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0)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0화(10/392)
< 하와이에서 (2) >
‘유길준.’
내 앞에 앉아 있는 남자는 한때 촉망받던 개화파 관료였다.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유학하며, 조선의 정치 행정 시스템이 얼마나 낙후되었는지 스스로 깨달았던 몇 안 되는 인물.
‘하지만······ 끝끝내 꽃피지 못했지.’
유길준은 내가 그를 구해 줄 때까지 일본에서 반쯤 연금되어 있었다.
갑오개혁 이후, 후퇴하는 조선의 정치 시스템을 지켜보다가 일을 냈기 때문이다.
과격 혁명을 일으키려고 모의하다가 이를 들켰던 유길준.
그 후, 그는 제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망명했다.
‘일본 정부는 세 부자를 가택에 가두었지.’
고종의 요청대로, 일본 정부는 이들을 모두 조선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생각보다 머리가 영리한 사내였다.
그는 유길준을 또 하나의 카드로 쓸 작정이었다.
고종이 일본의 말을 안 들을 때 반협박 카드로 쓸 생각이었던 것.
하지만 유길준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망명한 신분이었지만, 일본에 협조하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유길준의 가택 연금은 무려 4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소나기를 피하려다 태풍으로 들어간 꼴이었다.
“소인들을 이리 걱정해 주시다니······ 당장 죽어도 할 말이 없사옵니다.”
유길준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고마움을 표했다.
감옥 같은 일본에서 탈출할 수 있었기에 진심을 담아 사죄한 거다.
“그간의 일을 생각하면 저희 세 부자는 죽어도 마땅합니다.”
“맞사옵니다. 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첫째 아들 유만겸도.
둘째 아들 유억겸 또한 이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나는 팔짱을 끼며 이를 지켜보았다.
그러자 나를 따라온 아일랜드 삼 형제, 그중 맥스가 뿌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내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천하의 쌍놈들. 염치가 있다면 당연히 죄송해야지.”
“맥스!”
“아주 입만 살았어요. 뽀스께선 마음도 넓으셔. 나라면, 저 세 놈을 당장 바닷속에 던져 버렸을 텐데.”
“맥스! 입 닫아.”
“왜요, 형님! 저놈들은 바다에 빠져도 살 놈들입니다. 저 나불거리는 입은 둥둥 떠 있을 테니까. 아야!”
더는 참을 수 없던 건지, 아론이 맥스의 옆구리를 더욱더 세게 치며 살짝 성을 냈다.
“맥스. 저들은 이제 보스의 사람이다. 저들을 욕하는 것은 보스를 욕하는 것과 같아.”
“그치만······ 형님. 저놈들이 뽀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잊으셨습니까?”
맥스와 아론의 속삭임.
영어로 이야기하고 있었기에, 유길준의 아들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유길준 본인은 알아듣고 있었기에 그의 얼굴은 점점 빨갛게 변해 갔다.
자신도 제 잘못을 잘 알고 있으니, 분명 창피할 테지.
‘맥스의 주장대로 저 세 부자, 그중 유길준은 내게 큰 잘못을 하긴 했지.’
이자 때문에 고종과 나.
아니지.
정확히는 이강과 고종, 두 부자의 관계가 파탄 났다.
1901년.
유길준은 대한제국에서 과격 혁명을 계획했다.
거기까지는 정상적인 개인행동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
나라를 구한다는 신념대로 행동한 것이니까.
문제는 그다음이다.
고종 황제를 끌어내고 그 자리에 이강을 차기 원수로 삼겠다 기획했던 것이다.
고종은 전제군주제를 신봉하는 이.
반면, 이강은 미국물 좀 먹고 있었기에 서양식 입헌군주제에 조금 열린 태도를 지녔다.
이 때문에 유길준은 그런 계획을 기획했던 것 같았다.
‘아무튼······ 저놈 덕분에 의친왕은 완전히 낙동강 오리 알이 되었다.’
권력의 화신인 고종이 이강을 가만두었겠는가?
혁명이 무산된 이후에, 고종은 이강을 제 아들이 아닌 잠재적 경쟁자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이강의 차차기 왕위계승권 또한 저 멀리 날아갔다.
‘과거를 생각하면 괘씸하지만······.’
나는 지금 일할 사람이 필요했다.
‘현대인으로 살아오며, 성공한 사업가들과 많이 만났어.’
그들은 사업의 3요소를 아이템, 사람, 자본으로 정의했다.
‘아이템이야. 현대인으로서 과거 지식을 아니까 어느 정도 뽑아 쓸 수 있겠지.’
자본 또한 서서히 갖춰지고 있다.
고종의 비자금과 귀비의 활동지원금을 종잣돈으로 삼아 불려 나갈 예정이니까.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사람이다.
‘사람은 많지만 쓸 만하고 믿을 만한 놈이 없다는 게 문제지.’
내 주위만 해도 그렇다.
날 따라온 이들은 총 다섯.
그중 셋은 외국인이다.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 삼 형제가 충성심 하나는 대단하지만, 그다지 질이 좋진 못했다.
‘그나마 아론만 밥값을 좀 할 뿐이지.’
하지만 아론도 외형적으로 결함이 있었기에 중히 쓸 수 없었다.
꼽추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대외활동에 제약이 좀 있겠지.
‘그나마 조선인 둘은 낫다만.’
이 둘만으로는 부족했다.
유길준은 유학까지 간 엘리트이기에 이자를 잘 활용한다면 내 사업을 좀 더 쉽게 관리할 수 있을 거다.
물론.
내 뒤에서 음흉하게 무언가를 꾸몄던 과거 전력이 있기에 마냥 신뢰할 수는 없지만.
이를 채찍 삼아 저자를 평생 부려먹는다면 본전 이상을 챙길 수도 있기에, 나는 이자에게 베팅을 좀 과감하게 해 볼까 한다.
‘차차기 왕위계승권은 완전히 물 건너갔으니······.’
귀비에게 돈도 받았겠다.
더는 고종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기에 나는 유길준을 동경에서 데리고 왔다.
가만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유길준을 보며, 내가 손을 내밀었다.
“내 이미 닷새 전에 자네를 용서했네. 아니지, 이젠 자네를 거두었다 볼 수 있네. 그러니 그만하고 몸이나 챙기게나. 자넨 이제 내 사람이지 않은가?”
아론이 했던 말을 내가 한 번 더 했다.
그러자 아론이 맥스를 쓱 쳐다본다.
‘형 말이 맞지?’ 하는 표정과 함께.
“후······ 뽀스도. 참. 사람이 너무 좋아도 안 되는데.”
“맥스!”
“아······ 알겠다고요. 옆구리는 왜 자꾸 치고 그래요. 형님. 아프다고요!”
후······ 다 들린다.
저놈의 촉새는 정말이지, 남 눈치를 보지 않은 놈인 것 같다.
‘그래도······.’
저놈 때문에 유길준이 더더욱 부채 의식을 느낄 테니.
더 열심히 일하겠지.
그 때문에 나는 맥스를 살짝 흘겨보기만 할 뿐 제지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나중에 아론을 불러 살짝 경고하는 선에서 끝내야지.
“흠흠······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지난 죄에 대해 속죄하고 있다면 내 곁에서 날 보좌하게. 뼈가 으스러지도록 말이야.”
내가 유길준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 후 다음 말을 내뱉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네, 나와 이야기를 좀 하지 않겠나? 아, 나머지는 모두 밖으로 나가도록. 내 이자와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 * *
유길준이 불안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할까 싶어 머릿속이 복잡한 모양이다.
“우리가 지금 한, 이 정도까진 왔네.”
나는 객실 내에 걸려 있는 세계 지도를 바라보며 가리켰다.
북태평양 한가운데를 짚자, 유길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 위치를 확인했다.
“중간 목적지가 하와이니······ 반 이상은 온 셈이지. 그래서 말인데······.”
내가 말끝을 살짝 끌다가, 고개를 다시 유길준에게로 향하며 다음 말을 이어 갔다.
“하와이에 도착하기 전에······ 내 물어보고 싶은 게 있네.”
“말씀만 하십시오. 소인이 아는 것이라면 거짓 없이 모두 고하겠습니다.”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마음속에 담고 있던 질문 하나를 던졌다.
“내 한양에 있는 관료들, 그들의 정보를 좀 알고 싶네.”
나는 한국 역사에 관한 지식이 별로 없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미교포 2세였으니까.
고종의 비자금을 제외하면, 원 몸뚱이인 이강의 기억이 거의 전부라 말할 수 있을 정도.
그렇기에 나는 어느 정도 연차가 있는 유길준에게 이를 물어보고자 했다.
그의 증언과 이강과의 기억.
두 의견을 교차 검증해 가며 현재 상황을 분석하기 위함이다.
“자네도 알다시피 난 지난 6년간 미국을 떠돌았네. 국내 정치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네.”
유길준이 눈을 끔뻑인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나는 그런 유길준을 보며 계속 말을 이어 갔다.
“더불어 한양에 살 때도 난 정치를 가까이하지 않았네.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었으니까.”
죽은 민비를 언급했다.
그러자, 아! 하고 알겠다는 표정으로 유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도 좋고, 자네의 사견이 듬뿍 담긴 의견도 좋네. 있는 대로 말해 보게나.”
“알겠나이다. 먼저······.”
처음 말을 꺼낼 땐, 유길준은 차분한 목소리로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다른 놈은 몰라도, 전하께선 윤치호 그자는 가까이해서는 안 되옵니다.”
한 놈이 언급되자, 그가 고성을 내기 시작했다.
“윤치호?”
“예. 그는 우리 동지들을 배신한 변절자입니다.”
개화파에서 보수파로 노선을 갈아탄 모양이다.
보아하니, 유길준의 혁명 계획을 노출한 것도 이놈인 듯했다.
“그래그래. 좋아. 이런 사견이 듬뿍 담긴 이야기가 좋네.”
한양에 있는 이들에 관한 정보를 유길준에게서 한가득 얻어 냈다.
나는 메모까지 해 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 있다는 것을 아주 유길준에게 대놓고 알렸다.
“한 가지만 더 묻지. 미국에 거주는 교포들과 유학생들에 관한 정보 또한 알고 싶네만······.”
저 표정, 이해한다.
뭐, 의아하겠지.
일본에 박혀 있던 자신에게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일본에 가택 연금되었었지만, 그대는 꽤 많은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나? 주로 미국에 있는 이들과 연락했다던데.”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을 유길준이 알 수도 있다.
미국에서 가까이해야 할 사람을 이자 역시 추천해 줄 수 있겠지.
“신경 써야 할 사람은 누구고 지켜봐야 할 인물은 누구인지 알려 주게나.”
이강의 기억이 온전했으면 좋겠으나 빙의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살짝 파편화되어 있었다.
‘나는 향후 사람을 구해야 한다.’
현지인도 필요하지만 같은 조선인 역시 필요했기에, 나는 유길준에게서 정보를 좀 더 뜯어 내고자 했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별로 없지만, 소인이 기억하는 선에서 모두 고하겠나이다. 듣자 하니 미국 현지에선 우사와 도산이 재미 조선인들 사이에서 두각을 보인다고 합니다. 아······ 우사는 전하께서 더 잘 아시겠군요.”
도산은 안창호의 호다.
우사는 김규식을 칭하는 거고.
“우사는 내 동무이니, 자네보단 내가 더 많이 알겠지.”
“예. 그럴 것입니다.”
김규식은 이강과 함께 미국에서 유학한 인재였다.
로어노크 대학을 같이 다닌 동기.
사석에서는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였기에, 김규식에 관한 정보는 이미 이강의 기억을 통해 많이 존재했다.
“아······ 우성이란 인재도 제법 촉망받는 사내라 들었습니다.”
박용만이라는 인재 역시 유길준이 언급했다.
성격이 화끈한 열혈 청년이라며 그에 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더불어 최근 조지 워싱턴 대학에 한 조선인이 입학했다고 하던데······ 그자가 아주 똘똘하다고 합니다. 흠, 송구하옵게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름이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전하.”
“이상하게도 나 또한 그렇군. 그자의 얼굴을 알고 있네만. 다만, 나 역시 자네처럼 그자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네.”
이강의 기억에도 조지 워싱턴 대학에 다닌 한인이 하나 있었다.
김규식에게 전해 들은 것 같은데.
문제는 이름이 영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다.
‘박병준으로 살았을 때도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언젠가 동부에 가게 되면 그자를 한번 만나 봐야겠군.’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유길준을 향해 활짝 웃었다.
“고맙네. 덕분에 내 궁금해졌던 점이 풀렸네. 이만 쉬게나.”
앞으로 잡일은 이자가 다 처리할 것이니까.
건강해야 한다.
나는 유길준을 쓱 한번 바라본 다음 객실로 나왔다.
* * *
메모했던 것 외에도, 유길준과 대화했던 내용을 모두 수첩에 옮겼다.
기억은 휘발성이 크기에 자칫 이를 까먹을 수도 있어 메모해 둔 것이다.
“전하,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환상의 섬 하와이구나.
나는 무려 20일 만에 육지 땅을 밟게 되었다.
“전하!”
“아니, 우사! 자네가 하와이에 있었는가?”
“예. 잠깐 일이 있어서 이곳에 들렀습니다.”
“허······ 그렇다면 호텔에서 만나면 되지.”
“한시라도 빨리 전하의 얼굴을 뵙고 싶었습니다.”
나는 일본을 떠나기 전 미리 하와이에 전보해, 그곳에 있는 한인들에게 내가 하와이에 방문한다는 것을 알렸다.
그 때문일까?
김규식은 날 맞이하기 위해 항구까지 와서 반겨 주었다.
“이쪽입니다. 전하.”
사적으로는 호형호제하지만, 지금 이곳은 보는 눈이 많다.
그렇기에 김규식은 날 깍듯하게 대하며 섬을 안내했다.
‘후······ 이곳이 1900년대 하와이란 말이지.’
이후 나는 내가 머물 호놀룰루 호텔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 거대한 농장이 보였는데, 나는 이를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창문 가까이에 몸을 붙였다.
‘저곳은······.’
사탕수수밭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들이 많군.’
사탕수수는 대표적인 수익형 작물.
이를 재배하려면 생각보다 손이 제법 많이 갔다.
노동 집약형 산업이란 말인데, 이 말은 즉 인건비가 많이 든다는 소리다.
이 때문에 사탕수수 농장주는 일꾼 대다수를 미국에 막 온 초기 이민자들로 채웠다.
“잠시만 이곳에서 멈추게나.”
“아, 예. 알겠습니다. 어이 제임스, 잠시 멈추게나!”
하와이 사탕수수밭에는 동양인들이 즐비했다.
중국인, 일본인도 제법 되었지만.
상당수는 조선인들이었다.
“빨리빨리 일하지 못해?”
“죄, 죄송합니다.”
“하여간 느려 터져서······. 야, 너! 자꾸 거북이처럼 굼뜨게 행동할래? 수틀리면 확 조선으로 돌려보낼 테다!”
“한 번만, 한 번만 봐주십시오.”
사탕수수밭에서 조선어가 들린다.
대다수는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조선인들.
하지만 그들을 관리하는 중간관리자들 역시도 조선인이었다.
그들은 혹독하게 동포들을 쪼아 대고 있었다.
“참 웃기지 않습니까, 형님?”
김규식이 내게로 다가왔다.
마차에서 내린 이는 나와 김규식 둘뿐이다.
그랬기에 그는 말을 놓았다.
“똑같이 하와이에 왔는데 누군 뼈 빠지게 일하고, 누군 입만 털면서 돈을 더 받아 가니 말입니다.”
“저자들은 어찌 뽑힌 거지? 수완이나 언변이 좋은가?”
내가 중간관리자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김규식이 답변했다.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그저 생김새 때문이지요.”
“생김새?”
“저기 보십시오. 중간관리자 대다수는 피부가 하얗고 눈이 큽니다. 서양인들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름이 되었습니다.”
인종차별이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이다.
현대인으로 살 때, 세계사 시간에 벨기에의 식민지 경영을 공부했는데.
와! 그것 뺨치는 광경을 여기서 볼 줄이야.
“그만 가시지요. 형님 때문에 저 사람들이 더 고생하고 있습니다. 외부인이 오면 더더욱 쪼는 경향을 보이니까요.”
농장이 판매될 수 있으니까.
인부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그 가격이 더 올라간다나 뭐라나.
“어차피 내일이면 모두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속히 가시지요.”
내일은 일요일이다.
종교의 자유가 있다곤 하지만, 기독교가 반쯤 국교인 미국답게 이날만큼은 모두가 쉬곤 했다.
“그래. 이만 가지.”
씁쓸한 마음을 한편으로 한 채 마차에 올랐다.
마차가 멀어지자 사라지는 농장 풍경에, 나는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 * *
다음날이 되었다.
“전하.”
“이쪽이옵니다.”
내가 왔다고 아주 거대한 공터를 빌렸나 보다.
그곳에는 조선인들이 바글바글했다.
김규식의 말로는 하와이 역사상 가장 많은 조선인이 모였다고 한다.
‘이렇게나 많이?’
모두 다 날 보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왕실의 일원인 나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껴졌다.
‘저들의 의식은 아직 조선인이니까.’
미국에 이민을 왔지만, 아직 그 태를 다 벗진 못했다.
“전하. 저쪽입니다.”
공터 한편에 마련된 연단.
가장 높은 곳에 내가 서게 되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모인 일행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바쁠 텐데도······ 이곳까지 와 줘서 고맙네. 나는 의왕 이강일세.”
조용하다.
나를 반기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저주하러 온 것인지 모르겠다.
침을 꿀꺽 삼킨 후 나는 준비했던 다음 말을 이어 갔다.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말이야. 내 그대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곳에 들르게 되었네.”
그 후, 아무도 예상치 못한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 하와이에서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