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29)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29화(129/392)
< 로열 더치 (2) >
초호화 크루즈선인 루시타니아호에 탑승한 지도 어언 한 달.
“전하. 선장이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무슨 일로?”
“한 시간 후, 헤이그 항에 도착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
“예. 떠날 채비를 지금부터 하시지요. 전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미리미리 준비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알겠네.”
드디어 기나긴 항해가 끝났다.
나와 에델은 각자 짐 가방을 확인한 후, 손을 꼭 잡고 갑판으로 나왔다.
“에델.”
“말씀하세요.”
“일주일 전에 그대에게 귀띔해 줬던 조언, 혹시 기억하고 있소?”
우리는 작은 목소리로 서로 대화를 나누며 이동하고 있었다.
헤이그 항에 도착한 후 왕궁으로 향하는 자동차에 올라탔는데, 차 안에서도 한동안 나와 에델의 대화는 이어졌다.
“그럼요.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기억하고 있답니다.”
“다행이구려.”
나야 국제 외교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제법 되기에 이젠 좀 익숙해졌지만, 에델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 왕실 투어는 미국의 사교 무대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기에, 이 무대에 갓 데뷔하는 에델을 위해 나는 몇 가지 조심해야 할 점을 조곤조곤 설명했다.
“명심하시오. 그대는 내 아내요. 내 작위가 아직 복권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대가 평민 취급을 받아서는 아니 되오.”
“네.”
“그러니 그대를 업신여기는 이들, 특히나 귀족 출신이 아니라고 깔보더라도 너무 기죽은 모습을 보이지 마시오.”
“알겠어요.”
에델은 씩씩한 모습을 보이며,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편하게 차 한잔하러 왔다고 생각할게요. 아! 말은 이렇게 했지만, 긴장은 계속하고 있답니다. 제가 이리 말했다고 아까 지었던 그 표정, 더는 짓지 말아요.”
에델은 씽긋 한 번 웃더니, 내가 해 주었던 조언을 상기하며 그 이야기를 내 앞에서 복기했다.
“불안해 보이는데, 전에 했던 이야기 다시 한번 상기 해볼까요?”
“그럴까?”
“예. 곤란한 질문을 던지면 그저 웃기만 하라고 하셨고, 갑작스럽게 침묵이 찾아와도 분위기를 띄우겠다고 무리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그렇소. 특히나 방금 했던 말 중 마지막 말은 명심하시오. 보통 어색한 침묵을 깨려고 스몰토크를 시도하다가 커다란 실수를 하곤 하오. 이점 다시 한번 조심해야 할 것이오.”
“알겠어요. 함께 가는 말 많은 부인들이 적절하게 다른 이야기를 꺼낼 테니까. 이번에 저는 그저 가만히, 남들 하는 이야기만 경청하고 올게요.”
좋은 마음가짐이네.
그녀의 측근은 실수해도 상관없지만, 에델만큼은 실수해서는 안 되지.
‘그것을 꼬투리 삼아 외부의 적이 나를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
아이고.
데뷔하는 자는 에델인데, 오히려 내가 더 긴장되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럽 내 귀족들이 얼마나 미국인 자본가들을 무시하는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비 귀족 출신이라 대놓고 무시하는 놈도 있을 텐데. 에델이 한 성격 하는데······. 부디, 현명하게 행동해 주길.’
이런 나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에델은 내 손을 꼭 잡으며 오히려 내게 긴장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평생을 본가에서 감정을 숨기며 살아왔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런 일은 익숙해요.”
“그렇소?”
“예. 더욱이 난 세 살배기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알겠소.”
그때였다.
대답과 동시에 우리가 탄 자동차 문이 활짝 열렸다.
햇빛이 그 틈새로 들어오는 가운데, 저 멀리 여왕 부부가 보인다.
헨드릭과 빌헬미나 여왕은 헤이그 왕궁에서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나는 먼저 자동차에서 내린 후 에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우리 두 부부의 유럽 공식 일정이 시작되었다.
‘응? 뭐지?’
그런데 말이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행사가 묘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네덜란드의 여왕 빌헬미나가 굉장히 어두운 얼굴로 나와 에델을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에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눈치가 더럽게 없는 우현식이 이를 느낄 정도로 말이다.
* * *
흠······.
뭐지.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헤이그에 있는 네덜란드 왕궁에 도착한 뒤부터 계속하여 여왕은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길.’
이러면 사업 이야기를 못 꺼내잖아.
리&라이트 비행기 공장 증설 이야기도 꺼내야 하고.
로열 더치 셸 투자 건도 나눠야 한다.
그런데 여왕이 이리 반응하면, 죄다 무효가 될 텐데.
‘아······.’
여왕의 표정이 왜 이리 어두운지는 몇 번 대화하고 보니 알게 되었다.
모두 에델 때문이었다.
천박한 비 귀족 출신 미국 계집이 왕궁을 방문해서 화가 났다는 말도 안 되는 그런 이유는 아니고.
지금 에델의 배 속에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빌헬미나 여왕이 후계자 생산에 어려움이 있을 줄이야.’
경호팀이 생기고.
내 비서진들 또한 그 인력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네.
의전팀에서 이런 문제가 있다면 사전에 보고했어야 했는데.
‘에델을 미국이나 영국에 두고 오는 것이 맞았을까?’
아니다.
그랬다가는 또 그 이유로 여왕이 똥 씹는 표정을 지었겠지.
에델의 임신 소식은 어떻게든 여왕의 귀에 들어가기 마련이니까.
작금의 상황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는 그저.
폭풍전야 같은 지금 상황이 그저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할 뿐이다.
“하, 부럽습니다. 이 왕자, 그리고 이 왕자비.”
“예? 그게 무슨······.”
“이 왕자비께서는 결혼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아이를 배지 않았습니까?”
“아, 네.”
여왕과의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눈치챈 후, 요리조리 주제를 빗겨 나가며 최대한 아이 이야기는 피했는데 말이다.
결국에 빌헬미나가 이 이야기를 다시금 만찬장 주제에 올려놓았다.
에델도 나도 눈치가 9단이라서 그런지, 임신 이야기가 나오자 굉장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여왕을 일단 달랬다.
“여왕이시어.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곧 축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듣자 하니 예전에도 좋은 소식이 있지 않았습니까? 안타깝게도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긴 했지만요.”
나의 발언에 에델이 맞장구를 쳤다.
“마, 맞아요. 아직 젊으시니, 곧 좋은 소식이 들려오지 않겠어요?”
빌헬미나 여왕은 살짝 표정을 풀며 그녀의 옥좌에 허리를 기대었다.
“그렇겠지요? 본인도 그리 믿고 있답니다. 언젠가는 내게도 다시금 아이가 잉태되겠지요.”
하지만 뭐가 심통이 났는지, 빌헬미나는 그녀의 남편인 헨드릭을 흘겨보며 입을 삐쭉 빼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을 듯합니다.”
“어, 어째서죠?”
아, 안돼.
이럴 때는 그저 조용히 있어야 했는데.
에델이 그만 맞장구를 쳤다.
이에 빌헬미나가 여러 의미가 담긴 표정으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었다.
“그야, 손뼉도 서로 맞아야 소리가 나니까요.”
“······.”
“······.”
만찬회 분위기가 싸해졌다.
보통은 이런 식사 자리에서 극도로 사적인 이야기는 오가지 않는데.
빌헬미나 여왕은 아주 ‘작심’한 모양이다.
그녀는 자신의 부군을 흘겨보다가 이내 나를 쳐다보았다.
“세상에는 불변하는 이치가 있습니다. 아이가 만들어지는 과정 역시도 그렇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이 왕자.”
동의해 주기도.
그렇다고 동의 안 해 주기도 뭐하다.
이럴 때는 침묵이 최고.
이에 빌헬미나 여왕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제 남편인 헨드릭의 편인 것을 진즉 인지했기에, 자신의 주장을 거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안 했다는 표정이다.
나는 살짝 당황하여 시선을 헨드릭 공에게로 돌렸다.
‘응?’
헨드릭은 한숨을 푹 쉬는 여왕을 투정을 못 들은 체하며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뭐야.
이 둘 사이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이러면 안 되는데······.’
헨드릭과 나는 이년 전, 만국평화회의 때 친해진 이후 절친처럼 지내고 있었다.
본국에 입국하지 못한 채 정처 없이 외국을 떠도는 왕자와 20세기 여왕의 부군이라는 신분은 살짝 그 처지가 비슷했기에, 짧은 시일 내에 영혼의 단짝처럼 친해질 수 있었다.
‘헨드릭은 내 중요 사업 파트너인데······.’
이건 헨드릭이 여왕의 부군일 때라는 전제가 유지될 때의 이야기다.
그가 백수가 된다면 더는 친구비를 낼 이유가 없어진다.
‘협박이라도 해야 하나?’
네놈이 이혼하면 끝이라고.
돌려서 좋게 말하면 노력이라도 하려나?
나는 온갖 상상을 다 하며 헨드릭을 게슴츠레 쳐다보았다.
“친구여.”
둔감한 헨드릭 역시 내 눈빛을 눈치챘는지, 내 쪽으로 고개를 틀어 속삭였다.
“내일 오후에 나와 함께 골프나 치러 가지 않겠는가?”
그래.
사람 눈 많은 궁정에서 이야기하기보다는 한가한 골프장에서 속 시원히 대화하는 것이 낫겠네.
“좋지. 준비는 되었지?”
“그럼. 내기는 언제나 환영이네.”
둘 사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나 확인해야 할 것 같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에서 취할 이권의 규모가 달라질 테니까.
* * *
“나 원, 미국에서 종일 골프만 쳤는가?”
“하하, 내 실력이 좀 늘긴 했지.”
“는 정도가 아니야. 내 친구 ‘리’는 어디 가고 프로 골프 선수 ‘리’만 여기에 있나 보군.”
골프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헨드릭과 오랜만에 내기 골프를 하고 있다.
코스 중 가장 긴 파5 17홀을 막 끝마치고, 마지막 홀인 18홀로 이동하는데.
헨드릭이 투정을 부렸다.
오늘 나에게 대판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본 실력이네.”
“무슨 소리. 오늘 자네 운이 좋았을 뿐이네.”
“그럼 내일 한 판 더 할까?”
“나야 좋지.”
네덜란드에서 뽑아 먹을 것이 아직도 많다.
그런데 내기 골프에서 왜 이겼냐고 의아해할 수 있을 거다.
‘큰 그림을 그리는 거지.’
그저 연속해서 이기면 재미가 없거든.
모름지기 내기의 묘미는 팽팽한 가운데 극적인 승리를 쟁취할 때.
그때 최대한으로 쾌감을 느끼게 된다.
헨드릭에게 이런 기쁨을 느끼게 해 주기 위해 나는 일부러 오늘 내기는 큰 점수 차로 이기며 그의 승부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아, 어제 만찬회 대화 중에서 오갔던 말이야.”
“무슨 말?”
헨드릭이 드라이버 샷을 치려다 말고, 내게 말을 걸었다.
“아, 그 자네가 내게 고맙다고 말했던 쑥스러운 장면 말인가?”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할 모양이다.
무거운 대화 말고 가벼운 대화부터.
나의 답변에 헨드릭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사이에 뭘 그걸 가지고······.”
여왕과의 만찬회 속에서 종종 나는 열심히 헨드릭을 치켜세워 줬다.
그의 자존감을 살리기 위해서다.
유럽 순방길에 네덜란드를 가장 먼저 들른 이유 역시 헨드릭 때문이라고 한참 열변을 토했는데.
헨드릭은 이에 감명받았는지,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또다시 이를 언급했다.
헨드릭이 한숨을 쉬며 어젯밤 일을 회상했다.
“자네도 자네 환영 만찬회에서 사람들이 날 어떻게 대하는지 대충 느꼈을 것일세. 자네가 오기 전까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나는 왕궁 구석에 박혀 세월을 썩히고 있네.”
부군의 역할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
베짱이처럼 팽팽 놀고 살 수도 있지만, 야심이 있는 남자라면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살아야 하지 않던가?
“많이 힘든 모양이군.”
“······.”
“자넨, 여왕의 부군일세. 능력이 너무 뛰어나도 안 되는 자리네. 그건 자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알지.”
헨드릭이 주먹을 꽉 쥐며 미간을 살짝 오므렸다.
“그래서 더 X 같다는 거야. 평생을 한 여인의 그림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운명인지······. 자넨 모를 것이네.”
흠.
둘 사이가 생각보다 더 소원해진 것 같은데.
이거 큰일일세.
“자네 부인과 자네 사이는 아직 괜찮은 거지?”
“글쎄.”
헨드릭이 자신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골프채를 휘둘렀다.
그런 뒤에 그는 조용히 내게로 다가와 속삭였다.
“요새 들어 이혼하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네.”
“뭐?”
‘야, 인마. 그럼 안 돼.’
여왕의 부군인 헨드릭은 내게 도움이 되는 존재다.
하지만 무직인 헨드릭은 다르다.
나는 헨드릭을 위해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자네 부인은 아직 자네를 사랑하는 것 같은데······. 자네도 그렇고.”
“맞아. 결혼한 지 십 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그녀를 보면 불꽃이 튀네.”
“그럼 됐지. 무슨 걱정인가?”
헨드릭이 몸을 부르르 떨며 뭔가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가끔 소름이 돋네. 어떨 때는 헬레나가 정말이지 사람 같지 않고 기계 같으니까.”
헨드릭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강조했다.
“내 농담에 영 반응을 안 해. 다른 여인들은 다들 깔깔대고 웃는데, 그녀만 웃지 않는단 말일세. 더욱이 그녀 입에서는 매번 재미없는 이야기만 나오네. 그저 국정, 국정. 국정 타령이네.”
“여왕의 숙명이 아닌가?”
“그래. 그거까진 이해하네.”
헨드릭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녀는 요새 나를 아주······ 아닐세.”
헨드릭이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다가 말고 입을 꾹 다문다.
나는 대충 뒤에 이야기가 뭔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았다.
어제 빌헬미나의 표정이나 발언들을 고려해 본다면 대충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네 부인이 후계자 문제 때문에 많이 괴로운 모양이야. 그래서 자네를 닦달하는 모양일세.”
헨드릭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댔다.
진심으로 놀랐는지 그는 반걸음 뒤로 물러서며 나를 귀신 보는 듯한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어찌 안 것이지? 자네가 독심술을 쓴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말이야. 혹시 내게 동방에서 내려오는 비기라도 쓴 것인가?”
마지막 말은 헨드릭의 재미없는 농담 같다.
내가 정색하자 헨드릭이 손사래를 쳤다.
“아, 아무튼 내 얼굴에 그리 적혀 있나? 아니면, 소문이 미국까지 퍼진 건가? 아이 문제는 어찌 안 것이지?”
헨드릭의 물음에 내가 흔쾌히 답을 알려 주었다.
“첫 만남부터 자네 부인은 에델의 배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네. 그런데 내 어찌 이를 못 느꼈겠는가?”
“아······ 그랬었지.”
헨드릭은 이후, 내게 좀 더 심도 있는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마치 방언이 터지듯,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힘든 점을 고해성사하듯 쏟아 냈다.
“하, 말도 말게. 요즘에 죽겠네. 내가 무슨 종마도 아니고 매일 같이 요구한다네.”
“그래?”
“덕분에 요새 각방을 쓰고 있네. 영 내키지 않아서······.”
후계자 생산에 번아웃이 온 것인가?
헨드릭은 지난 반년 동안 빌헬미나와 살을 섞지 않고 있었다.
‘혹시 문제가 있나?’
아직 30대 초반이지만, 21세기와 20세기 노화 속도는 다르다.
노화 속도가 빠른 걸 감안한다면, 젊은 나이임에도 그 ‘병’이 찾아올 수 있다.
‘아니면, 심인성 요인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아무튼.
밤에 약한 남자 헨드릭의 어깨를 두들기며 나는 위로의 말을 전했다.
“내 마침 이곳에 좋은 것 하나를 들고 왔는데 말이야.”
나는 암상인 같은 표정을 지으며 헨드릭에게 내가 가지고 온 선물 중 하나를 권했다.
“그래. 자네에게도 좀 소개해 줄까?”
“좋은 것? 그게 뭔가?”
헨드릭은 자못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재차 물었다.
“무엇인가? 자네가 그리 추천하니 뭔가 믿음이 가는군.”
“자네에게만 특별히 알려 주는 것일세. 내 남자에게 아주 좋은 영약을 하나 가지고 있네.”
“영약?”
21세기나 20세기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정력이 좋다는 것을 마다하는 남자는 없다.
부실하든, 아니면 팔팔하든.
남자는 끊임없이 이를 추구하거든.
“자네 혹시 고려 홍삼을 아는가?”
“홍삼?”
“그래. 먹으면 몸이 뜨거워지고 아랫도리에 피가 몰린다네. 정력에 아주 좋지. 내 고국의 특산품이네.”
“지, 진짜로? 남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아니.
전혀 도움이 안 돼.
자양강장제지만, 그런 성분은 전혀 없으니까.
그런데 왜 헨드릭에게 홍삼을 권하냐고?
그야, 플라세보 효과를 노리고 한 말이기 때문이다.
효과가 없으면 헨드릭 그에게는 예외라고 핑계 대면 되니까.
‘이참에······ 겸사겸사 홍삼도 좀 홍보하고······.’
일부 교민이 미주로 건너오며 고려 인삼 씨앗을 서부로 들여왔다.
이를 재배하여 홍삼을 서구에 유통하려고 시도 중이다.
나는 이들을 위해 착한 거짓말을 한번 해 볼 생각이다.
“내 자네에게 농을 하겠는가? 저기 거대한 중원 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한 황제가 영생을 위해 아시아 각지에 사람을 보냈네. 온갖 영약들을 모았다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홍삼이라고 하네.”
“허허.”
“최근에는 아편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어서 값이 아주 비싸졌네. 그런데 아편 치료제 말고도 다른 이유로 이를 찾는 이도 있네만.”
“그래?”
“그렇다니까.”
진짜로 밤에 약한지, 헨드릭이 큰 관심을 보였다.
“사업 이야기는 나중에 해야겠군. 일단은 궁으로 돌아가세나. 그곳에 영약이 있다네.”
“아, 알겠네.”
홍삼에 꽂힌 것인지, 헨드릭은 그 좋아하는 사업 이야기도 도통 하지 않은 채 자동차로 달려갔다.
그렇게.
헤이그에 있는 네덜란드 왕궁에 도착한 후, 나는 헨드릭에게 홍삼을 건넸다.
홍삼을 건네받은 헨드릭의 뒷모습은 어느 때보다 커 보였다.
고새 없던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 로열 더치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