한 육신이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이십사수매화검법, 12초식 매화점개(梅花漸開 : 매화가 점점 피어난다).”
윌리엄이 펼친 건 이십사수매화검법 중 12 초식인 매화점개.
거대한 한 송이의 매화를 피워내 상대의 전신을 난자한다.
그 강력한 검격을 견뎌내지 못한 알렉세이는 전신을 난자당한 채 죽음에 이르렀다.
‘최대한 죽이진 않고 싶었지만.’
준결승까지 올라오면서 윌리엄은 단 한 번도 상대를 죽이지 않았다.
상대가 가진 고대의 파편, 그것을 가져오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이번에는 예외였다.
알렉세이. 그는 너무 잔혹한 자였다.
살려둔다면 앞으로 있을 종말에, 대격변에 도움이 되지 않을 존재.
그렇기에 과감하게 손을 썼다.
그간 있었던 변화는 윌리엄이란 순수한 시골 총각을 날카로운 검사로 변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오, 이런!」
윌리엄의 승리와 함께 높은 공중, 그곳에 자리해 있던 진행자가 조금 아래로 내려왔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윌리엄 참가자가 알렉세이를 쓰러뜨렸습니다. 잔혹하고 막강한 힘으로 상대를 모두 압사시켰던 알렉세이의 뜻밖의 패배. 승자는 바로 윌리엄입니다!」
진행자의 승리 선언.
이로써 윌리엄은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것으로 적색 경기장, 그 결승에 올라갈 참가자가 모두 결정되었습니다.」
‘상대는 녀석인가.’
이게 마지막 준결승전.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한영웅.’
한솥밥을 먹고 있는 동료.
‘이번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거다.’
지금껏 영웅과 숱한 대련을 해왔다.
결과는 99전 99승.
모두 윌리엄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한 끗 차이.
그렇기에 안심할 수 없다.
물론 이건 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동료들과의 승부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윌리엄과 영웅은 비슷한 실력, 그리고 비슷한 특성으로 서로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고 있었다.
대련에도 최선을 다했는데, 그게 진정한 승자를 가릴 수 있는 실전이라면?
방심은 없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렇게 윌리엄이 영웅을 향한 전의를 불태울 때, 흑색 경기장에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경기 내용이 진행되고 있었다.
*
“헉, 허억!”
거친 숨을 내뱉는 사내.
그는 리우옌이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독마라는 강력한 특성, 그리고 2단계 특성 진화를 통해 그 어떤 전투에서도 단 한 번도 무표정을 푼 적 없는 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지금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눈앞의 적, 하얀 소복과 같은 옷을 입은 중국 출생의 여인.
“이제 알았겠죠. 당신은 제 상대가 될 수 없어요.”
그녀는 리우옌을 향해 자신감 있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후욱, 후욱-”
하지만 리우옌은 그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장담할 정도로 실력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인 차이.
리우옌은 지금 상대에게 압도당한 채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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