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199)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99화(199/392)
< 결자해지 (2) >
나는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무언가를 결정하고 지시해야 하는 책임자로서, 자신의 속마음을 남들에게 쉽게 보여 주는 행동은 하수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용서?”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만큼은 분노한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X발.’
이민 초기.
리버모어와 함께하며 쌓은 즐거운 추억들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후.
기억하기도 싫은 더러운 기억들이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저 개새끼.’
한때 그를 좋은 동업자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공매도로 돈을 벌고, 아메리칸 신탁을 값싸게 인수한 이후에는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당장 과거에 내가 했던 행동을 떠올려 보라.
나는 리버모어에게 아메리칸 신탁을 전적으로 위임하며 그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금 내게, 용서를 구한다고 했는가?”
지금 그에게 느끼는 실망감은 이강의 몸에 빙의한 후 느꼈던 그 어떤 부정적인 감정보다도 더 강렬했다.
그래서일까?
어느 때보다도 머리가 맑아졌다.
화가 너무 나면 흥분하다가, 어느 순간 침착해지기 때문이다.
“말해 보게.”
나는 목소리를 살짝 높이며 리버모어를 향해 또박또박 물었다.
리버모어는 나의 반응에 약간 위축되었는지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는 더는 잃을 것이 없었기에, 목소리 자체는 컸다.
“예, 그렇습니다. 왕자님.”
지금 내가 있는 아메리카 신탁 본사는 공개된 장소였다.
사적인 우리 집과는 다르게 여러 대중이 오가는 곳.
지금 이곳에서 리버모어는 큰 소리로 내게 사과하고 있었다.
“어! 누구였더라······.”
“저 동양인?”
“그래.”
“잠깐만 있어 봐. 어? 저 사람 이 왕자 아니야?”
“그러게. 오랜만에 아메리칸 신탁에 출근했나 보네.”
“그보다 이 왕자 앞에 백인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있네. 누구지?”
“제시 리버모어 같은데?”
“리버모어?”
“그 있잖아. 이번에 공매도에 몰방했다가 크게 말아 먹은 개새끼(bastard).”
“아! 그, 그, 스탠다드 오일이 반독점법 때문에 폭락할 것이라고 지껄였던 그놈?”
“그래.”
무심결에 그곳을 지나가던 다른 이들.
전부 리버모어의 목소리를 듣고 이곳으로 몰려왔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남들에게 얼굴이 알려진 공인이다.
공인으로서, 공개된 장소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은 자칫 번거로운 일들을 초래하기도 한다.
‘다 들으라고 저리 고래고래 언성을 높이며 사과하는 건가?’
봐라.
리버모어가 내 앞에 나타나서 쇼를 시작한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던가?
‘저자는······.’
기자까지 보인다.
정론지였으면 그나마 낫지만, 방금 눈빛을 교환한 놈은 황색언론에서 글을 쓰는 기레기였다.
‘대낮에 저놈들은 왜 아메리카 신탁 본사까지 온 것이지.’
아!
이놈 때문에 엄한 돈이 나가게 생겼네.
‘정면 돌파다.’
이대로 화를 버럭 내고 자리를 뜬다면 이상한 괴소문만 난립할 것이다.
물론 리버모어에게 불리한 소문이 더 많이 퍼질 것이지만.
괜히 가만히 있던 내게도 불똥이 튈 것이 분명했기에, 후속 조치를 빠르게 취해야 했다.
“자네가 저지른 실수는 수도 없이 많네. 그래. 그 많은 과오 중 내게 어떤 것들을 용서받기 원한다는 것인가? 말해 보게.”
다짜고짜 사과부터 날리는 놈에게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네가 뭘 잘못했니?’ 전법을 구사했다.
“그, 그것은······.”
내가 일일이 이를 따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당황하여 사과를 받아들이거나 자리를 회피했을 것으로 생각한 모양인데.
나는 얼버무리고 있는 리버모어를 바라보며 냅다 윽박질렀다.
“나는 1907년 금융위기 때 공매도로 벌어들였던 많은 수익을 자네에게 나눴네. 계약대로 말이지. 하지만 자네는 괘씸하게도 내 개인 자산 정보를 다른 이들에게 누출하는 범법을 저질렀네.”
20세기 미국은 21세기처럼 금융을 선도하는 국가가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미국 금융회사들은 영국이나 유럽 쪽 은행들보다 보안 쪽에 취약했다.
제도 역시 마찬가지.
아직은 개인정보에 관한 법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리버모어의 행동을 위법으로 간주하며 언성을 높였다.
주변에 몰려든 이들에게 여론전을 하기 위해서다.
리버모어가 나쁜 짓을 먼저 했다고 몰아붙인 것.
“개인 자산 정보의 외부 누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네도 알 것일세.”
“······.”
“자네 때문에 나는 본의 아니게 경쟁자들에게 내 패를 전부 까게 되었네. 그 결과, 나를 공격하고자 하는 이들이 내 재산목록을 입수한 후, 집중적으로 이를 공매도했네.”
그동안 입은 손해를 법원에 증명할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
대중들에게 호소할 수는 있었다.
“와, 대박.”
“무능한지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쓰레기네.”
아메리칸 신탁 본사를 서성였던 이들은 대다수가 뉴욕에서 돈 좀 모았다는 상류층이었다.
그들은 현 상황이 위법적이지는 않아도 도덕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사항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내 말에 수긍하며 동의한다는 표정을 지어 댔다.
“나는 이 회사에 주인이기도 하지만, 손님이기도 하네. 자네는 이 회사의 대표였지만,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네. 손님들의 개인정보를 사적으로 팔아넘겼으니까.”
“그, 그것은······.”
“그래. 그것은 아마도 반발심 때문이었겠지. 내가 자네의 의견을 반려하고 스탠다드 오일의 주식을 집중 매수하라고 이르면서부터. 그대는 오만한 그대의 선택이 내 선택보다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겠지.”
서양은 동양과 비교하여 개인의 사생활을 엄청나게 중시한다.
작금의 대화 내용이 만약 뉴욕 전역으로 퍼진다면?
과연 어느 누가 리버모어에게 돈을 맡기려고 할까?
리버모어는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힐긋거렸다.
“자네는 선을 넘었네. 더욱이 반독점법으로 뒤숭숭한 이번 1분기에, 자네는 무책임하게 사표까지 던졌다네.”
“······.”
“그뿐만 아니라 자네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을 꼬드겨 함께 집단 퇴사를 선택하도록 유도했네. 이 회사가 어려워지게. 더 괘씸한 건, 이후 로스차일드 남작이 소유한 체이스 은행으로 이직까지 했다는 것이네.”
그런 상황에서 용서해 달라고?
뻔뻔한 것도 유분수지.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용서하겠네.”
“예?”
“용서하겠다고.”
속에서는 미칠 듯이 불이 나고 있었지만, 보는 눈이 많다.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관대한 척 표정을 지으며 리버모어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가슴이 따뜻한 남자니까. 크게 손해 보았다면 모르겠지만, 이번 사태로 빈털터리가 된 것은 자네이지 않은가? 과거에 머물며 자네를 계속 원망하고 싶지만은 않네.”
“이 왕자님. 그렇다면······.”
나는 씩 웃으며 리버모어의 손을 다시금 놓았다.
이미 바닥에 있다가 일어섰기에,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리버모어는 살짝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어 댔다.
“용서와는 별개로, 자네와 업무상으로 부딪치고 싶지는 않군.”
“예?”
“사실 이전부터 생각해 왔는데 말이야. 자네는 4년 전 금융위기 이후로 쭉 내리막길이었네.”
“······.”
“자네가 내놓는 주가 전망만 해도 영 탐탁지가 않았지. 그렇다고 그대가 아랫사람 관리에 뛰어난 것도 아니고.”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하던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 사과만 받겠다는 말이네. 업무적으로는 엮이고 싶지는 않고.”
“······.”
옆에 있던 최현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최현우가 손수건을 내게 건넸다.
나는 조금 전.
리버모어를 일으켰던 손을 빠르게 닦아 내며 살짝 그를 노려보았다.
“아! 자네, 아직 체이스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던가?”
천천히 리버모어에게로 다가간 후, 그만 알아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남작께 전하게.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찾아오라고.”
“······.”
“지저분하게 옛 인연 들먹이며 사람 마음을 가지고 놀지 않았으면 하는군.”
“······.”
“이번 제안도 거절한다면, 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네. 잘 기억하게.”
나는 한걸음 떨어진 후, 피식 웃으며 리버모어를 바라보았다.
“그리 길지 않는 메시지니 잘 전해 주게나. 아! 아직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자네 솜씨가 예전만 못한 것 같긴 한데 말이야.”
* * *
하룻밤이 지나고.
“이 왕자님. 오랜만입니다.”
“오! 로스차일드 남작.”
우리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내 그대의 연락이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오. 월터, 자네도 왔구먼.”
두 부자의 방문을 환영한 후, 나는 술잔을 따르기 시작했다.
술잔을 아주 가득 채운 후.
딱 넘치기 직전에.
이를 남작에게 건넸다.
“어제 보내 줬던 선물은 아주 잘 받았네. 자네에게로 도망갔던 머슴 놈을······ 그리 재회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나는 어제 일을 회상하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아! 자네 역시 그 모습을 한번 봤어야 했네. 돈 앞에서 남자의 자존심이 어떻게 꺾일 수 있는지를.”
마치 부도가 난 수표처럼, 리버모어의 자존심은 0이 되었다.
1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장면이다.
왜냐고?
리버모어는 1907년 성공 이후에, 자신감이 어마어마해졌기 때문이다.
‘모건을 꺾은 남자로 언론에 알려졌으니까. 어깨에 힘줄 만했다.’
그런 그가 한치에 망설임도 없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마도.
지금 내 앞에 있는 남작 때문이 아닐까 추측했다.
‘남작은 리버모어의 새로운 고용주니까.’
그간 입은 손해 배상을 청구하지 않는 대가로 어제의 일을 기획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존심이 강한 리버모어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을 이유가 없으니까.
“내 살아생전에 그런 모습을 볼 줄 몰랐다네.”
다행히도 나는 남작이 파 놓은 최후에 함정에 말려들지 않았다.
자칫.
백인을 탄압하는 거만한 동양인 왕족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었으나.
현재 리버모어 때문에 돈을 잃은 뉴욕 시민이 제법 많기에.
남작이 파놓은 함정에 훅하고 빠질 일은 없었다.
“아 그나저나 자네 무릎은 괜찮은가? 무릎 관절 쪽이 좋지 않다고 전에도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었나?”
다음 차례는 남작이 될 수도 있기에.
싱글벙글 웃으며 로스차일드의 속을 긁었다.
이에 남작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나저나 내게 무슨 일이 있어서 이리 나를 찾아온 것인가? 급한 일인가?”
잡설은 여기까지.
본론을 물었다.
이에 남작은 손수건을 꺼내 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입을 떼기 시작했다.
“슬슬 제가 싼 똥을 치울 때가 다가와서 말입니다.”
“한잔하세나.”
남작은 아까 건네준, 가득 따른 술잔을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술잔을 들어 한잔하라고 권했다.
이에 남작은 그 독한 술을 쉬지 않고 들이켰다.
이후,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숙였다.
“지난날 벌였던 실수의 대가를 이쯤에서 정리하려고 합니다.”
“실수? 무슨 놈의 실수?”
계속하여 모른 척을 하자, 남작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직설적으로 자신의 실수를 거론했다.
“스탠다드 오일 공매도에 크게 베팅을 해 버렸지 뭡니까?”
“허허? 그런 실수를 하다니. 그래서 손해가 얼마나 입었는가?”
재차 이어진 남작의 고백에 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손해액이 무려 8천만 달러어치나 된다고?”
“예.”
“그런데도 용케 파산하지 않고 잘 버티고 있구먼.”
남작은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선대께서 물려주신 것이 많으니까요.”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거다.
개인 자산을 활용했다면 진즉 파산했겠으나 남작 소유의 금융기관을 활용했기에 이런 천문학적인 손해에도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더욱이 모건 대표가 각별히 편의를 봐주어서 이리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정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건.
또 이놈의 이름이 나오네.
“왕자님께서도 도와주시지요.”
뻔뻔스럽게도 남작은 내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소파에 등을 기대며 살짝 취한 척을 했다.
“아직 공매도를 완전히 정리하지는 못한 모양이로군.”
“예. 에쏘(ESSO)나 소코니(SOCONY)와는 다르게, 시중에 풀린 소칼(SOCAL)의 유동 주식은 적으니까요.”
셋 다 옛 스탠다드 오일의 유산이다.
애쏘는 뉴저지.
소코니는 뉴욕.
소칼은 캘리포니아에 근거를 두고 있는 지부들이니까.
“덕분에 아직도 청산을 못 하고 빌빌거리고 있습니다.”
“저런.”
“왕자님을 뵙기 전에 록펠러 대표를 먼저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 양반은 왕자님보다도 더 가혹한 조건을 제시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암, 그렇지.
나와는 다르게 록펠러는 진심이라고.
복수에 말이다.
“더욱이 소칼의 경우, 이제는 왕자님 소유의 회사이니······ 왕자님과 이야기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이곳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작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가 내게 이런 중대한 사항을 부탁할 정도로 서로 친한 사이는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살짝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자, 로스차일드 남작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뒤적였다.
“대가는 충분히 준비해 두었습니다.”
문서 하나가 나온다.
냉큼 받아서 안에 내용을 읽으니 재미난 것이 적혀 있다.
“체이스 은행의 경영권이로군.”
“예.”
“흠······.”
말꼬리를 길게 가져가자 남작이 살짝 초조한 표정을 지어 댔다.
“별로 내키지 않으십니까?”
“이번 사태로 자네가 소유한 체이스 은행은 명패만 남지 않았나? 차 떼고 포 떼고, 쭉정이만 남은 상황인데······.”
미국에서 돈 좀 굴릴 줄 안다는 사람들은 남작 소유의 은행들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슬슬 돈을 빼고 있다는 소리.
나는 체이스 은행의 가치를 한번 후려치며 별로 당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댔다.
“그래도 그 이름값이라는 것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된답니다.”
“······.”
“왕자님께서도 슬슬 투자은행을 하나 소유하실 때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아메리칸 신탁을 투자은행으로 변모시키고자 하려면 손이 제법 많이 갈 텐데 말입니다.”
남작은 한숨을 쉬며, 갑자기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하노버 은행의 경우 저희 본가에 상당수 지분을 넘겼습니다. 케미컬은행 역시 절반가량을 모건에게 넘긴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내게 오기 전에.
미국에 있는 알짜배기 자산들은 죄다 넘겼다는 뜻이네.
“당분간 유럽 쪽에 집중할 생각인가 보군.”
“예. 그렇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발을 빼지 않은 것을 보면, 미국 쪽에 아직 미련이 있나 보군.”
“······.”
침묵하는 것을 보면.
긍정적으로 해석해야겠네.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돌아온다는 소리로군.
“제 제안을 검토해 보시고 관심이 있으시면 바로 연락을 주시지요.”
“아! 돌아가기 전에······.”
떠나려는 남작을 잠시 붙잡았다.
“내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네만.”
“말씀하십시오.”
“혹시 말이야.”
< 결자해지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