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95)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95화(195/392)
< 중원에서 온 손님 (1) >
현대 미국인들은 중국의 역사를 심도 있게 다루지 않는다.
자신들의 조상과 연관된 유럽사는 세계사 시간에 꽤 비중 있게 배우지만.
태평양 건너에 자리한 동대륙 역사는 그냥 퉁- 뭉쳐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대충 다루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쑨원(孫文)이라······.’
나는 재미교포 2세 출신이다.
당연하게도 미국에서 유년기와 청년기 모두를 보냈고, 미국식 교육을 받았다.
일반적인 미국인이라면 보통 쑨원이 누구인지 모른다.
나 또한 대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쑨원이 내 부모님의 조국인 대한민국과 관련된 인물도 아니고.
딱히 이 자를 알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신해혁명을 주도한 인물로 삼민주의를 주창하던 혁명가지.’
하지만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부터 나는 쑨원을 주제로 뒤늦게 공부했다.
중국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다.
『미스터 박. 이자가 누구인지 꼭 알아 두게나. 대(對) 중국 로비를 할 때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함께 필수적으로 암기해야 하는 근대 위인이네.
해외에서 중국인이라고 불리는 세력은 크게 두 부류다.
대만 섬으로 쫓겨난 중화민국.
그리고 대륙을 차지하게 된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그중 본토 중국인들은 2000년대 초반 이후부터 로비스트 업계의 크나큰 고객이 되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후.
미국과 중국.
두 나라 사이에 교역 규모가 말도 못 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교역이 활발해진다는 것은 다른 문물 역시 활발하게 교류된다는 것이며, 동시에 미국 자본의 대중국 투자가 활발해진다는 소리기도 했다.
돈이 오가고 공장이 세워지는 곳에는 설립 인허가가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한시라도 빠르게 대중국 투자를 위해서는 약간의 로비가 필요했는데, 그 역할을 바로 내가 했다.
‘그때 참 좋았는데 말이야.’
왜냐고?
그야, 돈이 넝쿨째로 굴러들어 오는 시기였으니까.
중국이 너무 급속도로 성장하여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고, 트럼프가 중국 정부를 때리기 전까지 중국은 그야말로 노다지였다.
‘빙의 전에 박병준으로 살 때, 가장 많이 출장을 간 곳이 바로 중국이었지.’
여러 중국 고위 간부들을 만났다.
그들과 술도 마시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하며 더러 그들의 위인들에 관한 대화도 나눌 수 있었는데.
특이한 점은 쑨원이라는 인물은 중국과 대만, 양쪽 모두에게서 칭송받는 위인이라는 것이다.
‘청 왕조를 무너트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중국인들이 그리도 따지는 정통성 때문일까?
청 왕조가 무너진 후.
한동안은 위안스카이의 북양 정부가 중원 대륙을 잠시 지배하지만.
그 뒤에는 쑨원이 중원 대륙을 다스리게 된다.
아마도 다들 쑨원의 후예를 자청하는 것은 자신들이 쑨원의 뒤를 이어 진정한 중원 대륙이 주인이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함일 것이다.
중국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나만의 생각이 정리되어 있었기에.
지난 삶에서 외워 두었던 몇몇 정보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내 앞에 앉아 있는 한 사내를 쳐다보았다.
‘생긴 건 참 호구같이 생겼단 말이야.’
순둥순둥하다.
딱 옆집에 사는 인심 좋은 아저씨 같다.
‘속 알맹이는 어떨까?’
겉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이다.
그렇기에, 나는 경계심을 한껏 끌어올리며 쑨원을 바라보았다.
“의왕 전하.”
그때였다.
쑨원이 먼저 입을 뗐다.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살짝 거만한 자세로 답했다.
“듣고 있네. 말하게.”
“인사에 앞서 사과 말씀부터 한마디 올리겠습니다. 의왕 전하의 수하들과 대화 도중 오해가 생긴 것 같습니다.”
“오해?”
“예. 그렇습니다.”
오호?
시작부터 뭔가 예상을 깬다.
로비스트 박으로 살면서 내가 만난 공산당 간부는 죄다 거만하고 무례한 놈들이었다.
‘초반에는 그런 경향이 없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거드름을 피워 댔지. 특히 내가 한국계라는 것을 알고 이를 얼마나 비하해 대었나?’
미국에서 소수인종으로 힘들게 살면서, 나는 특정 인종에 관한 편견을 갖는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토 중국인이라면 질색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때 경험했던 안 좋은 기억 때문일 테다.
하지만 쑨원은 내 고정관념을 깨 주기라도 하는 듯, 예상외로 굉장히 점잖았다.
‘미국으로 잠시 유학을 다녀와서 그런가?’
아니면, 작금의 관계 때문일까?
나는 슈퍼 갑이고.
쑨원은 현재 슈퍼 을이라서 그런가?
“저는 의왕 전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지, 당장 오늘 전하를 뵙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
“영어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제 본의가 뜻하지 않게 와전된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송구하옵니다.”
우리 둘은 현재 통역사 없이 1대1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쑨원이 조선말을, 내가 광둥어를 구사하지는 않았다.
나도 그렇지만 쑨원 역시 미국에서 산 적이 있었기에, 영어를 생각보다 잘했는데.
서로 영어를 쓰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기에 독대하고 있었다.
“일단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중화의 혁명을 위해 분골쇄신하고 있는, 중국동맹회의 창시자 쑨원이라고 합니다.”
“중국동맹회 당수라······.”
쑨원의 한쪽 눈썹이 들썩인다.
아마도 내가 뭔가 아는 표정을 지어서인 것 같다.
“중국동맹회를 아십니까?”
“그럼.”
역시나.
예상했던 질문을 냅다 던지네.
나는 피식 웃으며 익문사 요원들에게서 보고받은 정보를 슬쩍 풀어 설명했다.
“지난 4월에 광동성에서 대규모 봉기를 기획했다가 광동성 지방 당국에 발각되어 크나큰 곤욕을 치렀다 들었네. 내 말이 틀렸는가?”
“······ 마, 맞습니다.”
내가 생각보다 그의 행적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자, 쑨원이 살짝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에, 그가 더 당황할 만한 한 가지 사실을 전했다.
“청 정부가 자네 목에 현상금을 걸었다고 하던데 말이야.”
“······.”
“생각보다 거액이더군. 청 조정이 얼마나 자네를 경계하고 있는지, 대충 예상이 되네.”
나는 번뜩이는 눈매를 감추지 않고 쑨원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대의 목표는 아마도 중원 내에서 청을 몰아내고, 새로운 공화 정권을 창출하는 것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나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투자자다.
하지만 본 신분은 왕자였다.
공화정은 왕족들을 몰아내고 왕이 없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입헌군주제보다도 한층 더 진보적인 제도.
“차를 내오게.”
왕을 쫓아내는 것.
타국의 일이지만, 자칫 왕족인 내 심기를 거스르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쑨원은 조심조심하며 내 눈치를 연신 보았다.
“······.”
“······.”
공화정 이야기로 분위기가 크게 가라앉았다.
대충 뒤에 나올 이야기는 청 조정을 무너트리는 데 도움을 달라는 것일 텐데.
내가 어두운 표정을 계속하여 짓고 있자, 쑨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은 내게 본론을 말할 타이밍이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우리 둘은 그렇게 막 나온 차를 홀짝이며 시간을 보냈다.
한 십여 분쯤 지났을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지금이 몇 월 며칠인가?”
“달력을 확인하지 않아서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대충 8월 초순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창밖에 보이는 푸른 나뭇잎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중원이나 조선, 뉴욕 모두 한여름철에 접어드는 시기지.”
나의 말이 끝나자, 쑨원이 나의 숨은 속내를 뭔가 알아차렸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어째 집안이 좀 선선한 것 같습니다.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요.”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들고 있던 차를 내려놓았다.
이후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활짝-
닫혀 있던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는데, 열린 창틈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
“바깥은 아직도 덥다네. 이렇게 창문만 열면, 더운 공기가 쌩쌩 들어올 정도이니까.”
쑨원 역시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의왕 전하.”
“말하게.”
“어떠한 원리로 집안이 이리 시원한 것입니까? 궁금하옵니다.”
“저기에, 설치된 에어컨이라는 전기기기 덕분이라네.”
록펠러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고 쑨원에게도 에어컨을 소개했다.
“서양 과학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는 기물이네.”
다만, 그 뒤에 다음 말을 덧붙였다.
씁쓸한 표정과 함께.
“조선과 청은 유학의 망령에 사로잡혀서 과학을 등한시했지. 반면, 양이들은 그렇지 않았고.”
“······.”
“참으로 분통 터지는 일이 아니던가? 옛날에는 서양보다 동양이 훨씬 더 윤택한 삶을 살았는데 말이야. 어느새 역전되어 버렸네.”
쑨원이 동의한다는 표정을 지어 댔다.
꽉 막힌 꼰대는 아니어서 그런지, 제법 말이 통하는 것 같다.
“서양 과학은 선선한 바람을 불게 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네. 아! 자네의 눈썰미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로군.”
나는 우리 둘 사이에 놓인 찻잔을 바라보며 하던 말을 이어 갔다.
“대충은 눈치챘으리라 생각하네. 자네에게 건넨 것은 따뜻한 차였네. 반면, 내가 먹은 것은 커피였지. 정확히는 얼음 조각이 동동 띄워진 차가운 냉커피였지.”
냉장고는 에어컨이 시중에 나오기도 한참 전에 영국에서 발명되었다.
우리 집 부엌에는 이미 이러한 냉장고와 냉동고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나는 이를 언급하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슬쩍 넣어 보았다.
“희한하게도 우리 한인들은 여름철에 차가운 물을 즐긴다네. 여유가 있는 이들은 커피나 화채에 얼음을 동동 띄우기도 하지. 반면, 미국에 이민 온 중원 사람들은 아직도 뜨거운 차를 즐긴다네.”
21세기만 해도 그렇다.
유학 온 한인들도 그렇지만, 미국 가정에서 자란 한인들도 그 추운 날에 곧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수한다.
마치 DNA에 한인들의 음료 취향이 콕콕 박혀 있기라도 하듯이.
반면 중국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수천 년간. 두 나라 사람들이 원래 해당 지역에 살아오며 터득한 생존 본능이 각인되어 있기에 그렇다고 생각하네. 중원의 수질은 그리 좋지 않으니까. 물을 끓여 먹을 수밖에 없지. 하지만 우리 조선은 그렇지 않네.”
“······.”
“안타깝게도 양이들은 이를 구별하지 못한다네. 중원 사람이나 우리 한인이나 겉모습만 보면 똑같은 동양인이니까.”
빙빙 돌려 말했지만, 결론은 하나다.
한인과 중국인은 음료를 마시는 것부터 문화 차이가 난다고.
여기서 좀만 더 나아가면, 내가 생각해 두었던 다음 주제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 중국과 한국은 과연 한 나라인가?
“······.”
“······.”
쑨원은 청나라를 무너트린 위인이다.
빙빙 돌려서 말했지만, 방금 나의 발언이 무슨 뜻이었는지는 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쑨원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상당수 현 시대 중원인들은 아직도 대한제국이 그들의 속국이라 생각하고 있다.
더 나아가 기회만 된다면, 다시금 제 울타리로 불러들여서 그들의 발아래에 두려고 한다.
나는 이를 어찌 생각하냐고 쑨원에게 은근히 돌려서 물어봤다.
“희한하군요. 저는 이곳에 오면서 조선인과 중원인, 일본인을 확연히 구분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런가?”
“예.”
쑨원이 나의 말에 일단은 호응해 준다.
이에 나는 안심하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이들이 바로 중국인들이니까.
자신들에게 이익이 안 되는 이들이면 그들은 언제든 배신한다.
“아차차! 내 귀한 손님을 앉혀 두고 쓰잘머리 없는 소리만 늘어놓았군. 그래. 오늘이든 아니면 내가 시간이 날 때든 말이야. 자네는 나를 한번 만나고자 하였네. 그 이유를 들어 볼 시간이 온 것 같은데 말이야. 무슨 연유로 대양을 건너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인가?”
* * *
3년 전부터였을까?
광동성에 이강과 관련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조선의 왕자라는 놈이, 미국에서 크게 돈을 벌었다던데.』
『상상도 못 할 정도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더군.』
『자네도 알지? 광동의 정 대인이나 안휘의 호 대인.』
『그 역사적인 거상?』
『그래. 그들보다도 더 많은 은을 소유하고 있다더군.』
『에이, 설마.』
처음에 쑨원은 해당 소문의 출처가 광저우에 방문한 조선인들이라고 생각했다.
타지를 떠돌며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의 허언이라고 여겼는데.
이강과 관련된 소문이 서양인들의 입에서 더 많이 퍼졌다는 것을 알자, 쑨원은 차츰 이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과, 관원들입니다.』
『어느 누가 배신을 한 것이지?』
『피하십시오. 쑨 대인.』
1900년대 초반부터 쑨원은 계속하여 청 왕조에 대항하여 봉기를 기획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다.
여러 요인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돈.
혁명 자금이 부족해서였다.
“다시 뵙는군요. 미스터 손.”
연이은 혁명 실패.
이를 해결하기 위해 쑨원은 현재 서구 열강을 뱅뱅 돌고 있었다.
모건과 로스차일드, 록펠러에 손을 벌렸는데 다들 쑨원을 차갑게 대하며 문전박대하곤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대중국 사업파트너는 오직 청 조정이다.
비록 약해지긴 했지만, 이 거대한 용이 단시일 내에 완전히 몰락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으니까.
그래서일까?
뉴욕의 자본가들은 청 조정과 척을 지고 있던 쑨원을 다들 야멸차게 내쳤다.
“이쪽입니다.”
하지만 이강은 달랐다.
첫 만남에서 쑨원의 차관 제안을 경청했던 이강은 다시금 그를 뉴욕 별채로 초대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아, 미스터 손.”
“예?”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소란은 피우지 마십시오.”
“······.”
“제 말 명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쑨원은 최현우의 조언에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강이 무슨 깜짝 이벤트를 벌이려고 하나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자자, 이쪽일세.”
그때였다.
한지로 만들어진 가림막.
그 너머 옆방에서 이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를 냉큼 내오도록 하게. 아! 내 앞에 앉아 있는 우칭 특별 대사를 위해 찻장에 보관해 둔 그것도 꺼내오게나.”
“일전에 청에서 수입한 최고급 차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
쑨원은 잠시 혼란스러웠다.
이강이 무슨 이유로 자신을 이곳에 홀로 남겨 뒀는지 헷갈려서다.
“공친왕은 잘 지내시는가? 듣자 하니 순친왕이 내각총리대신 자리에 올라서 살짝 껄끄러운 상황이 연출된 것 같은데 말이야.”
하지만 쑨원은 이내 이강의 대화 상대를 눈치챌 수 있었다.
쑨원이 제일 혐오하는 부류다.
바로 청나라 황족이 지금 그의 옆방에 있었던 거다.
쑨원은 주먹을 꽉 쥐며, 이강과 공친왕부에서 온 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경청하기 시작했다.
< 중원에서 온 손님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