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22)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22화(222/392)
< 중일, 선택의 기로 (1) >
현재 쑨원은 베이징이 아닌 난징에 거주하고 있다.
그의 주요 지지 세력인 중국동맹회.
지금은 중국 국민당으로 호칭을 바꾼 그의 동지들이 남중국에서 모든 기반을 갖추고 활동 중이어서다.
“쑨 대인.”
“무슨 일인가?”
“베이징에 머무르고 계신 총통께서 광둥도독과 안휘도독의 파면을 명했습니다.”
같은 국민당 소속인 후한민과 백문울이 위안스카이에 의해 잘렸다.
지난날 파면되었던 혁명 동지 리례쥔까지 포함한다면 무려 셋이나 되는 쑨원의 측근이 해임된 셈.
“파면이라······.”
쑨원은 눈을 꾹 감으며 한 인물을 회상했다.
‘여우 같은 놈이 또다시 간을 본단 말이지?’
신해혁명 때, 쑨원은 중원에 있지 않았지만.
그간 뿌려 두었던 씨앗들이 있었기에, 쑨원은 청에 이어 새롭게 중원의 주인이 된 중화민국의 임시수반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강력한 경쟁자가 생겼다.
북쪽.
만주와 직례(하북) 인근에 기반을 두었던 북양군벌, 위안스카이가 본격적으로 활동하자 사사건건 부딪치기 시작한 거다.
‘제멋대로 외국에 차관을 빌리는 것도 모자라서 내 사람들까지 잘라 내다니.’
쑨원에게 대의와 명분이 있다면, 위안스카이에게는 북양군벌과 최신 무기가 존재했다.
쑨원 또한 이강이 지원한 신무기로 일부 병력을 급히 무장시켰지만.
전투 경험이 일천하며 군기 또한 잡혀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쑨원은 당장 위안스카이와 중원 권력을 두고 다투기보다는 불안정하지만 공존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택했다.
임시 총통 자리를 양보하며 뒤로 물러선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제길. 그때 너무 안이했었나?’
표면상 이유는 중국의 통합을 위해서라지만.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느 나라나 혁명 초반에는 혼란이 찾아온다.
기존 권력층이 물러나며 일시적으로 민중의 지지를 받게 되지만, 이후에는 갑작스러운 혁명으로 인한 경제 침체 때문에 민심을 잃게 된다.
‘알아서 내려가리라 생각했는데.’
서구의 혁명 역사를 공부했던 쑨원은 이런 과거의 사례들을 참고하여, 새롭게 중원을 통치할 중화민국의 원수 자리를 위안스카이에게로 넘겼다.
하지만 쉬이 내려가리라 생각했던 위안스카이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교묘하게 쑨원 이름을 팔아 가며 기반을 확대하고 있으며 나아가 제 권력을 공고히 한 거다.
‘동지의 희생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음흉한 위안스카이는 정적이 될 수 있는 인물들을 하나씩 암살 중이었다.
쑨원의 오른팔인 쑹자오런 역시 지난 3월에 피격당하며 유명을 달리했는데.
이 또한 위안스카이의 암계 때문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돌파구가 필요하다!’
이대로라면 자칫 위안스카이가 독재에 성공할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여우였던 위안스카이를 경계하며 쑨원이 경계심을 높여 갔다.
“쑨 대인!”
“무슨 일인가?”
“난징에 조선인들이 도착했다 합니다. 대인을 만나고자 사람을 보내왔는데 어찌할까요?”
‘드디어!’
쑨원이 그토록 바랐던 이강의 사람이 중국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는 한껏 기대하며 멀리서 온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안 선생. 어서 오십시오.”
“쑨 대인.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손님인데 당연하게도 환영해야 하지 않겠소?”
쑨원은 활짝 웃으며 안창호를 맞이했다.
“더욱이 넒디넓은 태평양을 건너느라 많이 힘들 텐데. 자자, 여기 이쪽 상석에 앉으시지요. 안 선생.”
“감사합니다.”
하지만 다른 국민당 간부들과 쑨원의 지지자들은 이선에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대며 안창호를 노려보았다.
그들은 작게나마 구시렁대며 안창호를 흉봤다.
“조선 놈들은 오냐오냐해 주면 안 되는데.”
“쉿! 조용히 하게나. 그러다가 빵즈가 알아채면 어쩌려고?”
안창호, 나아가 조선인을 무시하는 이유는 별거 없다.
예부터 조선인들은 중화의 제후국으로 한 수 아래라고 평가해 왔는데.
지금만큼은 안창호 일행을 자신들보다 높게 떠받들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쑨 대인께서 저리도 사근사근하시다니······.”
“내 저런 표정을 지으시는 것은 처음 보았네.”
더욱이 청 왕조를 침몰시킨 ‘위대한 혁명 동지’ 쑨원이 저리도 저자세로 안창호를 맞이했기에, 다들 입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안창호의 주된 역량은 통합이다.
넓디넓은 인망으로 분열되어 있던 여러 집단을 하나로 묶는 것.
하지만 다른 재주도 상당했다.
눈치가 빠른 것 또한 이에 해당했다.
“······.”
“······.”
안창호는 너스레를 떨며 이강이 약조했던 군수품 지원이 왜 이리 늦어졌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많이 기다리셨겠지만, 이쪽도 사정이 있었습니다.”
“예예. 이해합니다.”
쑨원은 그리 말했지만.
“뭔 놈의 일이 생겨서 반년 이상이나 납기를 못 맞춘단 말입니까?”
앙칼진 그의 동무들은 작게나마 수군거리며 안창호를 흘깃 노려보았다.
이번에는 쑨원 귀에 이 험담이 들릴 정도로 컸기에, 쑨원은 흠칫 놀라면서 그들을 노려보았다.
‘이 새끼들이.’
‘앗.’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일이 있나.
쑨원은 매서운 살쾡이처럼 자신의 동지들을 노려보며 입단속을 실시했다.
그러자 다들 마지못해 주절거렸던 입방아를 멈췄다.
“쑨 대인.”
“말씀하십시오. 안 선생.”
“본디 미국에서는 무기 수출을 하기 전에 미 연방정부에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더욱이······ 군함 같은 전략무기들은 이런 절차가 필수입니다.”
“그렇소이까?”
“예. 게다가 아시겠지만, 작년 말에 미국에서는 대선이 있었습니다. 아! 중원에서도 작년과 올해 초에 총선이 실시되었다지요? 듣자 하니 쑨 대인이 이끄시는 국민당이 압승하였다면서요? 축하드립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쑨원은 평소 술을 자주 먹는 지도자였다.
말년에 간암으로 죽은 이유도 다들, 이 때문이라고 추정할 정도.
“아아, 잠시만. 리홍.”
“예. 부르셨습니까?”
“지난번에 영국 대사와 함께 마셨던 술 말이야.”
“예. 펀주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 맛이 기가 막히던데······ 같은 종류로 내오게나.”
대화가 고조되자, 쑨원은 평소대로 아랫것들에게 술을 가지고 오라고 명했다.
이에.
쑨원의 몸종 리홍이 중국의 4대 명주 중 하나인 펀주를 들고 왔다.
“안 선생, 한잔하겠소?”
“그럼요.”
안창호는 쑨원에게 술을 받으면서 하던 말을 이어 갔다.
“아, 처음 꺼냈던 주제에서 살짝 벗어났군요. 아무튼 그때 선거 이후에, 미국에서는 새로운 대표가 선출되었고 이번 연도 초에 새로운 정권이 집권했답니다.”
안창호는 가득 찬 펀주를 꿀꺽 마시며 쑨원에게 그동안 미국은 어떻게 돌아갔는지, 그 사정을 알려 줬다.
“윗선이 싹 갈리면서 우리 측이 요청한 군수품 허가가 많이 뒤로 밀렸습니다.”
“저런.”
“더욱이 전하께서 워싱턴으로 소환당하신 후, 그곳에서 문초까지 겪으신지라······.”
문초?
문초란 말에 쑨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소환을 당하다니 어째서?”
“대서양에서 해양 사고가 났는데, 이를 두고 책임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허허.”
쑨원은 이강과 직접 대면까지 한 인물이었다.
그는 스스로 이강을 잘 알고 있다고 판단했다.
‘의왕은 자존감이 대단한 남자였다.’
둘이 대화를 나눌 때, 이강은 쑨원을 살짝 하대했다.
영어긴 했지만 쑨원 역시 외국 생활을 오래 해봤기에 충분히 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의왕이, 안창호의 말에 의하면 미국 의회로 끌려가 심문을 당했다고 한다.
“허허. 해당 사건과 관련도 없는 이 왕자를 그 먼 워싱턴까지 소환하다니······.”
속으로 살짝 고소하긴 했으나, 쑨원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이를 대놓고 드러냈다가는 앞으로 이강과 척을 처지겠다는 뜻이기에.
쑨원은 최대한 안타깝다는 표정을 한껏 지어 대며 혀를 찼다.
“조리돌림 당한 것도 모욕적인데, 공산주의자라는 호칭까지 거론하며 의왕을 능욕까지 하다니······ 참으로 양놈들은 근본이 없군.”
안창호는 계속하여 이강의 청문회 소환을 과장해서 말하며.
군수품 지원이 왜 늦어졌는지 에둘러 말했다.
“그 사건 때문에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따로 이를 재촉할 수도 없었답니다.”
“저런, 의왕께서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군.”
“예.”
안창호는 이번에 난징으로 오면서 이강이 쑨원에게 약조했던 일부 군수품들을 가지고 왔다.
“내오게.”
상하이항에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직접 쑨원에게 배송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여.
안창호는 같이 온 이회영의 사람들과 함께 무기를 난징까지 실어 날랐다.
“오!”
예상대로.
쑨원은 막 도착한 군수품을 보자마자 대단히 흡족해했다.
“쑨 대인께서 저번에 주문하셨던 기관총들입니다.”
안창호는 다른 상자들도 개봉하며 생색을 내기 시작했다.
“그밖에 미국에서 생산된 소총과 권총 등 다수의 군수품을 들고 왔습니다. 더불어 상하이항에 약속했던 군함 1척 또한 입항할 예정입니다.”
“구, 군함도 도착했소?”
“예. 다만······.”
군함 같은 경우는 이를 운용할 인재들이 있어야 한다.
이강이 세운 해양학교에 중국 수병들이 입학하여 해당 기술을 배워야만 이를 제대로 운용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시간이 좀 더 소요될 것을 강조했다.
“건조하고 있는 다른 두 척의 경우는 아직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서 조지아주에 머무르고 있답니다.”
“아······.”
“승인만 된다면 막 개통한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여 여기 중원까지 배송될 터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좋은 소식이다.
가뜩이나 북쪽에서 사특한 암계를 꾸며 대던 위안스카이 놈 때문에 골치가 아팠는데 말이다.
“안 선생.”
“예. 말씀하시지요.”
“네. 긴히 의왕 전하께 전달할 말이 있소.”
쑨원의 입에서 재미난 제안이 흘러나왔다.
안창호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어 대며 반문했다.
“예? 이번 계축년(癸丑年)에, 다시 한번 혁명을 일으킬 생각이시라고요?”
“그렇소이다.”
* * *
안창호는 머리가 아파졌다.
단순히.
군자금이나 군수품을 더 달라고 생떼를 부릴지 알았는데.
쑨원은 이를 넘어 더 큰 골칫거리를 만들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우리가 제공한 신무기를 수령하지 않았습니까?”
“······.”
“아직 손에도 익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혁명이라니요?”
쑨원은 한숨을 크게 쉬며 고개를 도리도리 좌우로 흔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선 후, 뒷짐을 지며 한 곳을 바라보았다.
거실 한편에 걸려있는 오색기를 바라보며 쑨원은 속에 감추고 있던 마음을 드러내 보였다.
“위안스카이의 폭정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으니 하는 말이오.”
“······.”
“지난달에도 우리 동지 한 명이, 그놈이 보낸 암살자에 의하여 유명을 달리했소이다.”
쑨원은 마음속 깊숙이에서부터 화가 차오르는지 얼굴을 붉히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나와 함께 중국동맹회를 창설하고 청 왕조를 갈아엎는다고 했던 동지들이 하루가 다르게 내 곁을 떠나고 있소.”
“······.”
“그간 중원 전역에 대동맥이 될 철도 부설에 집중하는 척하며, 이를 외면하고 있었으나 더는 그럴 수가 없지.”
이러다간 진짜로, 쑨원 본인의 신변까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역시도 몇 번 죽을 위기를 최근에 넘긴 적이 있었기에.
그는 점점 독재자가 되어가고 있는 위안스카이를 증오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부디 이 왕자께서 이런 우리들의 사정을 참고하여 나를,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었으면 하오.”
쑨원은 고심하고 있는 안창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에게 다가갔다.
“내가 통일된 중국의 수장이 되어야, 이 왕자의 조선 또한 일본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소?”
“흠······.”
그 말도 일리가 있긴 한데.
안창호는 찰나의 시간 동안, 쑨원이 아까 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제 입으로 제 동지들의 죽음을 잠시 외면했다고 했다.’
본인의 신변이 위협되기 시작하자, 그제야 위안스카이를 타파하겠다고 저리 설치는 거고.
‘저런 자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면······.’
좋게 생각하여, 대한제국에 해는 끼치지 않는다고 쳐도.
일본에서 독립하겠다고 발버둥 칠 때 과연 도와줄까?
그때도 외면하지 않을까?
안창호는 이리 생각하며 쑨원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쑨 대인의 주장은 백번 천번 옳소이다.”
“오! 그렇다면······.”
조선 속담에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안창호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첫 문장과는 다른 뒤 문장을 제 입에서 내뱉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만 참으셔야 합니다.”
“참으라고? 또?”
쑨원이 여태까지 만났던 조선인들.
그들은 대체로 성실했다.
더불어 중원인들과 다르게 성격까지 급하여, 매사 일 처리가 빨랐는데.
지금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안창호만은 예외였다.
그래서일까?
쑨원은 실망하는 표정을 잔뜩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째서 안 선생께서는 계속하여 참으라는 말만을 되풀이하는 것이오?”
중원인들은 자신들의 여유 있지만 한편으로 느리고 굼뜬 태도를 가리켜 만만디(慢慢地)라고 칭한다.
‘만만디는 본디 우리네 것인데.’
지네 일이 아니라고 이리 굼뜬 것이 아닌지 쑨원은 의심스러웠다.
“계속 참고만 있다가는 이 여우 같은 위안스카이가 나를 호구로 볼 것이오.”
“······.”
“지금도 계속해서 내 사람들을 제거하면서 내 팔과 다리를 자르고 있지 않소이까?”
쾅-
쑨원은 화가 잔뜩 났는지 제 오른손으로 탁자를 세게 쳐 댔다.
그러자,
그 위에 놓여 있던 술잔이 땡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과 부딪쳤다.
“아, 안 선생.”
그 여파로 유리 조각 일부가 안창호의 잘생긴 얼굴에 붉은 물감을 묻히게 해 주었다.
“안 선생. 괜찮소이까?”
“괜찮습니다. 쑨 대인.”
안창호는 제 손수건으로 광대뼈 주변에 묻어 있는 피를 닦아 냈다.
화를 낼 만도 하지만, 안창호는 쑨원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어 대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끓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다 보면, 때론 쑨 대인 같은 양반께서도 실수하실 수 있는 법입니다.”
“······.”
“쑨 대인.”
“말씀하시오. 안 선생.”
“제가 이야기해 드리고 싶은 말은 하나입니다.”
“무, 무엇이오?”
“전하께서는 쑨 대인이 어떤 결정을 하시든 지지하실 것입니다.”
“그렇소? 다행이구려.”
“하지만 그 결정에 따른 결과는 쑨 대인께서 책임지셔야 할 것입니다.”
“······.”
한마디로 지난번에 약조했던 것 이상의 지원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영국 정부를 비롯한 서구 열강에는 잘 말해 두겠습니다.”
“······알겠소.”
이에 쑨원은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여댔다.
그는 이번에 남중국에 도착한 미국의 신식 무기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미래에 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 중일, 선택의 기로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