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25)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25화(225/392)
< 야누스의 얼굴 (2) >
“이쪽입니다. 이 왕자님.”
하버가 일하고 있던 리 유니버시티 내 연구소 안 분위기는 21세기 현대에서도 익히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었다.
“······.”
“······.”
연구실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알 수 없는 플라스크 병들이 알록달록한 액체들과 함께 담겨 있으며, 수많은 문서가 책상 위에 가득 쌓여 있었으니까.
“이곳에 들르시는 것을 좀 더 일찍 알려 주셨다면, 조금이나마 치웠을 텐데 말입니다.”
하버는 머쓱한지, 떡진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으으-
머리에서 비듬이 떨어진다.
서양인 중 몇몇은 일주일 동안 샤워를 한 번도 안 할 만큼, 위생 개념이 별로인 이들이 많았는데.
하버 역시도 그런 인간이었다.
‘그런 하버가 여기의 총책임자이니.’
말 다 했지.
쓰레기장 같은 연구실을 한창 감상하며 이곳에서 어떻게 위대한 발견이 일어나게 되었나 의아해했다.
“이 왕자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하버의 동료들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내게로 다가오며 악수를 청했다.
“반갑네.”
“이리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다들 더럽혀진 실험실 가운을 하나씩 입고 있었다.
은근 깔끔 떠는 나의 성향상, 살짝 얼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내색하지 않아야 해.’
이들은 내게 거금을 가져다줄, 황금알을 낳는 거위들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분위기를 풀고자, 아는 얼굴이 있나 찾아 대다가 이내 한 남자를 발견했다.
“어? 자네는 왠지 낯이 익구먼.”
“하하, 이 왕자님께서 어렴풋이나마 저를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콧수염만 달랑 나 있는, 굉장히 인상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는 독일 연구원 하나가 껄껄대며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카를 보슈입니다. 3년 전에 이 연구실에 파견 오게 되었습니다.”
“아, 그런가?”
보슈?
보슈라면 하버와 함께 하버-보슈 질소 고정법을 만든 과학자가 아니던가?
급히 미소 지으며 호감을 보이자, 보슈 역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을 쉴 새 없이 나불댔다.
그는 그만이 기억하고 있는 지난날의 나와 관련된 일화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왕자님과는 6년 전에 베를린 기술포럼에서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기술포럼?”
“예. 화학의 미래를 두고 토론하던 심포지엄이었습니다.”
우리 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원들은 크게 네 분류에 속한다.
리 유니버시티에 막 입학한 후, 실험실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는 학생들.
막대한 연구자금에 혹하여 원래 일하던 동부에서 서부로 건너온 미국 교수진들.
이 두 세력이 현재 주류다.
“그때 이 왕자님께서 제게 제안하셨습니다. 미 서부로 와서 연구하는 것이 어떠냐고요.”
“아아, 기억나는군.”
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연구실은 앞선 두 세력이 주류가 아니었다.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자들이 다수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으니까.
‘이곳은 독일 출신 연구원들이 점령하고 있군.’
헤이그에서 열렸던 만국평화회의 직후.
나는 빌헬미나 여왕의 부군이었던 헨드릭과 함께 독일에 들렀다.
처음으로 카이저를 만나게 되었는데, 빌헬름 2세는 그때 내게 큰 호의를 보였다.
그동안 카이저가 줄기차게 밀고 있었던 일본 경계론.
즉 황화론을 뒷받침할 만한 주장을 내가 국제무대 한복판에서 연설했기 때문이다.
‘시기적절한 방문이었지.’
그 연설 덕분일까?
나는 빌헬름에게 몇 가지 선물을 얻어낼 수 있었다.
하버같이 저명한 학자들을 ‘교환교수 프로그램’이라는 명목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것 또한 그 호혜 중 하나였다.
‘소수의 러시아 출신 유대인도 보이는군.’
차르의 재정관리인이 된 후, 박해받고 있던 러시아 출신 유대계 과학자들 또한 영입했다.
그들은 초코칩 쿠키에 콕 하고 박힌 초콜릿처럼, 드문드문 이 연구소에 안에서 일하고 있었다.
‘뛰어난 인재, 특히 과학자들은 주변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그들이 발견해 내는 과학 기술들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돈이 될 만한 신기술들을 산학협력이라는 이름으로 쓱 우리 회사로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만국평화회의가 끝난 직후, 독일에 들렀을 때, 자네를 만나긴 했었지. 기억이 이제 나네.”
나는 보슈의 손을 꼭 잡으며 아까 기억하지 못한 것은 내 실수였다고 시인했다.
이에 보슈가 감동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 봐라.
‘나는 미국에서 유명한 이 왕자와 잘 아는 사이다.’라고 동료에게 어필하는 것 같았다.
“보슈 박사님, 질문이 있습니다.”
“말하게나.”
“옆에서 지난 일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는데 말입니다. 이 왕자님께서는 지난 베를린 학회 때, 보슈 박사님께 미국행을 제안하셨다던데. 왜 그때는 거절하고, 삼 년이나 지난 다음에야 오게 되셨습니까?”
“그, 그것은······.”
후배의 갑작스러운 질문 때문일까?
보슈가 입을 꾹 다문다.
‘뭐, 뻔하지.’
이곳에서 일하던 하버가 연구 성과를 보였기 때문이 아닌가?
보슈는 하버의 질소 고정법을 개량하러 온 연구원이었다.
내 앞에서 있는 그대로를 말하기는 민망했는지, 보슈가 눈알을 땡글땡글 굴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어댔다.
“뭐, 지난 일을 꺼내서 뭐 하겠는가? 이리 샌프란시스코로 오게 되어서······ 좋은 결과를 도출하게 되었는데.”
“그, 그렇지요.”
나는 그런 보슈를 구원하며 다시 한번 보슈에게 점수를 땄다.
이에.
꼽을 주려던 같은 독일 출신 연구원은 마음에 안 드는지 보슈를 흘깃 노려보았다.
“그간 고생이 많았나 보군. 그때 기억과 비교해 보면, 자넨 많이 늙은 것 같구려.”
“하하. 그렇습니까? 왕자님께서는 그대로이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보슈가 껄껄대며 웃다가 이내 정색한 표정을 지어 댔다.
“아아,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하버 박사님과 제가 공동으로 연구한 질소 고정법에 관해 설명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보슈가 하버를 보며 눈신호를 보냈다.
“하버 박사님. 박사님께서 먼저 이야기하시겠습니까?”
“그럴까?”
보슈의 권유에 하버가 내게 이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지금 영어 하는 거, 맞지?’
이공계 박사들은 가끔 자신의 전공이 나오면 그것에 심취하고 몰입하여,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곤 했다.
하버 역시 마찬가지.
그랬기에, 나는 원 역사에서 간략하게 알고 있던 질소 고정법 원리를 회상하며 하버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자네 둘이······ 공기 중에서 구아노 대체 화합물을 뽑아냈다는 건가?”
“아, 예. 쉽게 풀이하면 그리 해석할 수 있겠네요.”
구아노는 남미나 인도, 태평양 인근 도서 섬에서 발견되는 인광석이다.
새똥이 응고, 건조되어 퇴적된 것들로 이 시대에는 비료나 화약을 만들 때 필요하다.
‘구아노는 신의 선물이지.’
농장에 구아노를 뿌리냐 안 뿌리냐에 따라 작물의 생산량이 많게는 세 배 이상 차이가 날 만큼, 구아노는 정말이지 이 시대 농업에 있어서 중요한 자원이었다.
‘이를 두고 세계 각국이 치열하게 경쟁했다. 피까지 흘리며······.’
미국의 뒷마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남미에서는 이 구아노 때문에 ‘새똥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남미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다.
구아노가 가득한 한 섬을 두고, 페루와 칠레가 연합하여 볼리비아와 싸운 것인데.
아무튼 이 새똥 때문에 지도가 한번 바뀔 정도로 각국은 치열하게 구아노 확보에 혼신을 다했다.
‘영국만 해도 그래.’
경쟁자인 독일의 구아노 수급을 방해하기 위해, 세계 곳곳의 구아노 광산들 지분을 매입하며.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하버와 보슈의 모국을 괴롭히고 있지 않던가?
‘여기, 내가 있는 미국 또한 구아노 확보에 열을 올리는 중이지.’
미국은 구아노가 발견되는 무인도나 암초를 자국의 섬으로 편입시키는 ‘구아노 제도법’까지.
연방법으로 입법화할 정도로 구아노 확보에 진심이었다.
그만큼 이 시대, 질소화합물의 가치는 참으로 대단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런 구아노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채굴로 점차 고갈되어가고 있었는데.
대체물을 하버와 보슈가 공기에서 합성했다고 하니, 정말이지 대단한 발견이라고 칭송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기술은 4년 전에 진즉 개발되었습니다.”
“그래?”
하버가 보슈와 시선을 교환하며, 숨은 비화를 내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예. 다만,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아서 잠시 개량법을 연구하다가······ 여기 있는 보슈 박사가 이를 해결하여 상용화까지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질소화합물은 그냥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합성하기 좋은 환경.
예를 들면 일정 높은 압력이나 온도가 유지되어야 하며, 동시에 이를 촉진하는 촉매제 또한 있어야 했다.
‘촉매제가 문제였다고?’
다행히도 보슈는 값싼 철 촉매제로 이를 대체하여, 대량생산의 길을 개척했다.
“자네 둘은 정말이지 대단한 업적을 해낸 것이네. 세계가 이제 자네 둘을 주목할 것일세.”
“과찬이십니다.”
“과찬은 무슨. 인구학자들이 그토록 걱정했던 문제가 자네 둘 덕분에 깨지게 생겼는데.”
영국의 유명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 증가 속도가 식량 생산 증가 속도보다도 가팔라서, 미래에 크나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이 둘이 고안해 낸 질소 고정법 기술 덕분에 맬서스가 주장한 맬서스 트랩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가게 생겼다.
공기로 빵을 만들게 생겼으니까.
“본의 아니게 자네 둘이 속한 독일이 영국놈들의 콧대를 누르게 생겼군.”
영국과 독일은 현시기, 유럽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과학자이긴 하지만, 이 둘 역시 돌아가고 있는 국제 정세를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이를 비유하며 이 둘의 공을 높이 칭찬했다.
“그래? 우선은 자네들 모국에서 이를 생산하기로 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일단은 자국의 화학 기업인 BASF가 이들의 특허 기술을 활용하여 이를 생산한다고 한다.
차후에 생산공정이 안정화된다면, 내가 소유하고 있는 화학 기업이 해당 노하우를 이전받아 미국에서 생산할 것이겠고.
‘빌헬름과 맺었던 지난 협약대로 이 연구소에서 개발한 특허는 공동으로 소유하게 될 것이니까.’
다행히도 소칼을 인수하며, 그 산하에 있는 화학 기업이 하나 내게 있다.
이를 활용한다면, 미국의 비료 시장은 곧 내가 접수하게 되지 않을까?
“아! 자네.”
“예?”
“잠시 나와 이야기 좀 하겠는가?”
하버의 어깨를 감싸며 나는 잠시 연구실 외진 곳으로 이동했다.
이후, 나는 팔짱을 끼며 하버를 바라보았다.
“듣자 하니 이번 학기를 마치고 독일로 돌아간다고 하던데 말이야.”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계속 이곳에 남아서 관련 후속 연구를 진행해 주면 안 되겠나?”
* * *
“부모님이 독일에 계십니다. 친구들 또한 고국에서 머물고 있고요.”
하버는 나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직 하고 싶은 연구가 많지 않은가?”
“······.”
“여기만큼 남 눈치 없이 연구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다고.”
미래를 알기에, 일단은 하버에게 재차 이곳에 머무를 것을 권유했다.
“그렇긴 하죠. 하지만 제 조국은 독일입니다.”
“······.”
“그 점은 변치 않습니다.”
안다.
그렇기에, 이리 물고 넘어지는 것이었다.
“현재 상황이 안 좋다네.”
“······.”
“다들 하하 호호 웃고 있지만, 유럽 각국은 살얼음을 걷는 것처럼 위태위태하지.”
하버 역시 돌아가는 국제 정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현 상황을 묵묵히 인정하며, 자신이 왜 독일로 돌아가야 하는지 강조했다.
“전쟁이 터질 수도 있겠죠. 그러니 더더욱 제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조국을 위해서······ 이 한 몸 바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프리츠 하버는 자신의 조국을 사랑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유대인이었다.
이리도 독일을 사랑하지만.
하버는 제 모국의 유대인 박해 때문에 결국 독일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렇군.”
“······죄송합니다. 더 설득하셔도, 저는 내년 1월을 마지막으로 이곳을 떠날 생각입니다.”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그에게 한 가지를 충고했다.
“자네 아내 역시 저명한 과학자지?”
“예. 그렇습니다.”
“자네,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버는 잠시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자신의 부인에게 설마 관심이 있냐는 눈빛이었다.
“많이 사랑하죠.”
그는 나를 잔뜩 경계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다시 태어나도 그녀와 결혼할 만큼 저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그렇군.”
이상한 오해가 생겨날 수도 있지만, 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충고했다.
“그렇다면 중요한 시기에, 부디 아내 말을 듣게나.”
“?”
“가정의 평화를 최우선으로 삼으라는 뜻이네.”
독일로 돌아가는 하버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질소 고정법에서 파생된 기술로 사람들을 죽이는 독가스를 발명한다.
이 사건으로 하버는 동료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사고, 그의 아내는 자살한다.
“아······.”
아까 질문 덕분에 하버는 잠시 나를 경계했었다.
대화의 마지막이 이런 결론으로 치닫자, 그는 ‘괜히 오해했구나!’ 하는 표정을 지어 대며 안심했다.
“물론이지요. 왕자님 역시도 가정에 평화가 깃드시길 빕니다.”
“고맙네.”
인류를 기아로부터 구원한 영웅이지만, 동시에 일류를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독가스의 창조자 하버.
이번 역사에서는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나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하버를 바라보다가 그를 놔주었다.
< 야누스의 얼굴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