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26)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26화(126/392)
< 잊고 있었던 것 (2) >
지난 십 년간, 새로이 등록된 한반도 토종 식물들.
그것들을 요약해놓은 서류가 지금 내 앞에 있다.
“흠······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넘어간 모양이군.”
두툼한 종이 뭉치를 보며, 나는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나 고민했다.
최현식은 보고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나를 보며, 나름대로 작금의 상황을 해석했다.
“아무래도 근래에 한반도에 들린 식물학자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등록된 식물 수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나 또한 그리 생각하네.”
19세기 중엽부터 서양의 식물학자들은 세계 곳곳을 쏘다니며 새로운 식물 종 발견에 애썼다.
그 결과.
북극이나 남극, 티베트고원, 아프리카 중심부, 아마존 밀림 같은 엄청난 오지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지역이 탐사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반도 같이 몇 안 남은 온대기후 미개척지가 남아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대가 식물학자라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어떻게 행동하긴. 나라도 짐 싸 들고 대한제국으로 향할 거다.’
탐사하기 수월한, 기후가 좋은 온대지역 중 미지의 식물이 그나마 남아 있는 곳은 이곳뿐이니까.
최근 십 년간 세 자릿수의 식물학자가 한반도에 방문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아직 새로운 개체들이 발견되고 있으니, 한동안은 계속 한반도로 식물탐사를 떠날 것입니다.”
“그렇겠지.”
“전하.”
“말하게.”
“전하께서는 국내 토종 식물에, 조선식 이름을 붙이시길 원하시지요?”
“그래.”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합니다.”
“뭔가?”
“보통은 새로 발견된 식물에 자기 이름이나 자신의 모국을 붙이곤 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탐사 후원이 붙는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고 합니다.”
후원자에게 ‘감사’의 의미로 후원자의 성이나 국적을 새로 발견한 식물에 붙이는 관례가 있으니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또 돈이로군.”
“뭐, 세상 이치가 다 그렇지 않습니까? 돈이 최고입니다.”
최현식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후.
자신의 제안이 어떠냐는 표정을 지어댔다.
‘내키진 않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국내 식물들에 한국식 이름을 붙이려면 어쩔 수 없긴 하지.’
별거 아닐 수도 있다.
새로 발견한 식물에 한국식 이름 좀 붙여서 어디에 써먹냐 고개를 갸웃하는 이도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토종 식물에 외국식 이름.
특히 일본식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 나쁜 일이다.
이전에 등록된 것들은 내가 관여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다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약간의 연구 후원비만 내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기초 과학인 식물학 분야에 투자라······ 단기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쁘지 않아.’
종자 개량 분야도.
종묘 사업 분야도.
식물학이라는 기초 학문에서 파생된 것들이니까.
더욱이.
신생 식물을 찾으러 다닌다고, 내 후원을 맡은 식물학자들이 한반도 내를 쏘다닐 수도 있다.
한반도 내에서 활동한 첩자를 심기에, 좋은 핑곗거리가 되는 일이다.
‘그래. 하자.’
결심이 섰다.
나는 최현식에게 내 계획을 이야기했다.
“내가 세운 대학에 식물학과를 개설하고 명사들을 교수로 채용할까 하네. 이들을 주축으로 국내 탐사를 후원할 생각이고.”
“잘 생각하셨습니다.”
“아! 계약서는 철저하게 써두게나. 학자들이 은근 계약서에 장난질을 잘 쳐대서. 조심해야 하네.”
“예.”
내 구상을 다 말한 후, 지난 십 년간 새로이 등록된 한반도 토종 식물들의 보고서를 읽었다.
그것들을 대충 확인하다가 익숙한 명칭이 하나 내 눈에 들어왔다.
‘제주 구상나무.’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하기 좋은 나무.
다른 건 몰라도.
이것을 들여온다면, 제법 짭짤한 부수적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번 역사에서는 내가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해볼까?’
잠시 고민해보았다.
그 사이 최현식이 내 움직임을 보고, 곁으로 다가왔다.
“구상나무에도 관심이 많으십니까?”
“좀 있네. 크리스마스트리로 쓰기엔 안성맞춤이니까.”
“하긴 그렇지요.”
최현식이 무언가를 기억해내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다다음 달 왕자비 마마의 명령으로 이화 나무와 함께 개나리, 진달래, 왕벚나무 등이 다수 들어오는데 말입니다. 그때, 구상나무도 함께 들여오도록 하겠습니다.”
“에델이 이화 나무 말고도 다른 한국의 나무들도 들여오라 지시했단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정원을 아예 작은 한국으로 꾸밀 모양인가 보네.
다시 한번 감동이다.
더불어 그녀에게 뭔가 배우는 느낌이고.
‘저 브로치만 해도 그래.’
내 앞에 얼쩡거리고 있는 최현식을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얼굴이 아닌 그가 입고 있는 정장 상위를 보았다.
‘오늘도 차고 있군.’
최현식의 심장 인근에는 작은 브로치가 하나 달려 있었다.
에델의 제안으로 만든 태극문양 장식.
우리 집에서 일하는 이들은 모두 하나씩 달고 있다.
‘별거 아니지만.’
브로치를 달면서부터 집안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소속감 때문일 수도 있고.
태극문양을 가슴 한편에 달아서 애국심 또한 고양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에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
뮤즈에 따라서 예술가들의 작품이 많이 바뀌는 것을 보곤 했다.
사실 나는 이를 두고 이해를 못 했었다.
어떻게 위대한 화가의 화풍이 반려자라는 한 변수에 의해 크게 바뀌나 의아했던 것.
하지만 결혼 후, 지금은 대충 왜 그런지 느낌이 온다.
아내의 존재는 생각보다 내게 굉장히 영향을 많이 주는 존재니까.
‘알게 모르게, 난 에델에게 영향을 받고 있어.’
생활공간 안에서 누구보다 오래 붙어 있고.
잠자기 전 하루를 복기하며 상담을 받을 수도 있으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함께 고난을 헤쳐나가는 파트너이지 않은가?
부부는 닮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전하.”
밖에 잠시 나갔던 최현식이 내게로 다가왔다.
“왕실견 후보 강아지들이 대충 추려졌다고 하옵니다. 견주들이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하옵니다. 어찌할까요?”
에델이 원했던 강아지 입양이 코앞에 다가왔다.
나는 오늘이라도 당장 강아지들을 보자고 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견주들을 안으로 들이게나. 아, 에델에게는 내가 말하겠네.”
“예.”
나는 서두르고자 했다.
곧 유럽으로 떠나는데, 이런 사소한 일에 에너지를 크게 쏟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 * *
“어머! 이것 보세요. 왕자님. 꼬물거리면서 움직이는 게, 너무나도 귀여워요.”
에델은 특유의 비음 섞인 목소리를 한껏 내며, 강아지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왼쪽에 앙증맞은 코 좀 봐요. 발은 얼마나 큰지, 나중에 엄청나게 크게 성장할 거 같아요.”
각기 다른 모습을 한 강아지들이 똘똘한 눈빛으로 에델과 나를 쳐다본다.
“이리 오렴. 우리 아가.”
에델은 그런 강아지들을 바라보다가 못 참겠는지, 상자 안에 있는 강아지 중 한 마리를 꺼냈다.
그 후 그녀 품에 안은 후, 나를 한번 바라보며 자신과 강아지가 잘 어울리냐고 물었다.
“어때요?”
“잘 어울리는 것 같소.”
“정말요?”
“그럼.”
“흠. 이 냄새.”
에델은 품 안에 안고 있는 강아지를 들어 그녀의 오뚝한 코 근처로 가져갔다.
이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는데.
중독이라도 됐는지 계속하여 강아지의 체취를 확인했다.
“이 아이들. 나이가 얼마나 되나?”
“삼 개월이 채 안 되었습니다.”
에델이 강아지 체취에 미쳐 있을 때, 나는 강아지 주인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나이와 건강 상태 등 상세 정보를 묻기 시작했다.
“모견과 부견을 좀 볼 수 있나?”
“이, 이쪽입니다. 전하.”
인근에는 부모 견들이 목줄을 찬 채로 대기하고 있었다.
에델이 안고 있는 검은 강아지를 가리키며, 여덟 마리중 어느 개가 흑구의 어미, 아비냐 물었다.
“요놈들입니다. 아비는 네 살이고 어미는 세 살이지요. 전하. 이놈들, 잘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렇군.”
늠름하게 생긴 성견들을 바라보다가 다시금 에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직도 안고 있는 강아지를 열심히 쓰다듬고 있었다.
“에델.”
“아, 네. 왕자님.”
내 눈빛을 느꼈는지, 에델 역시도 정신을 차리고 안고 있는 강아지의 정보를 묻기 시작했다.
“이 아이, 품종 이름이 뭔가요?”
“푸, 품종요?”
강아지 주인은 눈알을 떼굴떼굴 굴리다가 한 십여 초 정도 고민했다.
그러다가 어색한 영어 발음으로 에델의 질문에 답변하기 시작했다.
“네, 네눈박이라고 합니다.”
“음······ 네눈박이?”
에델이 피식 한번 웃으며 살짝 당황하는 원주인을 바라보았다.
“네눈박이라······ 여기 눈 위에 있는 하얀 털들이 마치 또 다른 눈처럼 느껴져서 그런가요?”
“예. 그렇습니다. 의왕비 마마.”
에델은 록펠러 가문의 여식이다.
그녀는 눈썰미가 대단히 좋았다.
그 때문에 아랫사람들이 거짓으로 고하면 그것을 빠르게 눈치채곤 했다.
“와, 이름 한번 잘 지었네요. 방금 생각한 것 치곤.”
봐라.
지금도 콕 집어내지 않던가?
“마마. 소, 송구하옵니다. 소인, 품종이라는 개념을 잘 몰라서······.”
“아,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미스터 박, 미스터 박을 채근하고자 한 말은 아니에요.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
“그런데 진짜로 잘 지었네요. 마음에 들어요.”
방금 했던 말이 악의는 없었다며, 에델은 진심으로 품종명을 칭찬했다.
현장에서 막 지은 이름 치곤 속뜻도 그렇고, 꽤 훌륭한 편이니까.
“저 강아지 품종은 뭔가요?”
“얘는 삽살개입니다.”
“바로 말하는 것 보니, 이건 본래부터 있었던 이름인가 보네요.”
“······.”
“그 옆에는요?”
“불개라 부릅니다. 그 옆에 있는 놈은 진도고요.”
네 마리 강아지 중 에델은 지금 안고 있는 네눈박이가 가장 마음에 든 모양이다.
에델은 흑구를 제외하고는 다른 강아지에게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왕자님께서도 한번 안아보실래요?”
“그럴까?”
“어머. 잘 어울려요.”
에델이 손뼉을 한번 짝- 하고 치더니 내게 물었다.
“전에 강아지를 키워보셨어요?”
“그런 적 없소만.”
정확히, 이강이었을 때는 없다.
현대인 박병준이었을 때는 여러 마리를 키워봤지만.
“정말요?”
에델은 살짝 의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안는 자세가 처음이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밝게 웃으며, 다시금 강아지를 내게서 건네받았다.
이후 내게 간드러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왕자님께서는 좋은 아버지가 될 것 같아요.”
“어째서지?”
“강아지를 안는 모습이 너무나도 안정적이니까요. 우리 아이도 아주 잘 안아줄 거예요. 분명.”
에델의 칭찬에 나는 활짝 웃으며 화답했다.
“그럼 이쯤에서 결정할까? 이 아이가 좋겠지?”
“예.”
대충 간택은 끝났기에.
내 집에 온 개 주인들에게 이만 되었다는 눈빛을 보냈다.
개 주인들이 떠나고.
나는 최현식에게 조용히 한 가지를 당부했다.
“오늘 우리 집에 온 이들 말이야.”
“예.”
“선택된 이 말고도 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게나. 토종견 육성에 도움이 될 자들이네.”
유럽에 들렀다가 오면, 네눈박이 그리고 다른 한국 토종견들의 인기가 미친 듯이 치솟을 수도 있다.
타 왕실에 이를 선물로 건넬 수도 있기에, 브리딩은 필수적.
여기 오늘 모인 이들이 좀 수고를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전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에델은 네눈박이 흑구를 품 안에 안은 채 내게로 다시 다가왔다.
“왕자님. 이 아이. 이름은 뭐로 지을까요?”
뭐가 좋을까?
한국적인 이름이면서도 에델이 부르기 쉬운 이름이 뭐가 있지?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내 자네 작명 실력 좀 보고 싶네만.”
어려운 건 외주를 줘야지.
나는 옆에 있던 최현식에게 적당한 이름이 뭐가 있냐고 물었다.
“글쎄요. 소인이 감히 전하를 대신하여 이를 지어도 되겠습니까?”
최현식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애타게 에델을 바라보았다.
구명해 달라는 눈빛 같다.
“잘 생각해보게.”
어딜 회피하려는 거야.
나는 에델에게로 향하는 최현식의 구원 시선을 차단하며 그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최현식은 살짝 고민하다가 내게 원론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전하.”
“말하게.”
“우리네 사람들은 보통 강아지 이름을 붙일 때, 자신이 좋아하는 자나 싫어하는 자의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그래?”
나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댔다.
좋아하는 자는 그렇다고 쳐도, 싫어하는 자의 이름을 붙이다니.
이에 최현식이 살짝 짓궂은 표정으로 내 물음에 답했다.
“상황이 웃기게 돌아가니까요. 상상해보십시오. 싫어하는 사람의 이름을 붙이며 배변 훈련하는 모습을 말입니다.”
“아······.”
무슨 뜻으로 우리네 선조들이 그리 이름을 작명하는지 알겠네.
“정하셨나요?”
방금 대화는 한국어로 했기에, 에델은 전혀 우리들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그녀는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나와 최현식을 바라보며 채근했다.
“그럼.”
“이 아이 이름은 뭔가요? 알려주세요.”
“메이지(Meiji). 메이지가 어떻소?”
내 옆에 있던 최현식은 주먹을 꽉 쥐며 숨을 참았다.
‘메이지’가 누굴 의미하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메이지(Mage)요?”
다만, 에델은 최현식과 달리 메이지의 의미를 모르는 듯했다.
그녀는 일반적인 서양인들이 그렇듯, 동아시아 역사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메이지라······.”
에델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강아지에게 흔히 붙이는 이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긴, 이 아이 쏜 마법에 우리가 매료되었긴 했죠. 안 그러니, 메이지?”
에델의 마지막 말에 네눈박이 흑구가 갑자기 반응했다.
마치.
자신의 이름이 본래부터 메이지였던 것처럼.
“어머, 메이지도 제 이름이 마음에 드나 봐요. 왕자님, 이것 봐요. 방금 지은 이름에 우리 메이지가 반응했어요.”
에델은 까르르 웃으며 흑구를 번쩍 들었다.
그러자 메이지가 앙앙- 하고 짓기 시작했다.
“메이지~ 왜, 왜? 배가 고파용? 그럼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갈까용?”
너무 긴장한 탓일까?
에델이 메이지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자, 네눈박이가 소변을 찔끔 쌌다.
에델의 얼굴에 말이다.
“어머, 메이지! 이게 뭐야!”
“왈왈-”
“버릇없이 엄마한테 이러면 어떡하니? 메이지, 혼 좀 나야겠구나. 엄마한테 배변 훈련부터 받아야겠어!”
7마리를 키운 베테랑 견주답게, 에델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메이지를 꾸짖었다.
에델이 성을 내며, 메이지를 마당으로 데리고 갔다.
특훈할 생각이나 보다.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나는 메이지를 데리고 집으로 향하는 에델을 보며 최현식에게 속삭였다.
그러자 그는 눈을 껌뻑 감으며 “그럼요.”라고 답했다.
< 잊고 있었던 것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