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9
099화.
리우옌.
각성자 중 거의 유일하게 2단계 특성을 각성한 이.
살상 능력에 있어선 최고라는 독, 그것도 무형지독을 쌓았기에 그 실력은 당연히 우승 후보일 수밖에 없었다.
우승 후보?
아니, 사실상 우승은 그의 것이라 해도 무방했다.
그나마 상대가 될 수 있는 이라면 정도환이 유일한데, 그 또한 독기를 들이마시면 죽음에 이르는 건 마찬가지.
아무리 소환수가 많아도 독기 한 모금이면 모든 게 끝.
그렇기에 그의 우승은 거의 확정적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진행되고 있는 준결승에서 뜻밖의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같은 중국 출생의 빙빙.
긴 머리를 찰랑이는 전형적인 미녀였으나 그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소복을 입고 있다.
처음에 모두가 그녀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래도 준결승까지 진출했는데 주목을 받지 않는다고?
그도 그럴 게 대전 상대가 전부 만만한 이들이었고, 추첨을 통한 부전승, 심지어 상대가 기권하는 등의 준결승에 오르기까지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리우옌은 어떤가.
강력한 우승 후보들을 만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꺾었다.
무색, 무미, 무취의 무형지독은 상대가 인지하기도 전에 쓰러뜨리는 강력한 독이었다.
아무리 강력한 특성을 가졌어도 그 독기를 한 모금이라도 마시면 단숨에 죽는데 누가 그의 상대가 될 수 있을까.
몇몇 우승 후보를 꺾은 이후 그는 압도적인 기권패를 받으며 지금의 준결승까지 오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의 유일한 상대라고 평가받는 정도환 또한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
그것은 윤찬 또한 마찬가지였다.
흑색 경기를 보내기 전 윤찬도 리우옌의 승리를 점쳤을 만큼 그는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그런데 왜?
“하악.”
그는 왜 거친 숨을 내뱉으며 힘들어하고 있을까.
그것도 대진운, 부전승 등을 통해 운 좋게 준결승에 오른 가녀린 여인 하나를 감당하지 못해서.
“말했잖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제 상대가 될 수 없다고.”
그건 이죽거리는 말이 아니었다.
너무도 당연한, 마치 물을 이용해 불을 끌 수 있다는 논리를 전파하는 듯한 모습.
‘상성.’
리우옌은 그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상성이 좋지 않았다.
그것도 매우.
놀랍게도 상대는 독을 해독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해독?
그래, 그런 능력이야 흔하지.
하지만 무형지독을 해독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나 그녀는 해독했다.
최고의 독이라는 무형지독을 수초도 되지 않아서.
『신의(神醫)』
그 이유는 간단하다.
빙빙, 그녀의 특성이 신의였기 때문이다.
신의는 모든 병을 치유하는, 특히 독을 해독하는 데 특화된 특성이었다.
조금 전 리우옌이 상성을 떠올린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는 독을 쓰는 독마.
하지만 빙빙은 독을 해독하는 신의.
중독시키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특성상 리우옌의 특성은 빙빙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게다가.
“그만 끝을 내죠.”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는 건 가늘고 날카로운 침.
그녀는 엄청난 해독 능력뿐만 아니라 침술도 보유하고 있었다.
본래는 환자를 치료하는 침술이 기반이었지만, 그것을 암기로 이용하면 살인술로 변모한다.
특히 신의로 인해 상대의 신체 곳곳, 중요 혈을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한 번에 적을 죽일 수 있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핏, 피피핏!
그녀가 날린 침이, 수십 개의 침이 시간의 차이를 두며 사방에서 쇄도한다.
“흡!”
숨을 참으며 옆으로 굴렀다.
파파팟!
바닥에 침이 박힌다.
날랜 움직임 덕분에 날아오는 침을 모두 피했다.
윤찬의 충고 덕분에 독이라는 초유의 능력에 기대지 않고 열심히 몸을 단련한 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빙빙 앞에서는 그다지 소용없었다.
휙.
어느새 품 안으로 접근한 빙빙.
“하압!”
힘찬 기합성을 터뜨리며 발을 힘껏 올려 찬다.
퍽!
턱 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그 공격에 잠시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퍽, 퍼퍼퍽!
빙빙의 손과 발이 요란하게 움직이며 전신을 난타했다.
최대한 급소를 맞지 않기 위해 방어하며 급급히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그녀는 한 번 잡은 먹이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퍽, 퍼퍼퍽!
그 움직임은 마치 뱀과 같다.
오른쪽에서 온다 싶으면 어느새 방향을 꺾어 왼쪽으로, 대각선으로.
궤적이 죽어 있지 않고 살아 있다.
아무리 리우옌이 전신 강화를 거쳐 강력한 육신을 얻었다고 해도 그 정교한 권법에는 도무지 저항할 도리가 없었다.
“끄윽-”
신음을 토한 리우옌.
다리가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끈질기게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기관을 노려 타격했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과 같다.
“크으윽!”
다리가 풀려 일어날 수 없는 상태.
“권법이라면 자신 있거든요.”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그녀는 신의 특성뿐만 아니라 권법에도 나름 일가견이 있었다.
사람의 신체를 훤히 알 수 있는 신의의 특성을 통해 어떻게 하면 사람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했고, 그것이 지금 펼친 권법이다.
사람의 시각, 청각, 모든 감각을 속이는 독창적인 권법 말이다.
“….”
그 권법으로 인해 다리가 풀린 리우옌은 더는 일어날 힘을 잃어버렸다.
“실력의 차이를 알았으니, 이제, 그만 끝내죠.”
이제 끝을 낼 생각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미안.”
지금껏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던 리우옌이 입을 열었다.
“뭐가 미안하다는 거죠?”
의문에 눈을 크게 뜬 빙빙.
“나는 절대 질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리우옌은 이 경기가, 흑색의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윤찬 본인을 제외한 가장 큰 보상이 걸린 경기가 아닌가.
실력의 격차가 현격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을 알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윤찬에게 받은 은혜를 갚아야만 한다.’
그에게 있어서 윤찬은 단순한 동료가 아니었다.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은인이자, 부모님, 그리고 자신의 염원을 들어준 소중한 존재.
그가 흑색 경기의 우승을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승해야 한다.
그것이 종말을 막는 일이건, 세상을 파괴하는 일이건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저 윤찬이 원한다면 그것을 들어주어야만 한다는 것.
리우옌의 머릿속에는 그 한가지 일념으로 가득했다.
“질 수 없는 이유라.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누구나 이 콜로세움에 그만한 각오로 입장했을 테죠.”
하지만 그건 빙빙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나름의 각오를 지니고 콜로세움에 입장했다.
우승을 통해 ‘그것’을 완성해야만 한다.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적어도 이번 승부에서는 내가 이겨야겠어.”
“무슨 그런….”
그 순간,
피잉-
“어…어?”
갑자기 현기증이 찾아온 것처럼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독?
하지만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그녀는 신의.
독이라면 절대 놓치지 않는 감지 특성을 지니고 있건만 어째서.
“그건 독이 아니니까.”
리우옌은 빙빙과 싸우는 도중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그것은 확실한 승리를 위한 유일한 파훼법이었기에 무척 신중한 접근이었다.
미량의 수면독.
사실 독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일종의 수면향이었다.
독, 그러니까 육신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독에 대해서는 그 무엇보다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미량의 수면향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그 독을 미약하게 살포했다.
빙빙이 인지하지 못하는, 아주 미량을 말이다.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면서도 지금까지 버틴 이유가 그것이었다.
미량의 수면향이 쌓여 그것이 작용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그러한 노력은 결과를 얻었고, 마침내 효과를 발휘하는 중이었다.
“이, 이럴 수가. 고작 이런….”
어떻게든 해독을 하기 위해 침을 들어보지만 이미 그녀의 의식을 끊기기 직전.
털썩.
결국,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후우-”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안도하며 대자로 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그 순간.
「이럴 수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진행자가 아래로 내려왔다.
「특성의 극상성을 이용한 전략으로 승리를 굳혀가던 빙빙 참가자. 하지만 리우옌 참가자의 머리가 비상했습니다. 독이라곤 할 수 없는 수면향을 조금씩 투여하여 결국 다운! 이것이야말로 전략의 승리. 끈질김, 집요함의 리우옌 선수가 결승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진행자의 승리 선언.
‘이겼다!’
마침내 승리를 확인한 리우옌은 그렇게 의식을 잃고 말았다.
물론 지금 상태에선 다음 경기를 치르는 게 불가능할 테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결승 상대는 정도환.
이것으로 어떻게든 우승할 여건이 맞춰졌으니 이젠 그가 기권해도 상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콜로세움 안, 특별 대기실.
본래는 참가자가 들어올 수 없는 그 공간에 검은 후드를 몸을 가린, 꽤 많은 수의 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보고드립니다.”
누군가 앞으로 나와 일련의 일들을 정리하여 보고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흰색, 회색, 갈색, 황색, 녹색 경기의 결승전에 우리 인원이 배치되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말했다.
흰색, 회색, 갈색, 황색, 녹색의 경기에 아군이 배치되었다고.
그 말뜻은 그 모든 경기의 결승에 들어간 인원이 해당 세력에 소속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청색, 적색, 흑색 경기의 결승전에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보고에.
“….”
상석에 앉은 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다들 눈치 보기 바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평소라면 여기서 호통이 나와야 할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예상하는 호통은 없었다.
“책망하지 않겠다. 나 또한 계획에 실패했으니까.”
상석에 앉은 이, 그가 중후한 음성을 내뱉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아부는 되었다. 실패는 실패. 나 또한 예외가 될 수 없으니까.”
카리스마 넘치는 사내의 말에 좌중은 침묵했다.
“비록 당초의 계획은 실행하지 못했으나 괜찮다. 우리의 목적은 파편을 얻는 것도 있지만, 더욱더 거대한 목표가 있으니까.”
실패를 상정해 두진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경기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들이 모든 파편을 가지게 될 테니까.
어디 그것뿐일까.
이곳에 모인 각성자들.
그들을 모두 흡수하여 종말에 대비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게 될 거다.
물론 저항이 있을 수 있다.
아니, 당연히 있을 테지.
하지만 상관없다.
저항하는 이들을 모두 굴복시킬 만한 힘을 비축한 상태니까.
비록 약간의 계획 수정이 있다고 해도 그 결과만큼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전 세계에 우리의 이름을, 검은달이라는 그 세글자를 똑똑히 새기게 될 것이다.”
검은달.
종말을 대비하는 가장 거대한 세력 중 하나.
그들이 본격적으로 태동을 위한 움직임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
그리고 그들의 뒤.
콜로세움의 진행을 맡은 진행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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