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52)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52화(152/392)
< 손님 (3) >
마담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손님 방을 하나 내어 준 후.
나는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왔는가? 이리 앉게나.”
다음 날 아침 일찍.
나는 우현식과 최현우를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자네도 왔구먼.”
두 측근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 사내를 달고 왔다.
익문사를 총괄하다시피 지휘하고 있는 이위종을 내 숙소로 부른 거다.
“손탁 부인의 증언 말입니다. 전하.”
이위종은 지난날 있었던 대화 내용을 두 측근에게 보고받았는지, 관련 내용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내게 건넸다.
“모두 사실인 것으로 판명 났습니다.”
“그래?”
“예. 복수의 익문사 요원들이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자료를 연이어 보고하는 중입니다.”
미국에 있을 때도 꾸준히 일본과 국내 상황을 주시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예측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다.
“일본이 아국의 국권 침탈을 서두르고 있다······.”
뭐, 대충.
그 이유가 머릿속에 그려지긴 한다.
‘하! 모두 다 나 때문이겠지.’
3번이나 총리 자리에 오른 가쓰라 다로는 내 이름만 들리면 입에 거품을 물곤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또다시 이번 유럽 투어를 통해 유럽 열강에 내 영향력을 늘리고 있었다.
“전하께서 이번에 차르의 신임 재정 관리인이 되시지 않으셨나이까?”
“그렇지.”
“그 소식까지 일본 본토에 퍼진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어찌 되긴.
가쓰라 다로가 조바심을 더 내겠지.
“일본은 지난봄, 러시아와 2차 러일협정을 체결하며 만주 지역 분할에 관한 확약을 다시 한번 러시아에게 받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내가 차르의 신임 재정 관리인이 되었지.”
“예. 만약 전하께서 차르의 자금으로 새로 생길 남만주철도 회사의 지분을 사들이신다면 말입니다.”
기껏 러시아에게서 양보받았던 남만주 지역 패권이 다시금 그들의 손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영국이나 미국과는 달리 러시아는 일본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국가다.
그렇기에 일본 정부는 앞선 케이스와는 다르게 위기감을 느낄 거다.
“그들이 구상해 놓았던 남만주 진출이 도루묵이 될 수도 있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로군.”
“예. 아국과 병합을 서두르는 것은, 적어도 한반도만큼은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두겠다는 계산이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말 없이 가만히 그들의 보고를 듣다가, 요새 근황을 떠올렸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영국 대사가 요새 일본 대사와 자꾸 접촉한다던데. 이 또한 나 때문이겠군.”
“분명 일본은 영국에 구조 요청을 보낼 것입니다. 아직은 동맹 관계니까요.”
“그렇지.”
두 나라 사이가 제법 소원해지긴 했으나, 영일 동맹이 파기된 것은 아니다.
더불어.
영국의 세계 패권의 경쟁자가 러시아에서 독일로 넘어갔지만.
아직 영국 수뇌부들은 러시아를 경계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저력이 있는 나라니까.
‘여기저기 안 끼어드는 곳이 없군.’
그렇기에.
영국이 다시금 이 판에 들어오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내가 만약 새로 생길 만철 회사에 차르의 자금을 투입한다면······.’
영국은 쌍수를 들고 반대하겠지?
남만주에 다시금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꼴은 도저히 용납하지 못할 테니까.
‘이거 잘하면······.’
혐성이 가득한 영국 놈들과의 차후 협상에서 요긴한 협상 거리로 써먹을 수도 있겠는데?
‘차르에게는 만철에 [만]자도 안 꺼냈는데 말이야.’
일본도 그렇고.
영국도 그렇고.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저리 먼저 호들갑을 떠는 꼴을 보면.
아주 좋은 꽃놀이 팻감이 될 것 같네, 그려.
나는 잠시 영국의 움직임을 생각하다가 다시금 가쓰라의 의중을 파악해 보았다.
“가쓰라는 지금 이때를 놓치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다시금 찾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
“예. 그렇습니다.”
보호국이나 병합이나 그게 그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다르다.
보호국은 엄연히 서로 다른 국가임을 인지하고 있는 거고.
병합된다는 것은 이제 한 식구가 된다는 뜻이다.
일본 본토 백성과 조선인들을 동일 대우를 해 주겠다는 것.
‘동화 정책을 아주 적극적으로 핀다는 뜻이렷다.’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조선어를 배우고 있지만, 병합 후에는 일본어를 의무적으로 배워야 할 거다.
교육 방식 또한 일본 본토식으로 재편될 것이며, 일본인들이 흔히 하는 신사참배 역시 강요될 거고.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최근에 막 이주한 교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느끼지 않았던가?’
어렸을 적, 일본에서 유학하다가 미국으로 건너온 이들과 대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이 구사하는 각종 어휘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조선어에 일본어는 물론이고 러시아어까지, 마구 섞어 쓰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지 않았던가?
‘한번 실행되면 돌이킬 수 없어.’
더욱이.
일본의 한반도 경제 침탈 또한 가속화될 거다.
주인 없는 황무지들을 조사한다는 핑계 아래 토지조사를 통해 합법적으로 조선인들의 재산을 강탈할 수도 있으니까.
영국이나 미국을 통해 이를 지적한다고 해도 내정간섭으로 치부할 테지.
‘그렇기에 병합은 막아야 한다.’
큰 흐름을 막을 수 없다면, 최대한 늦춰야 한다.
‘1차 목표는 유럽 열강의 입김이 약해지는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다.’
겨우 오 년에서 십 년 정도 버는 꼴이지만, 이 시간만 해도 엄청나다.
생각보다 많은 나비효과를 가져다줄 수도 있었기에, 나는 병합되는 것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그래서 아바마마의 수족들부터 자르고 있었군.”
“예. 소네 통감이 아주 작정한 듯, 폐하의 사람들을 숙청하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피습 사건 이후, 국내 상황 또한 묘하게 변했다.
방구석에서 조용히 있던 나의 친부 고종은 내 위세를 등에 업고, 친일파 각료들과 일본인 파견 관료들의 각종 자잘한 지시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종도 참.’
예나 지금이나 분위기 파악 못 하는 것은 여전하네.
“그간 상황 폐하께서 일본 관료들을 살짝 도발하는 행동을 해 오지 않았나이까?”
“그렇지.”
이토 히로부미야.
일본 내 온건파의 수장으로서 겉으로는 친한파인 것처럼 굴었던 자였기에, 고종이 살짝 행패를 부려도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소네 통감은 강경파 중 극성 꼴통 강경파다.
고종의 눈치 없는 패악질에 바로 칼을 빼 들 관료라는 말.
하지만 고종은 다시 한번 정무 감각이 없는 티를 팍팍 내며, 신임 조선 통감을 도발했다.
소네 통감은 이를 철저히 복수할 생각인지, 예전에는 건들지도 않았던 고종의 외국인 측근까지 모조리 내치며 고종을 궁지로 몰았다.
‘지금쯤 잔뜩 겁을 먹고 여자나 찾고 있겠지.’
이강의 조각난 기억 때문인지, 고종을 직접 만나 본 적이 없는데도 나는 누구보다 고종을 잘 알았다.
한숨을 푹 쉬며, 나는 재빨리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병합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하네. 한번 도장을 찍게 되면, 영영 돌이킬 수 없으니까.”
“예.”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해결책을 정리하며 손가락 두 개를 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일을 병행해야 하네. 아! 자네들이 한번 맞춰 보겠는가?”
내 앞에서 가지고 온 자료들을 정리하던 이위종이 손을 번쩍 들며 입을 열었다.
“일단은 외교적으로 다시금 일본을 고립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래.”
현재 미국은 내 편이다.
그들은 만주 지역의 절대적 패권 세력이 등장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이 바로 일본 정부니, 워싱턴으로서는 누구보다도 가쓰라를 경계하고 있었다.
‘영국인들 역시 마찬가지지. 아직 일본과 동맹을 유지하나······.’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이지 않는 한, 영국 역시 작금의 상황에 만족해할 것이다.
간신히 맞춰 놓은 만주 지역 세력 균형 추를 다시금 어긋나게 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터.
‘가쓰라가 서두르는 바람에 내가 이리 빨리 다음 그림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되었군.’
영국에게.
차르의 재산을 새로 생길 만철 회사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건다면?
현 정세를 최대한 유지하자고 설득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영국은 옳다 하고 내 손을 잡을 테다.
‘외부 세력은 쉬이 단속할 수 있겠는데 말이다.’
내부가 문제네.
친일 내각이 어떤 식으로 나라를 팔아먹을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김창수와 안중근은 현재 어디에 머무르고 있다 했던가?”
“마지막으로 제게 전보를 보냈던 곳은 하얼빈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자들에게서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면 도움이 좀 더 되겠지?
“그들을 속히 호출하게.”
나의 명령에 이위종은 눈을 크게 뜨며 내게 되물었다.
“그간 미뤄 두었던 본토 내 친일파 척살 프로젝트를 시작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저쪽에서 패를 보였으니, 나 역시 빠르게 움직여야 하네.”
자칫.
경술국치가 다시금 일어날 수 있기에, 이에 찬성할 만한 고위급 신료들을 하나씩 숙청해야 한다.
그래야 고종이 약한 마음을 품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지 않겠나?
“전하.”
“말하게.”
나의 계획에 이위종이 살짝 부정적인 표정을 지으며 경계했다.
“최근 의주에서 벌였던 밀정 소탕 사건 때문에, 요인 암살이 조금 힘들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
“예. 소위 을사오적과 정미칠적이라고 불리는 고위직 친일파 관료들이 의주에서 터진 사건 때문에 현재 제집에 머물며 두문불출하고 있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집무실 한편에 배치된 캐비닛 하나를 열었다.
“거북이처럼 제 등딱지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자들도, 가끔 밖으로 나오기 마련이네. 정부에서 주최하는 공식 행사 때는 다들 그 모습을 보이겠지.”
봉인된 편지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면서 나는 이위종에게 발신인이 누구인가 읽어 보라고 명했다.
“이것은······ 벨기에 국왕인 레오폴드 2세에게서 온 편지가 아닙니까?”
“맞네.”
나는 꼴좋다는 표정을 지으며, 학살자 레오폴드 2세의 얼굴을 떠올렸다.
“듣자 하니 그 희대의 살인마 말이야. 오늘내일한다더구먼.”
“······.”
“제 딴에 무서운지 죽기 전에 허스트 대표와 만나 관련 기사를 정정하고 싶은 모양이야.”
레오폴드 2세의 건강 상태는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더 심각했다.
러시아에 머물며 바쁘다는 핑계로 만남을 계속 거절하고 있는데.
이리 무시당하면서도 줄곧 내게 편지를 보내는 것을 보면.
대충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히틀러보다도 악독한 놈인데. 이놈 또한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는군.’
본래라면 까이고 까여야 했으나, 레오폴드 2세보다도 더한 놈이 나타났기에.
살짝 역사책에 묻혀 가는 면이 있다.
나는 이 자를 극도로 혐오했기에, 혀를 차며 히틀러를 증오했다.
“왕실 내 각종 행사는 궁내부에 일임하며 콧방귀도 안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벨기에 왕이 다음 달에 죽는다면? 자네라면 어찌 행동하겠는가?”
“아마도 장례식에는 참석할 것 같습니다.”
나의 주장에 동의하는 듯, 이위종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다른 이는 몰라도, 이완용은 참석하겠네요.”
“그래. 다른 관료들과 달리 이완용은 별로 겁이 없지 않은가?”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제 앞에 떨어졌는데도 호들갑 하나 떨지 않던 인간이 바로 이완용이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을 다들 놀라서 자빠졌는데 말이야.’
하긴.
그러니까 을사년에 이어, 정미년에까지 그리 나라를 팔아먹는 조약에서 사인했겠지.
나는 이완용의 일화를 생각하며, 그가 반드시 레오폴드 2세의 장례식에 참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더욱이 이완용은 일국의 총리일세. 병이나 개인 사유를 핑계로 불참하기 힘들 것일세.”
“그때를 노린다면, 친일파들에게 아주 확실한 메시지를 건넬 수 있겠군요.”
“그래.”
나라를 팔아먹을 생각이라면, 죽을 각오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을사오적과 정미칠적을 제거하면 그다음은······.’
왕족들이다.
조선에서 온갖 부는 다 누려 놓고도 매국에 참여한 이들이니까.
대가는 치러야지.
“전하.”
“말하게.”
“손탁 부인과 함께 남은 일정을 동행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동안 조용히 있던 최현우가 내게 손탁 부인에 관한 일을 물었다.
나는 긍정적인 표정을 지으며 어제 말했던 대화를 회상했다.
“못 할 것이야 없지. 대한제국을 위해 일제와 맞서 싸운 여성이네. 게다가 프랑스어는 물론이고 영어, 러시아어, 조선어 또한 잘 구사하네. 그녀만큼 통역을 잘하는 이는 저기 이 요원 빼놓고는 없네.”
“어제 공언하셨던 대로, 미국까지 데려가실 생각이시군요.”
“그럼. 진짜로 내 호텔들까지 맡길 생각이네.”
나는 손탁 부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살짝 애틋한 표정을 지었다.
“미혼에 남은 가족도 없지 않은가? 대한을 위해 한평생을 희생했는데, 노년을 외롭게 보내게 해서야 쓰겠는가?”
내가 아니면 누가 챙겨.
대한제국에 도움을 준 다른 외국인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떠올려 보다가, 익숙한 한 인물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 호버 헐버트는 지금쯤 뭘 하고 있다던가?”
“미련이 아직 많이 남았는지, 대한제국을 아직 떠나지 못했답니다.”
“그래?”
“예. 현재 인천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나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의 미래를 예상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일세. 소네 통감이 작정하고 아바마마의 수족들을 자르고 있으니까.”
나는 이위종에게 손가락 하나를 펴며, 한 가지를 경고했다.
“헐버트는 일본 통감부에 의해 집중 감시당하고 있을 것일세. 그러니 쉬이 접근하지는 말게나. 미주나 중국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가 머무를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오라고 전하게.”
“예.”
또 다른 친한파 외국인이었던 언더우드 역시 샌프란시스코로 불러들이라고 명했다.
익문사 요원들의 보고로는 지병 때문에 건강이 별로 좋지 못하다던데.
편히 와병할 수 있도록 그자를 지원할 생각이었다.
‘운산 금광을 꿀꺽 삼킨 천하의 도둑놈, 알렌 그 자식만 제외하곤 모두 다 도와야지.’
* * *
안중근과 김창수는 이강의 명을 받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라탔다.
그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역에 도착한 후, 보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안형, 무슨 일로 전하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들였을까요?”
“글쎄.”
안중근은 전형적인 군인이었다.
이리저리 손익을 재는 정치인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그저 이강의 명령에 따라 이곳까지 달려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일세.”
“뭡니까?”
“곧 본국에서 피바람이 불겠군.”
김창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활동하고 있던 이들을 이강이 구태여 러시아까지 불러들였다는 것은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었으니까.
김창수는 한껏 기대하며 차가워진 손바닥을 쓱쓱 비벼 댔다.
이후 그들은 이강이 있는 숙소로 향했다.
< 손님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