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20)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20화(220/392)
< 지는 해와 뜨는 해 (1) >
1913년 3월 4일.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 앞마당.
“이제 곧 시작인가?”
“한 이십 분 정도 더 남았을걸?”
수많은 인파가 휴즈의 대통령 취임식을 보기 위해 이 인근에 집결했다.
“어?”
어제까지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그 또한 이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의사당에 방문했다.
“안에 계시지 않고 밖에 나와 있으시네요?”
현재 루스벨트는 의사당의 파사드.
쉽게 말해.
건물 외부 쪽 출입구 전면부에 있는 야외무대에 서 있었다.
보통은 행사 시작 직전.
당선인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전임 대통령이 밖에 나오지만.
루스벨트는 현재 이러한 이전 관례를 무시한 채 먼저 밖에 나와 있었던 거다.
“내, 답답해서······ 신선한 바깥 공기나 쐴 겸, 이리 먼저 나왔다네.”
“그렇군요. 알드리치 의원. 오랜만이군요. 반갑습니다. 아! 대통령님. 저는 선약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게.”
국내외 귀빈들은 지는 해인 루스벨트에게 짧은 인사만 한 후, 물러섰다.
이전 같았으면 한마디라도 더 나누려고 했을 텐데.
루스벨트는 살짝 서글픔을 느끼며, 흘러가 버린 세월을 원망했다.
‘벌써 과거의 망령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짓는군.’
그는 고개를 돌리며 취임식에 누가 왔는지 확인했다.
“이 왕자님.”
“어서 오십시오. 이쪽입니다.”
루스벨트도 귀가 두 쪽 달린 인간이었다.
록펠러와 이강이 연합하여.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휴즈를 밀어줬다는 소문은 그 역시도 익히 들었던 풍문.
“아이고. 이 왕자님.”
“쌍둥이들은 잘 지냅니까?”
다른 이들도 이를 아는 것일까?
이곳에 참석한 이들은 하나같이 록펠러나 이강과 인사를 나누기에 바빴다.
전임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보다도 더 인기가 많아 보였는데.
“······.”
이에 시어도어는 기분이 살짝 나쁜지, 한쪽 주먹에 힘을 꽉 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빌어먹을!”
루스벨트는 저기 구석에.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인물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일본 특사로 보이는 인물이 이강을 노려보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으니까.
그는 흥미롭게 이를 지켜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당선인께서 곧 입장하십니다. 모두 박수로 당선인을 환영해 주십시오.”
새 권력의 등장.
같은 공화당 출신이지만, 루스벨트와 휴즈는 계파가 달랐기에.
그리 친하지는 않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떠오르는 태양이었기에.
루스벨트는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으며 휴즈와 친한 척을 해 댔다.
자칫.
사이가 나쁜 티를 냈다가, 휴즈에게 찍힌다면.
지난 정권 때 비리를 수사한다며, 루스벨트의 최측근들에게 칼이 들이밀어질 수도 있기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던 거다.
“이쪽입니다.”
짧게 악수한 후, 휴즈는 의사당 앞마당에 마련된 행사 부스로 이동했다.
그가 가장 가운데 서자.
“오! 그대는 보이는가? 새벽 여명 사이로 어제의 황혼 미광 속에서, 우리가 자랑스럽게 환호했던 널찍한 띠와 빛나는 별들이 새겨진 저 깃발이······.”
미합중국의 국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본인은, 최선을 다해 미국의 헌법을 수호하고 지킬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
미국 대통령은 취임 선서를 할 때, 성경책을 손바닥에 대고 맹세한다.
그들이 믿는 신의 이름을 걸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대중에게 퍼포먼스를 하는 셈이다.
“아멘.”
원 역사에서 시어도어 다음으로 백악관 주인이 되었던 태프트.
이강의 개입으로 바뀐 지금은 대법원장이 되어, 이번 취임식을 관리 관장하고 있었다.
‘제길. 어떻게든 설득했어야 했나?’
루스벨트는 이를 모르기에, 그저 입맛을 다실 뿐이다.
공화당 내에서 영향력이 제법 있었던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태프트.
그를 대법원이 아닌 백악관으로 보내야 했나 후회했다.
“만찬회 행사장은 이쪽입니다.”
“괜찮네. 나는 이만 가도록 하겠네.”
심기가 불편해진 루스벨트는 취임식 이후 만찬회도 불참하며 제 고향으로 바로 출발했다.
* * *
취임식 이후.
귀빈들을 상대로 간략하게 점심 만찬회가 행해졌다.
“대통령 각하.”
“축하드립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휴즈였다.
그는 백악관에 공식 입성하기 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취임식에 참석한 여러 인물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 왕자님.”
“휴즈 대통령님.”
“이 왕자님 덕분에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건, 제가 해야 할 말인데요.”
“조만간 초대장을 보내겠습니다. 이른 시일 내에 언제 한번 백악관에 저녁 식사라도 함께하시지요.”
“예. 좋습니다.”
수많은 외빈이 백악관에 집결했기에, 나는 휴즈를 오랜 시간 동안 독점하지 못했다.
짧게.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눈 후,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지게 된 것.
“이 왕자님.”
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대는······.”
“이번에 영국에서 특사로 온 윌리엄 매커스입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니까.
“오오. 영국 특사셨구먼.”
“예. 그나저나 사람들이 참 많네요.”
“미국의 신임 대통령이 취임하는 자리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북적거리지 않겠나?”
아직은 대영제국이나 독일에 밀려서 이류 국가 취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미국은 일류 국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서구 열강들 역시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이리들 넓디넓은 대서양을 건너와서 휴즈의 당선을 축하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뭐, 그리될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요.”
다만 영국의 특사는 이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
미래는 모르는 일이라며 뻔히 보이는 앞날을 부정해 댔다.
“이 왕자님.”
“죄송합니다만, 제가 먼저 이 왕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순서를 좀 지켜 주시지요.”
“······.”
영국과 라이벌 관계인 독일 외교관의 등장에.
내 주변 공기가 무거워졌다.
“좀 이따가 대화를 나눌 수 있겠나?”
“아,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이 왕자님, 이따 뵙겠습니다.”
매커스는 아직도 주변을 서성거리는 독일 외교관들을 경계하며, 내게 좀 더 다가왔다.
그는 처음 보는 사이지만, 여느 외교관답게 능구렁이 같은 표정을 지어 대며 친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총리께서 이 왕자님께 안부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애스키스 경은 잘 지내고 계시는가?”
“건강하십니다. 이 왕자님께서는 어떠십니까?”
“나 역시 아픈 곳 없이 잘 지내고 있다네. 아직 30대인데, 지금부터 골골거려서야 쓰겠나?”
“20대신지 알았는데······ 벌써 그리되셨습니까?”
동양인은 서양인과 비교해 어리게 생겼으니까.
특사가 착각할 만도 했다.
“아! 해군 장관께서도 왕자님의 근황을 많이 궁금해하시더라고요.”
“해군 장관이라면 처칠 경을 말하는 것인가?”
처칠은 유서 깊은 스팬서 가문 출신이지만, 작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귀족이 아니었던 셈.
“예? 예.”
하지만 매커스 특사는 이 자리에서 이를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자칫.
내가 알고 있는 오류를 수정하려다가 대화 분위기가 흐려질 수도 있기에.
나의 작은 실수 정도는 그냥 눈 감고 넘어간 거다.
“아! 왕자님.”
“말하게. 매커스 특사.”
영국에서 온 특사는 두 달 전 내가 청문회에 참석한 사실을 갑자기 언급하기 시작했다.
“지난겨울에, 이곳 연방의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소환되셨다면서요?”
“그렇네만.”
“감히 이 왕자님을 청문회에 소환하다니!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미국 놈들은 너무나도 경우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찌 일국의 왕자를 이리 대우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일본 제국에 보호국으로 들어가 있긴 하지만, 엄연히 대한제국은 왕정국가다.
같은 왕정국가라서 그런가?
영국의 특사는 내 신분을 거론하며, 영국에서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라고 평했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꼭 우리 영국 대사관에 먼저 연락해 주십시오. 어떻게 해서든 왕자님께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땐 가만히 있더니, 지금에서야 우려를 표명하네.
역시 영국놈들.
뒷북치며 살살 뒤에서 남 뒷담화하는 혐성질은 세계 최강이네.
‘공짜로 내 편에 서 줄 것도 아니면서.’
값비싼 청구서가 나올 것이 뻔하다.
더욱이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은 후폭풍은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텐데.
‘말은 청산유수지.’
저런 립서비스 대화에 나는 혹할 만한 멍청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충 매커스의 의도는 파악했기에, 고맙다고 말하며 연신 영국 정부에 호감이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매커스 특사.”
“고노다로 대사?”
우리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또 다른 불청객이 껴들었다.
종일.
내 주위를 서성거리며 인상을 팍팍 쓰고 다녔던 일본 놈이었다.
“반갑습니다.”
“······.”
“잘 지내고 계셨습니까? 아, 이 왕자님께서도 여기 계셨군요.”
고노다로는 어떻게든 나와 매커스의 대화에 끼고 싶어 하는 표정이다.
정확히는 나와 영국 특사의 대화를 훼방 놓고 싶어 했다.
“죄송하지만, 고노다로 대사.”
“예?”
“이 왕자님과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매커스에 의해 단박에 무산되었다.
“죄송하지만 자리 좀 비켜 주십시오.”
“······예.”
같은 동맹이지만, 영국은 현존 최강국이다.
그런 매커스 영국 특사의 정중한 부탁에 고노다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후······ 정말이지 외빈들이 많군요.”
우리 대화를 주시하고 있는 눈들이 너무나도 많다.
정확히는 나나 매커스.
이 둘과 이야기하려는 인간들이 많았다.
“이 왕자님.”
“듣고 있네.”
“이 왕자님께서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현재 돌아가고 있는 유럽의 상황이 아주 묘합니다.”
1913년 3월.
유럽은 현재 발칸반도에서 좆밥국가들끼리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으며 쌈박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발칸 대전은 그저 신생 국가 간의 싸움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었다.
“나 또한 몇몇 보고를 통해 그 사실을 전해 들었네. 유럽 각국이 해당 전쟁 이후 판도를 분석하며 주판알 굴리기에 바쁘다던데······ 내 말이 맞는가?”
“예. 그렇습니다.”
발칸반도 소국들.
그들 뒤에는 현재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라는 뒷배가 있다.
이 두 나라 배후에는 독일과 영국이라는 거대한 후견인이 자리하고 있고.
“항간에는 오스트리아가 무리하게 보스니아를 삼키려고 한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그래?”
“예. 솔직히, 이 때문에 유럽의 평화가 깨어질까 다우닝가는 노심초사하고 있답니다.”
발칸반도 소국들을 두고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 경쟁하고 있다.
세르비아를 위시한 슬라브계열 신생 국가들이 이번 발칸전쟁에 오스만을 상대로 분전 중인데.
이에 발칸반도에서 자국의 영향력이 축소될까, 위기감을 느낀 오스트리아는 원 역사대로 보스니아를 강제합병하며 유럽에 전운을 몰고 오고 있었다.
“최근 전쟁에······ 이 왕자님께서 소유하신 리&라이트 사의 폭격기가 지대한 활약을 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앞선 대화들은 매커스가 다음 말을 하기 위한 포석들이었던 셈.
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귀를 쫑긋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트리아 군부 또한 추가로 왕자님 회사의 폭격기를 주문했다던데 말입니다.”
“뭐, 그렇지.”
“혹시······ 그들보다 먼저 우리 대영제국 군부에 500기의 폭격기를 납품해 주실 수 있습니까?”
역시나.
영국의 모든 외교적 움직임은 다 목적이 있다.
삼국 연합(영국, 프랑스, 러시아)에 맞서고 있는 동맹국(독일, 오스트리아)의 전력 약화에 모든 역량이 집중된 상황.
‘루마니아 유전 이야기는 안 하는군.’
이는 앞서서 매커스와 대화를 나눈 록펠러가 알아서 잘 커트한 모양이다.
‘500기라.’
영국은 우리 회사의 생산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의 청을 들어주게 되면, 자칫 기존 납품 계약이 연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 주문한 영국의 물량을 털어낼 때쯤, 또다시 추가 주문하는 식으로 대응하겠지.’
영국의 오랜 혐성질은 익히 나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잠시 간을 보자, 매커스 특사는 납품 단가를 두 배 더 올려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아무런 베네핏 없이 막무가내로 왕자님께 부탁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배?
돈을 더 준다는 말에 혹했다.
물론.
기존 계약을 이행하는 것이 우선순위였다.
하지만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매커스의 제안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특사께서 이리 부탁하는데······ 내 그리하리라.”
“감사합니다. 이 왕자님.”
간절한 부탁을 수락하자마자, 매커스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매커스와 헤어지자.
“이 왕자님.”
멀찍이서 우리 둘을 감시하고 있던 독일 대사가 곧바로 내게로 다가왔다.
그 역시 매커스와 비슷한 제안을 나에게 하기 시작했다.
* * *
“이게 다, 오늘 수주하신 계약들이라고요?”
우현식과 최현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 많은 양을 저희가 소화할 수 있을까요?”
돈이 굴러 들어 오는 계약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를 전부 소화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기존 생산 설비라면 무리지.’
자칫 계약 불이행으로 크게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나는 평온한 표정을 지어 댔다.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물론. 가능할 것일세.”
기술 진화와 함께 생산 체계 또한 발전하는 법이니까.
“가는 길에, 여기 디트로이트에 들리도록 하지.”
취임식도 끝났겠다, 동부에 더는 머무를 이유가 없다.
나는 지도를 펴며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이곳에는 무슨 일로······.”
“포드 대표를 좀 만나고자 하네.”
왜냐고?
작금에 닥친 문제를 그와 함께 고민하며 해결하고자 하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지고 있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 지는 해와 뜨는 해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