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55)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55화(255/392)
< 두 번째 겨울 (3) >
방금 내가 내뱉었던 말들은 전부 사실을 기반으로 한 주장들이다.
그랬기에 나는 하나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톡 까놓고 비교해 보십시오.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는 중국이나 남미와 달리, 필리핀은 어떻습니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휴즈를 향해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계속하여 열변을 토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통치 비용만 증가하고 있다지요? 투자한 것에 비해 뽑아낸 이익은 현저히 낮다 들었습니다.”
근 20년간.
미국은 필리핀을 통치하면서 막대한 손해만 보고 있었다.
물론 재정적인 측면만 볼 수는 없다만, 숫자놀이를 유독 좋아하는 뉴욕의 자본가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투자처라고 볼 수 있다.
온전히 회계 장부만 본다면, 다 망해가는 적자 좀비기업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 테니까.
“대통령님.”
“예. 이 왕자님.”
무언가.
고민이 많아 보이는 휴즈를 향하여, 내가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았다.
“혹, 필리핀을······ 하와이처럼 미국령으로 편입하실 생각이십니까?”
휴즈는 나의 질문에 브랜디를 홀짝이는 행동을 잠시 그만두었다.
옆에서 보고 있자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얼어붙은 것처럼 행동했다.
“설마요.”
휴즈는 들고 있던 술잔을 집무실 탁자 위에 탁-하고 올려놓으며, 살짝 긴장이 풀린 눈빛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런 정치적 자살 행위를 제가 하겠습니까?”
그렇지.
그리 반응할 수밖에.
자국의 영토가 늘어나는 것은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무릇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이후 후폭풍 또한 고려해야 하는 법.
‘20세기 초, 미국의 주류 인종은 백인들이지.’
그에 반해 필리핀에 거주하고 있는 현지인들은 동남아 인종이고.
숫자도 엄청나다.
무려 천만이나 된다.
미국의 인구가 1915년을 기준으로 막 1억을 돌파했다지만, 아직 서부는 텅텅 비어 있는 상태.
‘오죽하면, 서부가 동양인들에게 먹힐까 두려워하겠어.’
원 역사에서는 이 때문에 동양인들의 이민이 20세기 초에 전면적으로 막힌다.
그나마 내 선행으로 인해 미국인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한인들만이 서부로 이민을 계속 오고 있는 상황.
나머지 동양인들은 원 역사대로 진즉 이민 길이 막혔다.
‘나 또한 서부에 정착한 미국인들의 눈치를 보며, 신규 이민자들을 가려 받고 있지.’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 희망자가 원체 많아서다.
그렇기에 일부를 필리핀이나 멕시코 북부로 돌리고 있다.
‘이미지 좋은 한인의 미국 이민도 현지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데.’
천만의 필리핀인들이 미국 시민권자가 된다고 생각해 봐라.
한번 시민권을 부여하면 그 뒤로는 끝이다.
미국의 시민들은 이동의 자유가 있기에, 필리핀 열도가 아닌 본국으로 이주를 택할 자유가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서부를 비롯한 기존 미국 시민들의 반발을 사게 될 터.
이런 정치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 한, 미국이 필리핀을 합병하는 일은 없을 테다.
“혹, 농으로나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농담이 아닙니다.”
나는 그런 휴즈를 바라보며 질문의 의도를 밝혔다.
“합병할 생각이시라면, 계속해서 필리핀에 재정을 투입하라고 권하고 싶었습니다.”
“······.”
“그런데 아니라고 말씀하시니, 더더욱 자치권을 확대하라고 주문하고 싶군요.”
왜 이리 연방 예산만 축내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며 휴즈를 설득했다.
“현지인들에게 더 폭넓은 권한을 위임하며 자치권을 확대하십시오. 더 나아가 종국에는 그들을 미국에서 독립시키십시오.”
그리고 일본과 맺었던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끊으십시오.
물론 마지막 말은 속으로 삼켰다.
내 의도를 대놓고 보여 줄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 않으니까.
“지난날, 쿠바처럼 말입니까?”
잠시 고민하던 휴즈가 한 사례를 떠올렸다.
“예.”
쿠바는 필리핀과 달리 미국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섬이다.
이를 지배했던 스페인에 수십 차례 매각을 문의할 만큼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 섬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정작 전쟁에서 이를 전리품으로 받았을 때는 똥볼을 차 버렸지.’
바로 합병하거나.
혹은 텍사스나 캘리포니아처럼 준주로 일단 귀속시킨 후.
자국 영토로 편입했으면 좋았겠지만.
미국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제국주의적 야심이 없다는 것을 외국에 강조하기 위해, 쿠바를 그냥 독립국으로 풀어주는 희대의 결정을 내렸다.
알래스카를 그 값싼 가격에 사 왔던 그 미국이 맞나 싶을 정도의 악수를 두었던 것인데.
이 시대 지도자들은 아직 이를 최악의 선택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다.
휴즈 역시도 마찬가지고.
“그제 상무장관은 물론이고 재무장관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하던데 말입니다.”
“아, 그랬습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
상무장관은 내가 추천해서 세운 대리인이고, 재무장관은 뉴욕 자본가 출신이니까.
‘방금 내가 내뱉은 주장들은, 사실 월가 기업인들의 머릿속에서 시작되었지.’
예나 지금이나 뉴욕의 자본가들은 돈만을 생각한다.
오로지 머릿속에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구호만이 가득할 뿐.
다른 사상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고 보면 된다.
‘지도에 색칠 칠하는 놀이는 정치인들이나 좋아할 만한 행동이지.’
월가의 자본가들은 이를 썩 내켜 하지 않았기에, 나와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이 후원하고 있던 언론들도 비슷한 어조로 논평을 내곤 했다.
뭐, 아직.
일반 시민들은 그리 생각하지는 않고 있지만.
어쨌든.
“예. 왕자님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셔서, 제법 놀랐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휴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살짝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깔았다.
“본인은 대한제국에서 태어난 왕자이지만······ 고등 교육만큼은 미국에서 받았습니다.”
“아! 알고 있습니다. 우리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셨다 들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적어도 정신적인 면만을 본다면, 반쯤은 미국인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휴즈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한다.
더욱이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니었기에, 거침이 없었다.
‘몸뚱이는 몰라도, 속 안에 있는 알맹이는 박병준이니까.’
재미교포 2세기에, 반쯤은 현대 미국인의 사상을 지니고 있다.
그랬기에 양심에 찔리지 않는, 당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하, 그렇군요.”
이에 휴즈가 굉장히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댔다.
한 나라의 왕족이 스스로 명예 미국인이라는 것을 선포하며, 사적인 자리이지만 자청하여 자신을 친미파라고 밝힌 꼴이니까.
이를 싫어할 만한 미국 정치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흠흠.”
오늘따라 유난히도 입을 많이 떠벌려 댔다.
그래서일까?
목이 많이 말랐다.
“아, 술잔이 비었군요.”
이에 휴즈가 자신에 옆에 놓여 있는 브랜디 병을 집더니, 이를 내게 따라 줬다.
“감사합니다. 그, 그만. 이거, 너무 많습니다.”
휴즈는 피곤하지만,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후 자신의 잔을 내 잔에 살짝 부딪히며 다음 말을 했다.
“제 애정이라고 생각하고 드십시오.”
“허. 이거 자칫하면 가득 차다 못해 넘치겠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오늘 백악관에서는.
대화 내내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다.
잠깐 심각한 주제를 토론할 때만 가끔 서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이는 휴즈와 내가 개인적으로 매우 친해졌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본인은 이해당사자기에 대놓고 일반 대중들에게 이를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다지만, 대통령님과 본인은 매우 가까운 사이니······ 이런 이야기를 속 시원히 나눌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개인적 친분을 계속하여 강조하며, 다른 사심은 없다고 휴즈를 안심시켰다.
“본인의 주장은 미국에 이득을 줬으면 줬지 해를 안겨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작금의 정책이 영국이나 프랑스의 영향력 축소에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휴즈는 잠시 나를 바라보며 내 표정을 읽는 듯했다.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진심을 이해해 줬다.
“압니다. 왕자님 말씀대로 왕자님께서는 반쯤 미국인이시니······ 대한제국 다음으로 미국을 생각해 주시고 계시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휴즈는 이전에 나누었던 필리핀 문제를 잠시 고민하며 내게 물었다.
“필리핀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 조건이 필수적으로 이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물론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아무리 좋은 정책도 기본 전제라는 것이 필요한 법.
“하지만 미국은 이를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예. 역량은 이미 충분하다 못해 넘치니까요.”
한참 내 이야기를 경청하던 휴즈가 다시금 제 입에 담배를 물며, 내게 물었다.
“그 선결 조건이라는 것 말입니다.”
“예.”
“왕자님께서 말씀하신, 해당 지역 내에 영향력을 투사할 만한 힘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겠죠?”
“예. 문화적인 힘과 군사적인 힘이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흠.”
휴즈의 시선이 우측으로 돌아갔다.
세계지도를 보며 휴즈가 아까 했던 말을 이어 갔다.
“아프리카는 몰라도 신대륙에서는 우리 미국이 최강이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중원 역시도 영국과 비등해지고 있고.”
영국과 독일이 상대방의 발목을 잡으며 제살깎아먹기를 하고 있으니까.
더욱이 파나마 운하가 개통하며, 신대륙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은 확고해졌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다만?”
“한 국가를 경계하셔야 할 것입니다.”
“한 국가라면, 아!”
최근에 갈등을 겪고 있는.
한 국가를 생각하며, 휴즈가 눈살을 찌푸렸다.
“국무장관이 말하길, 요새 골칫덩이가 하나 늘었다던데······.”
맞다.
지금 휴즈가 가리키는 세력은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을 어찌 처리할지.”
휴즈는 나를 바라보며, 지난날 일본과 좋았던 시설을 회상했다.
* * *
“이전 정부 때까지는, 제법 사이가 좋았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그렇지.
그래서 태프트 그놈이 가쓰라와 밀약까지 맺지 않았나?
“뭐, 그때는 일본을 옥죌 목줄이 존재했었으니까요.”
나는 이를 평가절하했다.
굳이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게 하면서 다시금 일본과 미국이 친해질 계기를 마련하고 싶지 않아서다.
“일본은 열강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기형적인 재정 구조를 보여서 그동안 백악관과 다우닝가가 이를 잘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치만,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예. 이번 전쟁은 미국에도 많은 부를 안겨 주었지만, 저기 태평양 건너에 자리한 일본에도 막대한 돈뭉치들을 안겨 주었습니다.”
미국은 세계대전을 통해 빚쟁이에서 빚을 추심하는 알부자가 되었지만.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은 과도한 국가 채무 때문에, 미국과 영국의 비위를 맞춰야 했으나.
일본은 지금 그러한 족쇄에서 벗어난 상태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그동안 눈치 보며 살았던 것을 한풀이하듯이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미국은 달라진 일본의 모습에 경악하며, ‘저놈이 왜 이러나, 약이라도 처먹었나?’ 하는 눈빛으로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대통령 각하.”
“예. 이 왕자님.”
“제가 일본을 꾸준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각하께서도 익히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휴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지요. 이해당사자시니 그러실 수밖에요.”
“최근, 일본이 막대한 군함 건조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는데 말입니다.”
중대한 비밀을 알려 주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처음으로 관련 정보를 휴즈에게 거론했다.
“구, 군함, 건조요?”
“예.”
역시나.
이 시대 미국은 경제 규모만 커졌지, 아직 이류 국가였다.
이러한 정보도 아직 입수하지 못했나 보네.
“일명 88함대 계획이라고 합니다. 전함 8척과 순양전함 8척을 건함할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일본의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계획이지만.
실제로 도쿄에서 이러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에, 나는 거리낌 없이 이를 휴즈에게 알렸다.
“단순 계획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
“최근에 중화제국과 21개조 조약을 체결하지 않았습니까? 이를 확고히 할 목적으로 다시금 군비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에.
휴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표정을 지어댔다.
“무리해서라도 중국을 기어코 삼키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일본이······ 일본이 말입니까?”
“예. 그렇다고 합니다.”
아무리 친해도.
나는 일본이 관련되어 있으면 이해당사자가 된다.
휴즈는 나를 믿지만, 일본과 관련된 정보를 건네줄 때면 굉장히 신중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역시도 마찬가지.
“관련 자료를 해군 장관에게 검토해 보라고 하겠습니다.”
“예.”
원 역사에서도 미국과 일본은 태평양 제해권을 두고 서로 경쟁적으로 군비경쟁을 벌였다.
이번 역사에서도 마찬가지겠지.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소리다.
‘하지만 내가 이를 부추긴다면.’
더욱이 악화하는 둘 사이를 교묘하게 이간질한다면.
일본과 미국과의 관계가 상상 이상으로 나빠지지 않을까?
“오늘은 이만······ 이쯤에서 끝내도록 합시다.”
“예. 그리하지요.”
막판에 꺼낸 주제 때문일까?
휴즈의 평온했던 마음은, 마치 거대한 돌멩이가 연못 속에 투하된 것처럼 일렁거렸다.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휴즈를 뒤로하며 네 번째로 방문했던 백악관 일정을 마무리했다.
< 두 번째 겨울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