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37)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37화(137/392)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3) >
처칠은 영국인이지만, 나는 그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세계사 수업 시간.
세계대전 파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정치인 중 하나니까.
‘우크라이나 얄타에서 전후 세계 질서를 논의할 때, 이를 주도한 거물 중 하나였지.’
루스벨트, 스탈린, 처칠.
이 셋이 모여서 큰 그림을 짰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자가 나를 만나러 온다니. 대박이네.’
현 영국 총리인 허버트 애스키스도 물론 중요하지만.
처칠은 미래에 거물이 될 인물이다.
그는 내게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기에, 속으로 만세 삼창을 하며 남작의 섭외력에 감탄했다.
‘다만······.’
너무 기뻐해서는 안 된다.
내 패를 보여 주게 되면, 교활한 남작이 또 어떻게 이상한 수를 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글쎄.”
일단은 남작의 질문에 대답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영 모르겠구려. 웬만한 정치인들은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자의 정치 경험은 생각보다 짧은 모양이오.”
“예.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최근 정계에 입문했기에, 미국에서 활동하시던 왕자님께서는 잘 모르실 수도 있는 인물입니다.”
“그렇군.”
나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무튼······ 나를 위해 이리도 애써 주다니, 고맙소.”
“아닙니다.”
남작은 오히려 내 행동을 칭찬하며 나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헤이그에 도착하신 후, 베를린으로 향하는 것이 더 편하셨을 텐데······ 저와의 인연을 생각해 독일보다 영국에 먼저 들르시지 않으셨습니까?”
“뭐, 그렇지.”
“왕자님의 배려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해 드려야지요. 너무 무리하지 않고 있으니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남작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의 컨디션을 살짝 살폈다.
“여독으로 많이 피곤하실 텐데 이만 들어가 쉬십시오. 저는 아들놈과 함께 내일모레 있을 만담에 관해 논의를 좀 하겠습니다.”
월터와 상의를 좀 해야 한다?
헤이그에서 런던으로 올 동안,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듣고 싶다는 말이겠네.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재차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작이 마련한 숙소로 가기 전 슬쩍 돌아보며 두 부자를 바라보았는데.
그들은 내가 미처 떠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신중하지만, 한편으로는 성격 급한 남작의 행동을 보며 나는 조용히 다음 계획을 머릿속에 구상하기 시작했다.
* * *
“안녕하십니까. 이 왕자님. 대영제국의 상무장관인 윈스턴 처칠입니다.”
내 기억 속 처칠은 불도그같이 생긴 정치인이었다.
거기에, 몸뚱이는 뚱뚱보 돼지처럼 살이 피둥피둥 쪄 있었고.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젊은 처칠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미남이었다.
아직 늙고 살찌지 않은 처칠이 밝게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강이오. 만나서 반갑소.”
나 역시 활짝 웃으며 그와 악수를 하기 시작했다.
‘뭐야?’
처칠은 내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고 싶은지, 아주 세게 내 손을 쥐며 위아래로 손을 흔들었다.
생전에.
이렇게 행동한 놈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사업가이자 대통령이 된 트럼프였다.
오랜만에 기선 제압에 집중하는 상대를 만났기에, 나는 살짝 당황하며 자리에 앉았다.
“먼 길 오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다행히도 몸은 좀 괜찮으신 것 같으십니다.”
“먼 길?”
한동안 미국에 거주해서 그런지 ‘거리 개념’이 살짝 달라진 것 같다.
나는 그럴 수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처칠의 말을 내 멋대로 해석해 보았다.
“음. 헤이그에서 런던까지 약 200마일(320km) 정도 되니, 뭐 어찌 보면 먼 길이라고 볼 수 있겠구려.”
나는 로스차일드 남작을 쳐다보며, 그를 칭찬했다.
“여기 옆에 있는 로스차일드 남작이 어제 나를 극진히 대접해 줘서 그런지, 몸이 아주 날아갈 것 같소.”
“아······ 그렇군요.”
처칠이 살짝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남작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뭐가 잘못되었소?”
“제가 뭔가를 잘못 알고 있어서······ 잠시 고민하느라 표정이 굳었나 봅니다.”
“잘못 알았다?”
“런던 이전에 헤이그에 먼저 들르신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소?”
“송구합니다. 이 왕자님. 저는 이 왕자님께서 아주 당연하게도 저희 영국에 가장 먼저 방문하신 줄 알았습니다.”
“······.”
“미리 해당 정보를 알아보고 왔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영국 놈들은 뒤끝이 있는 놈들이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유럽 순방 때.
첫 방문지로 네덜란드를 선택한 것을 두고 누군가 이를 지적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게 처칠의 입에서 나올지는 몰랐네.
‘사전 조사를 안 했을 리가······.’
안 했을 리가 없다.
천하의 처칠인데.
진짜로 안 했다면, 나를 아주 무시하고 있다는 뜻일 테고.
“네덜란드 왕가와 인연이 좀 있어서······ 어찌하다 보니 영국보다 네덜란드에 먼저 방문하게 되었소.”
“그렇군요.”
분위기가 살짝 싸해지자, 로스차일드 남작은 당황한 표정을 지어댔다.
정확히는 당황하는 척하는 얼굴을 보인다.
남작은 처칠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
저리 행동하는 것이겠지.
“하하, 이 왕자님. 네덜란드 순방은 좀 어떠셨습니까? 여기, 영국과 비교해서 말입니다.”
모른 척하며 나를 위하는 행동을 취하는 척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역시나.
내 생각대로 남작은 주제를 돌리며 이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움직임을 취했다.
나는 팔짱을 끼며, 일단 이 둘의 언행에 맞장구를 쳐 줬다.
“네덜란드 순방 또한 아주 좋았지. 헨드릭 공과 본인이 워낙에 친해서······ 아주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소.”
헨드릭은 독일 출신이다.
현재 영국과 독일의 관계 때문인지.
처칠은 이상하게도 독일 출신인 헨드릭의 이름이 거론되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흠.”
나는 그런 처칠의 표정을 못 본 척하며 하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다른 것은 영국과 비슷했지만, 날씨만큼은 달랐소. 화창하지만 온화한 여름 날씨가 인상적이었소만.”
영국과는 다르게 말이야.
사실에 기반한 감상이기에, 처칠과 로스차일드 둘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내 말을 경청했다.
“희한하게도 크고 작은 일이 중간중간 생기더군. 헨드릭 소유의 리&라이트 주식 처분을 도와주기도 하고, 로열 더치 셸사의 유상 증자 사업에도 참여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은데······ 아, 맞다. 그게 있구려. 음식이 아주 맛있었소.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오.”
“그러셨군요.”
처칠이 먼저 분위기를 흐렸기에.
중간중간.
영국의 단점인 ‘기후’와 ‘음식’을 거론하며 네덜란드가 사실은 더 좋았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밝혔다.
정말이지 은유적으로 살짝 내 의견을 개진한 것이었기에, 처칠은 반박하지 못하고 그저 나를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왕자님께서는 석유 산업에 아주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로스차일드의 물음에 나는 재빨리 대답한 후, 처칠의 의견을 물었다.
“뭐, 그렇소. 미래의 연료 자원이니까. 안 그렇소, 처칠 장관.”
내 의견에 다시금 어깃장을 내나 한번 시험해 본 것인데.
처칠은 나와 더는 기 싸움을 하기 싫은지 꼬랑지를 내리며, 내 의견에 동의해 주었다.
“이 왕자님의 주장대로 석유는 언젠가는 석탄을 밀어낼 것입니다.”
“십 년? 아니지······ 오 년 정도 뒤에는 대세가 될 것이오.”
나는 석유의 장점을 하나씩 열거하기 시작했다.
“연료 효율도 그렇고, 석탄이 배출하는 대기 오염 물질도 생각해 보면······ 결국에는 석유로 그 주도권이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니까.”
살짝.
영국의 심각한 대기 오염을 살짝 디스하며 처칠이 어떻게 나오나 살폈다.
자꾸 그의 신경을 건드는 것은 장기적으로 처칠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수도 있지만.
처칠같이 초장에 기 싸움하려는 협상가에게 지고 들어가면 한동안 그런 관계가 계속 유지될 수도 있기에, 나는 살살 말을 은유적으로 꼬아 가며 계속 나와 기 싸움을 할 것이냐는 것을 암시적으로 물어보았다.
첫인상대로라면 처칠은 발끈하며 내 도발에 대응하겠으나, 진짜로 나와 대립하기 싫은지 그는 재차 내 의견에 동의했다.
“본인 또한 그리 생각합니다. 최근에 런던에서 열렸던 박람회를 다녀오며 그 생각을 완전히 굳혔고요.”
“박람회? 장관께서는 박람회에도 자주 참석하시오?”
“예. 상무장관으로서 영국과 다른 나라의 교역품을 확인해야 하니까요. 더불어 최신 추세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처칠이 손가락을 튕기며 다음 말을 이어 갔다.
“아, 제가 방문했던 박람회에 이 왕자님의 사람 또한 참석했는데 말입니다.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처칠은 잠시 눈을 찡그리며 과거의 기억을 회상했다.
“디 뭐였는데······ 아! 생각났습니다. 디젤, 디젤이었습니다.”
디젤은 우리 일행과 함께 유럽으로 가는 배에 동행했다.
나와 에델이 헤이그에 있는 동안 먼저 영국에 방문해 런던에서 행해진 박람회에 참석했는데.
때마침 처칠이 그곳에 들렸다가 디젤의 신제품을 구경한 듯했다.
“억양이 아주 억센 독일인이었는데 말입니다. 이제야 기억이 나는군요.”
나는 피식 미소 지으며, 은근슬쩍 영국 해군을 언급했다.
“석유는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것이오. 상상해 보시오. 처칠 장관. 영국 군함에 달린 커다란 증기 터빈에 석탄 대신 석유가 넣어지면 어떻게 되겠소?”
나는 석탄 대신 석유가 왜 더 증기 터빈의 연료로 적합한지 처칠에게 상세히 그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해상보급도 가능해지고, 파이프를 사용하기에 적재 시간 또한 대폭 줄어들 것이오.”
“일부 보일러 담당 인원을 다른 업무로 돌릴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
나는 계속해서 석유의 이점을 나열했다.
“연료탱크 크기 축소는 물론이거니와, 설치 위치 또한 제약이 없지. 항속 거리도 길어지고 재를 치울 필요도 없어서 일정 속도로 항해를 할 수도 있게 되오.”
“하지만 이를 위해선, 한 가지 전제 조건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연료 수급 안정화를 말하는 것이오?”
“예.”
맞다.
더 좋은 연료로 바꿔선 뭐하나.
사용할 연료가 없으면, 아예 움직이지조차 못할 텐데.
“석탄이야. 브리튼 본섬에서 펑펑 채굴할 수 있지만, 석유는 다르니까요.”
“그렇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처칠 장관. 내가 투자한 로열 더치 셸이 대영제국에 석유를 열심히 운반해 줄 터이니.”
난 다 계획이 있다고.
유럽에서 스탠다드 오일과 함께 선두에 있는 로열 더치 셸에 투자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니까.
“아, 그러실 생각으로 로열 더치 셸에 천만 달러를 투자하신 것입니까?”
“그렇소만.”
“왕자님께서 대영제국을 위해 이리 투자하시다니······ 든든합니다.”
처칠은 영혼 없는 칭찬을 늘어놓으며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어댔다.
이에 나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처칠의 반응을 계속 살폈다.
* * *
“장관님.”
“말씀하시지요. 로스차일드 남작님.”
이강과의 대담이 끝나고.
남작과 처칠은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습니까? 이 왕자를 처음 본 소감이”
“영악하더이다. 말에 힘을 실을 줄 아는 자이고요.”
처칠은 살짝 경계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강의 얼굴을 회상했다.
“더불어······ 미래를 보는 혜안이 제법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남작은 동의하며 이강의 과거 이력을 처칠에게 소개했다.
“오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부가 된 이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장점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잘 사용하는 자이지요.”
“이 왕자의 장점이라면, 왕족이라는 신분이겠지요?”
“예. 아주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처칠이 잠시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다시금 눈을 뜨며 남작에게 한 가지를 물었다.
“오늘 대화는 기분이 살짝 불쾌했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아서 즐겁기도 했습니다.”
“아! 그, 해군 군함 관련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예.”
처칠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했다.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살짝 망설여졌는데, 이 왕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확신이 듭니다.”
“아하.”
남작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처칠에게 물었다.
“저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장관님께서도 그리 생각하고 계셨군요.”
처칠이 자신의 말을 수습했다.
“예. 다만, 시간이 좀 걸릴 것입니다. 늙은이들은 새로운 모험을 두려워하니까요.”
남작 또한 늙은이였지만, 그는 처칠의 말에 격하게 동의하는 행동을 취했다.
“그렇죠. 충분히 관련 사항을 검증한 이후에나 움직일 것입니다.”
“한동안 관련 자료나 모아 볼까 합니다. 그들을 설득하려면 아무래도 말보다는 서류가 더 효과적일 테니까요.”
“그렇지요.”
“아······.”
처칠이 로스차일드를 보며 잊고 있던 한 가지를 물었다.
“남작께서도 석유 회사를 하나 소유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예. 작지만 하나 있긴 합니다. 흠, 처칠 장관. 제 석유 회사는 왜 거론하시는 것입니까?”
처칠이 씩 웃으며 남작에게 살짝 힌트를 흘렸다.
“대영제국 군함에 사용되는 석탄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이것들이 전부 석유로 변환된다면, 얼마나 많은 석유가 공급되어야 할까요?”
“글쎄요.”
처칠은 다시금 이강을 언급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왕자는 로열 더치나 스탠다드 오일을 통해 우리 영국 해군에 석유를 공급하고 싶겠지만······ 영국의 배에는 영국의 기름이 들어가야지요.”
처칠이 뒤끝을 보였다.
로열 더치 셸은 네덜란드 회사인 로열 더치와 영국 회사인 셸의 합작 회사다.
남작은 처칠의 숨은 뜻을 파악하며 다음 말을 내뱉었다.
“맞습니다. 순수한 영국 회사가 영국 해군에 연료를 공급해야겠지요.”
“그렇습니다. 남작님의 카스피해-흑해 석유 회사 같은 회사가 딱 적당한데 말입니다.”
남작은 음흉한 미소를 짓다가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며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