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54)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54화(254/392)
< 두 번째 겨울 (2) >
“왕자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무언가를, 다시금 제자리로 돌려놓겠습니다.”
다프네 대사가 목적어를 의도적으로 생략하며, 이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에 나는 사이사이 빠진 단어가 무엇일까 유추하면서 잠시 눈알을 굴렸다.
‘내가 귀하게 여기는 무언가라?’
사람 말을 본디 끝까지 들어 봐야 한다.
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에서 저절로 행복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앞뒤 맥락을 자르고 이 문장만 곱씹으면, 가슴이 두근거리니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당연하게도 대한제국의 ‘외교권’이다.
일본제국에 빼앗긴 이것을 되찾으려고, 별의별 똥꼬쇼까지 다해가며 퍼즐을 하나씩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외교권일 리는 없겠지.’
적어도 지금 이 타이밍은 아닐 터.
더욱이 프랑스 전쟁채권을 잘 봐 달라는 이 정도 협상 조건 아래에서는 더더욱 아닐 테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겨우 그 정도 가치일 리는 없으니까.
‘외교권이라는 주제가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오려면, 적어도 이 년 정도는 시간이 더 흘러야 할 거다.’
정말이지.
기나긴 전쟁으로 전쟁의 ‘전’ 자라는 글자만 봐도 신물이 날 때.
더하여.
협상국에 패전의 그림자가 가까워져서 이판사판 모든 카드를 다 꺼내어야 할 때나 거론되겠지.
그만큼 어려운 일이며 프랑스의 다른 식민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쉽게 거론될 수 없는 주제니까.
‘엉큼한 새끼.’
바로 말해 주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연상하게 하는 화법을 쓰네, 아주.
은연중에.
프랑스가 대한제국의 외교권 회수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내게 어필하기 위해서일까?
‘여기서 내가 아마추어같이 외교권이라는 단어를 들먹이기라도 한다면?’
진짜로 다프네의 의도에 넘어가는 꼴이다.
입 밖에 꺼내는 순간 내가 ‘을’이 될 테니까.
아! 이 왕자는 아직도 고국을 잊지 못하고 있구나.
그렇다면 외교권이라는 카드로 한껏 빨아먹어야겠다.
라고 생각하겠지.
거머리 같은 놈들은 내 곳간이 텅텅 비어 갈 때까지 절대로 이를 놓아주지 않으리라.
희망 고문을 계속하면서.
‘속지 않는다.’
영국도 영국이지만, 프랑스 또한 한 혐성질 하는 국가니까.
나는 눈에 힘을 팍 주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제법 궁금하군. 그래, 내게 무엇을 돌려줄 생각인가?”
“······.”
나는 상대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고 말을 아끼며.
다프네가 무슨 카드를 준비했나 살짝 궁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프네는 ‘그럼 그렇지. 역시 만만치 않군’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동시에 한 달 전 일을 언급하며 입을 뗐다.
“지난달에 뉴욕에서 대한제국 관련 전시전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그랬었지? 아마.”
다프네는 내 아내였던 에델이 주축이 되어서 치렀던 지난 행사를 재차 언급했다.
“왕자님께서는 물론이고, 이 왕자비께서도 이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지.
에델은 결혼한 이후에도 이쪽 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처녀 적에 배워 두었던 지식을 활용할 수도 있고.
재산도 불릴 수도 있으며.
사회적으로 여러 고위층과 교류를 할 수도 있다.
‘더불어 한 달 전에 개최했던 기획전처럼 대한제국 또한 알릴 수 있지.’
목적은 다르지만, 에델 역시도 대한제국의 진정한 독립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최근의 행동 또한 다 목적이 있어서 나를 도왔을 터.
다프네는 이에 에델이 개최했던 행사에서 보았던 문화재들을 거론하며, ‘내게 반환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밝혔다.
“아국의 대통령께서는 본국 내에 보관 중인, 대한제국 관련 문화유산을 왕자님께 매각하고자 하십니다.”
“대한제국 관련 문화유산이라면?”
“약 오십 년 전에 프랑스와 대한제국이 크나큰 오해 때문에 한 번 전쟁을 벌인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서 아군이 강화도에 있던 문화재들을 대거 파리로 이송했었는데 말입니다.”
재미교포 2세로 살아왔기에, 나는 굵직굵직한 한국사만 안다.
하지만 이강의 기억 또한 내 머릿속에 남아 있고.
빙의한 후에도 조선의 지난 역사를 공부할 수 있기에.
개항 전.
두 번의 외침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 병인년에 일어났던 사건 하나를 언급했다.
“외규장각에 보관 중이던 기록물들. 그것들을 프랑스군이 가져갔었지. 그때의 일을 말하는 것이로군.”
“예. 그렇습니다.”
“이제라도 그것들을 반환할 셈인가?”
다프네가 고개를 저으며, 방금 내가 했던 말 중 단어 하나를 정정해 주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대통령님께서는 파리에 있는 대한제국의 문화재를 이 왕자님께 매각하고자 하십니다.”
나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반환이 아니고 매각이라?”
“예.”
“그때 약탈한 문화재 역시 적법한 절차를 통해 매입했다고 주장할 생각이로군.”
“······.”
“그래서 반환이라는 용어 대신에 매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거고.”
일본의 낭인들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나를 해하려고 시도했던 것이 있다.
이때 일본은 내게 보상금을 제공하려고 했다.
배상금이 아니고.
‘사소한 단어 차이지만.’
이 사소한 단어 차이가 전례가 되어서 나중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고려하여서, 반환 대신 정부 자산 매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려고 시도 중이다.
“뭐, 프랑스의 입장도 이해가 가네. 프랑스에 수도 파리에는 세계 각국의 문화재들이 즐비하지 않던가?”
살짝 비꼬는 듯이 다프네 대사를 바라보며 답했다.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저들은 도둑놈이고 나는 피해자다.
도둑놈들이 본래 빼앗아 간 것을 돌려주기는커녕, 이를 제값에 팔아먹는다고 하니.
당연하게도 화를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일 터.
“······.”
“······.”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날이 선 반응에, 다프네 역시도 당황하여 입을 꾹 다물었으니까
“음, 프랑스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네.”
“······.”
“작금의 세태가 다 그러지 않던가? 약한 놈이 병신이고 머저리지. 아니꼬우면 힘을 길러야 하는 게 이 세상의 돌아가는 원리고.”
파리에 있는 외국 유물 중 8할 이상이 불법으로 수집된 유물일 터.
태반이 남의 무덤을 파헤친 후, 이를 도굴한 것들이거나, 원래 주인들에게서 약탈한 문화재들일 거다.
내게 이를 반환한다면 줄줄이 사탕으로 나중에 이것들을 돌려주어야 할 터.
‘의외로 문화재에 목숨 거는 미친놈들이 이 시대에도 즐비하니까.’
내 최종 목적은 이를 돌려받는 것이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쉽게 풀어 나갈 수 있는 일을 비비 꼬고 싶진 않았기에, 나는 자세를 고쳐잡고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그래. 내게 이를 팔겠다고 했는가? 그래. 얼마에 팔겠다는 것인가?”
“천만 프랑을 제시하였습니다.”
“천만 프랑이라······.”
20세기 초는 금 본위 시대다.
환율 또한 고정되어 있었는데, 1파운드에 약 4달러였다.
‘1파운드는 곧 8엔이고, 10루블이며 16마르크지.’
유럽연합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
프랑스의 화폐단위는 프랑이었다.
환율비는 1파운드당 25프랑.
‘약 백육십만 달러라는 소리군.’
비싸면 비싸다고 볼 수 있으나, 싸다면 싸다고 볼 수도 있는 가격이다.
‘제값 주고 팔겠다는 거네. 그러니까.’
뭐, 그래도 이게 어디야.
문화재를 보관하는 지하 창고들.
그 안에 들어갔다가 다시금 해당국으로 돌려보내지는 경우는 정말이지 극히 드물다.
외규장각에서 약탈한 문화재들이 금붙이나 왕관, 불상, 보석들이 덕지덕지 붙은 보검이었다면 이리 쉬이 반환되지도 않았을 터.
해석하기도 힘든 한자로 가득한 고서적들이 즐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는 슬쩍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구미가 당기는 것을 숨기진 않았다.
“그래. 좋네. 내 그 가격에 사들이도록 하지. 그 대신 내 소유의 은행들에 프랑스 채권 판매를 독려하도록 하겠네.”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히죽히죽 웃고 있는 다프네 대사를 향해 내가 추가 제안을 더 했다.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말씀하십시오.”
“정부 소유 말고도 민간에 보관 중인 아국의 문화재들이 제법 있지 않은가?”
“예. 그렇지요.”
“이것들도 사들이고자 하는데 말이야.”
“아······.”
“파리에서 이와 관련하여 경매를 한번 열고자 하네. 엘리제궁에서 협조 좀 해 준다면 성황리에 끝날 것 같은데 말이야.”
다프네가 제 가슴을 치며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어 댔다.
“그 정도야 제 역량으로 제안해 볼 수 있는 사항입니다.”
“고맙네.”
두 번째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프랑스는 이 겨울을 나기 위해, 지하 창고 속에 보관했던 각종 유물들마저 꺼내고 있는 상황.
‘다음 해에는 어떤 것을 내놓으려나.’
올해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내년은?
내후년은 또 뭘 내놓을까?
나는 속으로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다프네 대사를 바라보았다.
이에 다프네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또 부탁할 것이 있냐는 물음을 내게 해 댔다.
* * *
다프네와 헤어진 지 약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실무진들 사이에서 추가로 협상이 이루어져야 했기에, 빼앗겼던 외규장각 도서들은 아직 파리에 있다.
하지만 조만간 내가 있는 워싱턴으로 문화재들이 이송될 것이기에, 이 문제는 더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이 왕자님, 어서 오십시오.”
지금 집중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미국 대통령인 휴즈가 또다시 나를 백악관으로 초대했기 때문이다.
“뭔가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백악관에 방문한 벌써 네 번째.
그중 휴즈가 집주인으로 있을 때, 세 번이나 들렀다.
나는 지난 기억을 회상하며 바뀐 백악관 내부 전경을 구경했다.
“제 집사람이 매우 부지런하여서 이것저것 내부 장식을 바꾸곤 합니다.”
“우리 마누라도 그러는데, 여자들은 다들 그런가 봅니다.”
“하하, 그렇군요.”
휴즈는 이전의 두 차례 방문보다도 나를 더욱더 친근하게 대했다.
지금도 봐라.
바로 독한 브랜디를 건네며 시가를 옆에서 뻑뻑 태우고 있지 않은가?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나는 그런 휴즈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건강을 걱정했다.
“많이 피곤해 보입니까?”
“예. 어째 눈그늘이 더 짙어진 것 같습니다.”
다가오는 선거 때문인지.
아니면, 최근에 발생한 사건 때문인지는 몰라도.
휴즈는 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듯했다.
“후-”
휴즈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내게 속내를 밝혔다.
“결국 우려 했던 일이 터지지 않았습니까?”
“······미국 시민 다섯이 판초 비야의 반군 손에 사망한 사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휴즈의 집무실에는 신문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멕시코 반군의 미국민 사살 소식을 제1면으로 보도되어 있었는데.
휴즈는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판초 비야 그 자식, 우리 미국인들을 약탈자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놈들,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또다시 국경을 넘어서 우리 미국인들의 재산을 약탈할 것입니다. 그리된다면······.”
또다시 희생자가 생길 거고.
이 모든 비난은 대통령에게로 향하리라.
휴즈가 미국의 총책임자니까.
“대통령님께서는 이 위기를 잘 극복하실 것입니다.”
나는 휴즈를 위로하며 그를 달랬다.
“민주주의와 거대 자본, 이 두 가지 선택지에서 결국 정의를 선택하지 않았습니까?”
“······.”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의에 편에 서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휴즈가 우에르타의 독재를 그대로 방관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우에르타는 독재자지만 치안 관리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수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휴즈는 인접 국가의 독재를 방관하기보단 그를 끌어내렸다.
결국, 이번 사건은 휴즈의 결정으로 시작된 나비효과라는 말.
일부 여론이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중이었기에, 휴즈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테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멕시코에도 미국에도 이득이 되는 결정이었기에.
나는 휴즈를 지지하며 눈앞에 닥친 비판 여론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이 왕자님.”
“말씀하십시오. 대통령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이요?”
“예. 티후아나에 이 왕자님의 사병이 있지 않습니까?”
아아.
티후아나에 있는 군사학교 생도들을 말하는 건가?
그동안 정부군, 반군.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중립을 유지했었는데 말이다.
더는 가만히 있지 말라는 말이로군.
“아국의 생도들을 용병 삼아 판초 비야의 반군을 함께 퇴치할 생각이시군요.”
“예. 그렇습니다.”
휴즈는 눈에 힘을 꽉 주며 나를 바라보았다.
“도와주시겠습니까?”
“당연하지요.”
미군과 합동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면, 나야말로 땡큐지.
언제 이런 우애를 쌓겠는가?
“다른 이도 아니고, 대통령님의 부탁입니다. 힘쓸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여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는 법.
“아!”
휴즈가 브랜디를 홀짝이다가 말고 나를 바라보았다.
“요즘, 필리핀 자치권 확대 문제에 관해 의회에서 논의 중인데 말입니다.”
“예.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왕자님께서는 기본적으로 필리핀 자치권 확대 문제에 관해 찬성하시는 처지시지요?”
“예.”
휴즈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좀 더 이야기해 보라는 식의 무언의 제스처를 내게 보였다.
이에 내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기본적으로 먼로주의를 지향한다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식민지를 만드는 일은 이 전통적인 외교정책에 맞지 않습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이를 수소문한 결과, 휴즈는 필리핀 자치권 확대 문제에 관해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
정말이지 백지라는 말.
이에 나는 순백의 도화지에 나만의 생각을, 휴즈를 대신하여 그려 볼 생각이었다.
“남미나 중원의 사례처럼, 오히려 아무도 주인이 없는 경우가 오히려 미국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흠.”
“이 두 지역에서의 시장 점유율을 생각해 보십시오. 식민지 운용 비용 하나 없이 미국의 상품이 해당국에서 얼마나 잘 팔립니까?”
< 두 번째 겨울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