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59)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59화(259/392)
< 모두가 배고픈 시기 (2) >
스미스 국장이, 제 손에 들고 있던 서찰을 내게 건넸다.
이에 나는 편지를 건네받으며.
놓친 것이 없나, 눈에 보이는 편지 봉투 겉면부터 다시금 찬찬히 훑어보았다.
‘진짜로, 다우닝가가 보낸 것이네.’
편지 봉투 앞에 찍혀 있는 인장과 봉인씰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허버트 애스퀴스에게서 왔다고.
빨리 읽어 보라고.
재촉한다.
‘이전에도 보았던 서체로군.’
안에 있는 속 편지지에서도 애스퀴스의 향기가 짙게 풍겼다.
서체에서 그만의 특정 패턴이 계속해서 보였으니까.
으-
나는 안에 적힌 내용을 읽기 위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집중해야 했다.
‘악필은 여전하네.’
아오!
일국의 총리 되는 자가 악필이라니.
이래서야, 그 안에 있는 내용을 제대로 해석하기 힘들잖아.
‘앞은 빠르게 스킵하고.’
1/3 정도 되는 구간에 들어서자, 드디어 본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영국의 국채라······.’
현재 영국 정부는 전쟁채권 판매에 관해 로스차일드 남작에게 전적으로 위임한 상태다.
로스차일드는 미국의 모건 가와 손을 잡고 수수료를 챙기고 있고.
‘지난해 더 머니가 발간되며 영국 국채 판매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지.’
유럽의 전황이, 실시간으로 미국인들에게 보도되고 있다.
이에 가장 타격을 입은 나라는 바로 영국이다.
그동안 쌓았던 이미지 하나로 프리미엄을 구축하지 않았던가?
영국은 미국 시민들에게 있어, 막연하게 믿고 투자할 수 있는 국가였다.
기축 통화국이자, 그간 가장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 왔으니까.
하지만 영국 국채에 대한 믿음은 더 머니의 보도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선방했지만, 갈리폴리 상륙 실패 사건으로 크게 흔들렸지.’
그전까지는 미국의 대형 금융기관들이 앞다투어 영국 국채를 매입했었지만.
약 70만 명이 사상자가 발생한 갈리폴리 사건으로 영국의 국채 판매 속도는 빠른 속도로 급감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군대라고 믿고 있던 영국군도 졸전을 펼칠 수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더 머니를 통해 미국인들이 학습했으니까.
더욱이, 몇 번 이런 실수를 더 연발하면.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협상국 또한 한 방에 갈 수도 있다는 예상이 뉴욕 자본가들 사이에 퍼지면서, 영국 국채는 더는 안전자산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12월이긴 하지만 지금은 1915년인데 말이다.’
프랑스보다는 늦지만, 자존심 강한 영국이 생각보다 더 빠르게 내게 손을 내밀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른 유럽 국가들만큼 곤궁하지는 않지만, 영국 정부 역시 슬슬 입이 바짝 마르며 초조해지는 중이다.
‘전쟁 1년 만에, 순 채권국에서 채무국으로 그 위치가 바뀌었지.’
더욱이 협상국에 파운드화를 열심히 뿌려 대고 있는데도 전황에는 진척이 없다.
애초에 3개월이면 끝날 것이라는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 가고 있으며.
믿고 맡기었던 로스차일드 남작은 전쟁채권을 예상보다 부진하게 판매하고 있다.
‘그러니 그 콧대 높은 영국 정부가 내게 손을 내밀겠지······.’
지금은 배고픈 시기니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손을 벌려야 한다.
자칫하면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기에, 애스퀴스는 그동안 외면해 왔던 나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 읽어 보셨습니까?”
내가 탄 자동차는 진즉 도착지인, 57 스트리트에 있는 체스터 호텔 앞에서 멈춰 있다.
하지만 스미스 국장은 내 차에서 바로 내리지 않고, 나를 유심히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아국의 총리께서는 지난 실수를 덮고, 왕자님과 미래를 함께 그리고 싶어 하십니다.”
“그 시작이······ 우리 은행에서의 영국 전쟁채권 판매다?”
“예.”
전쟁채권 판매는 막대한 이득을 안겨 준다.
판매 수수료만 해도 어마어마하니까.
원 역사에서 미국에 뿌려졌던 전체 전쟁채권 규모가 무려 140억 달러다.
그중 영국의 국채가 다수를 차지했는데, 현재 로스차일드와 모건이 독점하던 이것들을 나 또한 판매하게 될 수 있다면.
이번 조치로 상당량의 부를 쌓을 수 있게 되리라.
“나는 그 이상을 원하는데.”
“······.”
몇 번 대화를 통해, 내 의사를 직접적으로 스미스에게 전했다.
통제 불가능해진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나를 이용해라.
기꺼이 이용당해 주겠다.
이러한 이야기를 차 안에서 몇 번이고 해 댔기에, 스미스 국장은 내가 뭘 원하는지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송구하지만, 지금은 이 왕자님께서 원하시는 답변을 제가 차마 해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뭘 원하는 줄 알고?
라고 묻고 싶지만.
대놓고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를 자처해서 가는 꼴이다.
입을 꾹 다물며 스미스-커밍 국장을 노려보자, 그가 여지를 남겼다.
“적어도, 현 총리께서 총리 자리에 앉아계시는 한은 힘듭니다.”
“차기 총리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뭐, 그럴 수도 있겠고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혐성을 자랑하는 영국인들.
그중에서도 최고 수괴 중 하나인 자가 바로 스미스-커밍이다.
기다, 아니다.
딱 잘라서 말하지 않고 두리뭉실 넘어가는 것이 정말이지 구렁이가 담장을 넘어가듯 유연했다.
“한 가지는 확언할 수 있습니다. 차기 총리로 거론되시는 분은 현 총리보다는 좀 더 유연한 사고를 지니셨습니다.”
마지막 말을 하지 않았으면 크게 실망했을 거다.
하지만 희망을 보았기에, 나는 팔짱을 풀고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스미스 국장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전 재무부 장관이자, 현 탄약부 장관을 수행하고 있는 로이드조지 장관을 지칭하는 것인가?”
“······.”
“······.”
이번에도 스미스는 묵묵부답으로 대응했다.
‘풍문에는, 로이드조지 장관과 현 총리가 힘 싸움을 하고 있다는 말이 돌던데.’
진척 없는 전황에 영국인들은 지쳐 가고 있으니까.
애스퀴스의 무능을 의심하며, 영국 국민은 총리 교체를 원하고 있다.
비밀정보국 국장으로서 스미스는 어느 영국인들보다도 여론의 동향을 쉬이 파악할 수 있으리라.
그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흘렸다는 것은 여론이 로이드조지에게 웃어 주고 있다는 말이고.
동시에 그 역시도 애스퀴스를 버리고, 로이드조지 라인을 타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지.
‘이번 방미 역시.’
애스퀴스보다는 로이드조지의 의중이 더 실려 있을 수도 있겠네.
‘이 집도, 집안싸움으로 복잡하군.’
살짝 머리가 복잡해진다.
동시에.
차기 총리로 급부상하고 있는 로이드조지가 평소에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운이 좋다면.
말이 통할 수도 있으니까.
* * *
서구권 최고의 명절은 누가 뭐라고 해도 ‘크리스마스’다.
개인주의 문화로 인해 성인이 되면 따로 분가해 사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이날만큼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며 온 가족이 함께 앉아 식사하곤 하니까.
청교도들의 후예였던 미국인들은 이러한 문화에 역사가 짧다는 콤플렉스가 더해져, 거의 강박적으로 집집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거대한 가족 행사를 치러야 했다.
“어머니. 저희 왔습니다.”
“퍼시니? 오오, 이사벨. 아이고 내 새끼. 그래. 이 할미가 그렇게 보고 싶었니? 이리 오렴!”
이는 록펠러 가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탠다드 오일의 창시자 존 D 록펠러.
그의 동생이자 동업자였던 윌리엄 역시도 자신이 낳은 윌리엄, 존, 퍼시의 가족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릴 준비를 했다.
“엠마 누나는 살이 더 찐 것 같네.”
“일 절만 해라.”
보통 여자들은 출가하면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지만.
엠마는 그녀의 시부모였던 맥알핀의 시가가 이른 나이가 사망하며 부재했기에, 매년 이곳에 들렀다.
“여보, 표정 좀 펴.”
“최, 최대한 피고 있어.”
동양권 국가에서는 시부모와 며느리 간의 고부갈등이 있다지만.
서양권에서는 살짝 특이하게 장모와 사위 간의 처가 갈등이 존재한다.
맥알핀 판사는 매번 자신이 주눅 들어야 하는 이유 때문인지 장인 집에 오면 종일 불편한 표정을 지어 댔는데.
이에 장녀였던 엠마는 자신 남편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잔소리를 해 대고 있었다.
“엄마, 막내는 언제 와요?”
엠마와 비슷하게 에델 역시도 이강과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에 가끔 참석했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대한제국에 갈 수 없기에.
그 대신 처가에 방문했던 거다.
“한 다섯 시쯤 들를 것 같다고 하더라.”
“하여튼, 좀 일찍 와서 엄마 좀 도와주면 안 되나?”
“뭐, 여기 며느리가 셋이나 있는데. 공주님 손에 물을 묻힐 필요가 있니? 아서라.”
“공주가 아니고 왕자비라고 몇 번을 말해요. 후- 아무튼 그 계집애는.”
각자의 집에서는 마나님들이지만, 에델의 어머니였던 엘리자 여사 앞에서는 그저 한낱 며느리들 뿐이다.
오늘만큼은 열심히 일하며 크리스마스를 기리기 위해서 요리를 하는 록펠러의 며느리들.
살짝 뾰로통한 표정으로 칠면조를 오븐에 구우며 함께 먹을 양념장을 제조하고 있다.
“할머니!”
“할머니!”
그때였다.
마당에 십여 대의 차량이 들어선 후, 다섯 명의 아이들이 에델 그리고 이강과 함께 윌리엄 록펠러의 본가에 방문했다.
“아이고 써니, 지니 이렇게 컸어?”
다섯 살밖에 안 되지만.
제법 늘씬하게 자란 두 쌍둥이.
손녀를 반기며 엘리자 여사가 두 아이를 껴안았다.
“우리 외손주도 왔니?”
뒤이어 쌍둥이들과 함께 태어난, 외장손 이현을 꼭 안아 준 엘리자가 이강과 시선을 교환했다.
사위지만 참으로 어려운 이강을 향해 엘리자 여사가 허그를 한 후.
그녀의 막내딸이 들고 있던 선물 꾸러미를 건네받았다.
“어머. 너무 이쁘다.”
“엄마, 바로 차 봐요.”
이강이 건넨 것은 번쩍번쩍 빛이 나는 장신구들이었다.
백금에 요즘에 유행하기 시작하는 다이아몬드가 수백 개는 박혀 있는 목걸이.
에델은 호들갑을 떨며 목걸이를 찬 엘리자를 향해 연신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엘리자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하기 시작했다.
있어도 계속 이쁜 것을 가지고 싶은 것이 여성의 마음이니까.
이강은 그런 장모의 얼굴을 바라보며, 함께 만족스러워했다.
* * *
현재 이강은 윌리엄 록펠러의 집무실에 머물고 있다.
장인과 앞으로 돌아갈 미래도 좀 이야기할 겸.
사업 이야기도 나눌 생각으로 단둘이 독대를 하게 된 것인데.
“이야기 좀 해.”
그때를 놓치지 않고 에델이 형제들을 소집했다.
“나, 나도?”
“그래. 엠마 언니도.”
“난 왜?”
“언니는 우리 가족 아니야?”
“······.”
에델의 부름에 록펠러의 다섯 형제가 사람이 없는 지하 창고로 향했다.
어두컴컴해서 참으로 을씨년스러웠지만.
대가족이 모인 크리스마스에, 사람이 없는 실내 모임 장소는 이곳밖에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이동하게 된 거다.
“뭔 놈의 이야길 또 하려고.”
지하기에 어둡다.
그렇기에.
왠지 모르게 나쁜 일을 꾸미는 듯한 분위기 같다.
그래서일까?
장남인 윌리엄이 팔짱을 끼며 에델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맞아. 전에도 너 이야기 들어주다가 크게 곤욕을 치를 뻔한 거, 기억하지?”
“네 말만 믿고, 백부께 반기 들려다가······ 정말이지 큰일 날 뻔했어. 막판에 왕자님께서 경고하셔서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단란했던 집안이 둘로 쪼개졌을 거라고.”
윌리엄이 나서자.
존과 퍼시 또한 힘을 내며 에델에게 대항했다.
요즘 들어.
이상하게 막내인 에델 앞에서 자꾸 주눅 들곤 했지만.
머릿수에는 장사 없다고.
셋이 연대를 하니 조금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 덕분에, 다들 한 자리씩 꿰찼잖아.”
“······.”
“······.”
“······.”
“오빠들이 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계열사, 모두 다 왕자님 소유의 계열사인 거 잊었어?”
에델은 스탠다드 오일의 창시자였던 존 D 록펠러를 거론하며 제일 앞에 나와 있던 윌리엄의 가슴을 쿡쿡 찔러 댔다.
“백부께 순종만 하고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겠어? 오 형제들을 챙겨 줬겠어? 안 그래? 우리는 그저 아버지가 상속해 준 지분만을 가지고 평범하게 살았을 거라고. 배당만 받으면서 말이지.”
막냇동생의 도발에 윌리엄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뭔데.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우리를 이리 부른 건데.”
“힘 좀 써 봐.”
“뭔 놈의 힘.”
“각자 인맥들 좀 있을 거 아니야.”
존이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에델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부탁하려고, 사람들을 만나라고 하는 건데?”
“예전에 한 번씩 받았었지?”
에델은 그녀의 형제들을 한명 한명씩 바라보며 속삭였다.
“귀족작위 말이야.”
“······!”
“······!”
“······!”
“다시 돌려받고 싶지 않아?”
에델의 형제자매들은 지난날 이강의 본국인 대한제국에서 귀족작위를 받았었다.
물론.
일본제국의 흉계가 가득한 짓이었기에, 바로 이를 반납했지만.
세간에 빠르게 이 소문이 퍼졌기에.
잠깐.
그들은 일반적인 평민이 아닌 귀족 대우를 받으며 그들이 가지지 못했던, 한 가지를 살짝 맛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기회가 찾아왔잖아. 이때를 노려야 해.”
에델은 주먹을 꽉 쥐며 제 형제자매들을 설득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고. 다들 유럽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지?”
세 형제 중 가장 수완이 뛰어났던, 존 데이비슨 록펠러 주니어가 에델에게 물었다.
“이 왕자님도 원하시는 일이야?”
이에 에델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어댔다.
“오빠.”
“그것부터 말해. 또 혼자 생쇼 하는 거 아니지?”
“왜? 왕자님께 쪼르르 달려가서 오늘 있었던 일도 일러바치려고?”
에델은 살짝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둘째 오빠를 바라보았다.
“내가 바보야? 이전에 했던 실수를 또 하게?”
“그래서······ 말했다는 거야?”
“그래. 살짝 언질은 해 두었어.”
에델은 이강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그때 이강이 그녀에게 했던 말을 상기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도와달라고 하시더라고.”
“진짜로?”
“그래. 못 믿기면 직접 물어보던가.”
에델은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가는 계단으로 향하며 입을 뗐다.
“그러니 밥값 할 때야.”
그녀는 천천히 계단을 오르다가 뒤로 한번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작위 받고 싶으면, 처신 잘해. 오빠들. 그리고 언니도.”
< 모두가 배고픈 시기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