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92)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92화(192/392)
< 두 개의 별 (3) >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내 왼편에 앉아 있던 신성모가 손을 들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래, 네가 먼저 한번 대답해 보라.’ 하는 자세를 취했다.
“저는 여러 운동 중 미식축구가 가장 재미있습니다.”
박병준으로 살았던 2000년대도 그렇고.
이강의 몸에 빙의되었던 1900년대도 그렇고.
미국에서 제일 인기 있는 스포츠는 누가 뭐라고 해도 미식축구이다.
나는 신성모의 대중적인 스포츠 취향에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모나지는 않은 성격이군.’
이에 신성모는 자신감을 얻었는지, 미식축구를 선택한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상대편을 요리조리 제치며 엔드 존까지 골을 갖고 들어가는 여정은 정말이지 우리네 인생사를 축약해 놓은 것 같습니다. 때론 좌절하기도 하고, 때론 환호하기도 하는 것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흑흑.”
응?
정말이지 뜬금없게도 신성모는 이 타이밍에 눈물을 훌쩍이기 시작했다.
‘어? 그러고 보니······.’
맨 처음 만났을 때.
황기환이 지각하여 경황이 없어서 그때 그냥 지나갔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에도 신성모는 나를 보고 울먹였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전하와 함께 미식축구를 함께 해 보고 싶습니다.”
신성모는 훌쩍이며 두서없이 하던 말을 계속하여 주절댔다.
나는 이에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방금 신성모가 보인 행동 때문에, 내 마음이 살짝 심란해졌기 때문이다.
‘원래 눈물이 많나?’
큰일이다.
사내자식이 쓸데없이 눈물을 너무 많이 짜면, 좋지 못한데.
미국은 마초 사회다.
다 큰 어른이 이리 자주 울게 되면 군대 내에서 울보로 놀림당하기 딱 좋다.
나는 면접에서 왜 이런 심각한 단점을 찾아내지 못했는지, 살짝 화가 났다.
하지만 신성모는 이미 아나폴리스 신입 생도로 뽑혔다.
이를 바꿀 순 없기에, 일단은 넘어가며 하던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밖에 다른 운동은 어떤 걸 좋아하는가?”
“권투와 유도 또한 즐깁니다.”
“아 그래?”
“예. 사내라면 제 몸 하나쯤은 스스로 건사해야 하니까요.”
눈물이 많았던 것과는 별개로 신성모는 무술 유단자였다.
미국에 오기 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호신술을 연마했다고 하니, 꽤 싸움을 잘하는 것 같다.
“저는······ 여기 있는 이 친구와는 다르게 야구가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오호, 그래?”
“예. 하는 것도 좋지만, 보는 걸 더 즐깁니다.”
미국에서 야구는 미식축구와 함께 양대 인기 종목이다.
미식축구가 압도적으로 유명하긴 했지만, 야구는 3월부터 9월까지 오랜 시간 경기가 벌어지기에 2위 스포츠라고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언제 전하와 함께 메이저리그 경기를 관람하고 싶은데 말입니다.”
반독점법 영향으로 스탠다드 오일의 주식이 많이 올랐다.
슬슬.
일부를 매각하여 다른 종목에 투자해야 할 때가 왔다.
‘야구 구단을 인수하기에 시기적절한 타이밍이군.’
십 년 내로 라디오라는 기물이 발명된다.
라디오의 등장은 스포츠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전국으로 경기 현황이 중계되며, 스포츠 구단에 대한 관심도와 그 가치가 껑충 뛰게 되니까.
‘기존 메이저리그 구단이나 미식축구 구단을 하나 사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나는 황기환의 말에 호응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시대 인수할 만한 메이저리그 구단이 뭐가 있는지, 머릿속에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것 좋지. 웨스트포인트에서 여기 뉴욕 별장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니까. 타이밍만 맞는다면 함께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겠구먼.”
“의왕 전하. 약속하셨습니다!”
“그래. 언제 한번 경기를 관람하러 가세나. 아! 자네는 여타 메이저리그 구단 중 어느 팀을 응원하는가?”
“뉴욕에 연고지를 둔 자이언츠를 응원합니다.”
“그래?”
자이언츠라.
고개를 돌렸다.
신성모는 어떤 구단을 좋아하나, 혹시나 해서 그의 의중을 물어본 거다.
“미식축구도 좋아하나 야구 역시 즐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저스를 더 선호합니다.”
“전하께서 관심 있어 하는 야구 구단은 어디입니까?”
황기환의 물음에 나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언더독 성향이 있어서 말이야.”
“언더독이라는 구단이 있습니까?”
생전 접하지 못한 전문 단어가 나와서일까?
황기환과 신성모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런 두 명의 예비 사관생도를 보며 이를 풀어 설명했다.
“약팀에 동정을 주는 성향을 언더독이라고 하네.”
“아······.”
“그렇군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개인적으로 뉴욕 하이랜더스 팬이라네.”
기회가 된다면 그 구단에 투자도 하고 싶기도 하고.
마지막 생각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소문이라도 퍼지면, 해당 구단의 값어치가 껑충 뛸 테니까.
내가 관심을 보인다며, 기존 구단주가 사방팔방에 이를 흘리고 다닐 것이 뻔히 내 눈에 보였기에 말을 아낀 거다.
“어째서입니까?”
뉴욕에는 세 개의 메이저리그 구단이 존재한다.
전통의 뉴욕 자이언츠.
서민 구단을 표방하는 브루클린 다저스.
마지막으로 뉴욕 양키스의 전신인 뉴욕 하이랜더스.
“그냥. 하이랜더스를 보고 있으면, 우리 한인들을 보는 것 같아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네만.”
“아······.”
“하긴, 우리네 교민들과 하이랜더스의 현 사정은 비슷하죠.”
하이랜더스의 기존 연고지는 볼티모어였다.
그곳에서 뉴욕으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하이랜더스는 반강제로 자이언츠 구단에 셋방살이를 하는 중이었다.
21세기 양키스는 귀족 구단 이미지지만, 초창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재정 상황이 썩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동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사관학교에 지원하기 전에 본래 꿈은 무엇이었던가?”
나는 급히 다른 주제를 꺼냈다.
신변잡기만 하다가 이번 만남이 자칫 이대로 끝날 수도 있기에, 슬슬 본론에 들어간 거다.
“저는, 본래도 해양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 자네는?”
“저 역시 군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황기환은 주먹을 꽉 쥐며 숨기고 있던 자신의 속내를 내게 살짝 드러냈다.
“킬 쨉스(Kill Japs)! 일본인을 최대한 많이 죽일 수 있는 길은 이 길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섬뜩할지도 모르는 구호지만.
이 시대 한인들이 마음속에 감추고 있던 평생의 구호이기도 하다.
특히나 일본군에게 가족을 잃은 이들이라면 다들 이 생각을 한 번쯤은 하고 살았을 거다.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젊은 남녀 간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좋을 때는 뜨겁게 좋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황기환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왜 미군 고위 장교가 되고 싶은지 아주 조리 있게 내게 설명했다.
“자네는 언젠간 미국이 일본과 척을 지리라 생각하는구먼.”
“예. 지금도 만주를 두고 두 나라가 알게 모르게 경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호.
국제 정세도 수준급이네.
하긴.
원 역사에서도 황기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 파리위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했다.
기본적으로 국제 정세를 잘 파악하고 외교적 소양이 이미 갖춰진 인재라는 뜻이겠다.
“일본이 급발진이라도 하여 미국의 이익을 침해한다면, 제아무리 고립주의를 지향하는 미국인들이라도 가만히는 있지 못할 것입니다.”
동의한다.
지금도 그런 기미를 조금씩 보이곤 있으니까.
‘결국에는 진주만을 공습하며 미국과 전면전을 하게 되었지.’
원 역사 때처럼 이번 역시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으나.
국제 정세의 큰 틀은 아직 변하지 않았기에, 높은 확률로 이리될 것이 뻔했다.
나는 황기환의 말을 경청하며 나 역시 공감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의왕 전하.”
“듣고 있네.”
“몇 가지 상의하고 싶은 사항이 있는데 말입니다.”
지원 동기를 말하는 차례가 끝나자마자, 황기환이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상의하고 싶은 사항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에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속내를 떠보았다.
“뭔가? 말해 보게.”
“제 이름 말입니다.”
이름?
갑자기 웬 이름?
“외국인들 처지에서는 제대로 발음하기가 어려운 이름 같은데 말입니다. 영어식 이름과 유사한 이름으로 개명하는 것은 어떨까요?”
“예를 들면?”
“조금 전, 전하께서 제 이름과 혼동하였던 유진도 괜찮고 요한이나 재희 같은 이름도 좋을 것 같습니다.”
* * *
“의왕 전하. 저 또한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신성모 역시 동의하며 고민하고 있었던 이유를 내게 알려줬다.
“성모라는 이름은 부모님께서 지어 주신 아주 아름다운 이름이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조금 민망한 단어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석이나 성이 들어가면.
썩(Suck)으로 알아듣기도 하니까.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21세기에도.
교포 2세 출신이 많이 고민하던 문제라서 그런지 나는 공감한다는 표정을 지어 주며 그들에게 답했다.
“자네들의 이름이니, 개명하든 그대로 쓰든 모두 그대들의 선택에 달렸다고 생각하네.”
“······.”
“······.”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네.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이 현지인들의 발음을 고려하여 이름을 바꾸는 경우는 별로 없거든.”
동양인이고, 발음도 이민자인데.
에밀리나 클라크 같은 이름이라면 그게 더 이상하잖아.
물론 이들은 한국식 이름 같은 ‘유진’이나 ‘재희’, ‘요한’으로 개명하고 싶다지만.
개인으로 이름을 고치는 것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살짝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하.”
“말하게.”
“혹시 나중에 귀화 제의를 받게 된다면, 소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까 말했던 고민과 살짝 연결되는 고민거리이다.
이 둘은 외국인 신분으로 웨스트포인트와 아나폴리스에 입학한다.
문제는 졸업 후에 돌아갈 모국이 없다는 것.
그렇기에 더더욱 고민이 될 것이다.
“이 역시 그대들이 옳다는 방향으로 결정하게나.”
나는 황기환과 신성모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그대들이 배운 지식을 한인 군사학교에서 가르쳐도 좋고, 미 군부에서 살아남으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도 좋을 것 같네.”
개인적으로는 후자를 더 선호한다고 끝에 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두 학생은 더더욱 표정이 복잡해져 갔다.
“아까 기환 군이 말한 것처럼 국제관계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는 것이네. 일본과 미국이 전쟁을 벌이게 된다면 아국은 그 사이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게 될 터. 자네들이 미 군부에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하지만······.”
황기환이 주먹을 꽉 쥐며 내게 물었다.
“국적을 바꾸게 되면 그다음부터 저는 조선인이 아닌 미국인이 됩니다.”
“······.”
“자칫, 조선과 미국. 두 나라가 분쟁을 벌인다면, 저는 피치 못하게 새 조국이 된 미국 편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미군으로 종사하고 있다면, 황기환은 당연하게도 미국 편을 들어야 한다.
상부 명령에 반발이라도 한다면, 불명예스럽게 강제 예편당할 수도 있기에.
황기환은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부득이하게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
“······.”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나. 내가 있지 않은가?”
나는 두 학생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들을 달랬다.
“나의 역할은 이런 이해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두 나라 사이에서 이를 조정하는 것이지. 내 약속하겠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내 최선을 다할 테니, 자네들은 먼 미래에 대한 걱정들은 그만하고 학업이나 집중하게나.”
* * *
황기환과 신성모.
이 둘은 하룻밤 우리 집에 머문 후, 각자의 목적지인 육사와 해사로 떠났다.
“어떠셨습니까? 전하.”
나는 우리 집을 막 빠져나가는 이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제 있었던 대화를 회상했다.
“다들 눈동자가 살아 있더군. 특히나 황군의 국제 정세 혜안이 대단히 흥미로웠네.”
한 놈만 톡 까서 칭찬하니, 최현우가 살짝 걱정스러운 눈치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나폴리스에 입학하게 될 신 군은 별로십니까?”
“다 좋은데······ 눈물이 조금 많은 것이 살짝 걱정되네.”
“아······.”
“낙루(落淚) 생도도 아니고. 나 원.”
최현우도 이를 느낀 모양인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이를 물릴 수는 없다.
이에, 최현우는 최대한 신성모의 처지에서 생각하며 그를 변호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전하를 너무 흠모하여서 그런 것이 아니까요? 저는 이를 보고 전하를 향한 충심이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말입니다.”
최현우가 계속하여 신성모를 변호한다.
그는 지난 면접 과정, 그리고 체력시험에서 보였던 신성모의 모습을 언급하며.
어제와 같은 울보 같은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고 내게 보고했다.
‘흠.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이상하긴 한데.’
최현우의 보고가 사실이라면, 진짜로 나와 대화할 때만 눈물을 질질 짰다는 뜻인데.
평소에는 눈물을 많이 흘리지 않는다고 하니, 일단은 다행이다.
“뭐, 그 점만 제외한다면 만족하네. 특히나 성격이 유한 것 같아서 안심되는군.”
미국이나 한국이나.
아부를 잘하는 이가 본디 높은 곳에 올라가기 마련이다.
이 시대 군인들을 만나 보면, 군인 특유의 옹고집이 다들 하나씩 있는데.
신성모는 그런 강직한 타입은 아닌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안심이 된다.
“황군은 다른 의미로 높은 곳까지 진급할 것 같구먼.”
비록 짧게 대화를 했지만.
그 시간 동안 황기환이 보여 준 국제 정세 파악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능력은 아니었다.
나는 집무실에 있던 부채를 집어 들며 떠나는 이들을 마지막을 쓱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날이 슬슬 더워지는군.”
5월인데도 덥다 더워.
이럴 때는 에어컨 바람에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어야 하는데 말이다.
‘응? 에어컨? 냉장고?’
그러고 보니, 최초의 에어컨이 언제 나왔더라?
갑자기 두뇌가 빠르게 돌아간다.
돈 냄새를 또다시 맡아서였다.
< 두 개의 별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