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15)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15화(115/392)
< 대가 (4)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건이 고개를 갸웃했다.
영 모르겠다는 얼굴.
마치 내 질문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초등학생 같다.
‘나 참.’
발음도.
억양도.
여기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완벽한데 말이다.
오래간만에 저런 표정을 또 보네.
‘동양인 상대로 말싸움에서 질 것 같으면, 꼭 저렇게 행동한단 말이지. 미국의 백인들(WESP)은.’
정말이지 한 대 때려 주고 싶은 얼굴이다.
나는 모건을 향해 반걸음 앞으로 이동한 다음 천천히 또박또박 다시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네 계열사 말고는 시장에 풀려 있는 수많은 일본 국채를 단번에 사들일 세력은 없네. 아무리 봐도, 자네 계열사가 이를 주도한 것 같네만.”
시장에 나와 있는 그 많은 국채를 단번에 사들일 수 있는 세력은 현재 세 가문 정도.
하나는 로스차일드.
다른 하나는 모건.
마지막은 록펠러 일가다.
여기 내 앞에 있는 월터 로스차일드는 아까 이야기를 나눴을 때, 자신들은 그리 행동하지 않았다고 내게 고백했다.
‘일본 국채 매입이 런던이 아닌 뉴욕 시장에서 행해진 것만 해도 그래.’
나와 인연을 맺은 록펠러 일가는 이런 큰일을 상의 없이 하진 않을 터.
그렇다면 범인은 한 놈뿐.
내 앞에 있는 탐욕 덩어리 말곤 없다.
“내 말이 틀렸던가? 더욱이 자네는 뉴욕 월가의 황제가 아니던가? 자네가 주도하지 않았더라도 필시 누가 이 일을 저질렀는지 알 터.”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빠르게 다음 말을 내뱉었다.
“말해 보게. 모건 대표. 무슨 이유로 그리 많은 일본 국채를 사재기한 것인가?”
모건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옆 테이블에서 포도주를 홀짝이고 있는 한 사내를 불렀다.
“헨리.”
“예, 대표님.”
“이쪽으로 좀 건너오게.”
“예.”
헨리 P. 데이비슨.
모건 그룹의 두뇌이자 J.P.모건의 오른팔과도 같은 자.
그가 우리 테이블로 건너오자, 모건은 팔짱을 끼며 헨리를 살짝 추궁하듯 몰아붙였다.
“여기 계신 이 왕자님께서 일본 국채 매입 건에 관해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하셨네.”
“예.”
“나는 영 모르는 일인데······ 자네는 혹시 이 건에 관해 알고 있나?”
헨리는 눈알을 팽글팽글 돌려 대며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뒷일을 생각해야 하는지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아, 그 일 말입니까?”
“그래.”
딱히 무슨 의미 있는 말이 오가진 않았다.
하지만 둘은 둘만의 눈빛과 표정으로 무언(無言)의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몇십 년간 같이 일을 해 왔기에, 서로 말없이도 손발을 맞추는 모양새.
헨리는 잠시 모건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내게 고했다.
“채권 트레이더들에게 시장에 나와 있는 일본 국채를 전부 매입하라고 지시했긴 했습니다. 이 왕자님.”
헨리의 답변에 나는 팔짱을 끼며 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어째서?”
“다른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저 좋은 투자 거리가 될 것 같아서 이를 전부 매입했을 뿐입니다. 근래, 일부 투자자들이 이상 행동을 벌이지 않았습니까? 일본 정부가 파산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월가에 퍼지며 투매가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건 그리고 로스차일드.
두 세력은 몰라도 나와 록펠러는 결혼 동맹을 통해 하나의 세력이 되었다.
일본 국채에 투자한 일부 개미들은 록펠러 일가가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예측했다.
적어도 일본 정부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눈에 보이는 징벌을 내리리라는 것이 그들의 전반적인 예상.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모건은 그들이 내놓은 일본 국채를 아주 싼값에 사들였다.
“어째서 이익이 되리라 생각한 거지?”
“그야······.”
헨리가 나와 로스차일드.
그리고 모건.
더불어 저 멀리서 워싱턴 정계인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록펠러를 한번 쓱 바라봤다.
이후 하던 말을 이어 갔다.
“여기 계신 분들은 굉장히 합리적인 분들이 아니십니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시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자칫 이성보다 감성을 중시했다가는 일본에 빌려준 채권이 휴짓조각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헨리는 경고했다.
‘그리되면 나야 땡큐지만.’
나와 다르게 여기 있는 3대 부호들은 크게 손해 볼 것이다.
헨리는 이 자리에 모인 3대 세력이 자신의 몸을 자해할 만큼 아둔하지 않다며.
자신이 왜 일본 국채를 싼값에 전부 사들였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다.
“왕자님께서도 그리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글쎄.
나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 편을 들었던 기존 3대 부호들과 다르게 나는 일본 국채가 하나도 없으니까.
일본 정부가 부도라도 나면, 내가 제일 이득인데 말이다.
“일본 정부가 파산하게 된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대한제국에 전가될 것입니다. 대한제국은 일본의 보호국이니까요.”
헨리의 입에서 궤변이 흘러나왔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되면 대한제국의 신민들은 분명 크나큰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라도 일본 국채를 사들였다?”
“예.”
열강이 감기에 걸리면 그 보호국들은 몸살이 난다.
그것이 약육강식인 현 국제사회에 현실이라는 것이 모건의 주장이었다.
쓱-
고개를 돌려 모건을 바라봤다.
모건은 가타부타 부연 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도 헨리의 말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왕자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대한제국의 백성들을 사랑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십니까?”
주입식 교육도 아니고.
모건은 지금 내게, 일본 국채 투매를 강요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을 넣고 있었다.
“흠······.”
예전부터 생각해 왔지만.
모건 주니어는 몰라도 통제광 모건은 개인적으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지난 금융위기 때만 해도 그래.
모두가 십시일반 힘을 모아 기금을 조성했는데, 그 공을 저놈이 죄다 가로채곤 제 덕이라고 스스로 으스대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이 지랄이네.’
그의 결정이 법적인 면에서 위법이지는 않다.
하지만 사람은 무릇 도의를 지키고 살아야 한다.
동료가 암살될 뻔했는데.
위로는 못 할망정 그 기회를 틈타서 돈을 벌려는 역겹고 구역질 나는 짓거리를 하다니.
나는 잠시 원 역사에서 J.P.모건의 위인전 내용을 떠올렸다.
‘돈이 되면 뭐든 하는 인간. 세간에서 모건을 보는 간략한 평이지.’
모건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친아들이었던 모건 주니어를 제외하면, 한 놈도 도와주는 놈이 없었다고 한다.
원 역사대로라면 약 5년 후 일어날 일.
공화당 내 진보주의 세력의 마지막 일격이 월가로 향할 때.
그때를 노려 그의 반대 세력이 모건의 회사를 죽이려고 할 때.
뉴욕이 있는 어느 한 사람도 그를 돕지 않았다고 하던데.
대충 그 이야기가 이해 가는 것 같다.
‘이리 인성이 개차반인데 누가 도와줘.’
제법 친해진 모건 주니어 때문에, 그 사건이 터질 때 도와주려고 했는데 말이다.
생각을 고쳐먹어야겠다.
네놈이 살아 있는 한.
네 녀석의 회사를 도와주는 일은 없을 거다.
“마, 맞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활짝 억지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나는 누구보다도 우리 백성들을 사랑하네. 헨리 사장, 그리고 모건 대표. 자네들의 주장이 옳네.”
일단은 넘어가자.
지난 3년간, 내가 많이 크긴 했지만.
아직 금융시장에서만큼은 모건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니까.
‘록펠러가 개인적으로 미 재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식의 가치만 따져서고.’
현재 미국 금융계를 좌지우지하는 자는 누가 뭐래도 모건이었다.
‘1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적어도 이들과 동등해지거나 더 세력이 커져야 해.’
나는 속으로 다짐하며 모건을 살짝 흘겨보았다.
그때였다.
“이 왕자님.”
“록펠러 대표.”
아! 드디어.
세계의 4대 부호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록펠러는 모건과 나 그리고 로스차일드를 보며 제법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을 그리 재미나게 하고 계십니까?”
나는 까먹고 있던 일을 기억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뼉을 한번 짝- 하고 쳤다.
“아, 그래. 모건 대표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해 준다고 했었는데. 록펠러 대표도 함께 듣겠소?”
“아, 저야 좋지요.”
나는 로스차일드와 록펠러 그리고 모건을 번갈아 바라보며 아까부터 하고 싶었던 제안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들 철도 회사에는 얼마나 관심이 있으시오?”
“예?”
“그게 무슨.”
“어느 철도 회사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야, 만주에 있는 철도 회사지.”
나의 대답에 세 부호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졌다.
* * *
“그러니까······.”
로스차일드가 살짝 흥분했는지 뻘개진 얼굴로 침까지 튀기며 내게 재차 물었다.
“이번 사태의 보상책 중 하나로 일본 정부에 남만주철도를 요구하실 생각이십니까?”
어이, 월터.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나는 양심 없게 남만주철도를 ‘통째로’ 넘겨달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거라고.
“자네도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네. 지난해 청 정부가 백악관과 다우닝가에 한 가지를 제안하지 않았던가?”
“아! 생각이 납니다. 포츠머스 회담 이후, 청 정부는 남만주철도 표준궤 병행 철로 건설사업을 아국에 제안하긴 했지요.”
“그래, 그거······.”
남만주철도는 중국 랴오닝성 다롄부터 헤이룽장성 치치하얼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철도다.
전쟁에서 진 러시아는 이 노선 중 딱 절반을.
그러니까 다롄부터 길림성 장춘(신경)까지, 남쪽 구간을 양보했다.
‘남만주철도는 러시아 주도로 지어졌지.’
당연하게도 철로 궤도는 국제 표준인 표준궤가 아닌 러시아식 광계로 부설되어 있다.
중국에서부터 달려와서 해당 지역을 통과하려면, 열차를 한 번 갈아타는 굉장히 번거로운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일본 정부는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식 광계를 표준궤로 바꾸고 싶어 했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기지.’
청은 일본이 건네받은 남만주철도를 돌려받고 싶었다.
그래서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영국과 미국에 남만주철도 표준궤 사업 증설을 위탁한 것.
일본이 가지고 있던 남만주철도 운영권을 반쯤 무력화하려고 시도한 거다.
‘완전히 똑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코레일에서 SRT를 빼내는 작업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이는 정말로 알짜배기만 똑 떼는 작업이다.
남만주철도의 이득은 중국과 무역을 하며 생겨나는데.
다들 편리한 신규 철로만 이용하려고 할 것이 뻔하니까.
일본이 본래 가지고 있던 철로는 관동군이 이동할 때만 쓰일 것이 분명했다.
당연하겠지만, 그리된다면 일본의 만철(남만주철도) 수익성을 바닥을 칠 것이 뻔했다.
“그동안 일본의 반발로 표준궤 병행노선 건설 착수에 크나큰 어려움이 있었지 않던가?”
“그렇지요.”
“나는 이를 보상안으로 요구할까 하는데······ 자네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대한제국의 외교권 위임은 포츠머스 조약으로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조약이다.
더욱이 나는 경제적인 능력을 보여 줬어도 정치적인 능력은 아직 못 보여 줬다.
그렇기에 일본을 대신하여 한반도를 내게 넘기라는 제안은 아주 당연하겠지만, 기각될 거다.
보수적인 영국과 미국은 기존 파트너를 선호하지 도박을 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경제 쪽은 다르다.
지난 3년간 몸소 증명해 왔다.
더욱이 남만주철도 표준궤 병행 건설사업은 조약으로도 묶여 있지 않은, 그야말로 프리한 알짜배기 사업.
더욱이 이번 사건으로 일본이 이를 반대할 명분도 없기에, 강력하게 밀어붙인다면 쉽게 따낼 수 있기도 했다.
“이 안은, 워싱턴이나 다우닝가 모두 흡족해할 제안인 것 같습니다.”
록펠러와 모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듣자 하니 연방정부에서도 이 제안 때문에 지난해부터 몇 번이고 회의했다던데 말입니다.”
일본 정부와 군부는 러일전쟁 승전 이후 자신들이 남만주 지역의 우선권을 확보했다고 착각 중이다.
문제는 미합중국과 대영제국은 일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
특히나 미국은 만주를 모두의 ‘공유지’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미국의 관료들은 내 제안을 뛰어넘어 만주 지역에 부설된 모든 철도 노선의 ‘중립화’ 방안까지 검토하는 모습을 보였다.
루스벨트 제3기 내각의 중심인 ‘녹스’ 국무장관이 이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
거기에 마침 내가 기름을 붓고 있는 형국이니 딱 시기적절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더 나아가서 만주 지역 철도 이권을 중립화하는 방안도 논의한다던데.”
“저 또한 그 소문을 들었습니다.”
“아······ 저도, 저 또한 들어 봤던 것 같습니다.”
판이 깔리니 여기저기서 군침을 흘리며 한 숟가락 놓으려고 달려든다.
나는 그런 이들을 자제시키며 하던 말을 이어 갔다.
“중립화 이론은 경계해야 할 것이네. 그리되면 러시아가 분명 반발할 것이니까. 일본은 몰라도 러시아는 이번 사건과 무관하네.”
“하긴, 그렇네요.”
“더욱이 러시아는 북만주 지역에서 아주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죠. 왕자님의 경고대로 거기까지 나갔다간 러시아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좋다 좋아.
나는 속으로 엉큼한 상상을 하는 세 부호와 머리를 맞대며, 내 머릿속에 있던 구상을 하나씩 현실로 꺼내기 시작했다.
“일단은 일본이 러시아에서 양도받은 지역 위주로 표준궤를 신설하자고. 우리끼리 짬짜미해서 말이야.”
제국주의 시대.
식민화는 생각보다 돈이 참 많이 드는 사업이다.
하지만 특정 분야만 뚝 떼어서 생각하면 달리 볼 수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철도 사업이었다.
‘여기 있는 자들은 철도가 돈이 되는 사업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자들이다.’
로스차일드 가문만 해도 그래.
영국의 각종 노선은 물론이고, 인도의 여타 신설 노선까지 독점하며 엄청난 부를 빨아들이고 있지 않던가?
모건과 록펠러도 그렇다.
미국의 다섯 철도 대기업 중 네 개를 집어삼키며 중구난방이었던 미국의 철도 회사들을 하나로 묶는 독점화 작업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런 자들에게 이를 제안했으니 눈이 돌아갈 만도 하다.
“우리끼리 돈을 모아 신디케이트(신탁)를 세운 후, 새로운 표준궤 만철 노선을 부설한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꼴이 될 것이네.”
“그렇겠네요.”
“제아무리 루스벨트가 일본에 우호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기회는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암요.”
모건과 록펠러의 얼굴색이 환해지는 가운데, 그들은 월터 로스차일드를 바라보았다.
영국의 정계는 어찌 반응할까 살짝 걱정한 거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 일본이 크게 반발하면 어떡합니까?”
이에 나는 팔짱을 끼며 로스차일드를 바라보았다.
“다우닝가는 너무 일본을 걱정해 주는 경향이 있네. 당연히 일본은 반발할 것이네.”
나는 목소리를 크게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때를 노려야 한다는 거네. 참으로 시기적절하지 않은가?”
“그, 그렇긴 하죠.”
“그대들이 중재자로 나서고 있으니, 중간에서 힘들겠군. 혹시 정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나를 한번 팔아 보게나.”
“와, 왕자님을요?”
찰나의 순간.
월터의 입가에서 미소가 살짝 번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어어······.
이놈.
지금 이 말을 끌어내기 위해 그동안 걱정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나?
‘하긴, 영국은······.’
이 시대 영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막대한 정보를 수집한 국가였다.
이들은 떠오르는 미 재계 신예인 내 성향 역시 이미 조사했을 터.
‘내가 실리를 추구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거야.’
일본 정부에 남만주철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것은 이 제안이 나의 입에서 나오게 하기 위한 큰 그림이 아닐까?
『아······ 내 열심히 중재했는데 그놈의 새끼가 말이야. 내 중재안을 거절하더라고. 이 제안 아니면 못 받겠다는데 어쩌지?』
현대에 내 옆에서 일했던 동료가 떠오른다.
그놈은 이곳저곳 쏘다니며 정치질 하나 잘하기로 소문난 혐성꾼이었는데 말이다.
영국 정부에게서 그놈의 향기가 느껴졌다.
‘뭐. 서로 이용하고 이용해 먹는 사이니까.’
새삼 결혼 상대를 잘 골랐다고 생각한다.
세 세력 중 그나마 멀쩡하고 괜찮은 놈들은 록펠러니까.
모건이야 원래부터 유명하고.
로스차일드도 자신의 속내를 잘 숨기며 내 앞에서 여우짓을 하지 않던가?
“그것도 안 통하면 일본에 빌려준 국채 중 1할을 상환하라고 압박해 보세. 아, 이것도 내가 제안했다고 해도 좋네.”
일본 내 나의 혐오도야 이미 하늘을 찌르는 상황인데, 좀 더 더해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
“듣자 하니 근래에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이 몇 있다고 하지 않던가? 연장을 거부하며 국제 시장에 일부 채권들을 살살 투매하면······ 신규자금을 조달하지 못할 것이니 곧 조용해질 것이네.”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그냥 두고 놓칠 수는 없지.
나는 비장의 무기인 국채 투매 방법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며 이들을 설득했다.
“아! 때마침 모건 대표가 이를 대거 사들였으니, 시기적절하게 사들였던 국채들을 다시금 염가로 팔아 치우면 되겠군. 압박도 할 겸 지금부터 슬슬 움직이는 것이 어떤가?”
“어? 아······ 예. 그, 그렇지요.”
모건은 이번 사태에서 혼자 이득 보려고 얌체 짓을 했다.
그런 그가 다시금 무리에 끼려면 친구비 정도는 내야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지.’
만철 경영은 차후에 막대한 이득을 안겨 줄 커다란 프로젝트다.
이 사업에서 빠진다면 크나큰 미래이익을 놓칠 수도 있기에, 모건은 다시금 울며 겨자 먹기로 매입했던 일본 국채를 일부 투매해야 할 것이다.
“어머.”
그때였다.
이젠 내 아내가 된 에델이 내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남자들끼리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에델은 눈웃음을 치며 내게 팔짱을 꼈다.
“급한 일이 아니면, 잠시 왕자님을 빌려 가도 되겠지요?”
에델이 웃으며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여자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이었는데, 사교계에서 유명한 이들만 모여 있어 그런지 기가 빨리는 것 같았다.
“왕자님. 그때 일본인들이 어떻게 왕자님을 위협했는지 들려주세요.”
에델이 윙크하며 내게 권했다.
마치, 입 가벼운 여인들 앞에서 일본의 만행을 고해성사하라는 것 같다.
“흠흠. 그게 어떻게 되었냐면······.”
딱 좋은 기회인데 놓칠 수 없지.
나는 호사가들 앞에서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대가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