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69)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69화(169/392)
< 씨 뿌리기 (3) >
쇠뿔은 단번에 빼야 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허버트 후버를 작정하고 후원할 생각이었기에, 나는 이에 도움이 되는 인물을 재빠르게 찾아갔다.
“이 왕자님. 안녕하십니까?”
“허스트 대표. 오랜만일세.”
“하도 영국에만 계셔서······ 유럽에 완전히 정착하신 줄 알았답니다.”
뉴욕의 언론재벌 랜돌프 허스트.
그는 특유의 능글능글한 표정을 유지하며, 나와 악수를 했다.
이후 한껏 과장된 말투로 나에게 의례적인 인사말을 늘어놓았다.
“아! 축하 인사부터 드려야겠네요. 세 아이를 얻으셨다면서요? 그것도 한 번에 말입니다.”
“뭐, 그렇게 되었네.”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투자의 귀재이신 것은 진즉 알았지만, 이리 정력가이실 줄이야.”
허스트는 장난기 섞인 눈빛으로 나의 중요 부위를 슬쩍 쳐다보았다.
하-
이 시대에는 정말이지 온갖 미신이 판을 치는 시대였다.
쌍둥이 탄생을 남자의 정력에 연결 짓는 시대.
둘도 아니고 셋이나 낳았기에, 다들 내색은 안 했지만 자꾸 가랑이 사이를 본다.
남자든, 여자든.
성별 구분 없이 전부.
“그만 좀 보게.”
허스트는 엄지를 ‘척’하니 세워 들며 내게 장난을 쳐댔다.
“아, 저 그······.”
이후 그는 내게로 다가와서 살짝 비밀스러운 말투로 무언가를 속삭였다.
“붉은 약재 말입니다.”
“홍삼 말인가?”
“예. 왕자님께서 헨드릭 공에게 추천하셨던 약재요.”
허스트는 눈알을 대굴대굴 굴리며, 내게 물었다.
“효과가 대단한가 봅니다. 왕자님께서 세쌍둥이를 낳으시고, 아이를 간절히 바라던 네덜란드의 빌헬미나도 후계자를 생산한 것을 보면요.”
소문은 본디 와전된다.
밤과 부인이 제일 무서운 남자에게는 정력제로 알려지고.
아이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에게는 불임 치료제로 이야기가 퍼진 것 같다.
‘하긴.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 경향이 있으니까.’
더욱이 중간에 껴 있는 장사치들이 이를 열심히 이용한다면?
‘최근 서양에서 홍삼 매출이 확 늘어났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었는데. 폭증한 원인이 이런 괴소문 때문이었군.’
굳이 정정할 이유는 없었기에 나는 속으로 미소 지으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허스트는 살짝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게서 무언가를 더 캐내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빌헬미나 여왕이 그토록 원했던 왕자를 생산해 냈다지요? 그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여기 미국에서도 아이를 원하는 이들이 많으니까요.”
“······.”
“이에 관한 이야기를, 제게 따로 해 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흠.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하네.”
“뭡니까?”
“홍삼을 헨드릭에게 추천해 주긴 했네.”
“아! 그렇습니까? 그럼 다른 하나도 사실입니까?”
“뭐가?”
“소문에는 왕자님의 여식과 막 태어난 네덜란드 왕자가 혼약을 약속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말입니다.”
주제를 살짝 비튼다.
허스트는 내 딸아이의 장래를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저에게만 확인해 주시지요.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확정된 것은 없다.
그저 이야기가 한 번 나와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고만 했을 뿐.
“거, 자네는 어디서 이상한 소문만 주워듣는구먼.”
“그래서 사실입니까? 아니면 거짓입니까?”
“······.”
“호오- 침묵하시는 것을 보니, 이야기가 오가긴 오갔나 봅니다.”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었기에, 나는 묵묵부답으로 응대했다.
이에 허스트가 눈을 반짝이며 무언가를 그의 수첩에 기록했다.
“노코멘트로 일관하시니, 뭐 일단은 저만 알고 있긴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왕가의 사람들은 참으로 꽉 막힌 인생을 사는군요. 태어나자마자 혼약할 정인이 정해져 있다니······ 나 참.”
태어날 때부터 혼약할 정인이 정해져 있는 것은 굉장히 특수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근대까지만 해도 왕가의 일원들은 부모가 정해주는 이들과 대다수 결혼을 했다.
그랬기에 나는 굳이 이것까지는 부정하지 않았다.
“아! 이 왕자님.”
“말하게.”
“그나저나 무슨 일로 저를 오늘 부르셨습니까? 이 바쁜 선거철에 포커나 치자고 저를 이 자리에 초대하신 것은 아닐 것 같은데.”
슬슬 본론에 들어가야 할 때다.
나는 허스트를 바라보며, 이 자리에 그를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흠. 공화당의 차기 유력주자라······.”
“자네는 언론계에 종사하는 유력 언론인이네. 옆에서 주워들은 이야기가 분명 있을 것일세.”
“······.”
“내 빈손으로 오지 않았네. 그러니 너무 비싸게 굴지 말게.”
이어 허스트가 머리를 긁적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전에 이 왕자님께 지었던 신세를 갚을 때로군요.”
1907년.
나는 허스트에게 한 가지를 경고했었다.
영란은행에서 발행한 영국채권의 가치가 떨어질 테니.
가지고 있는 것을 죄다 팔라고.
영란은행의 금리 인상을 경고하며 이를 조언했었는데, 내 도움 탓에 허스트는 크나큰 손해를 보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이익을 보았다.
이에 그는 내게 세 번의 도움을 약속했다.
“아직 두 번이나 남아 있는데 말입니다. 그중 하나를 이번에 써 볼까요?”
“······그러게나.”
허스트의 호의는 아껴야 한다.
삼 년 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허스트가 분투했던 사례만 보아도, 그는 충분히 내게 도움이 되는 인재니까.
하지만.
2년 뒤 다가올 대통령 선거는 정말이지 중요했기에, 그의 호의까지 써 가며 확실한 정보를 얻어볼 생각이었다.
“제 생각에는 찰스 에번스 휴스가 유력 후보로 부상할 것 같습니다.”
“현 뉴욕 주지사인 휴스가?”
“예.”
“어째서?”
“루스벨트의 사람들은 모건을 경계하고, 모건 아래 있는 정치인은 루스벨트 파벌을 싫어합니다.”
허스트는 민주당원이다.
하지만 언론사 사주답게 공화당의 현 상황을 아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공화당은 창당 이래 뉴욕 자본가들의 지지가 없으면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는 구조였죠. 하지만 최근에, 루스벨트가 아주 우연히도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되면서 당내에 새로운 유력 파벌이 생겼습니다.”
“그게, 루스벨트의 파벌이라고?”
“예.”
맞다.
공화당 자본가들은 강성 진보주의자였던 루스벨트를 견제하기 위해 정치적 무덤이라고 불렸던 부통령직에 루스벨트를 앉혔다.
하지만 저격 사건으로 루스벨트가 대통령 자리를 꿰차며 상황이 달라졌다.
“보수와 진보, 당내 두 세력은 아주 비등비등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요. 어찌나 치열한지, 어느 파벌도 과반을 점유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당대회가 열린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바퀴가 헛돌아 가듯이, 계속 공전할 거다.
서로 과반을 점유하지 못했기에, 의미 없는 투표만 계속 진행되겠지.
“게다가 루스벨트 파벌은 좀 더 극단적인 경향이 있지요. 모건이 힘으로 억누르려고 하려면 탈당까지 불사할 놈들입니다.”
맞다.
원 역사에서는 그래서 루스벨트가 신당을 하나 차리며 분당까지 불사하지 않았던가?
덕분에 윌슨이 어부지리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래서······ 양쪽에서 거부하지 않는, 중립적인 인물이 대통령 후보에 오를 것이란 말이지?”
“예. 그 가운데 가장 유력한 인물이 바로 휴즈입니다.”
허스트는 장담했다.
휴즈가 공화당 후보가 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호의를 다시금 돌리겠다고 호언하기도 했다.
“휴즈 주지사는 모건 그리고 록펠러, 카네기 가문과도 인연이 있는 인물입니다. 더욱이 인권 쪽에도 꽤 진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요.”
노동권, 환경, 소수인종의 권리에도 굉장히 유연한 자세를 보인다고 한다.
루스벨트만큼 강경하지는 않지만, 4년 전에 대통령감으로 잠깐 물망에 올랐던 태프트보다는 좀 더 진보적인 모양이다.
“왕자님께서도 슬슬 정계 쪽에 줄을 대실 모양이십니다.”
“다 똑같지. 부자가 되면 본래 지킬 것이 많아지니까.”
허스트는 내 대답에 눈을 가늘게 뜨며 경고했다.
“조심하십시오. 이 바닥은 남의 호주머니 노리는 놈들로 그득합니다.”
맞다.
해 줘야 할 것을 안 해 주고, 요구만 하는 어린아이 같은 이들이 넘쳐나지.
그것을 제어하고 협상하는 것이 본디 로비스트다.
나는 원 역사에서 이를 아주 잘 수행했기에, 이런 정치인들을 아주 잘 다룰 자신이 있었다.
“응? 이게 뭡니까?”
“자네에게 조사를 좀 맡기고 싶어서······.”
허스트는 언론 사주다.
나 역시 익문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남의 뒤를 캐는 언론재벌만큼은 아니었다.
“한 명은 누구인지 알겠는데 하나는 누구인지 모르겠군요.”
서류 안에는 루스벨트와 후버의 사진과 신상 정보가 동봉되어 있었다.
허스트는 후버의 관련 자료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내게 물었다.
“이자도 정치인이 되기를 소망하는 정치 꿈나무입니까? 뒷조사를 의뢰하시는 것을 보면 백 퍼센트 그럴 것 같긴 한데 말입니다.”
“그래.”
나의 대답에 허스트가 제법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크게 될 놈이로군요.”
“어째서 그리 생각하는 것이지?”
“아직 유명하지도 않은데, 왕자님께서 뒷조사를 의뢰했다는 것은······ 정기 후원을 위한 사전 조사가 아닙니까?”
허스트는 군침을 다시며 후버의 사진을 살짝 흘겨보았다.
“알려진 신상 정보만 놓고 보면 아주 좋군요. 촌뜨기 출신 고아지만, 자수성가한 자본가라. 게다가 국제 경험도 좀 있고······ 뉴욕의 다른 은행가들도 좋아할 만한 인재입니다.”
허스트가 관심을 보인다.
그가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다른 뉴욕의 호사가들에게도 그 소문이 퍼진다는 뜻이겠지.
‘이러려고 뒷조사를 의뢰한 것이지. 소문 좀 퍼지라고.’
허스트는 잠시 루스벨트와 하버의 사진을 바라보다가 탄식을 내뱉었다.
“하! 왕자님을 5년만 더 일찍 뵀더라면······ 뉴욕 주지사가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제게 도움을 주시지 않았겠습니까?”
생각해 보니.
허스트는 4년 전에 휴즈와 뉴욕 주지사 자리를 놓고 한번 경합을 벌인 적이 있다.
오!
조금 전 말했던 허스트의 분석이 갑자기 신뢰 된다.
한때 경쟁자였던 휴즈를 이리 좋게 언급할 정도면, 진짜로 ‘별’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겠네.
이에.
나는 조용히 휴즈의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 놓았다.
* * *
“이 왕자님. 어서 오십시오.”
허스트와의 만남이 종료된 후.
나는 뉴욕 별채 근처에 자리한 미술관으로 향했다.
“시기적절한 때에 전시회를 열었구먼.”
소더비 부대표는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 댔다.
“예. 다음다음 달에 행해질 경매행사에 앞서서 사전에 유명 작품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이런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슬쩍.
전시된 그림들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소더비가 총총걸음을 하며 내 곁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개중에는 경매를 거치지 않고 바로 판매되는 작품도 있습니다. 왕자님께서도 한번 둘러보시지요.”
하나하나 유명한 그림들 뿐이군.
다음다음 달.
경매를 거치지 않고, 바로 살 수 있는 금액이 바로 옆에 적혀져 있다.
즉시 구매가라는 뜻.
“이게 좋겠군. 이것도 마음에 들고.”
폭풍 쇼핑이 시작되었다.
고야의 초상화부터 드가의 발레리나 데생, 그리고 렘브란트의 야경까지.
이번에도 역시 하나하나가 문화재급이었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피카소 작품들은 전부 구매하겠네.”
그리고.
내가 그토록 원했던 피카소 작품들도 소더비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뭐.
이미 개인적으로 접선하여서 그의 그림들을 사들이고 있긴 했지만.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 줘야지, 미술계에서도 본격적으로 피카소를 알아주지 않을까?
그랬기에 굳이 수수료까지 내 가며 이리 작품을 사들인 거다.
그의 초기 작품은 이미 내가 많이 사들여 놓았으니까.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본가로 보낼까요? 아니면, 뉴욕에 있는 별채에 이것들을 옮길까요?”
즉시 구매가를 마구마구 지르는 큰손의 등장에 소더비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는 내 심기가 불편해지지 않게 하려고 열심히 비위를 맞추며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영업을 뛰었다.
“아, 오늘 사들인 피카소 작품 중 일부는 다른 이들에게 선물하고자 하네.”
“시, 실례지만 어느 분에게, 이 그림을 선물하실 생각이십니까?”
하나는 모건 주니어.
다른 하나는 빌헬미나 여왕.
마지막은 장인인 윌리엄 록펠러에게.
하나같이 명사들에게 선물하는 것이었기에, 소더비의 눈동자가 커졌다.
“뭘 새삼스럽게 놀라는 표정을 짓나? 이 시기에 전시회에서 팔리는 그림 중 상당수는 선물로 보내지지 않던가? 아, 이것도 포장해 주게나.”
가격이 낮은.
신인 작가들 그림은 부담 없이 정치인들에게 선물하기 좋다.
이후.
돈 좀 있는 컬렉터들은 해당 작가의 그림을 띄워 주며 그 가치를 올린다.
영리하게 뇌물을 주려면 이런 방식으로 줘야 한다.
‘루스벨트나 후버에게도 이를 줘 볼까?’
정치에 입문하면 제일 필요한 것이 바로 돈이니까.
* * *
“돌아오셨어요?”
일정을 마치고 뉴욕에 있는 별채로 돌아왔다.
2층 침실로 올라가자, 에델이 밝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오늘은 어떠셨어요?”
“별일 없이 무난히 끝났소.”
“본의 아니게, 아침에 살짝 오늘 일정을 엿들었어요. 소더비 전시회에 들르셨다죠? 어떠셨나요?”
“좋았소. 내 그대와 세 아이를 위해 작품 몇 점을 사들이긴 했소만.”
“어머. 기대되네요. 이번에는 어떤 예술가의 작품인가요?”
에델의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높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나는 에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키스를 했다.
“오늘은 아이들이 말썽을 안 부렸나 보오.”
“우중충한 영국에 있다가, 미국으로 돌아와서 그런지. 아이들도 칭얼대지 않더라고요.”
“오호, 그렇소?”
“아, 오실 시간에 맞춰서 따뜻한 물을 받아 놓았답니다.”
그녀는 내 손을 꼭 잡고 나를 욕실로 안내했다.
밖에 들렸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늘 샤워를 했기에, 나는 별 대꾸 없이 그녀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고맙소. 내 먼저 씻으리라.”
평소대로라면.
에델은 볼 키스를 한 후, 세쌍둥이들을 챙기러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에델은 오늘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그래서일까?
에델은 하녀에게 목욕 가운을 건네받은 후,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욕실 문을 지긋이 닫은 후, 내게 제안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목욕을 함께 해 볼까요?”
< 씨 뿌리기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