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2)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2화(12/392)
< 하와이에서 (4) – 수정 – >
이승만이라는 이름을 듣자, 내 뇌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동반사적으로 두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이자가 조지 워싱턴 대학에 입학했던 그 사람이구나.’
처음에 떠오른 건 의친왕 이강이 가지고 있던 기억이었다.
이강은 예전에 김규식에게서 이승만을 소개받았다.
실제 만남까지 이루어졌기에, 이강은 이승만의 얼굴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생김새만 알 뿐, 그 이름까지는 차마 외우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나는 조지 워싱턴 대학에 다니는 수재가 이승만이란 연상도 하지 못했다.
‘몸뚱이의 원주인인 이강은 이승만을 인상 깊게 보지 않았나 보군.’
또 다른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현대인으로 살 때의 기억이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다.’
한국의 역사는 모르지만, 나는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조금 안다.
재미교포 2세 출신으로 미국에서 세계사 수업을 들을 때, 그와 관련된 발표를 내가 했기 때문이다.
‘1940년대부터 50년대까지, 식민지였던 나라들의 독립 과정을 조사해야 했다. 그때의 기억이 큰 도움이 되는군.’
미국 교육은 단순 암기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발표 수업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나 역시 미국에서 교육 과정을 이수했기에, 이런 심화 학습을 제법 많이 수행해야 했다.
스스로 한 나라를 선택한 후, 이를 다른 학생들 앞에서 짧게 설명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나는 당연하게도 한국을 선택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태어난 나라였기에 아주 당연하게 나의 뿌리인 한국을 선택한 거다.
‘이승만은 프린스턴을 졸업했다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었나? 조지 워싱턴 대학에 다니다니.’
흠.
편입이라도 했나?
그렇지 않다면, 최종 학력이 프린스턴대학인가?
워낙 어릴 적에 공부했던 기억이라서 세부적인 디테일은 잘 모르겠다.
‘뭐, 대학이 어디냐가 중요하겠어? 이승만은 이승만이지.’
뭐, 아무튼.
나는 이승만의 어깨를 두들기며 인사를 나누었다.
“반갑네. 그나저나 자네 얼굴이 익은데 말이야. 혹시 우리 구면인가?”
나의 물음에 이승만은 살짝 미소만 지었다.
그때 옆에 있던 김규식이 끼어들었다.
“전하. 조지 워싱턴 대학 교정에서 이 청년을 한번 만났습니다. 그때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겨울이었는데 말입니다.”
김규식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에 모든 이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 옆에 계속 붙어 있던 합성협회 임시 부대표 임정수가 이승만과 나를 번갈아 보며 내게 물었다.
“전하. 이 청년을 아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 또한 확 변해 갔다.
내가 이승만과 한번 만났다는 사실에 다들 부러움 가득한 표정으로 이승만을 바라보기 시작한 거다.
임정수는 어딘가 대견하다는 듯 흐뭇한 표정으로 이승만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곁에 있던, 또 다른 부대표 정명원의 얼굴은 빠르게 어두워졌다.
‘두 명의 부대표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군? 체크해 두어야겠어.’
이승만은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하지만 이내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그런 이승만의 행동을 계속 관찰하며, 이승만과 만났던 일화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생각나는군. 전에 우사(김규식)의 소개로 한 번 만난 적이 있네. 자네들도 알다시피 내가 기거하던 버지니아와 워싱턴 D.C.는 가깝지 않은가?”
지근거리라곤 하지만, 실상은 서울-부산 거리만큼이나 멀다.
하지만 미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컸기에 이 정도는 가까운 편이라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중들도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으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참 눈이 많이 왔었는데. 우사, 그때를 기억하는가?”
“기억합니다. 눈이 허리까지 와서 난리가 나지 않았습니까?”
“하······ 그래. 내 폭설 때문에 이 청년과 아주 잠깐 만날 수밖에 없었지.”
난 주변 사람들에게 그때 상황을 설명하며 이마를 짚었다.
“버지니아로 돌아가는 길은 참으로 지옥 같았는데 말이야. 기찻길에 쌓인 눈 때문에 며칠이고 연착이 되어서 아주 혼쭐이 났네.”
전에 있었던 기억을 끄집어내며, 나는 이승만과 지난 추억을 공유했다.
그렇게 한 5분 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신기하군.’
이승만과 대화하는 잠깐 사이, 나는 그와 하와이 교민들 사이에서 한 가지 다른 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자는 ‘소인’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 같았다.
‘정치인들은 본래 자기애가 강한데······. 여기서도 드러나는군.’
나는 현대인으로 살았던 시절의 기억을 다시금 회상하며 이승만에 관한 정보를 되새겼다.
‘그는 평이 양극으로 갈리는 인사지.’
독립운동가지만, 말년에는 독재자로 변모하지 않았던가?
아까 언급했듯, 나는 세계사 수업을 들으며 1950년대 식민지 출신 나라들의 독립 과정을 조사해야 했다.
다른 학생들의 발표도 들을 수 있었는데, 아주 묘하게도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열강에서 막 독립한 나라들은 암울하게도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군부독재로 정치 체제가 바뀌었다.
‘전 세계에서 흔히 일어났던 일이었지.’
잠비아의 케네스 카운다.
가나의 콰메 은크루마.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등등.
독립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시간이 지나 권력에 미쳐 독재자로 변모하는 일은 아주 흔했다.
‘아마, 자신만이 이 나라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혹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통수권을 손에 쥐게 되자 권력욕에 사로잡혀서 그럴 수도 있다.
아니면, 보상심리로 그리 변모할 수도 있고.
‘나와 맞을까?’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가치 위에 세워진 나라다.
그렇기에 다른 나라들이 어찌 이 가치를 받아들이는가를 집요하게 분석했다.
미국으로서는 굉장히 관심이 가는 이슈니까.
‘이승만······.’
두 얼굴을 가진 사내.
나는 이승만의 정보를 떠올리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여기 우사가 자네의 이야기를 제법 많이 했네. 장래가 아주 많이 촉망된다던데······. 실제로 내 자네와 이야기해 보니, 왜 우사가 그리 칭찬을 늘어놓는지 알 것 같네.”
나의 거듭되는 칭찬에 이승만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동시에 이승만을 아니꼬워하는 일부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런데 말일세. 자네는 어째서 하와이에 있는가? 지금 떠나도 시간이 꽤 촉박할 텐데 말이야.”
샌프란시스코까지 빨라야 보름.
거기서 대륙 횡단 기차를 타고 동부까지 이동하려면 샌프란시스코에 왔던 만큼을 더 가야 한다.
지금 가도 늦을 텐데 뭐 하는 거냐, 하고 지적한 것이다.
“수강 철회 기간은 건너뛴다고 해도······ 분명 늦을 것이 뻔한데······.”
이승만을 걱정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그가 왜 이곳에 남아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의 본심을 캐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이승만이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수업보다 전하를 만나 뵙는 게 더 급한 일이라 생각하여 이곳에 잠시 남게 되었습니다.”
날 만나려고 여기에 남았다?
그 말을 믿으라고?
‘나랑 만나서 뭘 어쩌려고?’
실제로 우리 둘이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던가?
나야 이승만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쳐도 이승만은 아무런 소득도 없을 텐데.
내가 추가 정보를 더 캐내려고 할 때.
이승만을 마땅치 않게 쳐다보던 정명원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마도 같은 왕실의 일원이니, 전하를 한번 뵙고자 이 자리에 남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왕실?”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 행동을 보였다.
왕실이면 나와 친척 사이란 소리인데······.
이강의 기억 속에는 그런 정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반응에, 정명원은 슬쩍 이승만을 한번 흘겨보더니 하던 말을 이어 갔다.
“예. 이자가 말하길 자신은 양녕대군의 후예로, 자신의 피에는 조선을 건국하신 태조대왕의 피가 흐르고 있다 했습니다.”
그러자, 이승만은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이며 나와 정명원을 번갈아 보았다.
내가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이승만을 가만히 바라보자, 이승만이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답했다.
“다들 제 가계를 물어봤기에 저는 그저 사실을 언급했을 뿐입니다. 정명원 선생께서 이를 살짝 오해한 듯싶습니다.”
이에 정명원과 함께 합성협회 임시 부대표로 임명된 임정수가 이승만의 말을 거들었다.
“맞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시지요. 별거 아닌 일 아닙니까?”
이에 정명원은 나만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반걸음 앞으로 나왔다.
“글쎄. 소인의 생각은 다르옵니다. 서양인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스스로 자신을 ‘프린스 리’라 칭했기도 했사옵니다. 이게 별거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보시오. 무슨 그런 막말을······. 지금 날 모함하는 게요?”
이승만이 정명원을 노려보며 성을 냈다.
나는 그런 둘을 바라보며 조용히 팔짱을 꼈다.
‘왕자 행세를 하고 다녔다? 원 역사에서도 진짜 이랬나?’
허······.
재미있네.
하긴, 정치 감각이 있는 이승만으로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
미국에서 왕족이란 신분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그라면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이승만이었더라도 몰래몰래 그리 말하고 다녔을 테다.
‘먼 왕실 가계를 대며 왕자 행세를 했다?’
이참에 확 담가 버릴까?
흠······.
그러기에는 애매하다.
왕자사칭은 큰 죄이긴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조선에서나 해당하는 일.
더욱이 이승만은 지금 정명원의 고발을 잡아떼고 있었다.
증거가 없는데 무리하게 이를 물고 넘어지다가는 하나로 통합된 교민회에 자칫 분란이 생길 수도 있다.
‘흠. 내가 한국사를 좀 더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한국인이 아닌 재미교포 2세다.
그렇기에 이승만에 관해 많이 알지 못한다.
학교 과제 때.
1940년대부터 50년대까지, 식민지였던 나라들의 독립 과정과 민주주의 도입 과정을 조사했던 것이 전부.
‘아직은 판단하기가 모호하군.’
이자는 쓸모 있는 자인가?
아니면 내게 독이 되는 자인가?
정보가 너무 없다.
그렇기에 경계는 하되, 일단은 넘어갈까 한다.
‘하지만 경고는 해야지.’
왕자는 오직 나 하나니까.
다른 이가 왕자를 참칭하고 다니는 것을 두고 보면 안 되었다.
미래에 나의 위치를 이 자가 위협할 수 있으니까.
“자기소개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나 보군.”
나는 통이 크고 관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승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앞으로 조심하게나. 서로 오해가 생기면 얼굴만 붉히지 않겠나?”
나는 진짜 ‘왕자’고 이승만은 그저 곁가지다.
왕실과 관련된 이야기에서만큼은 내 말이 절대적이라는 뜻.
“대답해야지.”
표정 관리하라고.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는데 네가 이리 표정을 구기면 안 되지.
이승만은 잠시 입을 꾹 다물다가 이내 내 명령을 수락하는 듯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래. 자자······ 다들 얼굴 피게나. 내 선에서 마무리했으니 더는 이 이야기로 싸우지 말게. 이 좋은 날, 웃는 얼굴로 마무리해야지.”
나는 이승만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게 요긴한 체스 말이 될지, 미래에 나를 위협할지 다시 한번 계산해 본 것.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난 자신이 있었다.
그리 호락호락하지 당하지만은 않을 거니까.
* * *
광장에서의 행사는 종료되었다.
이승만을 만나며 나의 목적을 이뤘기 때문이다.
달그락- 달그락-
이틀을 하와이에서 더 보낸 후, 나는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위해 항구로 향했다.
“전하.”
함께 있는 일행은 김규식과 이승만이었다.
김규식은 나를 배웅하기 위해.
이승만은 하와이를 떠나 동부로 가려고 함께 이동 중이었다.
“그래. 할 말이 무엇인가?”
김규식이 제법 정중하게 내게 물었다.
“하와이를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자네는 교민회 통합에 도움을 주기 위해 남는다며?”
김규식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내게 물었다.
“혹 형님께서도 하와이에 좀 더 계시다 가시면 안 됩니까?”
내가 왜 그리 권유하냐는 표정을 짓자 김규식이 빠르게 다음 말을 이었다.
“이 좋은 곳에 와서 계속 일만 하지 않았습니까? 며칠만이라도······ 휴식을 취한 후 샌프란시스코로 향하시지요. 그러는 편이 형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나을 것입니다.”
“······.”
“해변도 걸으며 바닷바람이라도 좀 쐬십시오. 사람은 기계가 아닙니다.”
김규식의 권유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고 그저 입을 다물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승만이 내게 한마디 했다.
“전하. 보는 눈이 많으니 신중하셔야지요.”
이승만의 말대로, 하와이에는 조선인이 많다.
신대륙에 있는 교민들을 모두 한곳에 모아 놔도 하와이에 있는 교민만 못 할 정도.
‘그들이 이역만리나 떨어진 하와이까지 왜 이곳까지 왔겠나?’
삶이 궁핍해서지.
그런데 내가 그들 인근에서 띵까띵까 논다?
‘예전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원 몸뚱이인 이강은 원래가 호탕한 인물이다.
어여쁜 여성이 보이면 곁으로 가서 치근덕거리기도 하고.
휴양지에서는 돈도 좀 쓰고.
김규식은 이런 이강의 원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에게 이런 제안을 했겠지.
하지만 나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했다.
“방금 그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네. 동포들이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어찌 이곳에서 휴양을 보낸단 말인가?”
“송구합니다. 형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만 이를 거절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나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
교민들이 저리 힘들게 일하게 된 것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무언가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저들의 몸에 빙의되었다면······ 한동안 저들과 같은 삶을 살았을 거야.’
이 시대에.
동양인으로 태어났다는 게 참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다고, 저들을 보니 딱 그랬다.
‘얼른 돈을 벌어야 해. 그래서 저들을 지원해 줘야지.’
내 마음 한편에 쌓여 있는 부채를 얼른 청산하고 싶다.
‘그나저나 정치 감각 하나는 정말 최고네······.’
나는 속으로 이승만에 관한 평가를 하며, 그를 유심히 지켜봐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행 배편에 몸을 실으며 이승만을 바라보았다.
“우남(이승만). 왜 안 올라타는가?”
승만아, 배 안에서 이야기 좀 해야지.
너에 관해 많이 알고 싶어.
그런데 왜 이리 꾸물거려?
“가, 갑니다.”
내 말에, 이승만은 허겁지겁 나의 부름에 달려왔다.
< 하와이에서 (4) – 수정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