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83)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83화(183/392)
< 알드리치 플랜 (4) >
안타깝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등치 않다.
박병준으로 살았던 21세기도 그랬지만, 이강의 몸에 빙의한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왕실이 아직 버젓이 살아 숨 쉬니까. 계급이 존재하는 것을 아주 당연시하게 여기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참석하고 있는 7인회 모임은 평등을 지향했다.
이는 모임 안에 존재하는 거대 세 세력.
모건-록펠러-로스차일드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추를 유지하며, 서로를 견제하고 있어서였다.
어느 특정 세력이 주목받지 않게, 둥그런 원탁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 보아도.
주최자인 모건이 우리들의 눈치를 얼마나 보고 있는가, 잘 알 수 있다.
“아이고 모건 대표.”
“어디서 그런 센스 있는 유머들을 알아 오셨습니까?”
“하하, 배꼽이 빠질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모건 대표는 재미나십니다.”
그렇지만 이런 7인회의 세력 균형추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봐라.
성공한 월가의 일원들은 물론이고 옵서버로 참여한 의회, 사법부, 행정부 유력 인사들이.
모건의 똥구멍을 열심히 핥아 대고 있지 않던가?
아마도 누구보다 눈치 빠른 이들이었기에, 세력의 균형추가 어떻게 재배치되고 있는지 알아차려서 그럴 것이다.
‘거침없이 독주하는군.’
그에 반해 내가 속한 록펠러 세력의 발언권은 눈에 띄게 확 줄어들었다.
워싱턴에서 온 각 요직의 인사들이 지금도 알게 모르게 이번 자리에서 록펠러의 반독점 소송을 계속하여 언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록펠러의 패배를 점쳤다.
모건은 은근슬쩍 록펠러를 위로하며 아직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위로했지만, 그럴수록 록펠러의 표정을 어두워져만 갔다.
“아! 알드리치 의원, 한잔하시겠습니까?”
“좋지요. 모건 대표께서 권하시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내 옆에 있던 알드리치는 록펠러 가문과 혼약까지 맺은 정치인이다.
하지만 의회 내, 뉴욕 자본가들의 대변인답게 모건에게도 살가운 모습을 보였다.
록펠러는 주먹을 꽉 쥐며 이를 그저 지켜볼 뿐이다.
‘독재자들은 왜 강한 척을 하는가?’
그 이유를 뼈저리게 오늘 느낀다.
록펠러를 바라보며.
‘정말이지 월가는 정글이로군.’
이리 살짝 흔들린다고 예전만 못한 대접을 해 주는 것을 보면.
그 빌어먹을 독재자들이 왜 그리 제 권력에 편집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다소 이해가 간다.
‘강자만이 발언권을 독식하지.’
모든 이익을 취하고.
이를 빙의한 지 5년 만에 몸소 체험했다.
“이 왕자님.”
회의가 시작되고 사흘째 되던 날.
저녁을 먹기 전 잠시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그때를 활용하여 모건은 내게 접근을 꾀했다.
“잠시 시간 좀 있으십니까?”
모두가 나와 모건의 접촉을 지켜보았다.
그동안 쭉 있는 듯 없는 듯했던 내 존재감이 다시금 수면 위로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그럼 이쪽으로 가시겠습니까?”
사전에 록펠러와 이야기된 사항이었기에, 나는 거리낌 없이 모건과 함께 이동했다.
이에 모임에 참석한 이들이 서로 수군대기 시작했다.
우리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서로 속삭이는 것 같았다.
* * *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목감기가 좀 심해서 힘들구먼.”
“저런······.”
이번 회의에서는 별로 이야기할 거리가 없었다.
발언권이 축소된 상황에서 회의를 주도해 봤자, 내 주장이 먹힐 리가 없으니까.
그랬기에 잔병을 핑계 대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럴 땐 따뜻한 녹차가 최고랍니다. 자, 한잔 드시지요.”
“고맙네.”
모건이 건넨 녹차를 홀짝였다.
그러기를 10분.
모건과 나는 서로 이야기 없이 차만 홀짝였다.
“······.”
“······.”
옛 추억이 막 떠올랐다.
1907년 금융위기 때.
조지 코텔류 연방 재무장관이 나간 뒤, 모건과 독대를 했었는데 말이다.
‘리버모어의 공매도 계좌 청산 건으로 협상을 했었지.’
그때도 간을 보며 서로의 의중을 떠보았는데 말이다.
지금 역시도 같은 모습을 보인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겠지?’
현재 아쉬운 쪽은 나니까.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그렇다.
미래를 알고 있기에, 나는 이런 모건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를 상대로 덫을 아주 크게 놓고자 하기에, 나는 살짝 긴장하는 표정을 지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아, 모건 대표.”
“말씀하십시오. 이 왕자님.”
“전에 말했던 그때 제안 있잖은가······.”
“예?”
모건이 영- 기억이 안 난다는 표정을 지어댔다.
이에 나는 살짝 자존심이 상한 척 입을 중간에 닫으며 침묵했다.
“아닐세.”
“아! 기억났습니다. 연방은행 설립법을 두고 관련 제안을 했었지요.”
“······.”
“그때 했던 제안이 아직 유효한지 많이 궁금하신가 봅니다.”
모건은 똑똑하다.
상상 이상으로.
그렇기에, 전에 했던 제안을 절대로 잊어버릴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리 뜸을 들이며 살짝 까먹었다는 표정을 짓는 것은 작금의 상황을 즐기려는 아주 고약한 심보가 작동했기 때문이리라.
“왕자님.”
“말하게.”
“그때와 지금은 외부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그건 나도 아네.”
모건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남은 차를 홀짝였다.
“조금 더 빨리 제 제안을 받아 주셨으면 서로 좋았을 텐데. 아쉽군요.”
나는 입을 다시금 다물며 뭔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모건은 계속하여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내 행동을 분석했다.
“아직 제안이 유효하다면 이를 받을까 했는데, 안타깝군.”
“송구합니다.”
“혹시 일부 조건을 수정해서라도 이를 이어 나갈 수 있는가? 아직 내 도움이 필요하리라 생각하네만.”
모건은 로스차일드 그리고 록펠러 세력과 아직 전면전을 벌일 수 없다.
두 세력이 원체 강하기도 하고.
정치계 쪽에 외부의 적인 루스벨트 파벌이 아직 견제하기 때문이다.
첫날에 밀어붙이지 않고 휴정한 것도 이 때문이겠지.
나는 이를 거론하며 모건의 의중을 떠보았다.
이에 모건이 피식 웃으며 내 제안을 들어 보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수정요?”
“그래.”
“어떤 것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전에 이야기했던 중앙은행 위원 임명 건만 제외한다면, 한 번 듣고 고려해 보겠습니다.”
모건은 자신의 목적인 중앙은행 장악 건을 제외하면 살짝 양보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에 내가 지난날 제안을 회상하며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자네가 내게 제안하기로 서부 쪽에 있는 자네 소유 은행들을 내게 양도해주기로 했었지.”
“그랬지요. 단일은행제도가 지점은행 제도로 바뀌면 이를 흡수하여 빠르게 왕자님 세력이 서부에서 확장할 수 있게끔 도와드리려고요.”
나는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제안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이를 받아들이고자 하네. 다만, 인수 시기를 좀 늦춰주게나.”
모건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
나는 즉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침묵하며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혹시, 가지고 계신 현금이 말라 버린 것은 아니겠지요?”
“······.”
“허허, 천하의 이 왕자님께서 이런 어려움에 빠지시다니.”
말은 안타깝다고 이야기하지만, 표정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마치 친하지 않은 사촌이 산 집값이 폭락했을 때, 이를 지켜보던 친척들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위로해 주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1907년 금융위기 때도 두 손에 현금을 가득 쥐고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나는 굉장히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절친에게 내 비밀을 털어놓듯 아주 작게 속삭였다.
“스탠다드 오일 사의 주식을 좀 사들이다가 그만 물려 버렸네.”
“저런.”
“내 딴에는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투자를 좀 했는데 말이야. 1층 아래 지하실이 있을 줄은 몰랐네.”
모건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제가 자금을 좀 빌려 드릴까요?”
“그래 줄 수 있겠나?”
“예. 우리가 어떤 사이입니까?”
나는 와락-
모건의 두 손을 잡으며 고맙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맙네. 한 오백만 달러 정도면 되겠군. 그러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일세.”
“오백만 달러라······.”
모건의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정도 돈이 없어서 이리 간절한 표정을 짓냐는 표정 같다.
“알겠습니다. 혹시 자금이 더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이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는 없네. 그대에게 맡길 담보가 다 떨어진 상황이니까. 더 손 벌리려고 해도 손을 벌릴 수가 없다네.”
진짜로.
한계에 몰렸다는 것을 강조하며 잘못하면 공매도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이 청산 당할 수도 있다고 정보를 흘렸다.
이에 찰나의 순간.
모건의 표정이 또 한 번 묘하게 변했다.
“이 왕자님.”
“말하게. 듣고 있네.”
“무형의 가치도 때론 담보가 되곤 합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를 들면 미래의 중앙은행 위원 임명권 같은 것들을 말하는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살짝 꺼리는 표정을 짓자, 모건이 한 인물을 거론했다.
“왕자님.”
“말하게.”
“자금 사정이 안 좋은 제임스도 이를 담보로 제게 돈을 좀 빌렸답니다.”
오호.
제임스 힐 역시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고 들었건만.
이런 식으로 유동성을 확보했구나.
‘이거 진짜······.’
내가 나서지 않았으면, 이번 역사에서는 모건이 진짜로 연방준비은행을 먹었을지도 몰랐겠네.
지금 내 계산에 따르면 앞으로 임명될 연준 의원 절반이 모건의 세력에 의해 지명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담보가 없는 것이 조금 불안하지만, 저는 저희 7인회 회원들의 저력을 믿습니다.”
“······.”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바로 뉴욕의 주식시장, 그 자체입니다.”
원 목적은 연준 장악이지만.
모건은 이를 교묘하게 숨기며 자신은 별 욕심 없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모건의 주장에 속아 넘어가는 척 연기를 해 댔다.
“그렇군. 잘 알겠네.”
대충 거래는 끝났다.
함정도 열심히 다 파놨고.
이제부터는 모건과 로스차일드가 나를 얼마나 몰락시키고 싶어 하냐에 따라 그들의 피해가 정해지는 것이겠지.
“아! 왕자님!”
“응? 왜 또 할 말이 남았는가?”
잠시 쉬기 위해 내 방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모건이 다시금 나를 불렀다.
이에 나는 일어서려다가 말고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왕자님께서는 대한제국에서 태어나시지 않으셨나이까?”
“그렇네만.”
“이웃 나라, 청나라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 * *
“적어도 자네들보다는 많이 알겠지?”
나는 모건을 바라보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모건의 임시 집무실 한편에 있는 거울 쪽으로 향한 후, 이를 바라보았다.
“자네보다는 내가 청나라 사람들과 비슷하니까.”
모건은 백인이고 나는 동양인이다.
자존감이 낮은 이였다면, 버럭 화를 낼지도 모르는 질문.
얼굴색이 같다 하여,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열등감에 가득 찬 목소리가 아닌, 자신감 가득한 반응을 보였다.
7인회 구성원 중에 누구보다도 중원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나의 당당한 발언에 모건이 피식 웃었다.
“왕자님.”
“말하게.”
“청나라 조정이 추가 대출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 일본이 아니고?”
“예. 남작과 제 쪽에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록펠러는 현재 모든 가용자금을 스탠다드 오일 쪽 공매도 공격에 대응 중이다.
그랬기 때문일까?
현재 이 세계에서 돈이 남아나는 족속들은 둘 뿐이었다.
“왕자님께서 만약 저라면, 어떡하시겠습니까?”
“흠······.”
좀 전까지 자기 딴엔 호의를 베풀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나 또한 이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현재의 청은 멕시코와도 비슷하네.”
나는 모건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이웃 나라 예시를 들면서 설명했다.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였지만, 옛 영광은 이미 다 사라진 지 오래일세. 듣자 하니 수도 인근에만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행정 시스템이 망가졌다는구먼.”
“저런.”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강조했다.
“더욱이 청 조정은 무능하네. 기존 부채를 상환할 능력이 있나 의심될 정도일세.”
나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한 가지를 언급했다.
“다만.”
“다만?”
“적절한 가치의 담보를 제시한다면, 그나마 자금을 융통해 줄 수 있겠군.”
“예를 들면 어떤 담보가 좋을까요?”
“그야 철도지.”
나는 세계 전도가 놓인 곳으로 이동하며 중원 지도를 손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네. 청은 여기 미국과 비슷하게 민간 주도로 철도를 부설했네. 한마디로 청 조정은 빈털터리란 말이지.”
모건은 잠시 고민하더니,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만약 청 조정이 이를 국유화한 후, 담보로 주겠다고 제안한다면, 왕자님께서는 그들에게 자금을 빌려 주시겠습니까?”
“글쎄. 나라면 거절할 것일세.”
“어째서요?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야······.”
나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청 조정이 몰락할 수도 있을 테니까.”
“······.”
“사실, 청 왕조는 거의 멸망한 상황이나 다름이 없네. 그나마 천명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때문에 숨만 붙어 있지만.”
나는 오른손 검지와 엄지를 붙이며 동그라미 손 모양을 만들어 보았다.
“지역 유지들의 밥줄을 이자들이 다시금 건드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그렇군요.”
모건이 잠시 고민한다.
나는 그런 모건에게 다가가며 조용히 속삭였다.
“아! 이 이야기는 우리 둘만 알고 있도록 하세나.”
“예?”
“남작에게는 굳이 이야기해 줄 필요가 없지 않나?”
모건과 남작은 지금 한시적으로 서로 손을 잡은 상황이다.
나는 이런 둘 사이를 다시 한번 갈라놓으며 윙크까지 했다.
“그럼요. 암. 이런 고급 정보는 본디 그 가격이 비싼 법이니까요.”
이에 모건이 화답했다.
마치 하이에나 같은 표정을 지었는데, 이는 언젠가 다시 경쟁할 수도 있는 남작에게 엿 먹일 좋은 기회를 포착했기 때문이겠다.
< 알드리치 플랜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