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44)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44화(244/392)
< 1914년 한·중·일 (1) >
일본 열도의 실질적 지배자인 내각총리대신 오쿠마 시게노부.
“각하. 안에 계십니까?”
“무슨 일인가?”
그가 머물고 있던 도쿄 총리관저에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다.
“대장대신(재무장관)이 막 관저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오오. 그래? 들어오라고 하게나.”
“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시게노부는 대장대신이었던 다카하시 고레키요를 만나면, 그다음 날 앓아누웠다.
왜냐고?
그야 일본의 재정은 지난 수십 년간 무계획적 막가파식 운영으로 기초가 썩어 버린 폐건물 같은 존재니까.
다카하시 고레키요는 매일같이 부실 시공된 건물의 붕괴위험을 알리는 파랑새였기에.
시게노부로서는 다카하시의 얼굴만 보면 속이 더부룩해질 정도였다.
『영미의 외채 상환 압박 때문에 못 버티겠습니다. 저들에게 상환 연기를 요청해 주십시오.』
『세입은 그대로인데 세출이 또 이만큼 늘었습니다. 군 관련 예산을 감축해야 합니다.』
『재정이 너무나도 위태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금을 더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대장대신. 어서 오게. 그래. 이쪽으로 앉게나.”
하지만 세계대전이라는 희대의 이벤트가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켰다.
이 때문에 시게노부는 요새 다카하시만 보면 기분이 좋다.
“오늘 아침에, 내 자네가 올린 보고서를 읽어 보았네. 저번 분기 대략적인 수출 현황이 적혀 있던데······ 생각보다 실적이 좋구먼.”
관료 출신으로 재무부 일인자에 오른 다카하시 고레키요.
특유의 덤덤한 표정을 한 채로 총리의 물음에 답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자국산 면직물 수출을 통제하면서, 중국 시장이 무주공산이 되었습니다.”
호랑이가 없는 골에는 토끼가 왕 노릇을 한다는 옛 속담이 있다.
현재 일본의 상황이 딱 그랬다.
“그래그래. 이 시장을 우리가 전부 쓸어 담고 있단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면직물은 물론이고 견직물, 모직물 등 거의 모든 섬유 시장을 석권 중입니다. 더욱이 화학과 철강 등 중공업 분야에서도 우리 기업이 선전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계속해서 발주하고 있습니다.”
유럽 열강들은 자국의 군대에 군수품을 대기도 바빴다.
생산되는 족족 전장에서 깡그리 소모되는 상황.
이도 모자라서 미국은 물론이고 저 멀리 이역만리 멀리에까지 떨어져 있는 일본에 손을 벌렸다.
기존에 안 팔려서 창고에 박혀 있던 제품을 웃돈까지 주고 사 대니, 일본 경제는 급격하게 호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보고 받았네. 한동안 적자를 면치 못했던 신생기업들도 다들 공장 돌리기에 바쁘다고 하더군.”
“예. 덕분에 이번 연도 세입이 대폭 늘어날 것 같습니다.”
“그래?”
“법인세만 해도 작년 대비 33% 이상 증가했으니까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돈을 마구 뿌려대고 있기에, 국내 소비도 조금씩 살아나고 있습니다.”
다카하시 고레키요는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살짝 흥분한 듯 목소리를 크게 내며 계속해서 희소식을 총리에게 보고했다.
“세출은 그대로인데 세입이 크게 늘어, 재정 상황이 빠르게 개선되는 중입니다. 이대로라면 영미, 두 국가에서 요구하는 외채 조기 상환을 별 탈 없이 이행할 수 있을 듯합니다.”
지난 십 년간.
일본은 러일전쟁으로 인한 부채 때문에 고통받았다.
다카하시 고레키요는 이 족쇄와도 같았던 막대한 부채 청산 계획을 총리에게 밝히며 주먹을 꽉 쥐었다.
“내년이나 내후년쯤에는 우리 일본은 빚쟁이 생활을 청산하고 순 채권국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확실한가?”
“예. 제 직을 걸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다카하시 고레키요가 한가지 전제를 달았다.
“다만, 유럽의 혼란이 계속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시게노부 총리가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했다.
“드디어 우리 일본이, 진정한 세계열강으로 우뚝 서게 되었군. 영국과 미국. 이 두 나라에 그간 얼마나 눈치를 보고 살았던가?”
자기들 필요할 때는 거금을 한껏 내어주면서······.
급해지니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하는 승냥이 같은 놈들이 바로 영국과 미국이다.
일본의 지배층들은 대체로 영국과 미국을 격하게 흠모하지만, 그간 알게 모르게 무시당한 서러움이 존재했기에.
다들 애증 어린 시선으로 영미 두 국가를 바라본다.
시게노부 역시 그중 하나였다.
“하루빨리 그놈의 외채를 전부 상환하고 싶군.”
“총리 각하······.”
다카하시 고레키요가 살짝 말끝을 끌며 시게노부를 조심스레 바라보았다.
반대의견을 꺼내기 직전, 늘 나오는 표정.
다카하시와 많은 대면을 했기에, 시게노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예상했다.
“왜? 자네 의견은 다른가?”
시게노부는 팔짱을 끼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에.
다카하시 고레키요가 시게노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지금 같은 상황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상황입니다. 그간 중국을 간접지배하던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밖에 독일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등도 이번 전쟁에 사활을 걸고 자기들끼리 다투고 있지 않던가?”
“맞습니다. 덕분에 공급이 확 줄었습니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말입니다.”
“그렇지.”
“한 가지 감히 제안하자면, 지금은 빚을 상환하기보다는 시장을 하루라도 더 빨리 선점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각하.”
외채를 조기 상환하기보단.
최대한 상환을 미루며 산업시설 확장에 집중하라는 다카하시 고레키요의 조언.
“그치만······.”
하지만 시게노부는 이에 반대했다.
“우리 일본은 영국과 미국, 이 두 놈 때문에 그간 정책을 하나 짜는데도 눈치를 봐야 했네.”
“······.”
“대한제국 병합 문제도 그래. 1910년 이래로 이를 거듭 시도하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미국과 영국이 암암리에 이를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그, 그렇긴 하죠.”
“하루빨리 골칫덩어리를 해결하는 편이 내 생각에는 더 낫지 않나 생각하네.”
다카하시 고레키요는 안타까웠다.
지금 같은 호황기에, 조금이라도 산업시설을 늘려 놓아야 하는데 말이다.
‘어째 우리 본토보다 식민지인 대한제국에서 투자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군. 쩝.’
시기적절하게.
미국 자본이 대거 유입되며 한반도 곳곳에는 면직공장이 들어서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다.
수력 발전소와 각종 광산, 화학공장, 제철소 등 각종 산업 인프라가 한반도 북쪽에 세워지는 중이었다.
‘일본 본토에 설립되었다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
일본은 한반도 쪽에 집중된 해외 투자를 용인했다.
그간 외채 상환으로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지난 십 년간 대한제국을 그들 아래에 두면서 보호국화 했기에.
언젠가는 하나로 병합될 것으로 굳게 믿은 거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통감부에서 병합 계획을 다시금 세우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단번에 합병하는 것은 큰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기에.
일단은 쌀이 많이 나는 삼남 지역을 똑 떼 내어, 이를 일본과 병합할 예정이라고 한다.
‘북부지역은 아직도 반군이 설쳐 대고 있으니까. 반발을 최소화하려는 조처라고 통감부에서 보고했지.’
가죽 껍데기만 남았지만, 대한제국이라는 명패 자체는 나름대로 쓸모가 있기에.
아직은 유지하는 방향으로 대(對)대한제국 운영 정책을 수정했다고 한다.
세계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도 완충 지역을 하나씩은 두곤 했기에, 아주 새삼스러운 정책은 아니었다.
다카하시는 이를 잠시 회상하다가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역시 각하십니다. 제가 안목이 좁아서 그런지, 재정적인 면에서만 보고 이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말입니다.”
대장대신은 빠르게 자신의 의견을 뒤로 물렸다.
상관이 까라면 까야 하는 일본문화의 특성상.
더는 이를 언급했다가 총리의 눈 밖에 난다면 그 즉시 실각 처리된다.
그렇기에 다카하시는 빠르게 넙죽 엎드렸다.
“각하의 의견을 경청하니, 종합적인 면에서는 내각총리대신 각하의 말씀이 전적으로 옳은 것 같습니다.”
“하하, 그렇지?”
다카하시 고레키요가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웃었다.
“예. 생각해 보니 무리하게 투자를 또 늘리다가는 역공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외채를 하루빨리 상환하는 것이 상책인 것 같습니다.”
“암암. 이강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지 않은가?”
록펠러와 이강에게 잡혀 사는 것도 올해, 내년이 마지막이다.
시게노부 총리는 그리 생각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나저나······.”
다카하시 고레키요가 눈알을 굴리며 총리에게 한 가지를 질문했다.
“각하께서는 이번 세계대전이 얼마나 오래가리라 생각하십니까?”
“자네 말대로 내후년까지는 이어졌으면 좋겠다만······.”
시게노부는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어댔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은 법. 어디 내 뜻대로 돌아가던가?”
“그렇죠.”
“내년 겨울이 오기 전에는 끝나리라 예상하네.”
“저 또한 그리 생각합니다.”
시게노부가 갑자기 손뼉을 한번 짝- 하고 쳐댔다.
까먹고 있었던 중요 대화 주제 하나가 그의 뇌리를 막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내 그것을 까먹고 있었군.”
“무엇을 말입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염치도 없는 프랑스와 영국이, 우리 황군을 유럽에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네.”
“아아, 들었습니다.”
계속되는 외채 조기 상환 채근 때문에 일본의 일부 하급 관료들은 이 주제만 나오면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랬기에.
개항 초기, 서구에 유학을 갔다 왔던 고위층과 달리 하급 관료들은 서구 열강을 흠모하기보다는 그들을 돈벌레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재무 쪽 부서일수록 이런 세태가 심했는데.
다카하시 고레키요는 이런 대장성의 수장이었기에, 영국과 프랑스를 평소 좋게 보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해외 파병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미간부터 찡그렸다.
시게노부는 다카하시의 이런 반응에 흡족해하며 하던 말을 이어 갔다.
“내 일단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이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긴 하네.”
“잘하셨습니다.”
왜 남의 전쟁에.
소중한 자국민들을 보내 가며 피를 흘린단 말인가?
일본군은 현재 대다수가 서민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일본 고위층으로서는 쓰다 버리는 패지만.
그래도.
자국에 이득이 하나도 되지 않기에, 해외 파병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았다.
“이 전쟁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만······ 자네 말대로 우리가 낄 이유는 없지.”
“예.”
시게노부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카하시 대장대신과 의견을 교환했다.
“아, 그건 그렇고.”
다카하시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외무부에서 보낸 공문, 자네도 읽어 보았겠지?”
시게노부가 마지막으로 오늘 그를 부른 용건을 이야기했다.
“예.”
“대략적인 틀은 완성되었는데, 세부적인 사항에서 살짝 미흡한 것 같네. 자네만큼 꼼꼼한 자는 없으니, 부디 가토를 도와 베이징에 보낼 요구안을 완성하게나.”
일본은 독일의 중국 조차지, 칭다오를 빠르게 점령한 상황이다.
이들은 현재.
중원대륙의 지배자인 위안스카이에게 해당 권리를 이양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번 안이 통과된다면, 우리 일본제국의 중국 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네.”
시게노부가 눈을 가늘게 뜨며 강조했다.
“유럽 열강이 전쟁으로 한창 정신이 팔렸을 때, 하루빨리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네. 그놈들이 또 어느 구절에서 태클을 걸을지 모르니까.”
삼국간섭으로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친 적이 있다.
빼앗긴 요동반도만 생각하면, 시게 노부는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이불을 찰 정도로 분했다.
이를 언급하자 다카하시 역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서구 열강이 정신을 차릴 땐, 중국은 이미 반쯤 우리의 식민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믿고 맡겨 주십시오.”
< 1914년 한·중·일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