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20)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20화(120/392)
< 비밀번호 444 (3) >
배에서 내린 이토는 도쿄 땅을 밟으며 활짝 미소 지었다.
더럽고 미개한 조선에 머물며,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상황.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오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총리 하나 잘못 뽑아서 정치판이 개판이 되었는데, 아직 하늘은 우리 일본을 버리지 않은 모양이군.”
이토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최근에 새로 지어진 서양식 고층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자신에게 다가오는 익숙한 얼굴과 눈빛을 교환했다.
“늦었군.”
휙-
이토는 평소 그랬던 것처럼, 그가 들고 있는 짐을 아주 자연스럽게 아랫것들에게 던졌다.
“헉. 죄, 죄송합니다. 각하.”
이토의 가노들은 이토의 가방이 땅에 떨어질세라 재빨리 뛰어가 그것들을 받아 챙겼다.
“각하! 각하!”
이토는 가노들의 인사도 받지 않은 채, 본국에 있을 때 평소 자신이 애용하던 미국산 자동차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어, 어디로 모실까요?”
오랜만에 돌아와서 그런가?
이토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일까?
평소였다면 아랫것들을 향해 화를 내며, ‘몇 년을 나와 함께 했는데 아직도 그따위 말을 해!’라고 버럭 소리를 질러댔겠지만.
오늘은 그저 허허실실 웃으며 턱을 살짝 까닥거릴 뿐이다.
조용히 닥치고 출발부터 하라는 거다.
“······.”
“······.”
이토의 비서와 운전사는 눈치 보며 눈알을 뱅글뱅글 굴렸다.
일단 이토의 명령대로 출발하긴 했지만,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았기에.
그들은 계속 이토를 흘깃흘깃 보며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나 관찰했다.
“오늘은 가나자와가 좋겠군.”
“아, 예. 알겠습니다. 자네 들었지?”
“예.”
약 30초 후.
이토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토의 비서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운전사에게 한 번 더 목적지를 상기시켰다.
“도착했습니다.”
그로부터 20분쯤 시간이 흘렀을 때.
이토를 태운 자동차는 도쿄 중심부에 자리한 고급 요정에 도착했다.
“흠. 이 냄새.”
여인들의 분 냄새가 진동하는 곳.
이토는 역시나 이곳 입구에 발을 내딛기 전, 코를 벌렁거리며 그 향기를 열심히 그의 코에 담았다.
“어머, 각하!”
“사다코.”
이토는 여자를 참으로 좋아했다.
본국에 도착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게이샤들을 찾을 정도로.
“완전히 돌아오신 것입니까?”
“그럼.”
이토는 달콤한 눈빛을 마구 쏘아대며 사다코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래. 사다코 너는, 내가 없는 동안 잘 지냈느냐?”
“각하께서 안 계시는데, 소녀가 어찌 잘 지낼 수 있겠습니까?”
비음이 섞인 사다코의 코맹맹이 소리에 이토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화답했다.
“하하하. 그래? 말이라도 그렇게 하니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아,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날이 아직도 상당히 추운 듯싶다.”
“예.”
이토는 건물 안으로 들어온 후, 모자부터 벗었다.
“그래. 오늘 내게 들려줄 재미난 이야기는 무엇이냐?”
이 시대 화류계 여인들은 관에서 녹을 받는 정보계 요원들만큼이나 자국 내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안다.
익문사 요원들도 일본 내 여러 채널 중 한 채널을 이리 사용할 정도로 화류계 여인들의 정보는 꽤 쓸 만했다.
이토는 사다코를 통해 정부나 의회에 보고되지 않는 정·재계 속사정을 경청할 생각이었다.
“일단 술부터 가져오거라. 목이 타는구나.”
“예.”
사다코가 고개를 돌린 후 턱을 살짝 들어댔다.
이에 그녀의 밑에 있는 게이샤들은 재빨리 주방으로 가,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술상을 거하게 차려 왔다.
“자, 한잔 따라 보아라.”
이토가 사케 한 잔을 냉큼 삼켰다.
이에 사다코가 안줏거리를 이토에게 떠먹여 주며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무엇부터 이야기해 드릴까요? 각하.”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부터 이야기해 보아라. 대충 전화와 신문을 통해 그 이야기는 알고 있다만······. 네가 하는 이야기는 얼마나 다른지 듣고 싶구나.”
“예.”
사다코는 그동안 요정 내에서 주워들었던 이야기들을 이토에게 보고했다.
“지금도 수시로 검사들이 총리 공저에 들락날락하고 있다고?”
“예. 사회주의자들이 폐하를 암살하려고 했던 주요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합니다.”
일부 증거는 일본 내 익문사 요원들이 조작한 것이지만, 이는 가쓰라에게 그리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그는 그저 국면 전환을 위해서 사회주의자 지식인들을 탄압하고 있었으니까.
증거가 조작되었든 아니든.
그 사실 여부는 상관이 없었다.
“백여 명이 넘는 인원이 체포되었다? 그 수는 더 늘 수 있고.”
“예.”
익문사 요원들이 만든 증거들 때문에 원 역사보다 많은 인원이 구치소로 끌려가고 있었다.
사다코가 이토 입가에 묻은 간장을 닦아 내며 말을 이었다.
“도교 전역에 벌써 이 소문이 쫙 퍼졌다 합니다. 이리도 빨리 확산될 정도면, 아마도 총리가 이를 조종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뭐든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것이 최고니까.”
이토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쓰라의 얼굴을 떠올렸다.
“가쓰라 이놈. 내 헛똑똑이인지 알았는데······ 그래도 지난 세월, 헛살지는 않은 모양이로군. 아주 제법이야.”
이토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가쓰라 역시 정계에서 십여 년 이상을 구른 정치인이다.
군부 출신으로 성정이 급한 것이 단점이지만, 짬밥은 무시하지 못한다고.
가쓰라는 기어코 자신이 살 구멍을 찾아낸 듯했다.
‘뭐, 그래 봤자지.’
가쓰라의 이번 행위는 그저 정치 생명 서너 달을 연장하는 정도에 그칠 거다.
이토는 가쓰라의 이번 돌발 행동을 그리 판단하며, 사다코를 향해 술잔을 내밀었다.
“그거 말고. 다른 이야기는 없느냐?”
사다코는 술잔을 채우지 않고, 이토를 보며 아양을 떨었다.
“그전에······ 외로웠던 소녀부터 달래 주시면 안 될까요? 소녀 오늘만을 기다렸사온데 말입니다.”
“요런 앙큼한 년. 그래, 이리로 오너라.”
“어머.”
이토가 지난 1년 동안 못다 한 회포를 풀기 시작했다.
한 1분 정도 지났으려나?
아니면, 그보다도 짧았으려나?
이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다미방에 대자로 벌러덩 누웠다.
그는 얼굴을 가리고 부끄러워하는 사다코를 보며 이 순간을 즐겼다.
“······응?”
그때였다.
저 멀리 창밖에서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누, 누구냐!”
이토는 깜짝 놀라며 벗어 놓았던 옷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 후 좀 전에 검은 인형이 있는 곳을 겨눴는데 이 모습을 본 사다코가 기겁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이옵니까?”
풀어 헤친 옷자락도 미처 매듭짓지 못한 채, 사다코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각하!”
이토의 가노들이 급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이토의 명령에 따라 요정 인근을 샅샅이 수색했다.
“각하께서 도착하셨을 때, 사다코가 기존 손님들을 전부 내보내서. 현재는 직원들 빼고 아무도 없습니다.”
이를 직접 확인한 후에야 이토는 놀란 눈을 비로소 가늘게 뜰 수 있었다.
“각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다. 내 요새 좀 예민해져서 그런 것 같구나. 네가 이해해다오.”
이토는 식은땀을 흘리다가 이내 권총을 다시금 제 머리맡에 놔두었다.
“진짜 괜찮으시지요?”
“그럼.”
이토의 편집증은 이강 피습사건 이후 심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한인 암살자들이 그를 습격하는 꿈을 꿨기 때문이다.
“으······.”
머리가 또다시 지근거린다.
“괜찮으신 것 맞으십니까? 의원을 부를까요?”
“아니다.”
이토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주무르다가 이내 사다코의 품 안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여인의 품 안에서 잠이 들면 그 병세가 완화되니까.
“오늘은 이만하자꾸나.”
“아, 예.”
그렇게 이토는 귀국 첫날 불안감을 느끼며 잠을 청했다.
그 때문인지 그의 눈가에 눈그늘이 더더욱 진해져 갔다.
* * *
일본에 도착한 지.
사흘째.
이토 본가에 사이온지가 찾아왔다.
“이토 상, 건강은 좀 괜찮으십니까?”
“소문보다는 좋소이다.”
벌써 일본 내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
호사가들은 이토가 죽을병에 걸린 것이 아니냐며 수군댔다.
그도 그럴 것이.
근 1년 새.
이토의 살이 쏙 빠지고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졌으니까.
하지만 이토는 이강이나 정적 가쓰라가 이런 괴담을 만들어 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토 상.”
“말씀하시지요. 사이온지 상.”
“가쓰라가 한 시간 전, 이토 상의 사직을 승인했답니다.”
사이온지는 이토의 건강을 걱정하며 내각에서 방금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이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역시 알고 있다 전했다.
“이제는 조선 통감이 아닌 추밀원 의장이 되었구려.”
“예. 축하드립니다.”
사이온지가 품 안에서 편지 하나를 꺼냈다.
“이게 뭡니까?”
“하라 다카시 전 내무대신이 제게 이걸 건넸습니다. 전날 총리 관저에 방문했던 걸 상기하면, 아마도 총리께서 이토 상에게 할 말이 있나 봅니다.”
“흠······.”
이토는 사이온지가 건넨 편지를 그 자리에서 정독하기 시작했다.
끝까지 읽고 난 후, 이토는 가쓰라가 보낸 편지를 단번에 꾸겨 버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웃기는 자로군.”
“······.”
“제 놈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똥을 큼직하게 싸 놨으면, 제 놈이 치울 생각을 해야지. 번거롭게 남에게 부탁하다니. 쯧쯧.”
사이온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이토의 눈치를 보았다.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이토 상. 총리가 원하는 대로 러시아와의 협상을 진두지휘할 생각입니까?”
“뭐, 총리의 부탁이니 들어줘야 하지 않겠소이까? 시간도 벌 겸.”
“하긴. 국내 사정이 꽤 웃기게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이토 상의 말씀대로 사태가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가쓰라는 정치 검사들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사회주의자를 단속하고 있었다.
원 역사 때보다도 더 큰 규모로 이들을 잡아들이고 있었는데.
이는 공포정치를 통해 약해진 자신의 권력을 다시금 공고히 하기 위함이다.
소나기는 피해 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가쓰라가 이리 미친 듯이 날뛸 때는 가만히 지켜보아야 한다.
괜히 가쓰라에게 대항했다가는 이상하게 엮여서 이토마저도 반역도로 몰릴 수 있기에.
이토는 가쓰라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었다.
“아. 이토 상.”
“말씀하십시오.”
“지난번에 전화상으로도 한번 언급했지만 말입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
“국내는 몰라도 국외는 더더욱 신중하셔야 할 것이외다.”
“하하. 하하하.”
이토는 여느 일본인처럼 속이 좁다.
하지만 여느 일본인처럼 자신이 대인군자처럼 보이길 원했다.
그랬기에 그는 전혀 겁내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어느 놈이 겁도 없이 감히 본인을 해친단 말입니까?”
“······.”
“사이온지 상은 너무 근심이 많습니다. 신중한 것은 좋지만 때론 독이 될 수도 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토 역시도 조선인들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그의 숙적인 이강이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생각했기에, 이토는 신변을 더욱더 철저히 챙겨야 한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알겠으니 일단 러시아 측과 협상 일정부터 잡아 주시구려. 하루라도 빨리 본국으로 돌아오려면 그자들을 한시라도 빨리 만나야 할 테니.”
조금 위험할 수 있는 대외 일정은 이번을 끝으로 그만두려고 한다.
이토는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해외 여행길에 오를 준비를 했다.
* * *
이번에 치러질 러일회담의 최종 장소로는 만주 한복판에 있는 하얼빈이 선정되었다.
이토는 가까운 동래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선하지 않고, 저 멀리 요동반도 끝에 있는 뤼순항까지 배를 타고 이동했다.
뤼순은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치안이 안정되기도 했고.
러시아에게 양도받은 기존 남만주 철도 일부 구간을 이용해, 기존 남만주 철도 노선이 일본에도 있음을 영미 국가에 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푹 쉬십시오. 제가 곁에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토의 양녀인 배정자는 뤼순에서 합류해 이토와 함께 남만주 철도를 타고 하얼빈으로 향했다.
이토는 그녀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우며 휴식을 취했다.
오랜만에 악몽 없이 꿀잠을 자서 그런지 몰라도 이토는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을 지어댔다.
“내 곁에 꼭 붙어 있거라.”
“예.”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있다면 이토는 그녀를 고기 방패로 삼을 생각이다.
그것도 모르고 배정자는 병색이 완연한 이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의장님!”
“그래. 내가 지시한 것은 끝냈겠지?”
“예. 러시아의 협조 속에, 하얼빈역과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외인의 검문을 끝마쳤습니다.”
“두 번, 세 번 확인하게.”
“예. 특히나 경계 대상인 조선 놈들 위주로 검문검색을 아주 철두철미하게 끝내 놓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하얼빈역에 가까워질수록 이토는 더욱더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기차가 멈추고 진짜 하얼빈역에 멈추자, 이토는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밖에는 그의 도착을 기다리는 외신 기자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만주는 우리 일본의 것이다.’
주인은 제집 앞마당에서 불안해하면 안 된다.
그게 평소 이토의 지론이었다.
“아버님. 내리시지요.”
“그래.”
노련한 정치인 이토는 기차에서 내리며 사진 기사들이 사진을 찍을 시간 주었다.
그는 슬쩍 고개를 돌려 하얼빈역 전경을 감상했다.
‘뻥 뚫렸군.’
공유지인 만주.
그곳에 한가운데 위치한 하얼빈역은 탁 트인 역사 구조 때문인지 저격의 위험이 컸다.
하지만 미리 검문해 두었기에 이토는 안심하고 열차에서 내렸다.
그때였다.
“이토!”
누군가 이토를 불렀다.
마치 이강이 반년 전에 교회 예배에서 막 나올 때처럼.
누군가 이토를 애타게 찾은 거다.
무의식적으로 이토가 고개를 돌리며 반응하자, 한 청년이 품 안에서 권총을 꺼내 들며 그에게 발포해댔다.
< 비밀번호 444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