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68)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68화(268/392)
< 러시안룰렛 (2) >
“러시아가 난리라······.”
유명 정치인들의 전화번호 목록을 손에 쥔 조지프 케네디.
그가 잠시 움직임을 멈추며, 내 말을 곱씹기 시작했다.
“아!”
3초 정도가 지났을 때.
케네디는 활짝 웃으며, 조금 전 내 지시를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어 댔다.
나는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한때 나를 반겨 주었던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차르가 최악의 악수를 두었네. 전쟁 반대를 외치며 빵을 달라는 여성과 노인들을 향해, 총탄을 퍼부었다더군.”
“저런. 지난번에도 그렇고, 니키는 중요한 순간마다 머저리 같은 결정을 내리는군요.”
그러게.
군대의 총부리는 늘 적을 향해 있어야 하거늘.
‘그리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더니, 결국에는 제 머리에 이를 쏴 대는군.’
나는 이를 살짝 아쉬워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에 수도를 방어하고 있는 장성들과 사병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네.”
“그렇겠지요. 그들이 지금 누구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겠습니까? 더불어 이번에 희생당한 자들은 필시 그들의 가족 중 한 명일 것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지프 케네디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 그러니까 시민들의 피가 길바닥에 낭자하자 병사들이 대거 이탈한 것이 아닌가? 내 가족들을 차마 내 손으로 손수 죽일 수는 없으니까.”
조지프 케네디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맞받아치며, 가까운 미래를 예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규모가 점점 더 늘어나겠군요.”
“그렇지.”
거대한 댐은 본디 작디작은 구멍 때문에 무너진다.
하나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막을 수가 없는 것이 작금의 시류.
“로마노프 왕조는 이제 끝일세. 다음 주 안에 새 정부가 들어설 것일세.”
조지프 케네디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작금의 러시아 정세로 볼 때.
기존 정부 체계가 무너진다면, 입헌군주정으로 바뀌는 정도로 그치진 않을 테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왕자님.”
“말하게.”
“왕자님께서 입수하신 그 정보, 믿을 만합니까?”
케네디가 정보의 신뢰성을 한번 짚고 넘어간다.
미국 정·재계 인사들에게 전화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아무 근거도 없이 러시아 채권을 팔라고 부추겨 봐라.
만약, 다음 주에 러시아가 멀쩡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케네디는 희대의 양치기 소년이 될 것이다.
“그럼.”
러시아에서는 아직도 활발하게 익문사 요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현재 러시아와 영국은 같은 동맹국이었기에, 영국의 MI6보다도 우리 익문사의 파견 요원이 더 많은 상태.
“내 확실할 수 있다네. 1907년도나 스탠다드 오일의 반독점법 결과가 나올 때보다도 더.”
“······그, 그렇습니까?”
지난 두 사건까지 언급하며 물러서지 않자.
케네디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나를 믿고 따르기로 했다.
“그렇다면 서둘러 움직여야겠군요.”
“그렇겠지.”
오늘은 토요일이다.
거의 마감 직전에야 내게 전보가 도착했기에, 현재 이 정보를 손에 쥐고 있는 자는 나 하나뿐.
‘시위대로 러시아 전역이 뒤숭숭하고, 일요일은 본래 우체국도 쉬기에. 관련 소식이 미국까지 다른 루트로 전달되기는 쉽지 않을 거야.’
그러니.
이때가 기회다.
천우신조의 기회!
“오늘 밤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네.”
“그렇죠. 내일 예배가 끝날 때쯤이면, 뉴욕 전역에 소문이 날 것이니까요.”
러시아 관련 정보를 가진 자는 현재 나뿐이다.
하지만 한번 이 정보를 풀게 된다면.
내가 통제할 틈도 없이.
사방팔방으로 해당 정보가 퍼져 나갈 게 분명했다.
‘직장은 쉬지만······.’
사람들이 더 활발하게 움직이니까.
미국의 정치인들은 상당수가 개신교도들이다.
일요일에 예배를 본 후.
그들은 교회 안에서 이야기를 하며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정보가 오고 간다.
지금 내가 거론한 이들은 다들 미국에서 끗발 날리는 이들이었기에.
그들의 말 한마디는 정계를 넘어 재계, 언론계까지 영향을 줄 것이다.
“집안에 콕 박혀 있는 아웃사이더도, 월요일 아침쯤이면 이 소식을 전해 듣겠지.”
“그렇겠죠.”
케네디가 살짝 아쉬워하며, 팔짱을 껴 댔다.
“솔직히 월요일 장이 시작되자마자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수익 면에서는 최고인 것 같지만······.”
나는 조금 전에, 오늘 밤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케네디가 이를 언급하며 아쉬워했다.
“왕자님께서 제게 이리 부탁하신 것을 보면, 말씀하지 않으신 다른 큰 그림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척하며 케네디에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러시아 채권의 위험성을 강조했네.”
“예. 이번 연도 들어서, 가지고 있던 것마저도 선제적으로 내다 팔며 러시아 채권의 위험성을 강조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나의 강성 발언 때문에 러시아 황실도 반응하지 않았나?
‘재정관리인 자격을 지난 1월에 막 상실했지.’
뭐.
이번 혁명 때문이라도 진즉 그 자리를 반납해야 하는 운명이었기에, 그리 안타깝지는 않았다.
공식적인 황실 운용자금 또한 바로 상환하며 관계가 진짜로 틀어진 것 또한 시장에 밝혔고.
‘그래도 차르의 비공식 비자금은 내가 한동안 관리하는 것으로 말을 맞춰 놨다. 대안이 없으니까.’
한마디로 나는 하나도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거다.
뭐, 아무튼.
각설하고.
내가 하고픈 말은, 지금 내 손에 러시아 채권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당장, 이 정보로 이득 볼 것은 없다네.”
“그렇지요. 저흰 이미 손 다 털었으니까요.”
이 시대는.
21세기와 다르게 파생상품이 엄청나게 발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정보로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었다.
‘로스차일드처럼 영국이 망할 줄 알았는데, 사실은 이긴 것도 아니고.’
러시아는 진짜로 망하는 중이다.
그렇기에 ‘하따’치겠다고 잘못 들어갔다가는 자칫 들고 있는 채권이 휴지 조각이 될 터.
그렇기에 나는 안전하게, 다른 것을 노릴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달리 생각하면 활로를 찾을 수 있다네. 당장 손에 돈을 쥐는 것 말고도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굳이 무언가를 딱 꼬집어서,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똑똑한 케네디는 이미 내 계획을 눈치챘으니까.
“하긴······ 이리 전화를 돌려 댄다면, 나중에 케미컬투자은행으로 거래처를 옮기지 않고서는 못 버틸 것입니다.”
그렇지.
당장은 몰라도 가까운 미래에 그리될 거다.
기존에 그들의 돈을 맡겨 두었던 투자거래처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나빠질 것이니까.
‘정치인도 사람이지.’
제 돈을 날린, 그것도 크게 날린 놈들만큼 미운 놈들은 없다.
한동안 뉴욕의 금융계 전화들은 불이 난 듯 울려 댈 거다.
왜 케미컬투자은행은 이를 사전에 알았는데, 너넨 그렇지 못 했냐고.
왜 이리 무능했냐고.
내 돈 물어내라고.
눈에 쌍심지를 켜며 육두문자를 날려 대겠지.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냐에 따라서 화가 누그러질 수도 있고, 더 열이 뻗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리 말할 거다.
투자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고.
어디까지나 신탁, 투자회사는 고객에게 조언해 줄 뿐이라고.
‘백이면 백, 모두 그리 행동할 거야.’
그리되면, 유력 정치인들은.
그들을 손절매하고 남은 자산들을 전부 인출하여 우리 회사 쪽으로 올 거다.
“그러니까, 하루빨리 러시아 채권을 전부 다 팔아야 한다고 저들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돌리게나. 이번 목표는 우리가 이렇게 기가 막히게 정보를 입수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일세.”
“예. 알겠습니다.”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어?
한 줌밖엔 없었지만, 아주 살짝 남아 있는 로스차일드 계열의 은행들.
그리고 모건의 은행들을.
기타 미국의 은행들을 제치고 업계 부동의 1위가 될 기회다.
주식은 몰라도.
채권 시장에서만큼은 선두 주자가 될 거다.
‘채권 시장이 주식시장보다 훨씬 더 크니까. 결국에는 우리 케미컬투자은행은 뉴욕에서 새로운 옥좌자리에 앉게 될지도 모른다.’
록펠러에게 경고한 것이 있기에.
그의 씨티은행이 우리 케미컬은행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도 있지만.
록펠러 계열의 은행들 역시도 우리 회사의 우군이기도 하기에.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 아니던가?
‘그들의 돈을 굴려 주는 이가 된다면.’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어지간한 부탁은 거절치 못하고 들어줄 터.
“목록에 제일 위에 있는 순서대로 전화를 걸게나. 직위가 높은 순서대로 윗단에 적어 놓았네.”
“예. 알겠습니다.”
* * *
상당히 양이 많다.
혼자서는 하기 어려울 정도.
그랬기에, 케네디는 명단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어어? 은행장님? 앗! 이 왕자님, 오셨습니까?”
사무실에는 아직 퇴근하지 않은 일반 직원들이 좀 있었다.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
토요일 오후까지 남아서 일하는 이들은 워커홀릭들뿐이니까.
“자자. 동작 그만. 미안하게 됐지만, 안 좋은 소식부터 발표합니다. 오늘 퇴근은 좀 많이 미뤄야 할 듯합니다.”
“아······.”
직원 중 일부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일부는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무슨, 비밀 작업이라도 해야 하나 봅니다?”
“그렇게요. 은행장님도 그렇고 왕자님도 이곳에 오신 것을 보면요.”
역시.
눈치 빠른 이들은 알아서 척척 제 몫을 챙긴단 말이야.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방금 입을 연, 두 사람의 얼굴을 찍어 두었다.
“뭐, 그렇습니다. 중대한 이야기를 발표해야 하니, 오늘 야근할 수 없는 분은 사표를 쓰고 당장 이 자리에서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미국은 고용과 해고가 쉽다.
이미 퇴근한 이들은 몰라도, 오늘 사무실에 있는 이들은 꼼짝없이 사무실에 남아야 했는데.
케네디는 조금 강압적이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 사실을 직원들에게 알렸다.
“만약 사무실을 떠나지 않는다면, 여기 계신 이 왕자님께서 우리 직원 여러분께 한 가지를 약속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내일, 추가 근무를 성공리에 끝마친다면······.”
케네디가 말끝을 흐리며 슬쩍 나를 쳐다본다.
야근할 직원들에게 무슨 당근을 건네줄 거냐는 무언의 제스처.
이에 나는 반걸음 앞으로 나와서 내 앞에 있는 이들에게 거금을 제안했다.
“이번 달 말, 반년 치 연봉을 보너스로 바로 쏴 주겠네.”
“예?”
“방금 하신 말, 물리시면 안 됩니다.”
“와!!!”
“자, 뭐 합니까? 박수!”
일순간 조용했던 사무실 분위기가 들썩거렸다.
케네디는 나를 한번 보고는 윙크한 후, 내가 건네줬던 목록을 직원들에게 조금씩 나눠 주며 무엇을 알려야 하는지 세부 사항을 전달했다.
『안녕하십니까. 하원의장님. 아, 저는 케미컬투자은행에 투자 운용팀 부서장인 알렉스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의원님. 현재 러시아 채권의 상황이 말이 아닙니다. 까닥하다가는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으니 당장 파셔야 합니다.』
『예? 예? 사기꾼이냐고요? 아, 아닙니다. 다 근거를 가지고 장관님께 조언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목록을 받은 직원들은 다들 눈에 쌍심지를 켜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혹시 빈 전화기 있는가?”
“아, 저쪽에 있습니다.”
나 또한 전화할 곳이 있어서, 수화기를 급히 들었다.
“아, 대통령님. 이강입니다. 예, 다름이 아니고······.”
* * *
긴박했던 3월 둘째 주 토요일이 지나갔다.
모두가 휴식을 취하는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
“아멘.”
대다수의 한인 이민자들은 일요일에 교회에 간다.
인종차별이 만연한 미주대륙에서 살아남으려면, 개신교라도 믿어야 하니까.
그래야, 그나마 교화된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조금이나마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고. 형제님.”
“이쪽입니다.”
더불어.
교회를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형성되기에, 많은 한인은 교회를 다니며 그들의 신앙심을 쌓고 있었다.
“이 왕자님. 어서 오십시오.”
일요일 아침.
나 역시도 현재 뉴욕에 있는 교회에 와 있는 중이다.
나는 여타 한인들과 다르게.
백인들에게 인종차별 당하는 그런 수모는 겪지 않지만.
좀 더 이너써클로 향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주류층들의 문화를 함께 공유해야 했으니까.
그렇기에.
박병준으로 살 때는 일 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 했던 교회를, 매주 가며 이곳의 교인들과 신앙생활을 함께하고 있다.
“이 왕자님.”
“자네는······.”
헨리 프릭이 아닌가?
소싯적, 철강회사를 세워서 크게 돈을 벌었다가 현재는 예술품 컬렉터로 제2의 삶을 사는 자.
“혹시, 시간 좀 되십니까?”
그럼. 시간이야 많지.
이자가 가지고 있는 미술품만 해도 몇 점이던가?
21세기.
뉴욕에는 미술관이 많았지만, 구겐하임미술관과 더불어 프릭 컬렉션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미술관이었다.
그런 자와 이야기를 나눈다면, 나야 영광이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 그보다 자네 안색이 영 별로구먼.”
교회 예배를 마치고 뒷마당으로 나가는데, 헨리 프릭이 살짝 근심 어린 표정을 나를 바라보았다.
“마누라가 최근에 러시아 채권 쪽에 투자를 좀 해서 그렇습니다.”
“허허.”
대충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이 온다.
일명 크로스체크.
어제 받은 전화 내용을 확인하려고 온 것이로구나.
‘프릭은 명단에 없었는데.’
워싱턴에 있는 정치인 중 하나가 그에게 급히 부탁해 내게 온 것 같다.
그동안 내가 다녔던 교회에서 몇 번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기에.
프릭은 이리 내게 찾아온 거고.
“죄송합니다. 저도 이리 직설적으로 물어보고 싶지 않았는데. 아시지 않습니까? 이번에 새롭게 취임한 하원의장이 제 친우입니다. 그놈이 어찌나 닦달해 대든지, 이 왕자님께 이를 꼭 한번 확인 좀 해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아!”
암막 뒤에 누가 있는지 바로 밝히네.
그나저나 연방의회 하원의장이라니.
꽤 거물인데?
“혹시 제 친구 놈의 이야기가 사실입니까? 케미컬투자은행의 은행장이 러시아 관련 이야기를 했다던데.”
그만큼 급했기에.
프릭은 내게 자신의 사정을 말하며 러시아가 진짜로 위태로운지 내게 조언을 구했다.
“흠. 내 자네와 하원의장을 봐서 사실대로 전부 알려 주겠네.”
“감사합니다.”
나는 팔짱을 끼며 프릭을 바라보았다.
“좀 심각하긴 하네. 다음 주쯤이면 새 정부가 들어설 것 같으니까.”
“허허.”
“제정이 붕괴하고 공화정이 설립되겠지.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거네.”
“더 나빠질 수도 있단 말입니까?”
“그래. 기존 기득권이 차르의 권력을 그대로 인수하지 못하고, 새로 들어서는 정부가 붉은 혁명 세력에 먹힐 수도 있네. 아직은 가설이지만······ 그리된다면 현세에 지옥문이 열리는 꼴이니, 시장이 혼돈에 빠지겠지.”
그동안 빌린 돈을 배 째라고 나올 텐데.
더 나아가.
사유 재산을 국유화할 텐데.
어찌 혼란이 안 찾아올까?
프릭은 잠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쿵쿵 뛰는 제 가슴을 움켜쥐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빨갱이들이, 기어코 러시아 전체를 장악할 수도 있단 말이로군요.”
“그래. 생각보다 높은 확률로. 그렇지 않더라도 상당 부분은 이번 새 정부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일세.”
그나저나 상황이 묘하네.
교회 앞에서 신을 부정하는, 공산주의 무신론자들을 이야기하고.
“큰일이군요. 그놈들이 연해주와 시베리아까지 장악하게 된다면, 미국과는 베링해만 두고 국경을 접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지 않겠습니까?”
프릭 또한 공산당을 극도로 혐오했기에, 바퀴벌레 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부르르 떨어 댔다.
나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프릭에게 한마디를 해 댔다.
“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공산 세력이 태평양 쪽으로 진출할 수도 있겠네.”
“그, 그러기 전에 워싱턴이 나서지 않겠습니까?”
“글쎄. 아직 새 정부가 들어서지 않은 상황에서 거기까지 예측하는 것은 나도 좀 무리네. 그나저나 우리 대한제국 역시도 문제로군. 그치들과 국경을 접하게 될 텐데. 무능한 일본이 이를 잘 통제할 수 있을지 영 믿음이 안 가.”
현재 미국에 번져 있는 공포 사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일본이 중국을 날름 혼자 먹을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태평양 패권을 차지해, 미국 서부까지 진출할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가설을.
서민들은 물론이고 일부 정치인들까지도 믿고 있었다.
‘그보다는 덜하지만.’
러시아에서 번져 가고 있는 공산주의 사상 역시도 경계하는 중이었다.
아직은.
이들이 집권하지 못하여,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레닌이 이번 혁명에서 혹은 다음번 2차 혁명에서 집권하게 된다면.
미국으로서는 꽤 곤혹스러울 거다.
나는 그런 불안감을 은근히 자극하며, 대한제국이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은연중에 흘려 댔다.
“어떤가?”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시는 것 같습니다.”
가까이서 나를 지켜보던, 우현식이 엄지를 치켜들며 나를 칭찬했다.
“정치인들은 본디 가면 하나쯤은 쓰고 있다네. 나 또한 미국과 대한제국, 양쪽 정계에 몸을 담은 셈이니······ 뭐,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연기력을 좀 더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네.”
우현식과 함께 교회에 있던 일을 이야기할 때.
“전하.”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최현우가 급히 나를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영국대사가 전하께 알현을 요청하였습니다.”
올 게 왔구먼.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두 세력의 협조가 필요하다.
지금 내가 사는 미국은 착착- 일이 진행되며 내 든든한 우군이 되고 있다.
남은 것은 하나.
대서양 건너에서 사는 혐성 그득한 일수꾼들.
그들을 상대하는 거다.
“일단은······ 바쁘다고 하게.”
한창 몸이 달았을 때, 만나도 늦지 않으니까.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며, 우리 집 전화통이 불나게 전화해 대는 영국대사를 피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서 월요일이 되었다.
나의 예상대로.
러시아에는 둠스데이가 찾아왔다.
혁명의 불길이 러시아 전체를 삼켰다.
< 러시안룰렛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