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50)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50화(250/392)
< 찬밥, 더운밥 (2) >
“카이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동시에 자네와 친분이 있는 자는 이자뿐이군.”
헤이그 삼인방은 여러 후보군을 놓고 고민하다가 한 인물을 최종 타깃으로 정했다.
“폴 제독이라······.”
휴고 폴은 잉게놀에 이어 대양함대 사령관으로 부임한 거물이다.
이런 인물은 쉽게 쓰고 버릴 카드는 못 된다.
그렇다고 영향력이 너무 적은 이를 대리인으로 내세울 수도 없었기에, 삼인방은 고심 끝에 폴 제독에게 접근하기로 마음먹었다.
“미안하게 되었네.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사귀어 놨어야 했는데.”
“아닐세. 자네가 이곳에 언제 왔는가? 부임한 지 겨우 반년밖에 안 지났네. 더욱이 상황이 상황인지라 기존에 구축했던 인맥들도 가용할 수가 없지 않던가?”
이위종의 주장이 옳다.
지상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융커들은 죄다 전선에 투입됐다.
남은 것은 행정관료들과 반쯤 태업하다시피 자국 근해에 짱박혀야 하는 독일해군의 지도부들뿐.
이중 이른바 카이저에게 말발이 통하는 자로 범위를 줄이면 그 수는 더 적어진다.
이 중에 이상설과 인연이 있는 자로 다시금 후보군을 추려야 하니,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별로 많이 남지 않았다.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이니 이 문제로 왈가왈부하지 말고, 다음 계획이나 세우세나.”
원래대로라면 직접 이자를 만나서 해당 사안을 제안해야 했지만.
그러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래서 헤이그 삼인방은 간접적으로 폴 제독에게 레닌 카드를 암시하는 방법으로 우회로를 터 볼까 생각했다.
『(사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간악한 영국의 계략에 말려드는 셈이다.』
『(사설) 비렁뱅이는 선택권이 없는 법.』
『(사설) 지금이라도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모든 수를 다해야 할 것이다.』
일단 헤이그 삼인방은 폴 제독을 만나기 전에 독일 여론에 그들이 원하는 기사를 주야장천 쏟아 내기 시작했다.
현 주류 여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기사들.
하지만 총력전을 다해야 한다는 주요 메시지만큼은 꼭 앞줄에 넣어서 기사를 반복적으로 기고했기에.
이 기사를 한 번쯤 정독했다면 그 내용이 머릿속에 남게 될 수밖에 없었다.
“폴 제독이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의 애독자라?”
“그렇다면, 이곳에 사설을 내는 데 집중해야겠군.”
이상설이나 이위종, 이준의 이름으로 사설을 쓸 수는 없다.
그렇기에.
기존에 익문사가 만들어 둔 가상의 인물이나 이번 전쟁으로 사망한 기자 이름들을 이용하는 것으로 이들의 정체를 숨겼다.
“스테파니라는 여성이 폴 제독의 애첩이라고?”
그다음으로 행한 일은 당연하게도 폴의 행적 조사다.
“제법 잘나가는 고급 술집의 창부인가 보군.”
“그래. 폴이 자주 이 집에 들러서 술을 마신다곤 하네.”
폴 제독은 제 부인만을 사랑하는 공처가라고 소문이 나 있지만.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르다고.
이 시대 어느 상류사회 남성처럼 폴 또한 사랑하는 젊은 애인 하나를 옆에 두고 있었다.
“술집을 아주 제집 드나들 듯 들르는군.”
“어제, 요 근처 레스토랑에 들르며 이자의 얼굴을 살펴보았는데. 안색이 별로더군. 그제 컨디션이 안 좋았나 싶었는데, 술 때문인가 보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애주가로 소문이 나 있으니까. 그 때문에 건강이 살짝 좋지 않은 듯한데 말이야.”
원 역사에서도 폴 제독은 간암으로 1916년에 세상을 떠난다.
1915년 초지만, 지금도 건강 상태가 썩 좋아 보이는 편은 아니었기에.
삼인방은 폴 제독이 알코올 중독 때문이라도 오래 살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아무튼 이 자리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이 여성이 필요하겠군.”
나이가 들면 남자는 여성을 더는 육체적으로만 탐하지 않는다.
정신적인 교류 또한 하며 때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이를 상담받기도 하는데.
폴과 스테파니는 딱 이런 관계였다.
“그렇지. 슬쩍슬쩍 정보를 흘리며 스테파니에게 이를 암시한다면, 언젠가는 폴에게도 이 이야기가 전해질 것일세.”
이 일을 계획하기 전부터, 익문사 독일지부는 폴 제독에게 지대한 공을 들이고 있었다.
해군 내에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주장한 인물이 바로 휴고 폴이니까.
이강의 대업을 방해할 가능성이 가장 컸기에.
24시간 감시하며 폴에게 영향력을 투사하는 자가 누구이고 약점이 무엇인지까지 조사했는데.
이 사전 작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네가 잘해 줘야 할 것이네.”
폴의 애첩 ‘스테파니’는 젊은 여성이다.
겉으로는 다 늙은 해군 사령관 따위에게 목을 매는 것처럼 보이지만.
간간이 그녀의 술집에 들리는 젊은 남성들을 유혹하여, 재미를 보기도 했는데.
익문사는 비교적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았으며 서구적으로 생긴 나상기라는 요원을 이 술집에 투입해, 스테파니와 정분을 쌓게 했다.
“술자리 도중 도중에 레닌에 관한 이야기를 흘리게나. 이런 좋은 카드가 독일에 있는데 이를 왜 쓰지 않냐며 말이야.”
“예.”
나상기는 정보요원이다.
자신의 신분을 곧이곧대로 밝히는 멍청이는 아니었기에.
그는 독일의 조차지 칭다오에서, 잘나가는 중국인 사업가 우 씨로 신분까지 위조해 두었다.
그랬기에.
나중에 꼬리가 추적당하더라도, 이쪽과 엮일 일은 없어 보였다.
이위종은 그러한 나상기에게 한 가지를 더 주문했다.
“만약 일본이었다면 이를 즉시 활용했을 텐데 하며, 이 말 또한 계속해서 반복하게나.”
“독일인들의, 아니지 카이저의 일본 콤플렉스를 상기시키라는 뜻입니까?”
“그래.”
청일전쟁 이후, 청인과 일본인들의 관계는 한인과 일본인만큼이나 나빠졌다.
21개조 요구는 이를 더욱더 증폭시켰고.
칭다오에서 건너온 우 씨로 알려진 나상기가 일본을 언급하는 것은 어색하지 않은 아주 자연스러운 대화였기에.
이위종은 이 대사까지 추가하라고 말하며 나상기의 손을 꼭 잡았다.
“알겠습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그래. 내 자네만 믿겠네.”
* * *
“이 특별위원. 어서 오십시오.”
술집에서 근무하던 또 다른 여성의 제보로.
사흘 전.
스테파니가 폴과 무언가 깊이 있는 대화를 했다는 사실이 삼인방의 귀에 포착되었다.
“이쪽에 앉으시지요.”
이에 이상설은 바로 폴과 약속을 잡았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뻔했기에, 그동안 차일피일 만나는 것을 피해 왔는데 말이다.
더는 약속을 미룰 이유가 없어졌기에, 이상설은 기분 좋게 폴 제독의 집무실로 향했다.
“무슨 일 때문에 본인을 이 자리에 부르신 것입니까? 혹시 루마니아에서 이송되는 원유 가격을 추가로 인하해 달라는 뜻은 아니겠지요?”
이상설의 퉁명스러운 질문에 폴 제독이 자신의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하, 제 속마음을 들켰군요.”
“······.”
“우리 해군의 상황이 영 좋지 않아서 말입니다. 이 왕자님께서 조금만 아량을 베풀어 주신다면, 저희도 숨통이 조금 트일 듯합니다.”
벌써 몇 번째인가?
독일 측의 사정도 이해가 가지만, 최근 뉴욕에 독일 측 전쟁채권이 제법 많이 유통되고 있다.
이강이 전황을 실시간으로 더 머니라는 잡지를 통해 공개하며.
미국 자본가들이 이번 전쟁에서 독일이 제법 잘 싸우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그건 곤란한데 말입니다.”
“그러십니까?”
“예.”
“아시다시피 영국의 해상봉쇄로 아국의 상황이 별로 좋지 못합니다.”
별로 놀랍지 않은 통상적인 대화다.
독일은 자꾸 가격을 인하해 달라고 하고, 이상설은 이를 거절하고.
늘 하던 대화 패턴이었기에, 이상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노력해 보겠다는 선에서 대화를 끝마쳤다.
“이 특별위원께서 이를 잘 이 왕자님께 이야기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본론이 끝났다.
그렇다고 멀리서 온 사람을 이리 그냥 내칠 수는 없는 법.
폴 제독은 잠시 이상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나누기 좋은 대화 주제를 발견하기라도 한 모양인지.
이상설과 폴, 이 둘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테이블로 시선을 옮겼다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를 자주 즐겨 보시나 봅니다?”
“아, 예.”
이상설은 폴의 집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이 들고 왔던 신문뭉치를 그의 테이블 위에 잘 올려놓았다.
『(사설) 본디 얻어먹는 자는 선택을 할 수 없다.』
헤이그 삼인방에 의해 기고된 사설.
이것이 잘 보이도록.
폴 쪽으로 방향까지 틀어 가며 이를 배치해 둔 후, 이상설은 소파에 등을 기대며 폴 제독이 이를 질문하기를 기다렸는데.
예상대로 폴이 미끼를 물려고 입질하기 시작했다.
“여러 일간지 중 이 신문만이 과장 없이 사실만을 보도하더군요.”
“아, 그렇지요.”
폴 제독 역시 오늘 자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의 기사를 정독한 상태.
더욱이.
사흘 전, 애첩 스테파니와의 대화를 통해 오늘 사설에 거론된 한 인물에 관해 심도 있게 토론까지 해 둔 상태다.
“그렇다면 이 사설 또한 읽어 보셨겠군요.”
그럼 그렇지.
월척이군.
이상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예. 읽어 보았습니다.”
“이 특별위원께서는 이 사설을 읽어 보시고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이상설이 미간을 찌푸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굉장히 위험한 주장을 하고 있더군요.”
“그렇습니까?”
“예. 레닌이라는 자를 러시아로 보내라니······ 그자 공산당원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러한 사상범이 러시아를 활보한다면 러시아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까지 피해 볼까 우려됩니다.”
“그렇습니까? 이 왕자님께서도 그리 생각하실까요?”
이상설은 선을 그으며 이강은 이에 동의하지 않으리라고 답했다.
“그러시겠지요. 제가 전하의 뜻을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전하께서도 이를 걱정하실 것입니다. 다만.”
“다만?”
폴 제독이 이상설을 바라보며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제삼자가 보기에는 위험해 보일 수 있어도 당사자가 된다면 저 또한 그리 주장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꽤 솔깃한 제안이니까요. 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사견입니다.”
다시 한번 선을 그으며 이상설은 폴의 질문에 답했다.
이에 폴은 제법 흥미가 도는 표정으로 이를 잠시 고민하다가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 * *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것인가?”
카이저는 피곤함에 절은 얼굴로 휴고 폴 제독을 맞이했다.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지, 집무실 의자에 앉은 채로 폴 제독을 응대했는데.
휴고 폴은 프로이센 군인 특유의 딱 부러지는 자세로 카이저 앞에 선 후, 빌헬름에게 인사를 했다.
“말해 보게. 영국 해군을 단번에 무찌를, 기가 막힌 신의 한 수라도 떠올랐는가?”
도거뱅크 패배 이후,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현재 독일해군은 그들의 근거지에서 몸을 웅크리며 아까운 자원만을 소비하고 있다.
카이저가 살짝 이를 비꼬며 자극했는데, 이에 폴 제독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폐하. 지난번에도 한 번 말씀드렸지만······.”
“무제한 잠수함 작전? 에이, 그건 이전에도 말하지 않았나?”
“······.”
“뭐, 자네는 다른 장성들과 다르게, 제한적으로 잠수함을 활용하자고 주창하고 있네만······ 내가 보기에는 그게 그거일세.”
폴 역시도 군사학을 배운 놈이기에, 무제한 잠수함 작전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폴 제독은 ‘중립국’ 함선들을 제외한 체, 영국 상선들만 쏙쏙 뽑아 타격할 수 있다고 그의 주장을 조금 변경하여 카이저를 설득하는 중이었다.
“자칫, 잠자고 있는 사자의 코털을 건들 수도 있다네. 그리된다면 우리를 물심양면 도와주고 있는 이 왕자마저 나를 외면하게 될 것일세.”
이강은 이상설을 베를린으로 보내며, 카이저를 거의 가스라이팅 수준으로 설득하는 중이다.
물론.
다른 장성들이 반대 의견을 계속하여 개진하여 카이저의 마음이 살짝 흔들리는 중이나.
아직은 이강의 충고가 카이저의 뇌리에 남아 있는 상태다.
“그간 나와의 우정을 생각하여 알게 모르게 나를 도와주고 있다지만······ 이 왕자는 미국인이나 다름없는 자네. 미국 내 여론이 나빠지면, 우리와의 거래를 끊으려고 할 것일세.”
그렇기에.
폴 제독의 제안은 카이저에 의해 단박에 기각되었다.
폴 역시도 이강이 지금 독일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지난겨울에 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온 밀도 그렇고, 루마니아에서 들어오는 석유도 그렇다.
이 둘은 독일에 있어서 생명줄과도 같은 존재.
이것이 끊긴다면 원 역사 때처럼 고난의 행군을 이어 가야 했기에.
카이저와 독일 군부는 이강의 충고를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었다.
폴 역시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살짝 분했지만 더는 카이저를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리된다면 반감만 살 뿐이었기에, 그는 좀 더 기회를 보고자 했다.
“······.”
“······.”
폴의 잠시 입을 다물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자, 카이저는 폴의 그러한 행동을 지켜보며 한 가지를 착각하게 되었다.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신문들을 폴 제독이 보고 있다고 여긴 거다.
“아, 이것들.”
카이저는 살짝 헛기침을 내뱉으며 폴 제독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적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좀 알고 싶어서······ 이번 주에 발행된 신문들을 좀 모아 보라고 했네.”
폴 제독은 혼자만의 생각을 멈추고 다시금 카이저와의 대화에 복귀했다.
“아, 그러셨습니까?”
“그래.”
“무슨 내용이 적혀 있습니까?”
빌헬름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
“대부분이 내 비방이지. 나를 거의 악마화하더구먼.”
“······.”
“희대의 살인자라며 나를 전쟁광으로 몰고 있네.”
이전부터 좋지 않긴 했다.
양성애자에 마조히스트는 어느 시대에 산다고 해도 결코 환영받지 못할 성적 취향이니까.
더욱이 이전 선대 황제들과는 다르게 빌헬름은 제국주의적 확장 행보까지 보였기에.
유럽의 각국 언론은 카이저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독일군이 독가스를 살포하면서 이전보다 그 논조가 더욱더 격해졌다.
“자네도 그리 생각하나?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여기나?”
“그럴 리가요.”
폴 제독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폐하.”
“말하게. 듣고 있네.”
“전쟁을 시작한 놈들은 우리가 아닙니다.”
“······.”
“세르비아였습니다.”
폴은 계속하여 사실만을 말하였다.
“모지리 같은 러시아는 세르비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지키고자 오스트리아의 경고에도 이번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이에 우리 역시 이번 대전에 자동참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폐하께서는 동맹국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신 것입니다. 더하여 아국에 이익이 되는 선택을 계속해서 하시고 있고요.”
폴의 위로에 빌헬름은 한결 가벼워진 표정을 지었다.
이에 폴이 쐐기를 박았다.
“죽음이 만연한 이번 전쟁을 누구보다 조기에 끝내고 싶어 하시는 분이 바로 폐하이십니다.”
“······.”
“얻어먹는 자는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많은 독일인과 다른 협상국 언론인들은 독일 정부가 독가스 사용을 정당화하려고 일부러 주창한 구호라고 알고 있지만.
이 구호는 사실 약 두 달에 걸쳐서 헤이그 삼인방이 지속해서 언론에 노출한 구호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는 한국 속담을 영어 속담으로 치환한 것인데.
카이저를 만나기 전.
어제 이상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폴 제독은 지난날 했던 대화 중 이 구절이 인상에 남았는지, 이를 언급하며 카이저를 재차 설득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끌어 모아야 할 땝니다.”
“그렇지.”
빌헬름은 고개를 끄덕이자, 폴 제독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래서 적들에게 독가스까지 살포하면서 총력전을 다하고 있지 않던가? 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카드는 총동원하고 있다네.”
폴이 눈을 깜빡거리며 빌헬름을 바라본다.
카이저는 그가 그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예상이 갔기에, 먼저 선수를 쳤다.
“아, 아까도 말했지만······ 장성 중 일부가 주장하는 무제한 잠수함 작전만 빼고 난 뭐든 하고 있단 소리일세. 자칫해서, 미국인이 희생당하기라도 한다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으니까.”
“미국은 쉬이 참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적어도 다음 선거전까지는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까? 듣자 하니 반전 여론이 만만치 않은 듯합니다.”
폴은 반쯤 체념한 표정을 지어 댔지만, 입으로는 계속해서 잠수함 작전의 당위성을 거론했다.
“저 또한 이 특별위원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자가, 나아가 이 왕자가 무엇을 우려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
솔직히 잠수함 작전은 카이저도 많이 구미에 당기는 카드다.
이강이 하도 난리를 부려서 망설이는 것일 뿐이지.
카이저가 머뭇거리자, 폴이 다시금 그를 설득했다.
“폐하.”
“말하게.”
“전쟁을 조기에 끝낸다면······ 미국이 개입할 틈도 없이 이를 끝낼 수 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
“지금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써야 합니다.”
“내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은 발을 빼야 할 때.
폴은 무슨 말을 하냐는 표정을 하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제한 잠수함 작전 말고도, 다른 카드가 하나 더 남아 있긴 합니다.”
“무엇인가?”
“러시아 사상범 중 레닌이라는 극렬 좌파가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지 않습니까?”
“레닌? 그 빨갱이가 왜?”
공산주의 사상은 왕정과 궁합이 최악이다.
카이저는 흠칫, 레닌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후, 끔찍한 벌레를 본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어 댔다.
“그자를 러시아로 돌려보내시지요.”
“······그자를 트로이목마처럼 사용하라는 뜻인가?”
“예.”
폴은 그간 입수했던 자료들을 토대로 카이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금 러시아는 반년 전부터 이어져 온 계속된 패배로 내부 사정이 매우 흉흉하다고 합니다. 본래 큰 전쟁에서는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
“폐하께서 레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면, 레닌은 이에 부합하여 러시아를 크게 흔들 것입니다. 10년 전에 터진 혁명 정도만 터져도 러시아는 전쟁 능력을 크게 상실할 것입니다.”
빌헬름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
이 카드 역시도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거론되었던 전쟁 초기에 크게 한번 군부 내에서 논쟁거리가 되었으니까.
“이를 기회 삼아 단독강화 협상을 벌인다면······.”
“양면 전쟁이 종결되겠지.”
“그렇습니다. 그리되면 우리 군은 서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비단 육군뿐만 아니라 해군의 어깨 또한 가벼워질 것입니다.”
단지 꺼려지는 것은.
이로 인한 나비효과가 얼마나 크게 발동할까이다.
자칫.
레닌의 영향력이 커져 독일에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격이 될 테니까.
“내부 단속을 제법 잘해 놓았기에, 그 여파가 아국에까지는 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빨갱이 놈들을 누구보다 혐오하지만, 지금은 아국의 승리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몇 번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었다.
여태껏 실패만 해왔기에.
폴 제독은 레닌 역시 러시아로 돌아가서 불쏘시개 역할만 하리라 생각했다.
“흠······.”
독가스 카드는 반만 성공한 카드다.
제한적인 환경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카드.
더욱이 시간이 흐르면 적들도 독가스에 대응할 방독면 장비를 갖추게 될 것이기에.
게임체인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카드는 아니었다.
‘이대로 장기전으로 가면 필시 우리 독일제국이 불리해진다.’
비난까지 감수하며 독가스 카드를 사용한 것 또한 이 때문.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만지작만지작하기 전에 모든 카드를 사용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아직 생각도 하고 있진 않지만, 만약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승인한다면.
이강에게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좀 더 고민해 보겠네. 자네는 이만 물러가 보게나.”
“예.”
카이저로서는 레닌 카드는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필살 무기였다.
원 역사대로라면 카이저는 1916년에 되어서야 이를 활용하게 되지만.
그는 레닌을 어떻게 활용한다면, 독일에 이롭게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협상 조건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레닌이라······.”
< 찬밥, 더운밥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