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4)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4화(14/392)
< 칼 라이스 (2) >
쌀 품종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찰기와 수분이 가득한 찹쌀.
그와 반대되는 인디카.
그리고 두 품종 사이에 자리한 자포니카.
이중 조선에서 재배되는 품종은 자포니카다.
나는 인디카와 자포니카를 양손에 한 주먹씩 쥔 후, 손가락을 살짝 꿈틀대며 쌀알들을 만졌다.
사이사이로 볍씨가 흘러나온다.
아론이 내게로 천천히 다가와, 바닥에 떨어진 조선 쌀과 안남미 한 톨씩을 제 오른손에 얹었다.
그 후, 눈을 가늘게 뜨며 이를 세심히 관찰했다.
“확실히······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아론은 창가로 이동한 뒤, 두 쌀알을 빛에 비춰 보기도 했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생김새도 그렇고, 색도 그렇고, 냄새도 그렇고. 신기하게 구별되는군요.”
옆에서 안남미와 조선 쌀을 번갈아 보던 최현우 역시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전하. 한양 정부 관료들이 조선 쌀과 안남미의 차이를 조사하려고 안남미 종자를 들여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황해도에서 시범 경작을 했었는데 말입니다.”
“그 결과가 어찌 되었소?”
아론이 그 답을 궁금해하자, 최현우가 빠르게 다음 말을 이었다.
“어찌 되긴. 기존에 조선 쌀을 키우던 방식으로 안남미를 재배했더니 뿌리가 죄다 썩어 버려 한 톨도 수확할 수 없었네. 재배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하더군.”
최현우는 희망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전하. 이곳 토질이 안남미 농사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조선 쌀은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 쌀과 안남미의 재배 방식은 완전히 다르니까요. 한번 도전해 볼 만합니다.”
나 역시 긍정적인 표정을 지으며 최현우의 대답에 동의했다.
사실 나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지리 교육을 받을 때, 캘리포니아 북쪽에선 쌀 산업이 굉장히 유명하다는 것을 배웠으니까.
‘캘리포니아 땅은 자포니카가 생육하기에 적합한 땅이야.’
타이밍 또한 좋다.
원 역사대로라면 자포니카의 일종인 ‘워터리뷴’ 품종이 이 땅에 보급된다.
내후년 혹은 그다음 해쯤부터 이곳에서 재배되기 시작하겠지.
‘일본인 이민자 일부가 시범적으로 이 품종 생산을 시도해. 그리고 성공하지. 그 후로······ 미국 농부들도 알게 된다. 이 캘리포니아 땅이 쌀 재배에 적합하다는 것을.’
캘리포니아 쌀 생산량은 1911년 정도부터 급증한다.
지리책에는 그냥 턱 하니 이점만 적혀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왜 그리 폭증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1911년이면······.’
하와이에 살던 조선 이민자들이 본격적으로 캘리포니아에 진출하던 시기다.
땅을 소유하고 있던 미국의 농장주들이 아마 한인 이주민들에게 소작을 줄 테다.
‘그리 둘 순 없지. 내가 먼저 다 선점한다.’
아직 이 사실이 퍼지지 않았으니까.
좋은 땅을 최대한 내 아래 둘 수 있을 테다.
지금은 그저 놀고 있는 똥땅일 테니, 쉽게 사들일 수 있겠지.
“하지만 문제점이 하나 있습니다.”
아론이 조선에서 생산된 쌀 한 톨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곤 다시금 봉투에 쌀을 담은 후, 나를 바라보며 문제점을 말했다.
“조선 쌀이 성공적으로 재배된다 해도 이것을 누구에게 판단 말입니까?”
아론이 조심스럽지만, 제법 강단 있는 표정으로 제 주장을 이어 갔다.
“미국인, 아니지. 더 나아가 서양인들은 조선 쌀보다 안남미를 더 선호합니다.”
옆에 있던 맥스가 제 형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뽀스. 일본에선 밥맛이 없어서 아주 곤혹스러웠습니다. 볶음밥이 왜 이리 맛이 없는 건지······.”
“맞다. 맞아. 일본 볶음밥. 최악이다.”
둘째인 카플란이 오만상을 쓰며 투덜거린다.
세 형제의 증언에.
여기 있던 조선인 모두가 무슨 개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그들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후······ 후······ 바람을 불면 날아가는 안남미가 우리네 쌀보다 맛있단 말인가?”
유길준이 진지하게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아론에게 물었다.
“당연히 조선 쌀이 맛없······ 아, 그게······.”
그러자 아론이 뒷말을 끌었다.
잘못 말했다간 집단 린치를 당할 분위기라 그저 눈알만 팽글팽글 돌렸던 거다.
이 시대 조선인들은 왠지 모르게 쌀부심이 있었으니까.
“형님도 참.”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맥스가 답답하다는 듯 아론을 흘겨보며 자신이 대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더럽게 눈치 보네······. 이게 뭐 잘못된 일이오?”
“······.”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 살아온 환경에 따라 음식 기호가 다르지 않겠소?”
나를 제외한 다른 조선인들은 영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고수했다.
줘도 안 먹는 안남미가 뭐 그리 맛있냐고.
다들 서양인들의 입맛은 참 요상하다고 수군댔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재배하는 쌀이 안 팔릴 수도 있다는 것이지. 하긴, 나도 자네의 주장에 동의하네만.”
나는 현대인으로 살며 많은 미국인과 식사를 했다.
그들의 기호를 잘 알고 있었기에 삼 형제의 문제 제기에 부정하진 않았다.
그러자 아론이 되물었다.
“어찌어찌 서부와 하와이에 있는 동양인들에게 이를 팔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시장이 너무 협소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조선인 그리고 일본인 이민자들을 합해 봐야 몇만 명 정도다.
소비자가 없는데 제품이 계속 생산된다 생각해 봐라.
‘최악의 경우 파산이지.’
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큰 시장이 우리 곁에 있으니까.
내가 지도를 가리키며 아론에게 물었다.
“미국 내 동양인들만 생각하면 협소하지. 하지만······ 고개를 돌려 우리가 이 시장에 진출한다면 어찌 되겠나?”
섬을 가리켰다.
일본 열도였다.
“저들에게······ 쌀을 파실 생각이십니까?”
유길준은 매우 부정적인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못 할 거야 없지. 저놈들에게 거저 파는 것도 아니고 돈 받고 팔겠다는데······ 그게 무슨 잘못이라도 되나?”
내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하지만 조선인 부하들은 다들 뭔가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괜히 일본놈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의 의식을 고쳐잡았다.
“흠······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야지. 오히려 조선 신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일세.”
나는 유길준을 바라보며 그의 호를 호명했다.
“이보게, 구당.”
내 말을 듣고 계속 부정적인 표정을 짓던 유길준이 화들짝 놀라며 내 부름에 답했다.
“예. 전하.”
“일본 본토에서 그대는 몇 년이나 살았지?”
“4년 정도 지냈습니다.”
“그곳에서 그대 역시 밥을 먹었을 터. 그대는 어느 지방에서 생산된 쌀을 먹었는가?”
“그게······ 소인은 경상도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먹었습니다. 조선 쌀이 일본에 많이 수출되지 않았습니까?”
일본은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조선과 비교하면 열 걸음가량 앞서가는 상태.
하지만 다른 서양 열강과 비교하면 두 걸음가량 뒤져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 간격을 메꾸기 위해 일본 기업은 자국의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줘 가며 일본산 공업품에 가격경쟁력을 부여했다.
‘인위적으로 저임금을 유지하려면 한 가지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생활 물가가 싸야 한다.
적은 임금을 받고도 먹고 살 수 있으면, 일단 밥값이 저렴해야 하니까.
일본의 주식은 당연히 쌀.
그들은 반쯤 식민지화한 조선에서 아주 저렴하게 쌀을 들여오고 있었다.
그 대가로 일본에서 생산한 면포를 팔면서 말이다.
‘그것 때문에 조선의 백성들은 굶주리고 있지.’
조선에서 생산된 쌀들은 수확한 족족 일본으로 팔려 간다.
그렇기에 정작 이를 생산한 조선인들은 보리나 잡곡으로 끼니를 연명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해마다 그 양이 늘어난다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일본으로 하도 많은 쌀이 건너가서, 조선에선 매년 쌀 품귀 현상이 생겨나고 있지 않습니까?”
내 말에 부하들이 옛 기억을 회상하다가 이내 동의했다.
이런 쌀 품귀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으니까.
개항 때부터 시작되어서, 점점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선을 떠난 지 6년이나 된 우리 일행들도 이를 기억했다.
‘수틀리면······.’
이것을 인질로 잡아 식량을 무기화할 수도 있고.
나는 최악의 상황까지 계산하며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전하께서는 아주 큰 뜻을 품고 계셨군요.”
“고국에 있는 백성들을 생각하셔 그런 큰 그림을 그리시다니······ 소인 감동하였습니다.”
고국에 있는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다들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기 시작했다.
벌써 의욕을 부리며 다들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땅을 알아보러 다녀야겠습니다.”
“맞습니다, 전하.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를 하시지요.”
나 또한 이들에게 추천할 지역을 떠올리기 위해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였다.
맥스가 다시금 손을 들으며 내게 무언가 말할 것이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뽀스.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말하게.”
“저······ 여기 뽀스의 조선 부하 중에 혹시 왕년에 농사꾼이었던 자가 있습니까?”
글쎄.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현식은 나와 어릴 때부터 자랐다.
이강의 기억을 통해 이자의 성장 배경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는 잘 모른다.
최현우는 정부에서 붙여 준 이였고.
유길준은 이제 막 일본에서 합류한 자다.
그래서 입을 다문 채 그들의 반응을 살폈다.
“······.”
“······.”
이 방에 모인 자들 전부는 무언의 침묵으로 자신들이 농사를 지은 적이 없다고 반쯤 돌려 대답했다.
이에 맥스가 고개를 팔짱을 꼈다.
“보아하니 손으로 흙 한 줌 만져 보지 못한 이들이 태반인 거 같은데······ 어찌 농사짓기 좋은 땅을 알아본단 말입니까? 뽀스. 괜히 섣불리 움직였다가 시간 낭비만 할 수도 있습니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뭐야. 분위기 또 왜 이래. 형님, 내가 뭐 잘못했수?”
“맞는 말 했지. 아주 처맞는 말. 내 너에게 신신당부했지. 입 좀 다물고 있으라고.”
“아야······ 아야······.”
“그만.”
아론을 제지했다.
맥스가 오래간만에 진짜 옳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
여기 내 앞에 있는 이들이 땅 보러 가서 하긴 뭘 한단 말인가?
다들 연필이나 굴리고 돈이나 세며 한평생을 살지 않았는가?
농사와는 전혀 동떨어진 자들이다.
현재 내 주변 인물들은 말이다.
‘나는 대충 해당 지역을 알긴 하지만······.’
나 역시 농사 한번 지어 보지 못했다.
그런 내가 ‘이 땅이 명당이로다’ 하고 짚으면 꼴이 좀 우습지.
무엇보다 조만간 조선에서 내 사람들이 올 것이기에 잠시 시간을 가지고 그들을 기다려도 되었다.
“아······ 놓으시오. 형님. 뽀스께서 내 말에 동의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맥스가 아론의 곁에서 살짝 떨어졌다.
그 후 내게 다가와 알랑방귀를 뀌기 시작했다.
“헤헤······ 아무리 봐도 저만한 놈은 없지 않습니까? 하마터면 시간과 돈만 버릴 뻔했습니다.”
아이고 화상아.
이미지가 좋아지려고 하면 꼭 한 번씩 초를 친다.
“그럼······.”
내 사람들이 조선에서 올 동안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지.
그다음으로 중요한 일을 할까 한다.
바로 집 사기였다.
* * *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시오.”
“삐뚤어졌소. 좀만 왼쪽으로.”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 있는 저택을 사들인 지도 무려 2주나 지났다.
나는 오래된 주택을 하나 구매했다.
그 때문에 곳곳에선 아직도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내부를 전면 개조하며 막대한 돈을 인테리어에 지출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사람이 살만한 환경으로 변경해야 했기 때문이다.
‘손이 많이 필요하군. 그나저나 이놈들은 언제쯤 오는 거야.’
귀비의 명으로 내게 접근했던 이근상.
나는 그가 일본을 떠나기 전, 두 가지를 거래했다.
미국으로 떠난 후, 한동안 돌아오지 않는 대가로 활동비를 늘렸으며.
동시에 그 대가로 이근상에게 조선에 있던 내 가산을 정리할 권리를 양도했다.
‘그 과정에서 내 집에서 일하던 이들은 미국으로 보내 달라 요구했지. 그놈들 이쯤 되면 올 때가 되었는데.’
농사꾼이 필요하다.
내 아래에서 일했던 머슴들이라면 분명 좋은 땅을 알아보는 자도 있을 터.
“전하.”
그때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그들이 내게 돌아왔다.
“전하!”
마당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덕배, 네놈이냐?”
“예, 전하.”
김덕배는 내 집에서 일하던 같은 또래 머슴이었다.
덕배의 어머니는 이강의 어머니인 귀인 장씨를 모셨던 여종 출신.
태어난 시기도 비슷했고, 함께 고생했기에 어릴 때부터 사이가 아주 각별했다.
적어도 이강의 기억 속에서는 그랬다.
“전하! 소인 전하께 인사 올리옵니다.”
김덕배가 조선식 인사를 큰절했다.
나는 그런 덕배를 일으켜 세웠다.
“몸은? 어디 아픈 곳은 없느냐? 오랜 여행으로 고생했을 터인데.”
“소인이야 언제나 건강하지요. 그나저나······ 전하. 소인 없이도 아주 잘 지내셨나 봅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이냐?”
“몸이······ 엄청나게 좋아지셨습니다.”
“그래? 정말 그리 보이더냐? 어디가, 어디가 좋아졌어?”
“팔뚝도 좀 두꺼워진 것 같고. 전체적으로 근육이 많이 붙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동안 했던 운동의 효과가 있구나.
다른 놈들은 나와 계속 함께 지내서 그런지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은데.
몸이 한결 커졌다는 칭찬을 듣자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나 역시 덕배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감상을 늘어놓았다.
“너 또한 좋아 보이는구나. 아주 몸이 두 배로 불어났구나.”
6년 전과 비교하면 살이 덕지덕지 붙은 덕배의 배를 꼬집으며 말했다.
그러자 덕배가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몸을 내뺐다.
“뭐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거냐?”
“그것이······.”
덕배가 밖으로 잠시 나갔다 한 여성을 내 앞에 데리고 왔다.
상당히 어려 보이는 여성이다.
“조선을 떠나기 전에 소인, 신혼 방을 차렸습니다.”
뭐? 장가를 갔다고?
“북가주에서 홀로 생활하면 평생 혼자 있다가 총각으로 늙어 죽는다길래······ 번개에 콩 볶아먹듯이 마누라를 하나 잽싸게 구했습니다.”
도둑놈일세.
아직 달거리도 시작하지 않는 처자인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런데 말이다. 못 보던 얼굴이 꽤 많구나.”
이강의 기억이 파편화되어서 그런가?
아니면 6년 전을 마지막으로 이자들을 보지 않아서 그런가.
밖에.
새로운 얼굴이 많이 보였다.
나는 그사이를 두리번거리며 한 여성을 찾았다.
“그나저나 내 안사람은 어디에 있는 게냐?”
이강의 기억 살펴보았다.
17살에 결혼해 23살에 유학을 떠나며, 그는 자신의 부인과 생이별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녀의 나이가 19살이니, 지금쯤이면 20대 중반이 되었겠네.
혹시나 얼굴이 변했나 싶어 계속 두리번거렸다.
“아······ 그게.”
덕배가 슬쩍 내 곁으로 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의왕비의 소식을 전했다.
“마마께서······ 몸이 좀 편찮으셔서 당장 이리로 오실 수가 없었습니다.”
내 마누라가 아프단다.
뭐, 이강의 기억에도 그녀는 병약했다.
그랬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몸이 아픈데 긴 항해라도 겪게 된다면 큰일이 날 수도 있으니까.
“내가 살던 집은? 듣기론 팔렸다고 하던데 말이다.”
내 아내는 내 집을 정리하고 잠시 친정으로 갔다 했다.
덕배가 하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갔다.
“그 때문에 기존에 일하던 일꾼들 다수가 마님과 함께 한양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인이 사람을 좀 새로 뽑았습니다.”
부인이 함께 못 간 게 미안했는지 쌈짓돈을 줬다고 한다.
그래서 백여 명이나 되는 신규 인력을 증원할 수 있었고.
‘뭐, 나쁘지는 않네.’
한인은 많으면 많을수록 내게는 힘이 될 테니까.
나는 새로 왔다는 이들의 얼굴을 힐긋힐긋 바라보다가 이내 덕배에게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이들을 데리고 왔다?”
“예. 북가주로 떠난다 공고를 하니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하와이보단 조건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계약 기간이 따로 없고 고용주가 조선인이니까.
그래도 말이 통한다는 게 어딘가?
나는 자택 앞에 있는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대기하고 있는 이들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통성명은 일단 젖히고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고개를 들게. 그리고 내가 하는 말에 해당하는 자는 손을 한번 들어 보게나. 여기서 농사를 지어 봤다. 손!”
허······ 백여 명의 조선인들이 죄다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벼농사를 지어 봤다. 손!”
역시.
조선인들은 벼농사 장인이다.
마찬가지로 다들 손을 든다.
“관개수로 공사 경험도 있다. 손!”
거르고 거르는데도 사람이 줄지 않자, 나는 포기하고 일단 생김새가 멀쩡해 보이는 놈부터 선별하기 시작했다.
다들 경험이 있다면, 그다음은 힘 좋은 놈이 최고니까.
“각자 자기소개해 보도록.”
“평양에서 온 유만득이옵니다.”
“충주 출신 성덕임입니다.”
“개성에서 장사했던 하덕구입니다.”
조선 팔도 각지에서 왔다.
현재 조선 전역은 가뭄과 병충해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나 간도로, 일본으로, 청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터전을 옮기는 중이었다.
“다음은.”
“함경도에서 온 김종림이라 하옵니다.”
응?
낮이 있는 이름이다.
가만히 보니 얼굴도 익고.
“함경도에서 온 김종림?”
“예.”
“혹 오른쪽 팔에 커다란 상처가 있지 않은가?”
“그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김종림이 고개를 갸웃하며 오른쪽 팔을 걷어붙였다.
내가 언급했던 대로, 그의 오른팔에는 커다란 상처가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순간 얼어붙었다.
‘허······.’
운명의 장난이로세.
이거 어떡하지?
‘내 오랜 친구의 할아버지를 만나다니······ 이런······.’
< 칼 라이스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