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35)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35화(135/392)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1) >
헤이그에 도착한 지 한 달여 만에 네덜란드를 떠난다.
빌헬미나 여왕과 헨드릭은 궁전 정문 앞까지 나오며 나와 에델을 끝까지 배웅했다.
“이 왕자, 남은 일정도 부디 잘 진행하십시오. 몸조심하시고요.”
“여왕님께서도 몸조심하십시오.”
빌헬미나 옆에 있던 헨드릭은 내게로 한 걸음 다가오며 아쉬운 표정으로 작별 인사를 청했다.
“내 자네의 다다음 일정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는데. 사정이 생겨서 함께 독일에 방문하지 못할 것 같네. 미안하게 되었네. 통 큰 자네가 이해해 주게.”
헨드릭은 더는 리&라이트의 대주주가 아니다.
더욱이 네덜란드는 현재 한참 영국의 눈치는 보는 상황이기에, 나는 헨드릭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뭐, 계획이야 언제든 바뀔 수 있지. 난 괜찮네. 내가 어린아이도 아니고, 독일쯤이야 혼자 방문할 수 있네.”
“역시 내 마음을 알아 주는 것은 자네뿐일세. 아! 유럽 순방 후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이곳에 다시금 들리게나. 내 그때 자네 부부를 극진히 대접하겠네.”
“알겠네. 내 조만간 연락함세.”
“그래.”
부부의 얼굴은 굉장히 밝았다.
특히나 빌헬미나는 헨드릭보다도 더 극적으로 표정이 변했다.
한 달 전에는 얼음 마녀나 괴상한 AI 로봇 같았는데.
격세 지변이다.
“여왕의 표정이 아주 좋아 보이는군.”
나는 빌헬미나-헨드릭 부부가 대여해 준 왕실 전용 자동차를 탄 후, 에델을 바라보며 소곤거렸다.
에델이 여왕의 심경을 혹시나 알까 해서 물어본 거다.
“다 이유가 있지요.”
에델이 눈웃음치며 내 물음에 묘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간 에델은 헤이그 궁에 머물며, 네덜란드 사교계 인사들은 물론이고 여왕과도 종종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자끼리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몰라도 그녀는 나보다 여왕 관련 이야기를 더 잘 아는 것 같았기에, 살짝 기대하는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무슨 이유?”
“그게······.”
차 뒷좌석 안에는 현재 우리 둘밖에 없다.
하지만 네덜란드 왕가 소속 운전사가 내가 탄 자동차를 몰고 있었기에.
에델은 내게로 좀 더 다가온 후, 살짝 얼굴을 붉히며 다음 말을 내뱉었다.
“이번 달에 해야 할 달거리가 아직 감감무소식이라네요.”
“달거리? 아······.”
여성들이 한 달에 한 번 하는 마법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소리겠네.
월경을 한 번 걸렀다는 것은 생리 불순 같은 단순 병증일 수도 있지만, 여왕이 진짜로 후계자를 임신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부부가 저리도 싱글벙글했구나.
‘후계자 문제로 저 둘은 상당히 골을 썩이고 있었는데 말이다. 잘 되었네.’
헨드릭 녀석이 엉큼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여왕과 팔짱을 끼고 있었던 것도 생각해 보니 다 그 때문이었구나.
“확실하오. 부인?”
“예. 확실해요. 빌헬미나 여왕에게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측근에게서 들은 소식이니 제 말을 믿어도 좋을 거예요.”
에델이 눈에 힘을 주며 작게 소곤거렸다.
“단순 생리 불순일 수도 있지만······ 과거의 전례로 볼 때 여왕은 성인이 되고 나서 딱 세 번만 달거리를 걸렀다고 하네요.”
두 번의 유산.
그리고 한 번의 사산.
이 세 번의 사례를 제외하고, 빌헬미나는 매달 마법에 걸렸다고 한다.
딱딱 부러지는 성격 때문에 사람 같지 않고 로봇 같은 느낌을 물씬 풍겼는데 말이다.
생체 리듬도 그녀의 성격을 쏙 빼닮아서 그런지 기본적인 루틴에서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게다가······.”
“게다가?”
“여왕이 최근에 꿈을 꾸었다네요.”
“꿈?”
“예. 네덜란드의 상징이 튤립이라잖아요.”
“그렇지.”
에델이 살짝 몸을 꼬며 무언가 쑥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꿈속에 그녀의 부군인 헨드릭이 여왕에게 빨간 튤립 한 송이를 선물했다고 해요. 그 순간 온 세상이 환하게 밝아졌다고 하던데······ 이거 어찌 보면 태몽이 아닐까요? 왕자님이 꿨던 꿈처럼요.”
서양인들에게는 태몽이라는 개념이 없다.
한국에만 있는 고유한 미신.
에델은 최근 한국 문화를 접하며 여러 가지 지식을 습득하곤 했는데.
이런 미신들도 고새 수용한 모양새다.
‘뭐,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과일 꿈을 꾸고 나서 에델이 임신했으니까. 다른 이상한 미신은 몰라도 자신이 경험한 것들은 어느새 굳게 믿게 되지.’
아무튼······.
에델은 여왕의 꿈을 태몽으로 해석해 준 모양이다.
빌헬미나의 측근에게 살짝 이를 흘린 모양인데.
그 측근은 다시금 여왕에게 재잘거려서 현재 여왕의 마음이 붕붕 뜬 것 같다.
“그래서 이리도 성대하게 나를 배웅해 준 것이군.”
“그렇겠지요? 여왕은 은인과 원수는 잊지 않으니까요. 돌아가신 부왕을 쏙 빼닮았어요.”
“그래?”
“예.”
나는 피식거리며 에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고는 내 손을 그녀 손과 함께 그녀의 배로 가져갔다.
“본의 아니게 은인이 된 셈이로군. 여왕이 진짜로 임신을 하게 된다면 말이야.”
“그렇죠.”
헨드릭을 상대로 열심히 접대를 해 줬지만, 에델도 에델 나름대로 헤이그 궁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다.
그녀의 숨은 내조를 칭찬하며 나는 에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부인은 다른 귀부인들과 꽤 많이 친해진 모양인데······ 다른 재미난 이야기는 없소?”
“뭐, 이것저것 있긴 해요. 대부분은 돈 자랑, 남편 자랑, 자식 자랑으로 끝났지만······.”
에델이 어깨를 으쓱이며 다음 말을 이었다.
“사람들 사는 것이 다 똑같지 않겠어요? 자랑 아니면 흉보기. 아, 왕자님. 저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답니다. 왕자님의 조언이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잘했소.”
에델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다시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제가 귀부인들과 티타임을 가지면서 재미난 소식을 하나 들었어요.”
“무슨 이야기?”
“지금 영국에 우리 말고 유럽 내 다른 왕가 인물들이 방문해 있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왕가 인물이?
어느 나라가?
“듣자 하니 벨기에 국왕 와 있다던데요?”
“벨기에?”
“예. 레오폴드 2세가 영국에 국빈으로 방문 중이라고 하네요.”
에델은 네덜란드 귀부인들에게 들었던 정보를 회상하는 행동을 보였다.
“내년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리잖아요.”
“그렇지.”
“그것을 홍보하기 위해, 더불어 이웃 국가인 영국의 협조를 얻어 내기 위해 방문한 것이 아닐까요?”
글쎄.
그건 차차 알아봐야겠지.
다른 이유로 방문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하니까.
“그나저나······ 벨기에 국왕 말이에요. 인성이 개차반이라는 소리가 있던데, 괜찮겠지요?”
에델은 네덜란드 귀부인들에게서 레오폴드 2세의 악명을 들었나 보다.
그의 이름을 언급할 때마다 질색하며 나를 보는 것이, 이를 증명하는 것 같다.
“설마하니 마주치겠소? 마주치더라도 우리가 그들에게 잘못한 것 또한 없으니 당당하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될 것이요.”
“네.”
이 말과 동시에, 자동차가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이 왕자님.”
“그래.”
차에서 내려 헤이그 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으로 향했다.
수십 명의 경호원이 우리 일행을 호위하는 가운데, 익숙한 한 얼굴이 막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이 왕자님.”
“월터.”
나는 재빨리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만나서 반갑군.”
남작의 양아들인 월터는 헤이그 항에 정박한 선체로 나를 안내하며 입을 뻥긋거리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이 왕자님을 위해 저와 저희 가문이 몇 가지 편의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 * *
“훌륭하구먼.”
안 그래도 번쩍번쩍한 일등석 객실인데 말이다.
월터 로스차일드가 마법이라도 부린 모양인지, 더 화려해진 것 같다.
곳곳에 보이는 사치스러운 장식품에 눈을 떼지 못하며 내가 월터에게 한소리를 했다.
“런던까지 별로 걸리지도 않은데······ 이리 과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는가?”
네덜란드의 수도 헤이그에서 영국의 수도 런던까지 거리는 약 300km 정도 된다.
진짜로 그리 멀지 않은 거리.
네덜란드가 국경을 접하는 이웃 국가인 독일만큼이나 영국을 엄청나게 신경 쓰는 이유는 이 때문인데.
아무튼.
나의 반응에 월터가 이리 대답했다.
“이 왕자비께서는 현재 임신 중이시지 않습니까? 이 정도는 해 드려야 복중 태아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리라 생각해 준비했습니다.”
치트키인 아이를 언급하다니.
그래.
서로 좋자고 이리 환대하는 것일 테니 이쯤에서 그냥 넘어가는 것도 좋겠지.
“우리가 탄 이 크루즈 선. 참으로 화려하구먼.”
“가격도 꽤 나간답니다.”
“그래?”
“예.”
“연료나 보험료 같은 유지비도 꽤 많이 들겠군.”
왕자로서 위신이 있기에, 돈 이야기는 지양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는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이기도 했다.
더욱이 지금은 영국 왕실 일원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익히 알고 있었던 월터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기에, 돈 이야기를 좀 했다.
“영국 쪽 금융은 자네 가문이 꽉 잡고 있으니까, 이 선박의 보험 역시 자네 가문 소유의 보험사가 관리하고 있겠군.”
“아······.”
월터가 손사래를 치며 내 말을 정정해 주었다.
“저희 가문은 해상 보험 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어째서?”
“한번 사고가 나면 너무나도 큰 손실을 보게 되니까요.”
월터의 말에서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남작은······.
“안전 지향 주의자로군.”
“예. 그렇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매사에 신중하시지요.”
월터는 무언가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그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 걸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자네 생각은? 자네 생각도 자네 가문, 그러니까 남작의 생각과 같나?”
“글쎄요.”
월터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머무는 방에는 현재 에델과 나, 월터뿐이었기에 그는 내게 살짝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저는 조금 더 과감해져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오호. 남작과는 살짝 다른 관점이로군. 하긴, 모건 부대표도 비슷하긴 했지. 제 아버지와 투자 성향이 살짝 다른 모습을 보여 줬으니까.”
모건이 언급되자, 월터가 묘한 표정을 짓는다.
월터는 모건 주니어를 살짝 선의의 경쟁자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아무튼······ 자네 생각엔 살짝 더 과감해져도 된다는 거지?”
“예. 하지만 아버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저는 아버님의 판단을 존중할 것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내 옆에서 차를 홀짝이는 에델을 바라보았다.
“부인.”
“예.”
“오래 앉아 있느라 힘들 텐데 먼저 올라가서 쉬고 있겠소?”
이에 에델이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이야기들 재미있게 나누고 오세요. 그렇다고 너무 오래 절 혼자 두진 마시고요.”
“알겠소.”
에델이 일등석 접견실을 떠나고.
우리 둘만 남은 상황에서.
나는 손깍지를 끼며 월터를 바라보았다.
“그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보이는구먼. 이리 헤이그 항까지 와서 나를 기다릴 정도면 말이야.”
나는 은근슬쩍 월터의 아버지인 남작을 언급했다.
“남작께선 내게 궁금한 것이 많으신가 보군. 하나뿐인 아들을 이 자리에 보낼 정도면.”
“뭐, 궁금한 것이라기보단······ 서로 함께 진행하는 사업이 많지 않습니까?”
모건 주니어보다는 못하지만, 월터는 차기 영국의 로스차일드 가문 후계자다.
그는 능숙하게 말을 이어 가며, 살짝 퉁명스러운 내 반응을 매끄럽게 받아쳤다.
“동업자로서 저희 아버님께서는 왕자님의 의중을 좀 더 이해하고자 저를 이 자리에 보내신 게 아니겠습니까?”
“동업자로서라······.”
월터의 말에서 또 한 가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동업자의 후계자로서 이 자리에 왔다는 것은 함께할 사업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소리겠네.
“두 문제 중 하나는 자네와 이야기하기엔 너무나도 큰 사업인데 말이야.”
연방 준비 제도 관련 이야기는 남작과 직접 대면하며 논의할 문제.
이를 언급하며 흘려버리자, 월터가 살짝 조바심을 내며 다음 말을 내뱉었다.
“그럼 다른 한 가지라도 미리 저와 상의하시지요.”
“뭐, 미래에 가문의 주인이 될 테니까. 남만주 철도 건이야, 자네와 의논할 수 있겠군.”
월터가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냈다.
“최근에 청의 상황이 심상치가 않은데 말입니다. 왕자님께서도 이를 잘 알고 계시겠지요?”
내가 중국 쪽에 사람을 심어 둔 것을 살짝 알고 있는 모양이다.
월터의 떠보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청나라 관련 소식은 나 또한 종종 듣고 있네. 그래. 곳곳에서 민중들이 반기를 들고 있다며.”
“예.”
월터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버님께서는 이에 살짝 우려를 표명하고 계십니다.”
“우려?”
“폭도들이 남만주 철도 병행 부설 사업에 지장을 줄까 두려워하시는 것이지요.”
나는 피식 웃으며 별일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뭐 걱정하실 수도 있겠지. 중원의 상황이 영 엉망이니까.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하게. 남만주 철도 말이야. 현재 그곳을 누가 관리하고 있던가?”
나는 손가락까지 튕기며 조금씩 분열하고 있는 중원의 상황을 설명했다.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