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2)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2화(22/392)
< 호구 or 선지자 (4) >
“······.”
“······.”
지아니니가 입술을 꽉 깨물며, 나를 바라봤다.
예상치도 못한 나의 투자 제안에 당황한 것이겠지.
“하하하. 하하하하.”
하지만 이내 지아니니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는 특유의 장난기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나와의 대화를 재개했다.
“왕자님, 농담도 참 잘하십니다. 막 개점한 지 일 년도 안 된 뱅크 오브 이탈리아에 투자하시겠다고요? 하하하.”
그의 유쾌한 웃음에도, 나는 무표정을 계속 유지했다.
장난으로 제안한 게 아닌, 정말 투자하고 싶단 마음을 담은 표정이었다.
그러자, 지아니니의 얼굴이 또다시 확 변했다.
그 또한 웃음기를 지우고 꽤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짜로 제게······ 투자하시겠다는 것입니까?”
“그래.”
“어째서 그런 제안을 하시는 것이지요? 우린 이제 막 만난 사이입니다.”
눈빛이 매섭다.
나를 살짝 사기꾼처럼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뜬금없이 투자 제안을 했으니 말이다.
돈이 곤궁하지 않다면, 나라도 의심부터 했을 거다.
“우리 둘이 만난 건 처음이지만, 자네에 대한 풍문은 이미 익히 알고 있네.”
“제 소문이요?”
“그래. 1만 달러짜리 은행을 단 1년 만에 100만 달러로 불린 사내, 백만 불의 사내가 바로 자네가 아닌가? 그리 뛰어난 경영 실적을 보인다는 말이 파다한데, 내가 어찌 그대에게 투자를 안 하고 배기겠나?”
사실 샌프란시스코 사교계에선 아직 이런 풍문이 돌지 않았다.
오히려 상당수는 아직도 지아니니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주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그에게 자연스럽게 투자 제안을 하기 위해서다.
더불어, 내가 말한 것에는 하나도 거짓이 없기에 양심에 찔리지도 않았다.
“자네. 앞으로 이 나라 금융계가 어떻게 되리라 생각하나?”
“글쎄요. 가방끈 짧은 제가 어찌 압니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도 힘든 개떡 같은 인생인데 말입니다.”
지아니니는 자신을 낮춰 말하며, 대화 속에 비속어를 섞었다.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팔짱도 꼈다.
나는 심리학적인 이론을 조금 알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말하는 것과 동시에 팔짱을 낀다는 건, 앞에 있는 상대에게 아주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뜻이다.
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은 걸 확인하며, 조금 더 환심을 사고자 나는 미국 은행계에 관한 미래 정보를 그에게 살짝 풀어 보았다.
“이 나라 금융계는 곧 천지개벽할 것일세. 시스템이 통째로 바뀌겠지.”
“어떻게 말입니까?”
“곧 있으면 연방정부가 허락할 걸세. 은행이 전국에 지점을 낼 수 있게 말이야.”
20세기 초, 작금의 은행 시스템은 현대와는 자못 달랐다.
은행 하나당 하나의 점포를 가지도록 하는 ‘단일은행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통신, 교통 산업이 발달하며 하나의 은행이 여러 도시에 점포를 가지게 되는 ‘전국 지점’ 형식으로 변화하니까.
“가까운 캐나다처럼 말입니까?”
“그래. 내 말에, 바로 캐나다를 언급한 것을 보니······ 자네도 이를 잘 알고 있나 보군. 그래, 옆 나라 은행 시스템의 장점 역시도 잘 알 터. 그게 얼마나 편리한지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상당수 미국의 금융인들도 전국 지점 시스템의 장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수는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을 반대하고 있었다.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명목 아래.
특정 세력이 금융업을 독점해선 안 된다는 이유 아래 반대를 표한 거다.
‘역사가 짧다는 콤플렉스 때문에 미국인들은 참 쓸데없는 전통을 중시해.’
현대에만 해도 그렇다.
멀리 볼 것 없이 표준 단위를 쓰지 않는 것도 그렇고.
선거 제도 역시 이상하지 않은가?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라니.
‘뭐, 어쨌든.’
다시금 지아니니에 관한 정보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역사에 따르면 그는 전국 지점화에 굉장히 긍정적인 금융인이었다.
나의 예언 비스름한 추측에 지아니니는 어떻게 반응하려나?
“하지만······.”
지아니니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전국 지점화의 걸림돌을 내게 거론하기 시작했다.
“현 대통령은 기업의 문어발 확장을 경계합니다. 있는 기업도 쪼개는 판에 기존 거대 은행들의 확장을 그자가 허락하겠습니까?”
그래.
루스벨트는 그렇지.
기업의 손을 들어주기로 유명한 공화당 출신답지 않게, 그는 이런 면에서 친기업적이지 못했다.
‘사실 그는 원리원칙주의자에 가까우니까. 어떤 면에서는 진정한 시장주의자지.’
시장경제를 신봉하기에, 과도한 독점기업의 등장은 경계한다.
그게 현 미국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경제 지론이었다.
‘그가 집권한 상태에서는 이 법이 절대 통과할 수 없다.’
거부권을 행세할 테니까.
지아니니가 이 점을 부각하며 다시 한번 루스벨트를 언급했다.
“왕자님께서 모르시나 본데······ 그의 인기는 대단합니다. 더욱이 그는 타협하지 않는 성격으로 유명합니다.”
알아.
그의 인기는 정말 대단하지.
역대 공화당 대통령들은 친기업적인 면모를 보이며 제 사람 만들기에 집중했다면.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서민들을 생각하는 척하며 반독점 기업들을 하나씩 때려잡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의 서민들은 월가를 극도로 혐오한다.
루스벨트가 그런 월가 놈들을 혼내 주고 있는데, 인기가 없을 리가.
하지만 지아니니가 간과하는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미국은 민주정이란 점이다.
“자네 말이 옳다고 치더라도······ 루스벨트가 영원할 것 같은가? 그는 이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네. 그 말은 즉, 그에게 다음은 없다는 거지.”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가 특별하다는 것은 아네. 그가 투표로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까.”
전임자가 암살당해서 루스벨트는 운 좋게 투표 없이 대통령이 되었지.
근데?
“하지만 어찌 되었든 다음번에도 후보로 나온다면 그는 3선을 도전하는 꼴이네. 과연 그가 그런 모험을 할까?”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워싱턴 이래로 3선에 도전한 적이 없다.
10년 이상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 독재로 이어질 수 있기에, 역대 미국 대통령 중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임기를 8년 이상 넘기지 않았다.
여기서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그 ‘한 사람’에 들지 못하는 인물이기에, 특별한 상황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의 임기는 1909년에 끝날 것이다.
“흠······.”
지아니니가 잠시 고민했다.
그도 미국의 지난 역사를 잘 알고 있기에, 한참 지난날을 회상하다가 내게 반문했다.
“루스벨트가 대통령에서 물러난다 쳐도 그다음은 태프트입니다. 알다시피 태프트는 루스벨트의 최측근인 인물입니다.”
맞다.
그리 가까운 사이니, 루스벨트는 3선을 도전하지 않고 태프트를 당내 경선에서 밀어줬겠지.
“그래.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태프트가 루스벨트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것은 지금뿐일세.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달라지겠지.”
“어찌 그리 호언장담하십니까?”
“권력은 나눌 수 없으니까.”
이인자가 일인자 자리에 올랐는데도 과연 옛 전임자의 말을 따를까?
권력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다.
정점에 있는 자는 절대로 자신의 권력을 남에게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
그게 정치적 스승일지라도.
혹은 제 아버지나 자식일지라도.
반드시 전임자의 그늘에서 독립하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태프트는 루스벨트의 그림자를 지우려고 노력할 것일세. 대통령이 자신인데도 전임자를 추앙하면, 그만큼 입지가 좁아질 테니까.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껏 배척당해 온 월가에 도움을 청할 테지.”
퇴임한다고 해도 루스벨트의 인기는 한동안 지속할 테니.
다른 것으로 자신의 빈 권력을 보충하려 들겠지.
‘이 나라의 권력은 돈에서 나온다.’
현재 가장 돈이 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은 당연히 월가다.
금융을 선진화한다는 아주 좋은 명목으로, 태프트는 은행들의 전국 지점화에 찬동할 거다.
이 미래를 조금이나마 지아니니에게 설명한 것이었다.
“······.”
“······.”
지아니니는 내 말을 듣고 고심했다.
뭐 이미 이자도 대충 예상했겠지만.
타인의 입에서 이런 말은 들은 것은 처음일 수도 있으니, 시간은 살짝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곧 있으면 연방정부에서 은행들의 전국 지점화를 허용할 것이니 제게 투자를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그래.”
“저는 그래도 이해가 안 갑니다. 왜 하필 저입니까? 다른 놈들도 많은데 말입니다.”
그의 물음에 내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야 그대가 이단아니까 그렇지.”
“이단아요? 저 신실한 가톨릭교도입니다. 어찌 저를······.”
알아.
이탈리아 계열이면 가톨릭을 믿고 있겠지.
나는 지아니니의 오해를 빠르게 정정했다.
“그런 이단아 말고, 은행계의 이단아라는 소리네. 자네는 지난 1년간 기존 은행들과 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았던가?”
지아니니는 스스로가 아주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내 주장에 어느 정도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혼란기에는 파괴적인 혁신가만 살아남아. 기존 질서에 편승하며 살았던 온실 속 화초들은 이번 풍랑에 죄다 바다에 빠져 익사할 것일세.”
지아니니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턱수염을 만지며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이내 사무실 한편에 배치된 술을 꺼냈다.
“한잔하시겠습니까?”
“나는 됐네. 아직 해가 중천인데 무슨 놈의 술.”
“저는 마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아니니가 자리에서 일어선 채, 독한 위스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곤 이내 자리에 앉은 후,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루스벨트는 영원하지 않을 것이며, 은행의 전국 지점화도 곧 이뤄지겠죠. 왕자님의 조언을 듣고 있자니 빠르면 3년 후, 늦어도 5년 뒤에는 은행의 전국 지점화가 통과될 것 같습니다.”
역시.
이자도 대충 예상하고 있었군.
“하지만 그래도 저는 십만 달러나 되는 거금을 투자금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제게는 한 가지 확고한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안다, 알아.
이것도 사전 조사를 통해 충분히 그를 분석했기에 나는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저는 경영권을 한 새끼에게 올인, 하······ 죄송합니다. 한 주주 놈에게 쏠리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 그놈의 3% 규정.
지아니니의 확고한 신념 때문에 얼마나 고민했던가?
이를 우회할 방법을 찾기 위해 밤잠을 며칠이나 설쳤다.
“죄송하지만 제가 왕자님께 건넬 수 있는 주식의 양은 100주 정도입니다. 저는 100주의 가격이 십만 달러나 된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도 그리 생각하네. 뱅크 오브 이탈리아가 아무리 급성장하는 은행이어도 100주에 십만 달러는 아니지. 너무 비싸.”
내가 손가락을 튕기며 품 안에 있는 서류 하나를 꺼냈다.
제안서였다.
“그래서, 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내려고 하네. 자네 혹시 우선주라는 것을 아는가?”
“우선주요. 글쎄요.”
지아니니는 월가 출신이 아니다.
과일가게로 시작해, 밑바닥부터 올라온 진정한 자수성가형 인간.
그렇기에 지아니니는 우선주의 개념을 모르는 것 같았다.
“우선주는 기존 주식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네.”
“왕자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100주 이상······.”
성격 급한 것 보소.
나는 지아니니의 말을 끊으며, 차마 다 하지 못한 우선주에 관한 이야기를 빠르게 이어 갔다.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우선주는 기존 주식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네. 다만, 한 가지가 보통주와 다르네.”
“무엇입니까?”
“의결권이 없다는 거네.”
의결권이 없다는 건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다만, 아까 처음에 말했듯 다른 권리는 보통주와 같다.
이는 기업 활동으로 인한 배당은 꼬박꼬박 받아먹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현재 시장에 풀린 뱅크 오브 이탈리아 보통주는 3,000주 정도라 들었네만. 십만 달러를 투자해 보통주 100주와 우선주 3,000주를 사들이고 싶네.”
너는 경영하고, 나는 돈을 벌고.
아.
어떤 이는 우려할 수도 있겠다.
우선주의 값어치는 보통주와 비교해서 굉장히 떨어져 보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나처럼 경영에는 관심 없으면서 투자에만 집중하려는 이들도 미국에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 구글만 해도 그렇다.
알파벳 A와 알파벳 C의 가격이 거의 차이가 안 난다.
심지어 어떨 때는 우선주의 가치가 보통주보다 높을 때도 있다.
‘다만, 한 가지 제약은 걸어 두어야겠지?’
이번에 내가 발행한 우선주를 분할할 수 있어도, 앞으로 우선주 주주의 동의 없이 추가 우선주 발행은 없어야 한다는 제약사항도 덧붙였다.
내가 가진 우선주의 가치가 희석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보통주를 무상증자하게 되면 우선주 역시 연동하여 무상증자해야 하네.”
“흠······.”
지아니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우선주를 들이밀며 투자를 종용하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간 경영권을 한 놈에게 몰아주지 않는다는 원칙 하나로 대규모 투자 제안을 거부했는데.
나의 제안은 이 논리로는 받아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왕자님. 아시다시피 저 역시 이 뱅크 오브 이탈리아의 주식을 딱 100주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주주들과 협의해야 할 사항입니다. 주식을 단 3%만 가진 제가 어찌 독단적으로 이를 처리한단 말입니까?”
“이해하네.”
“시간을 좀만 주십시오.”
“너무 많이 기다리게 하지는 말게나.”
지아니니는 일단 보통주 100주를 신규 발행하는 것으로 내 투자 제안을 일부 수용했다.
하지만 우선주 신규 발행은 잠시 보류했다.
‘지아니니는 결국 내 제안을 승인할 것이다.’
어찌 그리 장담하냐고?
대지진이 코앞이니까.
지아니니가 대출 상대로 삼은 이들은 대부분 샌프란시스코의 소상공인들이다.
그들은 대지진으로 생계에 타격을 입게 된다.
그들의 삶을 재건하기 위해선 반드시 추가 자금이 필요했다.
이는 곧 대출 수요 폭발로 이어지고, 지아니니는 곧 내 투자금이 생각나겠지.
‘투자금으로 십만 달러만 받아도 고객에게 백만 달러를 대출할 수 있으니까.’
보통 은행의 지급 준비율은 7~10% 정도 된다.
다시 말해, 대출해 주는 금액의 7~10% 정도를 은행이 자산으로 들고 있어야 한다는 말.
‘사세를 확장할 기회니까. 지아니니는 이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다음번에 만나게 되면, 나는 더 유리한 조건으로 지아니니와 협상할 수 있을 거다.
대재앙이 이 땅에 강림한 시대에는 현금 + 금 부자보다 강력한 상대는 없으니까.
‘지금 당장 내 제안을 수락하지 않은 걸 후회할 테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뱅크 오브 이탈리아 건물에서 나왔다.
이제 진짜 지진에 대비해야 할 때였다.
< 호구 or 선지자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