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47)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47화(147/392)
< 최고이자 최악 (3) >
이강의 육신은 참으로 축복받은 몸이었다.
술을 엄청나게 마셔도 쉽게 취하지 않고.
무엇보다 숙취 또한 별로 겪지 않았기에, 나는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박병준으로 살 때는 술을 마시고 난 다음 날, 항상 토를 달고 살았는데 말이다.’
기지개를 핀 후, 개운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후 나는 커피를 한잔하며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함께 연회에 참석했던 다른 일행들의 상태는 좀 어떠려나?’
무언가 허전하다.
본래대로라면 우현식과 최현우가 내 옆에서 종알거리면서 간략한 아침 브리핑을 해 줘야 하는데.
지난밤의 여파 때문인지 그들은 통 보이지가 않았다.
영국으로 돌아간 에델이 남겨 둔 여자 하인들만이 그저 내 곁에 있을 뿐이다.
“전하.”
그렇게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더 흐르자, 함께했던 일행 중 두 명이 슬그머니 내 숙소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전하를 뵐 면목이 없사옵니다. 소인들을 죽여 주시옵소서.”
뭐야, 뭐야.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이범진은 제 아들을 데리고 온 후 죽여 달라는 거지?
무릎은 왜 또 꿇는 거야?
‘아! 근대 조선 사대부들이 자주 쓰던 사과 레퍼토리구나.’
빙의 전, 이강의 기억 속에도 비슷한 장면이 존재하긴 했다.
조선 본토에서는 큰 죄를 지었을 때 저리 말하며 고개를 조아리던데.
그걸 여기서 보는군.
미국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이런 오리지널 조선식 사죄는 오랜만이다.
“험험.”
나는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관리했다.
눈은 신문에 계속 고정한 채 입만 움직였다.
“실망일세. 이 공사.”
“저, 전하!”
“내 어째서 자네에게 실망했다고 말하는지, 그대는 그 이유를 아는가?”
이범진은 두 눈을 뱅글뱅글 굴리며 어제 있었던 일을 상기했다.
“저와 제 아들놈이 어젯밤에 그만 제 본분을 잊고 정신을 놓고 말았습니다.”
이범진은 땅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계속하여 사과의 말을 이어 갔다.
“차르의 강권을 물리치고 전하를 성심성의껏 보필하였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이리 못난 소인과 소인의 아들놈을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에이.”
나는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신문을 내려놓았다.
이후 살짝 고개를 돌린 후,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그런 이유로 자네에게 실망하지 않았다네.”
“그렇다면 무슨 연유로······.”
나는 살짝 장난기 섞인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자리에 앉혔다.
“지난날 자네는 내게 주당이라고 자랑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한껏 기대했는데 말이야. 지난밤 그리 허무하게 쓰러지다니······ 내 그 때문에 자네에게 실망이 크네.”
이범진과 이위종은 ‘뭐지?’ 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어 댔다.
나는 그런 이범진을 바라보며 계속하여 내 말을 이어 갔다.
“자네들이 지난 연회 때 정신을 잃은 것은 모두 차르 때문이네. 니콜라이가 아주 작정하고 그대들을 괴롭히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네.”
이범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나의 추측을 반박했다.
“어째서 황제가 그런 나쁜 마음을 먹었다는 말입니까? 니키(니콜라이 애칭)는 무능할지는 몰라도 심상만큼은 따뜻합니다.”
이범진의 주장에 동의한다.
최악의 군주지만 동시에 최고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자가 바로 니콜라이 2세가 아니던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이어갔다.
“자네들을 향한 악의는 없었겠지. 그저, 나와 단독으로 독대하고 싶어서 그런 행동을 취한 것 같네.”
나는 오른쪽 집게손가락으로 내 귀를 두들겨 댔다.
“뭐, 나와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 그대들 귀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것도 있겠고······. 날 것 그대로 내 말을 경청하고 싶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
마지막 문장 때문인지, 두 부자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숙취에 시달리고 있는 두 부자에게 꿀물을 내어 주며 아까 했던 말을 쉽게 풀어 설명했다.
“생각해 보게. 자네나 여기 있는 자네 아들이 통역을 맡는다고 가정하고.”
나는 팔짱을 끼며 한가지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내가 무슨 실언을 했을 때, 그대들은 나의 실언을 문자 그대로 차르에게 전할 것인가?”
“······.”
“······.”
“아니겠지. 아마도 그대들은 내 실수를 포장하여 내 말을 통역했을 것일세.”
“그, 그렇겠지요?”
“차르는 그게 싫었던 모양이야. 순수하게 내 의견을 곧이곧대로 듣고 싶었나 보더군.”
“아!”
나는 지난날 기억을 회상하며 한 인물을 언급했다.
“지난 연회 때 차르 옆에 앉아 있던 늙고 턱수염이 긴 사내를 기억하는가?”
“예. 기억합니다.”
“내 술을 마시며 주변 인물들의 행동을 살펴보았는데 말이야. 다른 이들은 죄다 차르의 명령에 술을 비우는 행동을 하였는데 그자만큼은 유독 술을 안 마시더군.”
니콜라이는 연회장에서 술을 빼는 인물이 있으면, 그자의 행동을 일일이 지적하며 억지로라도 술을 먹게끔 강요했다.
하지만 딱 한 사람.
어젯밤 통역을 맡았던 그 남자만은 예외였다.
“알고 보니 그자는 영어를 자유롭게 쓸 줄 아는 러시아 귀족이더군. 내 어젯밤 그자를 통해 차르와 대화를 나누었다네.”
니콜라이 2세는 준비되지 않은 무능한 군주다.
하지만 매사에 잘못된 판단만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왕위에 오른 지 십여 년이 지났으니, 슬슬 짬밥이 찰 때도 되었지.’
준비되지는 않았지만, 이리저리 부딪치며 제법 왕다운 모습을 가끔은 보여주는 것 같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문제는 큰 사건이 터졌을 때마다 최악의 수를 두었다는 점이지만.’
나는 지난날 만났던 니콜라이 2세의 언행을 회상하며, 나의 기억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일화를 비교해 보았다.
이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전하.”
“말하게.”
“차르와의 독대는······ 잘 마무리하셨습니까?”
이범진은 잘 알겠다는 표정을 한동안 짓다가 조심스럽게 어젯밤 일을 내게 물었다.
나는 이에 별일 아니었다는 얼굴로 답했다.
“뭐, 잘 마무리했으니까 내 이리 자네들과 장난도 치지 않겠는가?”
나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일이 잘 풀렸네. 그러니 구겨진 얼굴을 좀 피게나. 지난밤 있었던 일은 필연적인 일이었다니까.”
나는 어제 했던 이야기를 간략하게 두 부자에게 설명했다.
차르의 재산 이야기가 나오자 이범진은 눈을 반짝였다.
이후,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내게 술술 불기 시작했다.
“차르의 재산은 일반인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 정도입니다. 왕실 금고에 저장된 금괴만 해도······.”
뭐라고?
금괴가 적어도 10t 이상은 존재할 것이라고?
‘지금쯤 금고 속에서 [안녕, 나는 금괴야! 반갑다 이강.]하며, 내게 안아 달라고 손짓하고 있겠구먼.’
금괴도 금괴지만.
로마노프 왕실이 가지고 있는 보석들.
그리고 각종 장신구와 엄청난 규모의 채권들은 가히 천문학적일 것이다.
이범진은 이를 하나씩 설명하며 이번 투자 유치에, 내가 왜 사활을 걸어야 하는지 이를 자세히 풀어 설명했다.
“반드시 러시아 왕실의 신규 재정관리인으로 선정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된다면, 전하와 전하의 투자 회사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니까요.”
뭐.
알고 있다.
그러니 꾸역꾸역 미국에서 러시아까지 온 것이 아닌가?
‘어제 나누었던 대화를 참고해서 다음 계획을 세워야지.’
니콜라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확실하게 알아두지 않았는가?
나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두 부자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후 협상에서 아주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다른 먹거리들이 존재하나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 * *
표트르 대제가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고작 이백여 년밖에 안 되는 신도시였다.
하지만 짧은 역사와는 다르게 이곳에는 수많은 궁전이 존재했다.
그중 나는,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여름 궁전’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에델이랑 함께 방문했으면 좋았을 텐데······.’
에델은 현재 영국 남부 도시 콘웰로 돌아간 상태다.
예정일이 석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몸조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서양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에델 체질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마치 쌍둥이를 임신한 것처럼 벌써 배가 엄청나게 불어난 상황이라 에델과 나는 잠시 떨어져 다니게 되었다.
“이 왕자님.”
오늘 나와 만날 인물은 니콜라이 2세가 아니다.
그들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 최고위 관료들이었다.
“안녕하십니다. 저는 러시아제국의 수상인 표트르 스톨리핀이라고 합니다.”
보수주의자면서 개혁가.
러시아의 마지막 희망으로 불렸던 표트르 스톨리핀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여기 제 옆에 앉아 있는 이는 블라디미르 코콥초프라고 현재 재무대신을 역임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스톨리핀은 옆에 앉아 있던 사내들을 한 명씩 내게 소개했다.
그는 넌지시 코콥초프가 이토 히로부미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전했다.
그의 주장대로 이토는 제2차 러일협상이 끝내고 일본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망했기에.
나는 총리의 첨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이쪽은 왕자님께서도 잘 아시는 인물이겠지만, 다시 한번 소개하겠습니다. 발레리얀 놀켄 남작입니다. 왕자님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위종 특사의 장인이지요. 아, 그럼.”
스톨리핀은 뛰어난 언변으로 이번 회담에서 주인공을 자처하며 대화 내용을 주도해 나아갔다.
그는 나를 보며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말입니다. 보드카나 한잔할까요?”
“······.”
“듣자 하니 이 왕자님께서 우리 러시아제국의 특산품인 보드카를 엄청나게 좋아하신다고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 * *
스톨리핀은 러시아놈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해도 좀 기대를 했는데.
그럼 그렇지.
또다시 술판이다.
‘어휴······.’
술자리에서 혐오하는 유형이 몇 있다.
술을 강권하는 놈도 싫고.
했던 말 또 하는 놈도 그렇다.
제 이야기만 하는 이도 별로고.
“그러니까 말입니다.”
스톨리핀은 이 세 가지 유형을 모두 고루고루 갖춘 인물이었다.
그는 계속하여 일부 주제를 빙빙 돌리며 내게 조잘댔다.
내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이 시끄러웠기에 나는 재빨리 그의 말을 끊으며 스톨리핀의 주장을 요약해 보았다.
“지금 총리께서 주장하시는 바는······ 연해주에 있는 우리 의병이 귀국의 영토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으니, 이제부터라도 점유비를 받겠다는 뜻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리 쉽게 정리할 것을.
엄청나게 질질 끄네.
“일단 감사 인사부터 하겠습니다. 그동안 우리 독립군을 무상으로 지원해 주신 점, 대한제국의 왕자로서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하외다.”
뭐 러시아의 호의가 계속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재정 상황도 안 좋은 모양인데.
이번 기회를 틈타 내게 돈을 뜯으려는 모양이네.
나는 고개를 한 번 살짝 숙인 후, 하던 말을 이어 갔다.
“그럼, 잡다한 다른 조항은 집어치워 두고 일단 금액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그래, 총리께서는 얼마를 원하십니까?”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돈은 얼마든지 낼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우리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히트&런 작전을 계속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연해주가 러시아 땅이기 때문이다.
‘돈 낸 만큼 본전을 뽑으면 되니까.’
비단 독립군뿐만 아니고.
블라디보스토크는 한인들이 미주로 향하기 전 잠시 대기하는 경유지 역할을 하고 있다.
어찌 보면 러시아 정부는 한인들의 이주 브로커를 자청하고 있던 셈이기도 했기에, 나는 쉬이 지갑을 열 생각이었다.
“하하하. 하하하하. 이 왕자께서는 참으로 시원시원한 면이 있으십니다.”
총리가 손가락을 하나 피었다.
‘한 장?’
만 달러인가?
아니면, 십만 달러인가?
“백만 달러. 왕자께서 일 년 동안 우리 러시아제국에 지급할 금액입니다.”
붉은 혁명이 1919년에 터지니.
앞으로 십 년간.
천만 달러를 줘야 한다는 말이네?
‘이거 생각보다 금액을 세게 부르는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나, 속으로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시다시피 본인은 러시아 왕실의 신임 재정관리인 후보에 거론되고 있습니다. 만약, 본인이 러시아 왕실의 신임 재정관리인이 된다면······.”
한번 뒤에 말에 뜸을 들인 후, 총리에게 역제안했다.
“일 년에 백만 달러가 아니고, 백오십만 달러를 러시아 정부에 지급하겠습니다.”
“백오십만 달러요? 진심이십니까?”
그럼.
내 소유의 투자 회사가 러시아 왕실 재산을 꿀꺽할 텐데.
이 정도 푼돈쯤이야.
“예. 친구란 본디 서로 이득이 되는 사이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관계입니다.”
러시아는 더는 우리 대한제국의 보호자가 아니다.
나는 이를 강조하며 다음 말을 이어갔다.
“이에 응당 일정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소이다.”
스톨리핀은 차르의 최측근이다.
니콜라스 2세의 결정에 영향을 준다는 말.
이에 나는 푼돈을 좀 더 줘 가며 왕실 재정관리인 선정에 힘을 보태 달라고 요청했다.
“이리 말이 잘 통하는 왕자님이 계실 줄이야. 통도 크시고······.”
독립군의 점유비와 왕실 재정인 선정은 별개의 일이지만.
어찌 되었든.
좋게좋게 하나로 묶는다면.
스톨리핀으로서도 나쁜 것은 없었다.
누가 되든 왕실 재산은 손댈 수 없는 상황 속에.
만약 내가 왕실 재정관리인이 된다면, 러시아 정부의 예산만 늘어나는 상황이었기에.
그는 긍정적인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황제께 왕자님에 관한 좋은 이야기를 꼭 해 드리겠습니다.”
스톨리핀이 자리에서 막 일어서려고 할 때.
“아, 총리.”
“말씀하십시오. 이 왕자님.”
“총리께서 한 가지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가 있는데 말입니다. 혹시 라스푸틴을 아십니까?”
스톨리핀이 인상을 팍 구기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자는 왜요?”
“라스푸틴이 어떻게 황태자 저하의 병을 호전시켰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총리가 자리에서 재빨리 앉으며 내게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이 왕자. 아! 이야기에 앞서서 한가지 경고를 하고 싶습니다. 만약 제게 허언을 하시는 것이라면, 왕자께서는 각오를 좀 하셔야 할 것입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총리를 바라보았다.
“허언이라니요. 총리께 도움이 될 이야기입니다. 흠. 어디부터 시작할까요?”
< 최고이자 최악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