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61)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61화(161/392)
< 크리스티&소더비 (3) >
에드바르 뭉크는 놀러 가도 밥상 하나 안 차려 주는 북유럽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다.
대표작은 지금 내 앞에 전시된 그림 스크림(Scream).
한국어로 번역하면, 절규다.
‘이게 이번 경매에 나왔다고?’
원 역사에서는 2012년 소더비 경매에서 1억 2천만 달러에 낙찰되었는데 말이다.
1,500억이 넘는 그림이 지금 내 앞에 있다.
그것도 원제작자와 함께.
“아! 자네, 뭉크라고 했는가?”
“예.”
“나는 이강이라고 하네. 그래, 만나서 반갑네.”
뭉크는 다른 예술가들과 다르게 굉장히 일반인(?)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눈빛이 굉장히 슬퍼 보였다.
“멀리, 대한제국에서 오신 이 왕자님을 여기서 뵙다니······ 저 또한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호오.
내 신분이 왕자라는 것은 익히 대중들에게 잘 알려졌지만.
대부분 내 정확한 국적은 모르던데.
재수 없는 영국 귀족들을 늘 만날 때마다 ‘왕자님, 동경은 좀 어때요?’ 하면서 이상한 질문을 해 댔지.
그런데 뭉크는 정치인이 아닌 예술인인데도 이를 정확하게 집어 댄다.
“나를 제법 잘 알고 있는 모양일세.”
“이 왕자님에 관한 이야기는 저희 사이에서도 꽤 유명하니까요.”
“내 이름이 예술계 전반에 떠돌고 있다고?”
“예.”
“에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들려고 허언을 하고 있구먼. 내가 왜 유명한가?”
뭉크는 자신이 지금, 아첨을 떠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최대한 항변하는 듯했다.
목소리까지 조금 높이며 그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내게 죄다 토해 내기 시작했으니까.
“매번 작품을 구매하실 때마다 저희에게 수표를 건네셨으니까요. 그것도 갤러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접촉해서 말이죠.”
아······.
나의 키다리아저씨 행위가 이자 귀에도 흘러 들어갔구나.
신인들 위주로 수표를 뿌리고 다녀서 기성들은 모를 줄 알았는데.
이 소문이 용케도 뭉크에게까지 퍼졌나 보다.
“그런 귀인을 어찌 쉬이 잊는단 말입니까?”
뭉크는 나를 호구.
아니지.
또 다른 키다리아저씨로 바라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세간에서 말하길 예술가들의 정신세계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들 역시 사람입니다. 은혜를 아는 이들이란 말입니다.”
“하하. 그래?”
“예.”
뭉크는 잠시 관련 이야기를 좀 더 하다가 나에게 물었다.
왜 번거롭게 내가 사람까지 보내어 신인들과 직접 접촉하는지 말이다.
“뭐, 다른 뜻은 없네. 돈 자랑을 하고 싶어서 그리 행동한 것은 아니고, 그저 엄한 곳에 눈먼 돈을 쓰기 싫어서 그리했을 뿐이네.”
사실은 소문을 덜 내며.
신인들의 작품을 값싼 가격에 많이 사들이고 싶어서였지만.
내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표현할 필요는 없기에, 적당히 살을 붙여가며 아름답게 그 이유를 포장했다.
이에 뭉크가.
나를 웬 성인군자 바라보듯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하긴. 신인들은······ 아니지, 작가 대부분은 가난하죠. 왕자님의 구매 대금이 온전히 신인 작가들에게 간다면, 그들의 형편이 좀 더 나아질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갑질’이라는 것이 있다.
신인들을 상대로 대형 갤러리들은 판매 수수료를 왕창 떼어먹는데.
그 비율이 낮게는 20%에서 많게는 50%까지 된다.
나처럼 중간다리를 거치지 않고 이리 직구매를 하면, 가난한 예술가들은 수수료를 절약하게 된다.
뭉크는 내 작금의 행동을 칭송하며 재빨리 자신의 작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하, 왕자님과 이리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어서, 정말이지 영광입니다. 아, 여기 있는 제 작품을 왕자님께도 소개해 드리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시간 좀 있으십니까?”
물론이지.
작가에게 자신의 대표작을 설명 들을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이에 앞서, 내가 아는 것부터 설명해 보겠네.”
“말씀하시지요.”
“이 절규라는 그림은 자네 고향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지. 친구들과 함께 크리스티아니아(오슬로) 교외를 산책하다가 자네의 끔찍한 지병인 공황발작이 도지지 않았던가?”
“······.”
“그때 자네가 보았던 풍경을 있는 그대로 판화에 옮긴 것이라고 들었는데. 내 말이 맞는가?”
뭉크가 제법 놀라는 표정을 지어 댔다.
내가 절규의 숨은 비화를 줄줄이 읊어 댔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그림은 현재까지 딱 3점만 제작되었다고 알고 있네. 여기, 이곳에 전시된 작품은 완성된 시기(1895)로 보아 파스텔로 그려진 것인 것 같군.”
“저와 저의 작품을 눈여겨 보셨나 봅니다. 이리 많이 조사하시다니.”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에.
뭉크가 너털웃음을 내게 보였다.
“일단 왕자님의 물음부터 답하겠습니다. 왕자님의 설명,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립니다.”
“그래?”
“예. 석양이 질 때, 하늘이 온통 붉게 변하며 저에게 비명을 내질러 대었다는 것. 그리고 이를 그대로 옮겨 댄 것은 맞습니다.”
뭉크가 잠시 침을 삼킨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본 후, 작게 내게 속삭였다.
“하지만 공황발작 때문에 이러한 풍경을 본 것은 아니랍니다.”
“그럼?”
“그날 제가 술을 많이 마셔서······.”
뭐야?
이거 조금 깨는데?
나의 표정 변화를 뭉크가 읽었는지,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부연 설명을 해 댔다.
“사실 그대로 말하면······ 조금 창피해서, 평소 앓던 공황발작을 그 이유로 들었습니다.”
저런 저런.
침묵할지언정 허언은 안 한다면서······.
알고 보니 거짓말쟁이였구나.
“왕자님.”
“말하게.”
“이 그림에 관심이 많으시지요?”
“그래.”
“그럼. 방금 설명해 드렸던 사실은, 왕자님과 저. 우리 둘만의 비밀입니다.”
하긴.
사실이 밝혀지면.
그림의 가치에도 영향을 주겠네.
그래.
이 비밀은 우리 둘만의 비밀로 가져가는 것이 맞지.
적어도 내가 이 그림을 구매한다면 말이다.
“하하하. 이거 그림만 잘 그리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야기도 제법 잘 하는 구먼. 그래그래. 비밀일세. 우리 둘만의 비밀.”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이 이야기를 누가 또 들었나 살폈다.
다행히도 내 일행 말고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뭉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하고 싶었던 말을 계속해 댔다.
“그나저나······ 자네 건강이 많이 좋아진 모양일세. 최근에 입원하지 않았었나?”
뭉크는 제 병을 감출 생각이 없었는지 내 물음에 흔쾌히 대답했다.
“예. 실연으로 인해 잠시 정신병이 도지긴 했지만······ 병원에서 요양하며 많은 것을 추슬렀습니다.”
이 시대.
예술가들 대부분은 정신병에 시달리곤 했다.
압생트(술) 때문에.
불운한 가정사 때문에.
여자 때문에.
가난 때문에.
마약 때문에.
성병(매독) 때문에.
선천적 유전 지병 때문에.
정신병원을 수도 없이 들락날락한 것.
그렇기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것은 예술인들에게 있어서 큰 창피가 아니다.
개나 소나 정신병원에 입원하니까.
“더욱이 새로운 영감이 되는 다른 작가 작품들을 많이 감상하게 되어서······ 다음번 작품을 기대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그래?”
나는 뭉크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빛을 번뜩였다.
차기작 이야기는 언제나 궁금하니까.
그것도 대작가의 반열로 올라갈 뭉크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 이 왕자님.”
다음 작품에 제법 관심이 간다는 눈빛을 번쩍이자, 뭉크가 내 행동에 반응했다.
“컬렉터로서 제 신작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물론이지. 혹시 내게도 보여줄 수 있는가?”
“그리된다면 영광이지요.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은 아니고, 제 숙소에 보관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컬렉터와 작가.
둘 사이에 직접 거래만큼 좋은 거래는 없다.
전시회나 크나큰 갤러리를 끼고 작품구매 협상을 하면 수수료가 따라오기 마련이니까.
“혹시, 제 시그니처 작품인 절규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대단히 만족하실 것입니다. 4부작 중 마지막 절규를 최근에 완성했으니까요.”
뭉크는 살아생전 딱 4점의 절규를 그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은 세 번째 작품.
그의 숙소에 네 번째 작품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니.
내가 이들을 모두 소유하면 네 작품 중 두 작품을 가진 셈이 되겠네.
“흥미롭군. 내 이번 전시가 끝내고 곧장 자네 숙소로 가겠네.”
“감사합니다.”
나는 다른 작품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다가 뭉크에게 다시금 다가가 물었다.
“아!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아까 자네. 정신병원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았다고 했지?”
“예.”
“그 영감을 준 사내가 누구인가?”
뭉크가 감명 깊게 본 작품이라면.
분명 투자할 가치가 있을 거다.
나는 그 사내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뭉크에게 재차 채근했다.
“그 사내의 작품 또한 내가 구입하고 싶은데 말이야. 내게 그자의 이름을 알려줄 수 있는가? 아니면, 작품명이라도 좋네.”
뭉크는 내 질문에 말없이 웃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한곳을 바라보았다.
“마침 잘 되었습니다. 저기, 저쪽에 그자의 그림이 있네요.”
* * *
“혹시······ 제가 작품 설명을 해도 될까요?”
한 여인이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요한나 반 고흐입니다. 여기 걸려 있는 반 고흐 작품의 주인이지요. 이 왕자님.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요한나 반 고흐.
고흐의 동생 태오의 부인으로 고흐에게 있어서 ‘제수(弟嫂)’ 되는 자다.
고흐와 태오 모두 죽어서 현재 고흐의 작품들은 모두 그녀의 소유가 되었다.
‘고흐의 작품을 세계적인 작품으로 키워간 마케터.’
요한나의 마케팅은 전설로 불린다.
생전 무명의 작가를 죽어서 대화가로 만든 이가 바로 요한나니까.
“반갑구려.”
“이 왕자님. 여기 걸려 있는 고흐 그림에 관심 있으십니까?”
“그렇네. 내가 찾던 작품들이 바로 여기에 걸려 있는 것 같군.”
내가 빙의한 20세기 초는 21세기만큼이나 화풍이 격동하는 시기였다.
사진기라는 희대의 기물이 발명되며, 부유층들의 초상화를 그려 주던 화가들의 밥줄이 끊기는 것이 아니냐 논란이 되던 시기.
‘21세기 AI의 등장과 맞먹는 사건이지.’
뭐 사람은 문제가 발생하면 늘 생존하는 방법을 찾곤 한다.
이전까지는 얼마나 사실과 비슷하게 그림을 그려 내느냐가 최고의 화가 자질로 뽑혔다면.
사진기 발명 직후부턴.
그림에 자신의 감정과 세계관을 얼마나 잘 담아 내느냐가 일류 화가의 역량으로 꼽히기 시작하니까.
고흐는 이러한 미술계 변화에 아주 최적화된 작가였다.
내 앞에 있는 요한나 역시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 왕자님. 여기 세 개의 작품 중 어떤 작품을 원하시나요?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그녀는 나의 의중을 살짝 떠보며, 경매장에 걸려 있지 않은 다른 작품을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 경매장이나 전시회에 걸려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제가 따로 왕자님의 숙소로 찾아가서 작품 카탈로그들을 드릴 수도 있는데요.”
나는 고흐의 그림만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요한나를 바라보지 않고 바로 직설적으로 말했다.
“여기 있는 작품들도 마음에 들고, 그대가 가지고 있는 작품들 역시 궁금하군.”
“아, 그러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흐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대의 죽은 아주버님인 반 고흐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인재네. 장수했다면 급변하는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전성기를 펼치며 부유하게 살았을 텐데 말이야.”
“······.”
“살아생전 고생만 하다가 결국 유명을 달리하지 않았던가? 그대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고. 그래서 이리 반 고흐의 작품에 심열을 다하며 홍보를 하는 것이 아닌가?”
요한나는 살짝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일부 언론은 저를 돈에 미친 과부로만 보던데······ 왕자님께서는 다르시군요.”
“그럼. 돈에 미친 과부라면 적당한 선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작품을 팔았을 것일세. 하지만 그대는 그렇지 않고 계속하여 반 고흐의 이름이 미술계에서 회자하도록 노력하고 있지.”
요한나는 나를 예사롭지 않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저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
“후원자가 되어 줄 수 있냐는 뜻인가?”
“예.”
나는 피식 웃으며 요한나의 물음에 답했다.
“이미 많이 유명해지긴 했지만, 아직 멀었긴 하지.”
나는 내 명함을 요한나에게 건넸다.
“미국으로 건너오게. 사람은 무릇 가장 큰 시장에서 놀아야 하는 법.”
“······.”
“내 그대를 지원해 주겠네. 아낌없이 모든 것을 후원해 주지.”
“정말이요?”
“그래. 아. 그러기에 앞서. 일단, 그대에게 반 고흐 그림이 얼마나 있는지부터 묻고 싶네. 요한나, 그대는 반 고흐의 그림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가?”
* * *
“대충 다 끝난 것 같군.”
관심 있는 작품이나 구매해야 할 작품들은 한 번씩 다 둘러보았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사람들을 만나야지.’
말을 많이 해서 그런가, 아니면 집중해서 그런가.
상당히 많이 피곤했지만.
이런 대규모 전시전은 비단 작품 구경만 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돈이 되는 곳에는 비단 그 지역의 고위층과 부유층이 몰리는 법.
‘어?’
그때였다.
아는 얼굴이 내 시야에 잡혔다.
“처칠 장관.”
“이 왕자님.”
< 크리스티&소더비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