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16)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16화(116/392)
< 후폭풍 >
이강이 샌프란시스코에서 피습된 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한반도에서는 꽤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중 가장 많이 바뀐 곳은 당연하게도 북쪽.
간도와 연해주, 이 두 지역과 마주했던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이었다.
“혼조 소위님. 크,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한 시간 전에 부대를 떠난 정찰대가 아직도 감감무소식입니다.”
“뭐, 또?”
“예. 아마도 근처에 있는 적들에게······당한 것 같습니다!”
“빠가야로. 이런 머저리들!”
이 두 접경 지역은 일본군에게 있어 지옥 같은 곳이 되어 갔다.
이범윤이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군을 계속해서 괴롭혔기 때문이다.
“혼, 혼조 소위님.”
“넌 또 왜?”
“적, 적이 서북쪽 1km 거리에 나타났습니다. 머릿수가 사백은 족히 넘는 것 같은데 어떡합니까?”
“이런 개새끼들. 이놈들은 잠도 안 자나? 사흘 전에 그리고 어젯밤에 그리 깽판을 쳐 놓고 오늘 또 모습을 보였다고?”
“······.”
“당장 방어 태세를 취하게.”
“예.”
일본군은 미국과 맺은 신사협정 때문에 간도에 진입하지 못한다.
연해주는 러시아 땅이라 발도 디디지 못하고.
이범윤이 이끄는 의병들은 이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략을 구사했다.
초기에는 모기에 물리는 것처럼 따끔하기만 했지만, 의병들의 무장 상태가 이강의 지원 아래 점점 좋아지고 그 규모가 늘어나자 일본군의 피해 규모가 그 전과는 비교도 못 하게 커졌다.
이젠 방심했다 하면 부대 하나가 통째로 날아갈 정도.
그렇기에 일본군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으며 이들의 움직임을 감시해야만 했다.
“뭐라? 평안도에 있는 은광들이 조선 의병들에 의해 털렸다고?”
“예.”
의병들의 공략 대상은 일본군을 넘어 평안도와 함경도에 있는 일본인 소유의 광산까지 확대되었다.
이 소식은 남산에서 있는 조선 통감부에까지 전해졌는데, 이토는 이런 악재가 계속하여 터지자 가슴을 움켜쥐며 연거푸 탄식을 내뱉었다.
“우리 군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다던가?”
“그게, 그놈들이 어찌나 신출귀몰한 지······. 도통 잡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쯧쯧. 피해 규모는?”
“그게······.”
“거짓 없이 하나도 빼 먹지 말고 보고하게.”
“그 도적 떼들이 이번 연도에 채굴했던 은괴들을 모두 가지고 도망갔답니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조선에 왔으나, 조선 광산에 투자한 일본인 자본가들은 빈털터리가 되어 갔다.
속이 터져 나가는 것은 비단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이토가 이끄는 조선 통감부 역시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남아 있는 은광의 상태 또한 엉망입니다. 반란군들이 들고 왔던 폭약으로 기존 입구를 완전히 틀어막아서, 한동안 복구에만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길.”
통감부는 그들의 지휘 아래 한반도에 철도와 도로를 열심히 깔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착해서 혹은 그들이 진심으로 조선을 돕고 싶어서 이리 공짜로 기반 시설을 놓아준 것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좀 더 쉽게 지하자원들을 수탈하기 위해 이런 기반 시설들을 거금을 들여 부설했는데.
문제는 의병들의 이런 움직임 때문에 이토의 큰 그림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돈은 돈대로 계속 쏟고 있는 상황.
하지만 막상 돌아오는 수익은 전혀 없다.
그나마 의병 활동이 덜한 남부 지방에서 조선 쌀을 싼값에 수탈하고 있다지만, 투자한 돈에 비해 결과물이 너무 초라했다.
그렇기에 본토 일각에서는 식민지 무용론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었다.
“제길.”
“통감 각하!”
“자네는 궁에서 상왕을 감시하던 자가 아닌가? 그래. 무슨 일로 통감부에 이리 방문한 것인가?”
“그게······.”
이토의 이마에 주름 하나가 더 깊게 파여 갔다.
그간 조용히 지내던 골칫덩어리가 최근 활동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상왕이 대신들 앞에서 조선 군왕을 흔들었다고?”
“예.”
“조례에 참석하지 못하게 막으라고 명령하지 않았던가?”
고종을 감시하고 있던 나가노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종의 막 나가는 행동을 고변했다.
“최근 들어 상왕의 고집이 아주 많이 세졌습니다. 아무래도 미국에 있는 둘째 왕자를 믿고, 그리 거만하게 구는 것 같습니다.”
하! 여기서······.
꼴 보기 싫은 그놈의 이름이 또다시 언급된다.
이토는 질색하며 그의 머릿속에서 이강의 얼굴을 지웠다.
그런 이토를 바라보며 나가노가 계속하여 고종의 최근 근황을 보고했다.
“어찌나 집요하게 하나하나 지적하는지, 조례에 참석한 대신들이 혀를 찰 지경이랍니다. 멍청한 조선 군왕은 그저 헤벌쭉한 표정을 지으며 제 아비를 지켜보고만 있고요.”
나가노의 고변을 이토가 별말 없이 경청했다.
‘빌어먹을······.’
하는 꼴로 보아선 아관파천 때, 러시아만 믿고 의기양양하게 일본에 큰소리치던 고종의 모습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초기에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이놈이 또다시 크게 사고를 칠 것이다.
‘상왕은 끊임없이 권력을 추구하는 욕심쟁이지.’
이토는 고종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는 일본 정부가 한반도에 눈독을 들일 때부터 고종을 줄곧 분석해 온 고종 전문가였으니까.
어릴 적 군밤을 좋아했던 조선 상왕은 타인의 손에 의해 옥좌에 앉게 되었다.
그는 옥좌에 앉긴 했지만 반쯤 허수아비 같았는데, 이는 주변 인물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권력을 나눠 줘야 했기 때문이다.
제 아버지에게.
마누라에게.
믿지 못하는 친청, 친러, 친일, 친미 관료에게.
이제는 제 아들에게.
반강제로 이를 내어 주지 않았던가?
사람은 본래 자신의 것을 지키고자 한다.
고종은 그 경향이 본래부터 강한 인간.
그런 소인배가 계속하여 남에게 자신의 것을 빼앗겼으니, 얼마나 권력을 갈망하고 있겠는가?
“안 되겠군. 아무래도 내가 한번 경복궁에 들러야겠네.”
때마침 일본이 미국에 의해 일본 정부가 깨갱거리는 상황.
이 위기가 찾아오자마자, 고종은 자신의 본성을 다시금 스멀스멀 부활시키고 있었다.
“떠날 채비를 신속하게 하게. 십 분 후 창덕궁으로 갈 것일세.”
“예. 통감 각하.”
* * *
“외신, 두 폐하를 뵙사옵니다.”
아직 강제 병합된 것은 아니었기에, 대한제국은 허물뿐이지만 엄연히 독립된 제국이었다.
그렇기에 이토는 고종과 순종을 폐하라고 칭하며 고개를 숙였다.
“오. 이토 통감이 아니오?”
환대하는 고종의 얼굴을 이토 히로부미가 슬쩍 쳐다보았다.
딱 봐도 이전과는 달라 보인다.
자신감을 회복한 모양.
아마도 8년 전.
고종이 품었던 기대를 지금 현실로 바꾸고 있는 둘째 아들 덕분이겠지.
‘미국이, 아직도 제 편이라고 생각하나 보군.’
근래 움직임만 보면 고종이 그리 착각할 만도 했다.
일본 낭인들이 이강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한 다음부터 미국이 아주 매몰차게 일본 정부를 몰아붙이고 있으니까.
미국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영국을 열심히 꼬드겨, 일본에게서 기어코 남만주철도의 표준궤 병행 부설 건을 양보 받았다.
‘한반도와 만주에 관한 권리는 아직 우리 손에 있는데······ 상황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하군.’
다행이게도 기존 권리는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만주만 해도 그렇다.
일본이 소유하고 있는 러시아식 남만주철도는 표준궤가 증설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관동군 또한 여전히 만주에 남아서 기존 시설을 지킬 거다.
물론.
알짜배기를 빼앗겼고, 옛 북양 군벌 중 일부가 관동군의 경쟁자가 되었다지만.
“두 부자께서 아주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군요.”
“그럼.”
이토는 크게 착각하고 있는 고종을 한번 본 다음 순종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편을 탄 커피 때문에 그 부작용으로 멍청이가 되었다지만, 아비를 향한 효심만은 남아 있는 상황.
그런 조선왕을 뒤에서 조종하려는 고종을 보며 이토는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앞으로 있을 순행에 관해 이야기하였소. 우리 태자가 지방 순행은 처음인지라······.”
고종의 입에서 아주 거슬리는 단어가 나왔다.
현 황제를 두고 ‘태자’라 칭한 것인데, 이는 작년에 있던 양위를 전면 부정하는 발언이었다.
“태자가 아니고 황제 폐하시지요.”
“아아, 짐이 착각했구려. 요즘 늙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오.”
고종은 영리하게도 자신의 나이를 핑계로 조금 전의 발언이 자신의 실수라 칭했다.
하지만 이토를 향해 열심히 간을 보는 것을 보면, 확실히 고종의 태도가 변한 것 같다.
그전에는 겁먹어서 눈도 마주치지 못했는데 말이다.
“미안하다, 태자야. 이 늙은 아비를 이해해다오.”
“아닙니다. 아바마마.”
봐라.
또다시 자신을 도발하지 않던가?
이토는 속으로 부글부글했으나 일단은 참기로 했다.
고종이 어디까지 나가나 일단 확인해 보려는 심산이었다.
“상황 폐하. 최근에 조례에 참석하셨습니까?”
“아, 그거.”
고종은 한쪽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리며 하던 말을 이어 갔다.
“통감과 내각에 이 나라를 맡긴 지 어언 3년이 지나가고 있는데, 나라 꼴이 좋아지기는커녕 영 엉망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도움이 될까 하여 참석하였소.”
“······.”
“옛말에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있지 않소? 이래 봬도 근 40년이나 되는 시간 동안 옥좌를 지키며 조선을 경영하였소. 짐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여 조언을 몇 개 했소만.”
“그렇군요.”
이토는 죽일 듯이 쏘아보며 고종을 압박했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폐하께서는 건강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쓰셔야 할 것입니다. 지난번에 합의하시지 않으셨나이까?”
이에 고종이 ‘이놈 좀 봐라’ 하는 표정을 살짝 지어 보이다가 이내 고맙다는 듯이 표정을 확 바꿨다.
“짐을 이리도 걱정해 주다니. 역시, 이토 통감뿐이로군. 하긴, 그러니 이토 통감이 짐의 둘째에게 그리 경고했겠지.”
고종이 아픈 곳을 확 찌른다.
이 발언은 두 가지 뜻을 담고 있었다.
이토와 고종의 대화는 어떻게든 정리되어 일본 본토에 있는 관리들에게 보고되는 상황.
방금 했던 발언을 통해 고종은 이토를 커다란 엿을 하나 선사했다.
강경파가 이 발언을 듣는다면, ‘너 간첩질 좀 잘하더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까.
더불어 ‘내 뒤에는 이강과 미국이 버티고 있다.’라는 뜻을 암묵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오늘 조례에서 이를 언급하며 그대에게 큰 상을 내리자고 했는데, 무례한 좀생이들이 두 손 두 발을 들며 글쎄 반대를 하더라고.”
“······.”
“밥만 축내는 머저리들이니, 이토 통감이 적정선에서 잘라 버려야 할 것이오.”
보아하니 조선 왕은 완전히 돌아 버린 것 같았다.
단시일 내에 고쳐질 것 같지 않다.
‘죽여 버릴까?’
아니다.
그러기엔 너무 타이밍이 좋지 않다.
‘뭐, 내 선에서 처리하지 못한다면······.’
다음 놈에게 이를 떠밀면 된다.
어차피 이토는 이번 순행 이후에 통감 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니까.
‘가쓰라 파벌 중 하나가 2대 통감으로 부임할 텐데.’
저런 태도를 보이면 한동안 고종이 고생할 텐데.
이토는 자신의 앞에 있는 고종에게 애도의 마음을 품으며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합지요.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
이토의 답변에 고종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순종을 바라보았다.
“태자. 아이고 나 좀 보게나.”
고종이 다시금 자신의 발언을 정정하며 순종을 불렀다.
“척아.”
“예. 아바마마.”
고종은 가까이 다가가며, 이토에게 보란 듯이 귓속말을 해댔다.
“이 아비가 아까 한 말, 잊지 말아라.”
“예.”
귓속말이었다지만, 마지막 말은 이토에게 들릴 만큼 크게 말했다.
비밀 이야기는 진즉 끝났고.
이번 행위는 이토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순진하고 무구한 순종은 그런 고종의 숨은 뜻도 모른 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사흘 후. 순행이 시작된다던데. 이토 통감, 잘 갔다 오시오. 무사히 귀환하고.”
고종은 이토의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
물론 방금 했던 말에는 진심이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고종은 이토가 하루빨리 죽어 버렸으면 했으니까.
제 권력을 저 왜놈이 빼앗아 가지 않았던가?
* * *
자신의 처소로 돌아간 후, 감시자들의 눈을 피해 무언가를 적어 가기 시작했다.
『강이에게······』
미국에 간 이후 연락을 통 주고받지 않았던 둘째 아들 이강.
그와 다시금 접촉하기 위해서다.
‘천년만년 기다릴 수 있다. 그깟 세월쯤이야.’
고종은 생각했다.
이 나라, 조선은 자신의 것이라고.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고.
심지어.
유일한 적자인 이척마저도 자신이 살아 있을 때는 황제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언젠간 다시 복위할 수 있을 것이다.’
고종은 갑자기 후회되었다.
지난날 개화 세력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강을 다음 후계자로 민 것을 듣고 불같이 화를 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
제 아들마저 경쟁자로 느끼는 권력의 화신이었던 자신의 옛 모습이 후회스러웠다.
‘그때, 둘째를 믿었어야 했는데.’
그때 이강을 좀 더 밀어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그리했다면.
쪽발이들에 의해 옥좌에서 반강제로 내려오는 수모는 당하지 않았겠지?
“폐하. 황귀비께서 폐하를 찾으십니다.”
고종의 늦사랑.
엄 귀비가 그런 고종을 위로하려고 사람을 보냈다.
“되었다. 오늘은 혼자 있고 싶구나.”
“예.”
예전에는 황귀비가 그렇게 듬직하고 그녀가 옆에만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는데 말이다.
이강이 활약하면서부터 왠지 모르게 귀비가 고종의 눈에 못나 보이기 시작했다.
‘장 귀인은 참으로 이뻤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말이야.’
고종은 죽은 민씨에게서 쫓겨난 이강의 생모 얼굴을 떠올렸다.
‘어떻게 생겼더라.’
삼십 년도 지난 일.
그녀의 얼굴이 이제는 기억 속에서도 흐릿흐릿한 가운데.
한 가지만이 기억난다.
그녀에서 났던 꽃향기가 다시금 고종의 뇌리에 스쳐 지나간 거다.
‘아, 그렇지.’
최근에 궁에 귀인 장씨를 닮은 여인이 나타났다는 거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고종은 오랜만에 황귀비 말고 다른 여인을 품어 볼 생각이다.
늙고 병들며 초라해졌지만.
그는 아직 남자니까.
고종은 새로운 여인을 찾아 궁을 떠돌기 시작했다.
< 후폭풍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