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23)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23화(223/392)
< 중일, 선택의 기로 (2) >
지난해, 7월.
메이지 덴노가 유명을 달리했다.
이후, 열도의 왕좌는 그의 아들인 다이쇼에게로 넘어갔다.
명목상이지만, 최고 통수권자가 바뀐 상황.
당연하게도 일본 정계는 수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덴노 바로 아래에서 실질적으로 일본을 통치해 온 총리의 얼굴이 바뀌었다는 거다.
사이온지 -> 가쓰라 다로 -> 사이온지 -> 가쓰라 다로라는.
희대의 퐁당퐁당 권력 교체기 이후.
해군 대신이었던 야마모토 곤노효에가 그 뒤를 잇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가장 강한 이익 세력인 육군은 곤노효에의 해군과는 불구대천 철천지원수 같은 사이였다.
그래서일까?
곤노효에는 원 역사보다 일찍 터진 군수 비리 때문에 1년도 못 채우고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대중들은 육군이 또 다른 암계를 벌였다고 수군대긴 했지만, 곤노효에가 비리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었기에.
결국 육군의 뜻대로 일본은 다시 한번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내각 총리대신께서 입장하십니다.”
사이온지의 실각 이후.
육군과 해군.
두 지도자가 연이어 총리 자리에서 내려왔다.
본의 아니게 군부 쪽 핵심 권력이 비어 버리게 된 것.
이 때문에 일본 정계는 정말이지 운이 좋게도 민주 세력이 다시금 권력을 잡게 되었다.
‘나라를 좀먹는 돼지 새끼들.’
일본 열도를 새롭게 다스릴 통치자의 이름은 바로 ‘오쿠마 시게노부’였다.
그는 새롭게 구성된 내각의 인사들과 처음으로 대면식을 하며, 앞으로 잘해 보자고 의지를 다졌다.
‘다들, 나를 바라보며 긴장하지를 않군. 특히나 저기 멀찍이 앉은 두 군부대신은 나를 아주 만만한 듯 노려보고 있군.’
새롭게 총리 자리에 오른 오쿠마 시게노부는 일본 정계에 막 입성한 신성이 아니다.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활동했던 인물로 제법 연식이 있던 노회한 정치인.
하지만 일본의 정치 구조상.
육군과 해군.
이 두 세력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언젠가는 실각할 것이 분명했기에.
군부는 표면상 머리를 수그리는 척만 했지, 시게노부를 진정한 지도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 회의는 이쯤에서 이만 파하겠소이다.”
시게노부도 이를 잘 알았다.
하지만 순순히 군부의 꼭두각시 역할만은 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 또한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
앞서서 한 차례.
일본의 8대 총리대신을 역임했던 그로서, 지난 실패에서 학습해 본 경험이 있고.
무엇보다 전전전임 총리였던 사이온지가 그를 밀어주고 있었기에.
시게노부는 이번만큼은 제 역량을 일본 내각에서 펼치길 기대했다.
“아! 대장대신과 외무대신은 잠시 이 자리에 남으십시오.”
총리 자리를 하루라도 더 지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부채로 신음하고 있는 일본 경제.
이를 어느 문제보다 우선하여 살려야 했다.
육군도 해군도 그의 편이 아닌 이상.
민심만이 그가 기댈 수 있는 굳건한 동아줄이었으니까.
“대장대신. 그리고 외무대신.”
그래서 시게노부는 믿을 만한 내각의 핵심 일원들만 따로 추려서, 앞으로 어떻게 일본을 운영해야 할지 미래를 계획해 보고자 했다.
“이번 연도는 어찌어찌 잘 넘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긴 하나, 이 모든 것을 지난 정권 탓으로 미뤄 버리면 되니까.”
“······.”
“······.”
“하지만 내년은 정말이지 한계 상황에 닥칠 것이외다. 방금 내가 말한 핑계를 더는 써먹을 수 없으니까.”
대중은 정치인들에게 가혹하다.
당장이야 허니문 기간이기에, 시게노부의 투정을 들어주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경기침체의 책임이 시게노부에게로 향할 거다.
“그렇기에 본인은 일단 그간 해 왔던 예산확보 사업들부터 확인해 보려고 하오. 굵직한 것들부터 상황 진척 보고를 해 보시구려.”
시게노부는 대장대신인 다카하시 고레키요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외무대신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듣자 하니 전임 총리가 여러 사업을 지시했다고 하는데, 관련 자료를 내게 건네줄 수 있겠소이까?”
전임 총리의 숙원사업들이 적혀 있던 보고서가 시게노부에게로 이양되었다.
서류를 열심히 살펴보던 시게노부는 한 가지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지, 보고서 몇 개를 간추린 후.
이를 각 내각 관련 장들에게 물었다.
“상해 인근에 비자금을 관리한다던 조선인 말이오.”
“예. 내각총리대신. 혹시 그곳에 잠적한 민영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소이다.”
시게노부는 기다랗게 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자의 신상 파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소? 듣자 하니 꽤 많은 조선 왕실 비자금을 현지에 숨겼다고 적혀 있던데 말이오.”
“그게······.”
새롭게 외무대신으로 취임한 시게노부의 오른팔.
가토 다카아키가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어 댔다.
“어디 숨었는지 찾아내긴 했으나, 저희가 잠시 한눈을 팔 동안 필리핀으로 도망쳤습니다.”
“뭐요? 필리핀?”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이다.
다 죽어 가고.
혼란한 중원이야, 일본이 마음만 먹는다면 민영익 따위는 납치하거나 현지에서 고문하여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다지만.
필리핀은 달랐다.
“어째서 이를 막지 못한 것이오?”
“근래 상해에서 활동하는 애국단이라는 왈패들과 접촉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긴 하나······ 소, 송구하옵니다. 내각총리대신. 정권이 교체될 동안 책임자가 부재하여서, 저도 이 정도까지만 알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천성적으로 책임지기를 싫어한다.
더욱이 이들은 공무원.
일반 평민들보다도 그런 성향이 더욱더 강했다.
“그, 그 원인을 당장이라도 파악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가토 다카아키가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그 역시 새롭게 외무성에 입성하여 관련 내용을 근래에야 보고 받았을 터.
시게노부는 허리에 손을 짚으며 답답하다는 행동을 취했다.
“쯧쯧. 그간 강남에 뿌린 돈이 얼마인데······ 이것 하나 제대로 막지 못하다니.”
일본은 친일파 양성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다.
현재 보호국으로 편입한 조선도 그렇지만, 언젠가는 진출해야 할 중원 대륙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장학금을 지원하고, 정보료를 손에 쥐여 주며.
중원의 진정한 친구는 서구 열강이 아닌 일본이라고, 중원의 신사 계층들에게 세뇌 아닌 세뇌를 시켜댄 거다.
하지만 필요할 때 결과물이 영 시원치가 않다.
시게노부가 화를 낼 만도 했다.
“쯧쯧.”
“너, 너무 화내시지 마십시오. 내각총리대신.”
“예산은 저희가 어찌어찌 확보해 보겠습니다.”
가토 다카아키가 낮은 자세로 시게노부를 달래며 현재 돌아가고 있는 옆 나라의 상황을 거론했다.
“다, 다행히도 중원 대륙이 다시 한번 요란하게 뒤숭숭해질 것 같습니다.”
“응? 어째서 그런 말을 하오?”
다카아키가 건넨 보고서를 시게노부가 유심히 정독했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보이며 한 인물을 힐난했다.
“무능한 쑨원이 또다시 판을 엎고자 하는군.”
“예. 덕분에 우리가 그 틈을 파고들 수 있을 겁니다.”
이 시대.
쑨원을 향한 일본인들의 평가는 참으로 야박했다.
무능한데 욕심만 많은 놈.
사상은 서구적인데, 겉껍데기는 중국인인 놈.
여러 중원 성현들의 고사보다도 영어속담을 더 아는 놈.
남을 쉽게 믿어서 배신을 연거푸 당하는 놈.
등등 안 좋은 수식어란 수식어는 쑨원에게 죄다 붙어 있었다.
시게노부 역시 여느 일본인들처럼 쑨원을 그리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
“권력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나누는 법이 없는 것을······ 머저리가 따로 없군. 쯧쯧.”
시게노부는 작년과 재작년 상황을 회상했다.
그때 그는 내각의 관료로 활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원으로서 의회 동료들에게서 이와 관련하여 들은 것이 있었다.
“곤노효에 그놈이 줄곧 주장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쑨원, 그놈에게 우리와 함께하자고 제안했었지, 아마?”
“예. 위안스카이의 북양군벌을 견제하기 위해선 우리 일본이 필요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셨습니다. 작년 내내 쑨원에게 추파를 보냈으나 끝끝내 거절만 하였던 거로 기억합니다.”
쑨원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일본 정부는 계속하여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왜냐고?
위안스카이의 북양군벌이 새롭게 지어질 이강의 만철 보호인 신분으로 해당 노선의 치안 관리를 담당하고 있어서였다.
일본으로서는 만주에 진출하기 위해서라도 북양군벌을 반드시 물리쳐야 하는 상황.
이에 서구 열강 몰래 국민당의 당수 쑨원에게 손을 내민 것인데.
대의명분과 민심을 우선시했던 쑨원으로서는 그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차관 확보까지는 중원 백성들이 넘어간다고 치더라도, 외국군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는 몰상식한 행위는 이해해 주지 못할 테니까.
더욱이 타국 군을 끌어들였다가 망한, 옆 나라의 사례가 떡하니 있었기에.
쑨원은 이를 결국 거절했다.
“마치 자신이 공자라도 되는 것처럼 굴더니. 쯧쯧.”
시게노부는 쑨원이 영 못마땅한지 그의 사진을 쳐다보며 몸서리를 쳤다.
이에 가토 다카아키가 품 안에 있던 다른 사진 일부를 시게노부에게 바쳤다.
“내각총리대신 각하. 세간에 쑨원이 이강과 밀약을 맺었다는 풍문이 돌아서 이를 좀 조사해 봤는데 말입니다.”
“이, 이강과?”
“예.”
일본 정치인들에게는 호환·마마와도 같은 인물의 이름이 나왔다.
‘이강이라.’
이놈과 엮이면.
최소 실각.
최대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저주를 뒤따른다.
“그래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쑨원과 이강은 서로 어떤 관계라 하던가?”
“세간에 돌던 소문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강이 쑨원을 후원 중입니다.”
“허허.”
시게노부는 식은땀을 살짝 흘리며 가토 다카아키가 건넨 증거들을 검토했다.
“그럼 그렇지. 어째서 우리와 손을 잡지 않나 했더니, 이런 뒷배가 있었군요.”
대장대신인 다카하시 고레키요가 비릿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 말을 이었다.
“이강 그놈이 아무것도 없는 쑨원에게 공짜로 차관을 줄 리도 없고. 간도 영유권 혹은 그 이상의 담보를 받고 거금과 군수품을 제공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랬을 것입니다. 교활한 이강이라면 분명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니까요.”
계약의 상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이강의 성향을 익히 다들 알기에 이를 추정할 수는 있었다.
옆에 있던 가토 다카아키가 맞장구를 쳤다.
이에 시게노부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입밖에는 꺼내지 않았지만 둘의 의견에 동의했다.
“총리대신 각하.”
“듣고 있네. 외무대신.”
“이번 중원의 혼란은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
“상황이 국민당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으니까요.”
“그래?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위안스카이와 대척점에 서 있는 국민당의 반군이 속속 북양군벌에 격파되고 있다고 합니다.”
계축전쟁이 막 발발했다.
국민당 측의 기습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되었기에, 쑨원 측이 더 유리해야 하지만.
전세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렇지 못했다.
“그 때문에 강남 쪽 분위기가 요새 영 말도 안 되게 안 좋답니다.”
“일부 국민당 수뇌부들은 이미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고, 이를 준비하고 있답니다.”
전쟁이 막 시작되었는데.
피난부터 가려고 한다.
지도층들이 이러니, 전쟁에서 어찌 이길 수가 있단 말인가?
시게노부는 다시 한번 쑨원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내리며 혀를 찼다.
“아무래도 우리 일본이 가장 가까우니, 이쪽으로 망명을 타진하겠군.”
“예.”
“그렇지 않겠습니까?”
“각하. 입국 즉시 그들을 체포하여 위안스카이에게 넘기는 것이 어떻습니까?”
“맞습니다. 외무대신의 의견대로 쑨원을 우리 쪽으로 회유하기는 힘들 테니, 아예 위안스카이에게 이를 넘기고 이권을 조금이라도 뜯어내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가뜩이나 예산이 부족했는데.
황금 덩어리가 잘하면 제 발로 굴러올 수도 있겠다.
시게노부는 입맛을 다시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군침을 삼켰다.
“좋은 생각이로구먼. 호박이 덩굴째 굴러오게 되면, 우리 일본도 살아날 숨통이 좀 트이게 될 터니까.”
“예.”
시게노부는 중원과 관련된 자료들을 검토한 후, 조선 쪽 자료를 정독했다.
특히나 이강에 관한 보고서가 수십여 개나 될 정도로 수두룩했는데.
그는 잔뜩 긴장하며 그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었다.
‘이강······.’
그가 어떻게 움직이냐에 따라 일본의 경제가 춤을 출 것이다.
일본이 미국에 수많은 첩자를 보내, 이강의 모든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는 것 또한 이 때문.
‘쉽지 않은 상대겠어.’
시게노부는 지근지근 달아오르는 머리를 꾹꾹 눌러 가며 고민했다.
도저히 이강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답이 안 보여서 보고서를 읽다 말고 잠시 허리를 뒤로 젖힌 것이다.
‘그놈의 아비처럼, 멍청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강의 친부인 고종은 계집질이나 해 대며 궁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최근에는 뒤늦게 또 다른 자식까지 낳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단은 중원에 집중해야겠다.’
시게노부는 머리가 복잡한지 연신 담배를 태우다가 이내 자신의 관저로 돌아갔다.
< 중일, 선택의 기로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