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49)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49화(249/392)
< 찬밥, 더운밥 (1) >
북경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이른바 나비효과.
이강의 몸에 빙의한 후, 나는 이를 숱하게 경험했다.
‘국경 인근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독립군은 분전하고 있다. 더불어 한반도 내에는 원 역사와는 다르게 친일파 관료들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다니지 못하지.’
이제 충분히 익숙해질 만도 했지만, 세계대전 전황을 수집하며 이 효과를 다시 한번 뼈저리게 체험 중이다.
나는 이위종이 보고한 유럽의 전황을 살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독일 해군이 도거뱅크 해역에서 완패했다?”
“예. 그렇다고 합니다.”
그동안 나는 좋은 소식만 입수했다.
리&라이트에서 만든 폭격기와 이회영 일가에게 일임한 이 경기관총의 활약 덕분에, 독일을 비롯한 동맹국 병사들은 협상국들을 상대로 분전하며 원 역사보다도 더 좋은 전선을 만들어 냈다.
더욱이 이 소식을 미 대중에게 낱낱이 공개해, 뉴욕 자본가들의 협상국 전쟁채권 투자에도 일부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듯.
이러한 나비효과는 마냥 내게 좋게만은 작용하지 않았다.
‘이건······ 원 역사보다도 더 크게 두들겨 맞은 셈인데.’
순양전함들의 싸움이었던 도거뱅크 해전에서 독일은 완패했고, 동원되었던 4척 중 3척이 침몰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영국군도 5척 중 1척이 침몰당하였지만.
교환비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바다에서는 영국이 우세한데, 이번 사건으로 더더욱 그 경향이 짙어지기에.
독일의 완패라고 볼 수 있었다.
“흠.”
지난해 12월.
네덜란드를 통해 미국의 밀을 아주 대거 독일로 우회 수출 시켰는데 말이다.
원 역사보다 보급상황이 훨씬 더 좋을 텐데.
독일 해군은 왜 이리 무리까지 하며 영국군과 한판 붙은 것일까?
‘작금의 좋은 전황이 오히려 독이 되었나?’
서부전선은 참호전이 행해져 꼼짝달싹 못 하고 있지만, 동부 전선은 한겨울인 지금도 조금씩이나마 동쪽으로 전진 중이었다.
맹렬한 추위 때문에 한동안은 전선에 변화가 없으리라는 예상을 깨며 분전하고 있었는데, 이게 오히려 해군을 자극한 모양이다.
“이에 카이저가 크게 진노하였다고 합니다.”
그럴 만도 하다.
지난 8월.
독일 쪽 북해에 자리한 헬골란트섬 근해 인근에서 한바탕 크게 깨진 후, 그동안 절치부심하지 않았던가?
‘그 결과가 참패라면······.’
나라도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양면 전쟁에서 어떻게든 분전하고 있는 육군과 자연스레 비교할 수밖에 없기에.
미래를 아는 빙의자나 회귀자가 아니라면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
“풍문에는 카이저가 집무실 한편에 자리한 화분병을 잉게놀 제독의 이마에 정확하게 맞췄다고 합니다.”
거, 성격 한번 더럽네.
뭐.
평소 고통을 즐기는 마조에 손 성애자고, 동시에 남녀를 가리지 않는 양성애자가 바로 카이저다.
빌헬름의 성격 파탄 정도야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지만.
지금은 평시가 아닌 전시다.
카이저의 행동은 독일 해군 전체에 사기 저하를 일으키는 악수였기에, 독일의 분전을 기대하고 있는 나로서는 살짝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잉게놀은 그 자리에서 즉시 해임되었고, 후임으로 휴고 폰 폴이 대양함대 사령관직에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폴 제독이라······.”
살짝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이위종은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폴 제독의 성향을 유추해 변할 미래를 예측했다.
“아무래도 독일 측의 대 영국해군 기조가 변경될 듯합니다.”
“어떻게?”
“상황을 봐가며 적의 빈틈을 노리는 것보다는 인근 해역에 몸을 웅크리며 적의 발을 묶어두는 작전을 펼치리라 예상합니다.”
“그렇겠군.”
내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위종은 슬쩍슬쩍 내 눈치를 보며 더더욱 안 좋은 소식을 내게 알렸다.
“더하여 전하께서 걱정하신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다시금 수행하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
“예. 일부 장성들이 카이저에게 이를 건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런.”
“다행히도 아직은 카이저가 이를 그냥 흘려듣고만 있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압박은 심해질 것입니다.”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라.
내 그리 사용하면 안 된다고 수십, 수백 차례 경고했거늘.
융커는 정말이지 답이 없단 말이지.
“큰일이구먼.”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다행히도 독일 육군의 상황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보급상황 또한 그렇고요. 이번 달 말쯤에 바르샤바를 함락시킬 수도 있다고 합니다.”
바르샤바는 21세기 폴란드의 수도이기도 한 곳이다.
한 나라의 수도 역할을 하는 도시는 보통 지정학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기에.
독일이 이를 점령하면 러시아에는 그만큼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그러고 보면, 독일군들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네. 악조건 속에서도 계속하여 동진을 이어가고 있으니까.”
“예. 아무튼 앞서가는 전황도 그렇고, 베를린에 파견된 이상설 위원이 계속하여 빌헬름에게 무제한 잠수함 작전의 위험성을 설파하고 있다니······ 적어도 4월 전까지는 다들 이를 공식적으로 거론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 4월이지?
하고 잠시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지만.
이내 그 답을 찾아내었다.
그제.
지금 내 앞에 있는 이위종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보고받았기 때문이다.
‘독일군이 자국 내 죄수들을 상대로 독가스 실험을 했다고 했었지? 아마?’
독가스가 참호전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이를 확인한 후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펼칠지 말지 고민해도 늦지 않을 터.
“시간과 싸움이군.”
독가스가 생각보다 시원찮고, 지상전에서 독일이 한 번쯤 밀리기라도 한다면?
그리되면 카이저는 그동안 봉인했던 무제한 잠수함 작전 카드를 다시금 만지작거릴 수도 있다.
‘미국인들은 아직 전쟁에 개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휴즈 또한 이를 잘 알기에, 1916년 선거 때까지는 조용히 넘어가겠지······.’
하지만 만약 원 역사대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펼쳐진다면, 계속해서 미국인 희생자가 늘어날 테다.
‘명분이 쌓인다는 말이다. 명분이.’
뉴욕의 자본가들은 ‘전쟁, 결코 전쟁!’이란 구호를 다들 합심하여 외칠 테다.
전쟁 참전은 돈이 되니까.
‘재선되면 휴즈 또한 이를 마냥 외면할 수 없을 터.’
1916년 전에는 선거 때문에 반전 여론을 달래 주는 척이라도 하지만, 1917년이 되면 더는 거칠 것이 없기에.
휴즈 또한 마냥 참고만은 있지 않을 테니까.
‘동맹국이 이기거나 양쪽이 무승부로 끝나는 일은 결국 조기에 전쟁을 끝내는 수밖엔 없지.’
그 말은 즉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자극이 필요했다.
나는 이를 위해 그동안 망설였던 카드를 사용할 생각이다.
‘특단의 선제적 조처가 필요해.’
아!
레닌 카드는 정말이지 활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좁게 보아서.
내 안위만 본다고 치더라도.
공산주의자들은 무정부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와 더불어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위협할 놈들이었다.
레닌은 그런 빨갱이들의 수괴.
러시아로 보내, 그들만의 유토피아인 소련을 건국하게 놔둔다면.
나중에 크나큰 화근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오늘날의 내가 미래의 내게 폭탄을 보내는 셈인데.’
그래서일까?
개전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나는 이 카드를 계속 만지작만지작하기만 했다.
카이저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처럼 말이다.
‘독일은 어차피 레닌을 러시아로 보내게 된다.’
더욱이, 그동안은 좋았지만 도거뱅크 해전 한방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는 말.
“이전에 내가 언급했던 레닌이라는 인물 말이야. 혹시 자네 기억하는가?”
“그, 공산주의라는 제법 위험한 사상을 추종하는 자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촉이 좋은 이위종.
무언가 안 좋은 낌새를 눈치챘는지, 살짝 뒤로 물러서며 나를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러시아에 혼란을 가져다주기 위해, 독일에 머무는 그자를 고국으로 돌려보내실지 잠시 고민하시지 않았습니까?”
이위종은 지난날 나누었던 대화까지 다시금 상기하며 내게 물었다.
“득보다는 실이 많아서 그 계획을 두 달 전에 취소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입니다.”
나는 잠시 고심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아무래도 이를 시행해야 할 것 같네.”
“······잘못하면 영국은 물론이고 협상국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맞다.
이 일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기에, 조심히 다루어야 했다.
“자네가 베를린으로 가 줘야겠네.”
“제가 직접 말입니까?”
“그래.”
영국과 미국.
이 둘이 잘하는 것이 뭘까?
바로 정보전이다.
해당국의 정보를 착실하게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 군의 사령부가 아군에게 보내는 암호까지 해독하며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 이들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지.
‘가장 확실한 것은······.’
전보보다는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는 것.
이위종은 나와 함께 헤이그 특사 활동까지 한 인물이다.
분노한 일본이 이들 삼인방을 향해 사형선고를 내린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는 모든 할만한 인물이 이위종이었기에, 나는 이위종을 아바타 삼아서 레닌의 러시아 귀국을 획책할 생각이었다.
이위종은 잠시 고민하는 듯했으나, 늘 그랬듯 결국에는 내 뜻을 따랐다.
“알겠습니다. 그럼, 좋은 성과를 가지고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몸조심해서 다녀오게나.”
* * *
“흠······ 그러니까.”
베를린에 합성협회 특별 위원으로 파견 온 이상설.
그는 이위종과 대화를 나누며 미간을 한껏 오므렸다.
“레닌이라는 놈을 러시아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소이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였기에, 화기애애해야 했지만.
나누는 이야기가 원체 무거운 이야기였기에, 두 사람의 안색은 시간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말이지?”
“예.”
이 자리에는 이상설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왕년에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때 함께 했던.
지금은 네덜란드 특별 위원으로 파견된 이준까지 함께 자리했는데.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헤이그 특사 3인방은 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지난 청문회 때, 일 때문인가?”
“청문회 때 일이라면?”
외지에 자주 파견 갔던 이준이 고개를 갸웃하자, 미주에 상시 머물렀던 이상설이 그때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때, 전하께서 공산주의자로 몰리시지 않았던가?”
“아니. 어째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났단 말입니까? 그보다 공산주의자라니······ 일국의 왕자가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해 댑니까?”
“콕스 그놈이 의왕 전하를 모욕하고 동시에 언론에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서 그러한 무리수를 두었다네.”
“완전 생쇼였군요.”
“그래.”
이상설이 그때를 회상하며 입술을 할짝댔다.
“그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에 그냥 넘어갔으나······ 자칫, 이 일이 새어나가기라도 한다면 전하께서는 미국에서 추방당하실 수도 있네.”
어디까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지만.
어찌 되었든.
이번 기획에서 정보보안은 필수였다.
“흠······ 꽤 머리를 굴려야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이준의 말에 이위종은 억지웃음을 지어댔다.
“뭐, 그래도. 지난 만국평화회의 때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때는 절망뿐이었지.”
“아, 그때. 자네가 매우 위중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말이야. 몸은 좀 괜찮나?”
이상설이 이준의 건강을 묻자, 이준은 주먹에 힘을 꽉 쥐며 자신의 알통을 자랑했다.
“오히려 그때보다도 건강해진 것 같습니다. 그때와는 달리 희망이 보이니까요.”
맞다.
그때는 절망뿐이었지만, 지금은 희망이 있다.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다시금 모았다.
“일단······ 이번 거사를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 준비 작업이 필요합니다. 욕심 많은 카이저의 측근 하나가 절실한데 말입니다.”
이준과 이위종은 이상설을 향하여 고개를 돌렸다.
셋 중 독일 쪽 정계 인물을 가장 잘 아는 자는 그였으니까.
비록 반년밖에 안 지났지만, 엄연히 베를린 특별 위원으로 활동하는 중이었기에.
고위층 인물들과 면을 터놓을 수 있었을 터.
“될 수 있으면 젊은 청년보다는 나이 든 놈이 더 좋습니다.”
“그건 왜? 아······.”
추적당하지 않기 위해선, 증인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이위종은 이번 일이 끝나면, 활용했던 증인을 죽여 입막음할 작정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익문사의 장으로 5년간 일하며 아주 매정한 사람이 되었는데.
이상설은 이를 잠시 언급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국익을 위해선 때론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도 때론 사용해야 하니까.
그것이 비록 자신을 지옥으로 인도할지라도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는 못 할 것이 없었기에.
이준과 이상설을 말없이 이위종의 마지막 말에 동의했다.
“그 측근이라는 자를 우리의 파랑새로 쓰려는 모양이군.”
“예. 그렇습니다.”
“한 명이 있긴 한데······.”
이상설이 살짝 망설이며 이름을 거론하길 주저했다.
이에 이준과 이위종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찾아보라고 이상설에게 시간을 주었다.
“내키지 않는다면 일단은 후보군을 더 찾아보도록 하지요.”
“맞습니다. 이번 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시간은 아직 넉넉하니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 찬밥, 더운밥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