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15)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15화(215/392)
< 리허설 (1) >
7월의 끝자락.
뉴욕의 여름 무더위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야! 시원하다.”
“와, 이런 기물이 다 있다니······ 이건 도대체 무슨 원리로 이리 시원한 바람을 계속하여 내뿜는 것이지?”
“참으로 오래 살고 볼 일일세. 전구에, 전화에, 에어컨에.”
“아, 맞다! 이 에어컨······ 이 왕자의 회사에서 판매하고 있다던데.”
“이 왕자?”
“그,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회사에 투자했던 동양인?”
“그래.”
“또 그놈이야? 그놈은 투자할 때마다 매번 대박을 터트리는군.”
“그러게. 참으로 부럽네. 오 년 전만 하더라도 별 볼 일 없던 왕자 놈이었는데.”
“그놈은 언제 록펠러나 모건처럼 몰락하려나?”
“맞아. 왕자라는 특수 신분만 아니었다면, 진즉 언론에 한 번 두들겨 맞았을 텐데.”
“피부도 노란 원숭이 놈이. 퉤! 재수 없게 자꾸 돈을 쓸어 담는단 말이야.”
성악설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은 본디 악하게 태어난다는 것이다.
뉴욕에는 이런 성악설을 증명할 만한, 천성이 악한 이들이 몇몇 존재했는데.
그들은 앞선 록펠러와 모건을 언급하며, 이강의 몰락 또한 기원했다.
“그나저나 이 에어컨이라는 기물은 십 년 전에 발명되었다던데. 그동안 나는 왜 이 에어컨에 투자할 생각을 못 한 것이지?”
“맞아. 박람회 때 캐리어가 이놈 저놈 애원하며 투자 좀 해 달라고 굽신거리고 다녔다며?”
하지만 이내 주제가 바뀌었다.
아직은 이강에 대한 인식이 그리 나쁘지 않고.
뉴욕의 자본가들은 본디 남을 헐뜯는 것보단 제 주머니 채우는 데 바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선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
다음번 차기 대권은 누가 쥐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기에.
그렇기에 이강을 향한 관심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아직은 괜찮군.’
이에 익문사에서 활동 중인 이상설은 이를 기록하며 미국의 돌아가는 민심을 적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아직은 위험수위에 다가서지 않았지만 지속해서 관찰해야 한다고 첨언하며, 그는 익문사 예산 증액을 다시금 요청했다.
* * *
캐리어가 발명한 에어컨은 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서 미주 전역으로 퍼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소득 수준이 가장 높으며 동시에 여름철에 덥기도 한 뉴욕을 중심으로 그 유행이 시작되었다.
“오늘같이 좋은 날······ 마시고 죽자고!”
지구 온난화가 아직 시작되지 않아서일까?
뜨거운 낮과는 다르게 뉴욕의 여름밤은 제법 선선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요새 들어 다들 해가 지면 활동하는 분위기다.
“자자- 다들 술잔을 들게나!”
“내빼는 사람은 대대손손 운이 없을 것일세. 빈 잔을 가득 채우라고!”
현재 우리 집 마당에서는 한창 깜짝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이는 태평양 건너에서 들려온 즐거운 소식 때문이었다.
그동안 담가 둔 전통술 단지들의 봉인을 개봉하며 오랜만에 술을 한가득 퍼마시고 있었는데.
신분의 상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뉴욕에 있는 한인들은 오늘 하루를 즐겼다.
“지금쯤 그놈은 지옥 불에 떨어졌을 것일세. 고통받고 있을 그놈을 위하여!”
“위하여!”
나 또한 그들의 무리 틈에 껴서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전하.”
그때였다.
록펠러 주니어 떠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
그의 아비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아! 제가 타이밍을 잘못 맞췄군요. 전하께서 한인들과 함께 축제를 즐기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아닐세. 고국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와서, 내 예정에도 없던 깜짝 파티를 열게 되었다네.”
“아하.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자자, 이쪽으로 가세나. 밖은 너무 시끄러우니까, 안에서 이야기하자고.”
단둘이 대화하기 위해 나는 그를 집무실로 안내했다.
록펠러는 힐긋힐긋 마당 한쪽에 설치된 파티장 부스를 바라보다가, 이내 나를 따라 집무실로 이동했다.
“수고가 많았네.”
“수고라니요.”
“이 모든 것이 자네 덕분이지 않은가? 공화당이 분열되지 않은 것은 자네가 주야장천 워싱턴을 뛰어다녀서네.”
원 역사에서 공화당은 분열한다.
이 덕분에 윌슨이 손쉽게 선거에서 승리하고.
“과찬이십니다.”
“진짜라니까. 자네가 활약하지 않았다면, 자칫 당이 쪼개졌을 것이야.”
하지만 록펠러는 ‘회귀자’나 ‘빙의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머릿속에서 분당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자, 한잔하게. 아 잠시만! 여기 있게나.”
흠.
나는 열심히 록펠러의 노고를 칭송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밖에서 들려오는 음주·가무 소음 때문에, 집무실 안이 조금 시끄러웠으니까.
덜컹-
집무실 한편에 자리한 창문을 닫자, 비로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내부가 조용해졌다.
나는 돌아온 록펠러를 반기며 워싱턴에서 있었던 일을 물었다.
“그래. 휴즈와의 만남은 어땠나?”
“뭐, 예상했던 대로 일이 흘러갔습니다.”
지난날 반독점법 판결 이후, 록펠러는 살짝 변했다.
대다수의 인간관계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인 시선을 가지게 된 것.
그래서일까?
록펠러는 자신의 핏줄들, 그리고 그 핏줄들과 연결된 인척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급한 쪽은 우리가 아닌 그쪽이었기에, 머리를 대뜸 굽히더군요. 뭐, 그다음은 어찌 될지 지켜봐야 알겠으나 첫 단추는 잘 끼워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언제, 어떻게 뒤통수를 칠지 모르니까. 정치인이란 다들 그렇네.”
“맞습니다.”
이번에 막 공화당 후보가 된 휴즈 역시 남이나 다름없는 인사였다.
그랬기에 록펠러는 딱 잘라서 그를 평가했다.
“휴즈 또한 정치인이긴 하죠.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그 마음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래.”
“그의 변심을 대비하여 몇 가지 장치를 준비해 두긴 했는데 말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그래도 뭔가.
준비한 것이 있는지 록펠러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건 뭔가?”
서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자, 내가 이를 힐끗 보며 물었다.
이에 록펠러가 종이 뭉치들을 내게 건넸다.
“다음 주 초쯤 ‘익명의 제보자’로 기고할 기사들입니다.”
“오오.”
“단번에 터트리지 않고 이를 순차적으로 기재할까 생각 중인데 말입니다.”
나는 급히 건네받은 기사들을 읽어 보았다.
『윌슨에 이어 휴즈? 모건에게 정치자금 받았다는 의혹.』
『중앙은행법 통과 대가로 10만 달러 건넸다고 해.』
『휴즈, 앞선 의혹 전면 부인. 이 모든 것은 윌슨으로 모략이라고 딱 잘라 선언.』
『본지의 분석. 윌슨과 다르게 휴즈의 청탁 의혹은 증거나 증인이 전무한 상황. 가짜 뉴스로 추정.』
민주당 후보에 대한 의혹이 아닌 우리 측 후보를 흔드는 기사.
어찌 보면 자해적인 행위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은연중에 돌려서 휴즈에게 경고하는 메시지지.’
상원에 계류 중인, 불씨가 꺼져 가고 있는 미국 중앙은행법에 사형 선고를 내리는 기사였다.
만약 휴즈가 당선된 후, 이를 진짜 통과시키기라도 한다면 재임 기간 내내 청탁 스캔들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가 대안으로 제시한 연방준비제도법을 통과시킬 수밖에 없을 거다.’
이리 생각하면 나와 록펠러에게만 유리하고 휴즈에게 굉장히 불리한 기사처럼 보이지만.
이 기사는 사실 휴즈에게 있어서도 유익한 기사였다.
예방접종과도 같았으니까.
중앙은행법에 미련만 두지 않는다면, 이 기사를 통해 모건과 선을 그을 수 있게 된다.
한참 모건과 엮이며 고통받고 있는 윌슨과 다르게, 그는 부패 스캔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이다.
‘역시 록펠러로군.’
경쟁기업을 하나둘 삼킬 때도 이렇게 언론을 이용해 무자비하게 원하는 바를 달성했을 거다.
그랬던 이자가 왜 이리 말년에는 허무하게 스탠다드 오일을 잃게 되었는지.
나 참.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지난날 자신의 실수를 곱씹으며 울먹거렸던 록펠러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왕자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뭐, 나쁘지 않은 기사라고 생각하네.”
“그리 생각하십니까?”
“그래. 휴즈에게 살짝 경각심도 실어줄 수 있고. 모건을 견제할 수도 있으니까. 한꺼번에 두 가지를 취할 수 있는 기사 같군.”
나는 흡족한 표정을 지어 댔다.
이에 록펠러 역시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다가 이내 손뼉을 한 번 짝하고 쳐 댔다.
“아! 맞다. 이 왕자님.”
“듣고 있네.”
“타이태닉 사고 진상규명 청문회 말입니다.”
“그래.”
“아마도 11월쯤에야 치러질 것 같습니다.”
“11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록펠러를 바라보았다.
“8월이 아니고 11월? 그리된다면 대선이 끝난 다음에나 행해지는 것이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록펠러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한 건 또 해냈다는 듯 자신의 업적을 자랑했다.
이에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그 이유를 물었다.
“민주당 측에서는 당장이라도 청문회를 열고 싶어 할 것인데······ 어찌 11월로 청문회를 연기했는가?”
“왕자님께서 터트리신 모건과 윌슨의 스캔들이 주효했습니다.”
록펠러는 은근슬쩍 이 모든 공을 내게로 돌렸다.
“아! 청문회 때 윌슨을 참고인으로 소환하겠다고 겁박했나 보군.”
“역시······ 이 왕자님이십니다. 정확하십니다.”
타이태닉의 진상을 밝히는 자리가 윌슨의 청문회 자리로 비화할 수도 있기에, 민주당 녀석들이 꼬리를 내린 것 같다.
득보다는 실이 많으니까.
민주당 지도부는 청문회 없이 대선 캠페인에 집중하려는 모양새다.
‘공화당 측도 이에 동의했겠지. 윌슨을 청문회에 세우지 못하는 것은 아쉽겠지만, 타이태닉 사고는 본디 루스벨트의 통치 아래 일어난 참극이니까.’
공화당 역시 수권 정당.
사고의 책임 소재를 가리면 그들의 지분도 있던 셈이었기에.
민주당의 꼬리 내림을 용케 수용한 것 같았다.
“하여······ 우리 또한 시간이 조금 생긴 것 같습니다.”
록펠러는 대비할 시간이 생겼다는 것을 강조하며 내게 재차 조언했다.
“잘 준비하셔야 합니다. 청문회에 저격수로 나올 놈들은 죄다 연방의원입니다. 미국에서 주둥아리로 한가락 하는 놈들이지요.”
알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의원들은 주둥아리 하나만큼은 잘 놀리는 존재.
“만약, 휴즈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라도 한다면······.”
“1916년, 휴즈의 대항마 자리가 비게 되겠지.”
“예. 통상적으로 한번 대통령 선거에서 진 후보는 그다음 선거에서 나오지 않으니까요. 브라이언이 굉장히 특이 사례긴 하지만, 그 녀석 역시도 이번에 민주당 후보경선에서 패배하여 정치력을 상당히 잃은 상태입니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대선에서 한번 패배하게 되면 후유증이 생겨난다.
기존 지도층들이 물러나며 권력의 공백이 발생하는데.
욕심이 그윽한 새내기들은 이를 기회로 삼으며 차기 당권과 대권에 도전하려고 칼을 갈게 된다.
“알아서 잘하시겠지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전문가를 고용하시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렇지 않던가?
큰 사건이 한번 터지면 관련자들이 줄줄이 소환되어 국정조사나 청문회에서 난타를 당한다.
타이태닉 사건은 안전 불감증으로 초래된 비극이지만.
민주당의 진보파들은 이를 독점기업의 패배로 규정하고 뉴욕의 자본가들을 이 기회에 손봐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나 또한.
그들에게는 ‘악독한 자본가’ 중 한 명으로 비치고 있었기에.
의회에 참고인으로 소환되어 각종 질문 공세를 받게 될 것이다.
“청문회장을 고대로 본떠서 실전 연습을 한번 해 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불참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이상한 꼬리표가 따라다닐지도 모른다.
‘타이태닉 사건의 모든 책임을 내게로 돌릴 수도 있다.’
이 시대에는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이니까.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 최선일 거다.
“왕자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제가 사람들을 몇몇 붙여 드릴 수도 있습니다. 제 주변에 유능한 정치 컨설턴트들이 제법 있습니다.”
공동 운명체가 되어 버려서일까?
록펠러는 나를 극진히 챙겼다.
“내 든든하군. 자네가 내 적이 아닌 나의 아군이라는 것이 말이야.”
“아닙니다.”
한참 술을 홀짝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록펠러가 앞마당 쪽으로 급히 고개를 돌렸다.
“······ 메이지를 위하여!”
“위하여!”
밖에서 들려오는 고용인들의 함성에 놀란 것이다.
우리 집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은 폭죽까지 쏘아 대며 오늘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록펠러는 이에 살짝 호기심을 보이며 고개를 돌렸다.
“이 왕자님.”
“말하게.”
“아까부터 자꾸 메이지라는 단어가 들리는데······ 혹시, 지금 들리는 메이지가 제가 아는 그 메이지입니까?”
피식-
바로 답을 해 주지 않고 시간을 끌자, 록펠러가 내 눈치를 보았다.
“한인들이 왜 자꾸 메이지를 언급하는 것입니까?”
나는 들고 있던 잔을 홀짝이며 읊조렸다.
“알다시피 메이지는 일본 왕의 칭호이네.”
“그렇죠.”
“그자가 오늘 아침에 막 죽었다더군.”
“!”
한동안 침묵했던 록펠러.
그는 다시금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입을 뗐다.
“하긴······ 저 또한 조선인이었다면 축배를 들었겠네요. 작금의 상황은 에드워드 6세의 부고 소식을 들은 아일랜드인의 모습과도 같으니까요.”
18세기에서 19세기.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의 폭정 때문에 200만 명이나 아사하는 대참사를 겪었다.
그 당시 아일랜드섬에 사는 이들은 800만 명 정도였다.
약 200만 명이 희생당했다는 말.
1/4이 굶어 죽었다는 거다.
당연하게도 아일랜드인들은 영국, 특히나 영국의 왕실이 거론되면 치를 떤다.
록펠러는 이를 언급하며 우리 한인들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 해석할 수도 있겠지. 아무튼, 메이지 덕분에 이번 달은 술값이 많이 나올 것 같네.”
일국의 왕이 죽었다.
이를 애도하지는 못할망정, 축하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행위.
보통의 미국인이라면 이리 반응하겠지만, 록펠러는 보통의 미국인이 아니었다.
“아! 자네도 나와 축하의 건배를 한번 나누겠는가? 대한제국에서는 슬픈 일은 함께 나누면 절반이 되고, 즐거운 일은 함께 나누면 배가 된다는 속담이 있네.”
단순히 축하의 건배를 요청했다고 여길 수도 있으나.
나와 함께.
일본에 맞설 수 있냐는 중의적인 표현이기도 했다.
록펠러는 나의 건배 제안에 살짝 당황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빈 잔을 든 후, 술을 따라 달라고 요청했다.
“물론이지요. 이 왕자님의 기쁨은 저의 기쁨이기도 하니까요.”
“자자, 내 오늘을 위해서 최고급 위스키를 준비했다네.”
비어 있는 잔을 급히 채웠다.
이후 록펠러와 시선을 교환하며 잔을 부딪쳤다.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을 메이지를 위하여!”
“메이지를 위하여!”
< 리허설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