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47)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47화(247/392)
< 쓰리 리 (1) >
일본의 흉계를 막기 위해, 이강이 한창 대응 방안을 고심할 때.
유럽 각국에 파견된 특별위원들은 하나둘 해당국에 자리를 잡으며, 이강을 지원 사격할 준비를 했다.
“밀크티? 아님, 커피?”
이는 영국 런던에 도착한 이승만도 마찬가지였다.
가지고 온 짐들을 빠르게 정리한 후, 이미 일주일 치 일정을 다 선약해 둔 상황.
“커피 한 잔 부탁합니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 지금과도 같이 여유 부릴 기회가 없어질 터.
여독을 풀기 위해서라도 이승만은 잠시 머리를 식혀야 했다.
그랬기에 그는 호텔 주변에 있는 카페에 발을 내디뎠다.
“선급.”
“예?”
“선급.”
“아, 선불이요? 이 가게는 선지급이 원칙입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막 그에게로 다가온 종업원이 불친절한 태도로 이승만의 휴식을 방해했다.
“커피?”
“아 네.”
“여기.”
조금 여유가 생기니, 영국인들 특유의 표정이라든가 말투, 억양이 하나하나 보인다.
조금 전.
주문을 받고 자신의 음료를 서빙한 직원만 해도 그렇다.
보통 커피를 주문하면 그 안에 자신의 기호대로 첨가할 설탕 덩어리와 이를 휘휘 저을 티스푼을 함께 주기 마련인데.
종업원은 이승만에게 달랑 커피만을 내어주었다.
‘어쭈? 종업원 새끼가 오냐오냐하니까. 머리 위로 기어오르네······.’
이에.
이승만은 고개를 돌려서 주변을 확인했다.
‘역시.’
커피를 시킨 이들은 죄다 티스푼이 하나씩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여기.”
“무슨 일?”
아까부터 느끼지만, 영국의 하류층들은 말이 참 짧고 억양이 어눌했다.
“커피가 너무 쓴 것 같은데······ 여분의 설탕과 찻숟가락이 있습니까?”
“에이씨. 귀찮게.”
종업원은 데스크 쪽으로 돌아가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혼잣말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이승만 역시도 들릴 정도였는데.
동양인이어서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리라 여긴 것인지.
아니면, 동양인이라 이리 대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인지.
굉장히 불쾌하게 행동했다.
‘일단은 참자.’
이승만은 이에 기분이 굉장히 기묘해졌다.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그때 경험했던 장면이 마치 되풀이되는 것 같았으니까.
‘오랜만이군. 이 기분.’
이승만의 모교는 프린스턴이다.
동부에 있는 명문대학교.
이 학교는 우드로 윌슨이 학장이 된 다음에는 백호주의가 강해졌다.
인종차별 정책이 아주 대놓고 강화되었는데, 덕분에 캠퍼스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기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프린스턴이란 정글에서도 난 결국 생존했다. 그것도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말이야. 이까짓 차별쯤이야.’
원 역사에서는 왕족 행세를 하고 다녔기에, 학내에서의 인종차별 문제를 고결한 신분으로 상쇄했지만.
바뀐 역사에서는 이강의 경고 때문에, 그리 행동할 수가 없다.
오로지 실력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이겨 낸다.’
출세하겠다는 동기 하나만큼은 확실했기에, 이승만은 끝끝내 원하던 목표를 소원성취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승만은 현재 교민사회에서 서재필을 거의 다 밀어내고 한인 최고의 석학이라는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슬슬 자리를 뜰 때가 되었군.’
남들과 다르게 이승만은 선불로 이미 계산을 다 치른 셈이다.
조용히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말.
‘호텔로 그냥 돌아가기엔 살짝 아쉬운데······.’
이승만은 떠나기 전, 복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시고 있던 커피를 테이블 위에 흠뻑 흘려, 종업원이 할 일을 더 늘려준 거다.
본래 이승만은 괴롭힘을 당하면 참지 않고 갚아 주는 성격이다.
작게나마.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엿이나 먹어라. 레드 넥 새끼.’
이런 복수를 행하지 못한 사례는 오직 하나.
초반에 이강과 엮였을 때 겪었던 사건뿐.
하지만 이 기억은 진즉 이승만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한인 교민이라면 생존을 위해 이강과 친해야 져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승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에게 이제 이강은 복수의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잘 보여야 하는 대상이다.
옆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주워 먹으려면 조금이라도 더 친분을 쌓는 것이 이승만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뭐야. 이씨.”
한껏 어지럽혀져 있는 테이블 때문일까?
종업원이 뒤에서 씩씩거리며 떠나는 이승만을 노려본다.
‘쌤통이다.’
그렇게.
이승만은 나름대로 종업원에게 작은 복수를 해 대며 영국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호텔 방으로 올라온 후, 가장 먼저 만나야 할 인물이 누가 있나 책자를 찾아보며 다음 약속 대상을 물색했다.
* * *
“이번에 합성협회 런던 지부 특별위원으로 새로 부임한 이승만 위원이십니다.”
“미스터 리? 방금 미스터 리라고 하셨습니까?”
이강의 회사는 본디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유럽에도 꽤 많이 사업을 진출시켰다.
영국에도 지부 몇 개가 존재했는데, 그중 하나가 리&라이트 사의 런던지부였다.
영국은 군수품을 납품할 때, 자국에서 생산되는 무기만 사들이는 경향이 강했기에.
미국이나 네덜란드가 아닌 영국에 제3공장을 지어가며 이에 대응한 것.
“혹시······ 초면에 죄송하지만 한 가지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제 고용주이신 프린스 리와는 무슨 관계입니까? 같은 성을 사용하시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리&라이트의 유럽 지부장 윌리엄은 현재 영국 군부를 비롯해 사교계에 많은 인맥을 걸치고 있던 소위 인싸였다.
이승만은 살짝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은 후, 윌리엄에게 이강과의 관계를 사실대로 밝혔다.
“이렇게 말하긴 부끄럽지만, 조상이 같습니다.”
“오, 그래요?”
“예.”
“그렇다면 미스터 리도 왕족이란 뜻입니까?”
이강의 첫 시험일 수도 있다.
그랬기에.
이승만은 사실만을 윌리엄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는 왕족이셨지만, 저는 일개 시민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아주 남보다는 가까우신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하,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20세기 유럽은 아직도 중세의 옛 잔재가 남아 있다.
족보가 있다는 것은 곧 귀족이라는 말.
저기.
이역만리나 떨어진 동양의 소국이긴 하지만 이승만 역시 귀족의 피를 타고났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기에.
그냥 퉁- ‘같은 이 씨지만 저는 왕족이 아닙니다’하고 설명하는 것보다는 첫인상을 더 좋게 부여할 수 있었다.
“박사학위를 보유하고 있다고요?”
“거기에 이 왕자의 총애를 받았기에, 이곳에 부임하게 되었다고요? 이 왕자를 대리하여 말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이승만은 영국 고위층들과 만나며 자신을 한껏 올려 쳤다.
아 물론!
자신의 입으로 이런 이야기를 떠벌리지는 않았다.
남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리&라이트의 지부장이자 사교계의 인싸인 윌리엄이 알아서 재잘거리고 다녔으니까.
“유망한 젊은이구먼······. 이거, 친하게 지내야겠습니다.”
“하하. 이리 띄워 주시니 부끄럽습니다.”
이강은 떠나기 전.
할 수 있는 것은 죄다 활용하라고 특별위원들에게 강조했다.
이 말은 즉.
8년 전, 따로 경고받은 왕족 사칭 건만 제외하면 뭐든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이강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이강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것은 용인해주리라 생각했기에.
이승만은 이강의 이름을 한껏 들먹거리며 영국의 사교계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 * *
“반갑습니다. 나는 체이스 백작이라고 합니다.”
“런던 남부에 작게 은행을 운영하는 스테판이오.”
이승만을 좋게 보는 이들도 존재했지만, 일부는.
“······.”
“······.”
싸늘한 시선으로 동물원 원숭이 보듯 쳐다보기도 했다.
대체로 로스차일드 남작과 인연이 있거나 인종차별을 심하게 하는 자들이 그런 행동을 보인 것.
이강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나 이승만은 이강이 아니기에.
대놓고 불쾌한 표정을 지어 댔는데.
이승만은 이런 무례한 이들을 보며 씁쓸한지 아랫 입술을 꽉 깨물었다.
“미스터 리.”
“아, 예. 스탠리 백작님.”
“혹시 다음 주에 열리는 연회에 미스터 리도 오실 수 있소이까?”
“물론이지요.”
이승만은 시간이 겹치지 않는 이상, 영국의 고위층들이 불러 주는 모든 연회에 될 수 있으면 다 참석했다.
“미스터 리.”
“예. 말씀하십시오.”
그는 몇 번 이런 행사에 다녀오며 공통점이 하나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씨께서는 향후 중국 시장이 어찌 되리라 생각합니까?”
사람들은 본디 어릴 적에 사귄 친우가 아니라면, 필요 때문에 새 연을 만든다.
이 시대 천대받는 동양인.
이승만에게 접근하는 이들은 리&라이트사와 거래 중인 협력사 관계자거나.
이강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가십을 사랑하는 이들.
아니면, 돈에 미친 놈들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미스터 리가 있었군요. 생각해 보니 이 박사의 고국이 대한제국이라죠?”
“베트남처럼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던데······.”
“돌아가는 사정을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잘 알겠습니다. 아닙니까?”
첫 번째 경우도 두 번째 경우도 상당했지만.
마지막.
돈에 미친 이들 또한 꽤 많았다.
특히나 지금은 전쟁 중이었기에, 자본은 한껏 불리고 있던 런던의 재력가들이 자주 이승만을 초청했다.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이 왕자님이 이 박사를 왜 총애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말입니다. 오늘 듣는 이야기로 이를 수긍할 수 있게 된다면 참으로 기쁠 것 같습니다.”
재력가들이 이승만을 부른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동양인이어서다.
얼굴이 노랗기에, 중국 시장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단순함.
이것 또한 인종차별 사례 중 하나겠지만, 어쨌든, 이승만에게 득이 되는 차별 행위다.
그는 런던의 자본가들 사이에서 발언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직설적으로 결론부터 언급했다.
“향후 중국 시장은 일본 기업들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입니다.”
“예?”
“그게 무슨······.”
런던의 자본가들은 저 멀리 대한제국에서 건너온 이강의 측근이 이리 말해 주길 기대했을 테다.
지금은 잠시 전쟁 때문에 중국 시장을 일본에 내주었지만, 곧 다시금 되찾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승만은 앵무새처럼 이들이 원하는 답을 뻐끔뻐끔 지저귀지 않았다.
“영국 정부의 규제를 시작으로 서구 열강들의 대중 무역 문이 닫히고 있습니다. 그 틈을 일본이 파고들고 있다는 것은 여기 계신 분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일 겁니다.”
“그, 그렇긴 합니다만.”
“일본 정부는 이 천우신조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줄곧 선전 구호처럼 외쳐 온 대동아공영권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요.”
“대동아공영권이요?”
“그건 무슨 뜻입니까?”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 아시아인들이 아시아를 함께 경영한다는 그런 웃기지도 않는 뜻입니다.”
이승만은 방금 그 자신이 언급한 대동아공영권을 신랄하게 까며.
특히나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꼬았다.
“에이.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먹히겠습니까?”
이승만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먹힙니다. 영국이나 프랑스가 지배 중인 식민지인들에게는 정말이지 달콤한 선전 구호니까요.”
그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일부 대한제국 신민들이 환호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또 하나의 사례를 빗대었다.
“일본은 아주 교활한 놈들입니다. 일본 역시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제국주의 국가가 아닙니까?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본심을 숨긴 채 그들이 서구열강의 압제에서 아시아를 구해낼 영웅으로 여기게끔, 아시아 각국에 거짓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에이. 너무 과한 거 같은데.”
“뭐, 백작님 말대로 일반적인 선전 구호라고 절하해 보죠.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이 시대는 오직 강한 군사력이 정의인 시대니까요. 아국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승만은 경청하는 런던의 자본가들에게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것을 예로 들며, 그들이 대동아공영권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설파했다.
“이 논리를 그대로 중국에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영국이나 프랑스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이 이들을 도와 영국과 프랑스의 자본을 몰아낸다면 진정한 경제적 독립이 찾아올 것이라면서 현지인들을 꼬드긴다면, 이 논리에 넘어간 이들의 협력을 쉬이 얻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승만은 쐐기를 박았다.
“이번에 일본이 중국에 21개조 요구안을 보낸 것을 들으셨지요?”
“그거, 뜬 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말입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마도 사실일 것입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중국에 관심을 두지 못할 때 일본이 이를 냉큼 먹기 위해서이지요.”
“하하하. 이 박사는 일본을 생각보다 많이 증오하고 있나 봅니다.”
“뭐 대한제국 신민으로서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런던 재력가들의 경제 포럼을 다니며 이승만은 계속해서 일본의 위험성을 설파하고 다녔다.
때론.
이강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때 했던 악의 제국 탄생을 인용하기도 하며.
일본의 중국 시장 잠식을 아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다녔는데.
“이 박사.”
“그, 그 소식 들었소이까?”
1월이 지나고 2월이 시작될 때쯤.
북양 정부가 일본의 요구안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소문이 런던을 강타하자.
이승만은 단박에 화제의 인물이 되어버렸다.
정말이지 뜬소문으로 치부하던 일본의 중국 침탈이 사실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승만을 찾는 런던의 고위층들이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재력가를 넘어 정치권으로 점점 번져 나갔다.
처칠 역시 이승만과의 대담을 원했기 때문이다.
< 쓰리 리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