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7)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7화(27/392)
< 잿더미 위에 핀 새싹 (2) >
“여기로 오는 도중, 불타 버린 이 도시의 전경을 보았습니다. 가슴 한편이 꽉 막힌 것처럼 먹먹해지더군요.”
로비스트로 일하며 는 것은 눈치 보기와 언변이다.
지금 이곳의 분위기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대중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음 말을 내뱉었다.
“내 기분도 이런데······ 그대들의 기분은 오죽하겠습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습니다. 아마 나처럼 참담하겠지요.”
연설의 처음은 소회로 시작했다.
현재 내가 무슨 감정을 품고 있는지 진솔하게 알렸다.
그다음으로 필요한 게 공감이다.
상처받은 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상황을 이해한다는 감정교환이니까.
“대재앙이 샌프란시스코를 할퀴고 갔고, 사랑하는 이도 데려갔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일궈 놓았던 재산도 빼앗아갔지요.”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한 사람 한 사람 시선을 교환했다.
“이대로 절망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다들 재기할 발판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개를 돌려 지아니니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하며 내 말에 동의해 주는 무언의 행동을 했다.
“각자 급한 사정이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빠르게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테지요. 그러려면 당연히 큰돈이 필요할 것입니다.”
나의 다음 말에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던 대중들이 꾹 참고 있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옳소.”
“대출금이 필요합니다!”
“예전의 그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내가 BOI의 대출 업무를 재개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보였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하지만 나는 이들의 처지를 대변하려고 연단에 선 게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이 혼란을 수습하려는 지아니니를 도와주기 위해 지금 연설을 하는 중이었다.
“모두가 대출을 받는다면 더없이 좋겠지요. 하지만 여기 지아니니 은행장의 주장처럼, 대출해 줄 수 있는 자산은 안타깝게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나의 다음 말에 대중들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변했다.
기대감으로 가득했던 얼굴에서 실망감이 잔뜩 있는 얼굴로 변한 것이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기에, 나는 재빨리 다음 말을 덧붙였다.
“여기 모인 모두의 사정을 내 옆에 있는 지아니니 은행장처럼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만큼은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정말 하루를 버틸 돈이 없어 이곳에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나는 오른손을 올린 후, 내 가슴 위로 가져갔다.
그 후 대중들을 보여 이리 말했다.
“자,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생각해 봅시다. 나는 진정 대출이 필요한가를 말입니다.”
“······.”
“······.”
“나는 진정 하루 먹고 살기에도 힘들어서 이곳에 왔습니까?”
정말 급해서 온 이들도 있겠지.
하지만 일부는 불안감에 BOI를 들른 이도 있을 거다.
‘화재보험금을 수령하기 전에 현금을 쥐고 싶어서 온 이도 있을 테고. 지금 시기에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 이득이 되니, 대출을 추가로 받으려는 이도 있겠지.’
나의 말에, BOI에 찾아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좌우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웃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정말로 어려워서 왔는지 아니면, 불안해서 이곳에 들른 건지.
직접적으로 말로 대화하지는 않지만, 서로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무언의 의사소통을 주고받았다.
“성경에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대들의 옆 사람을 다시 한번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양심에 한 번 물어보고, 그다음을 생각해 봅시다.”
미국은 청교도 신자들이 종교 박해를 피해 이주하며 시작되었다.
이후 가톨릭교도 역시 새로운 삶을 찾아 대서양을 건너오게 되었다.
서구 세계에는 기본적으로 기독교(가톨릭+개신교) 문화가 아주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나는 이들에게 성경 구절을 언급하며 호소했다.
“정말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까? 그렇지 않다면 나보다 형편이 안 좋은 이들을 위해 우리 조금씩 양보합시다. 500불을 빌리러 왔다면 300불만 대출받고, 300불만 필요하다면 200불만 받아 가잔 말입니다. 불안한 마음에 이곳에 온 이는 돌아가 주십시오. 우리들의 이웃들을 위해 한 발짝 양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대중들이 조용해졌다.
내 말이 먹힌 건지, 아니면 반대로 전혀 먹히지 않은 건지 아직은 아리송했다.
“모두가 힘들지 않습니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서로서로 합심하여 위기를 극복해야 합니다.”
나는 빠르게 다음 말을 덧붙였다.
“일부는 내게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먹고살기 어려울 때, 왜 그대들에게 희생만 요구하냐고요. 나는 뭘 하고 있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요.”
이에 지아니니가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왕자님께서는 대지진 첫날부터 구호 활동을 하고 거액을 기부하셨습니다. 그런 왕자님께 어찌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그래, 난 모범을 보였다.
표면적으로는 한인의 이미지 개선과 나의 이미지 향상을 위해 움직였지만.
저들은 이를 모르고 있으니, 내가 그저 선한 현자로만 보일 것이다.
덕분에 나의 연설은 생각보다 호소력이 있었다.
아전인수가 아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주먹을 꽉 쥐며 지아니니를 바라봤다.
“지난번에 지아니니 은행장에게도 약속했지만, 나는 오늘부로 우리 집에 있는 현금 삼십만 달러를 전부 이 은행에 예치할 것입니다. 가용할 일부 현금을 제외하곤 다 이곳에 예치할 생각이지요.”
곧 있으면 보험금이 들어온다.
그것만 해도 넘쳐나기에, 나는 현재 가지고 있는 현금을 최대한 BOI에 예치할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BOI가 커지면 커질수록, 내가 투자한 BOI 우선주 역시 그 가치가 뻥튀기될 테니까. 아직 대공황까지도 시간이 여유 있게 남아 있고.’
어쩌면 원 역사보다 더 빠르게, BOI가 미국에서 제일가는 상업은행으로 성장할지도 모른다.
현재도 미친 듯이 그 자산이 늘고 있는데 내 도움까지 더해진다면, 호랑이가 날개를 다는 꼴이니까.
나는 원 역사에서보다 더 성장할 BOI의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입을 꾹 다물었다.
“와, 삼십만 달러?”
“엄청난데?”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재산 규모 자체에 흥분한 이도 있고.
나의 행동으로 인해 그들이 추가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는 이도 있었다.
“오늘 저 왕자가 자신의 재산을 이 은행에 예치한다면, 내일부터는 한결 수월하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소리 아니야?”
“그, 그렇지. 통상 예금의 열 배 정도를 은행에선 대출하곤 하니까.”
“와······ 대박.”
수군거리는 대중들 앞에서, 나는 분위기를 놓치기 전에 재빨리 당부했다.
“그러니 여유 있는 이들은 욕심부리지 말고, 나처럼 이 은행에 예금을 좀 해 주십시오. 그리 행동한다면 기부하지 않아도 다른 어려운 이웃을 돕는 꼴이 될 것입니다.”
굳이 돈을 내지 않아도.
은행에 예금을 예치만 해도.
남을 도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 25~30%나 되는 이자는 덤이기도 하고.
“주변에 널리 퍼트려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러면, 정말로 어려운 이들이 그대들의 양보에 하나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내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했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 주십시오. 우리 다 같이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연설이 끝나자,
짝짝짝-
갑자기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맞습니다.”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해야지요.”
“나 또한 이 왕자, 그대의 제안에 동참하겠소이다.”
“와······ 왕자님.”
지아니니가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씨벌. 살짝 감동하였습니다. 제가 여자였다면 한눈에 반했을 정도입니다.”
어휴······.
반하긴 뭘 반해.
‘외모는 그렇다 쳐도, 입이 걸은 여자는 좀 그래.’
나는 질색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지아니니에게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내 어찌어찌 수습은 했으니, 사람들을 질서정연하게 내보내게나.”
“예.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 우리 집에 사람을 보내게. 내 약속대로 현금과 금을 자네에게 맡기겠네.”
“아유. 감사합니다.”
* * *
“전하.”
그로부터 3일 뒤, 우현식은 급히 내 방으로 들어와선 우리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렸다.
“지아니니 은행장이 왔습니다.”
들어오라 손짓하자, 지아니니가 빠르게 내 곁으로 왔다.
그는 꽉 조여 있던 타이를 살짝 풀곤 외투를 벗으며,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왕자님. 왕자님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흘 전에 예치한 예금 덕분인가?
하긴.
30만 달러를 예치했으니, 이를 잘 활용하면 300만 불 정도까지는 추가로 대출할 수도 있겠지.
“뭐?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대출 금액을 줄이고 있다고?”
“예. 그때, 왕자님의 연설이 제대로 먹힌 것 같습니다.”
다행이다.
현장 반응은 좋았지만, 결과까지 좋을 것이라곤 예상 못 했는데.
“덕분에 신규 고객을 더욱더 많이 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지아니니가 한 가지 희소식을 더 알렸다.
“더불어 BOI에 신규로 예금을 예치하겠다는 이들도 제법 많이 생겨났습니다. 어떻게 입소문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예금을 맡기러 오는 신규 고객이 부쩍 늘었습니다.”
지아니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감격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리 자꾸 왕자님께는 계속 신세만 지는군요. 이를 어찌 갚아야 할지······.”
어찌 갚긴.
열심히 은행을 성장시켜서 내 자산을 증식시켜 주면 그게 은혜 갚는 거다.
나는 속으로 미소 지으며 지아니니의 어깨를 토닥였다.
“후······ 일어나게나. 은행 일은 자네 부하들에게 맡겨 두고 잠시 시내로 이동하세나.”
“예? 그게 무슨?”
지아니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은행장이 은행에 있어야지, 어딜 가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자네, 화재 보험을 들지 않았나?”
“그랬죠.”
“그럼 보험금을 타러 가야지. 듣자 하니 오늘부터 커머셜유니온 보험사가 문을 연다고 하네.”
“아하!”
지아니니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곧 받을 보험금 때문에 잠시 넋이 나간 거다.
“안 움직이나? 자네는 혹 다음에 갈 건가?”
“당연히 가야죠. FXXX. 저희 은행도 약탈자 놈들 때문에 잿더미가 되지 않았습니까? 건물을 재건하려면 당장 돈이 필요합니다.”
지아니니가 헐레벌떡 외투를 챙기며,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재촉했다.
“그럼 어서 가도록 하지. 하루빨리 돈을 받으면 좋을 테니까.”
* * *
커머셜유니온은 영국계 보험회사로, 미국에 진출하여 신대륙 전역에 지점을 가지고 있는 꽤 큰 화재보험회사였다.
“이런 젠장! 한발 늦은 것 같습니다.”
“그래. 내 눈에도 그리 보이는군.”
막 도착하니, 대기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와 지아니니는 인파를 헤쳐 가며 보험사 건물 안까지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아니, 저쪽 집이 불났다고 해서 난 그저 구경하러 갔는데······ 가만히 보니까 우리 집이 불타고 있지 뭐예요? 보자마자 눈물이 막 나는데······.”
보험사 청구 창구는 그야말로 도떼기시장 같았다.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험금은 언제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급해요. 나,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다니까요?”
집을 잃은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보험사 직원에게 하소연하며 빠른 보험금 수령을 요청했다.
직원들은 물밀 듯이 밀려오는 시민들을 바라보며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제기랄, 생각보다 줄이 긴 것 같은데 말입니다, 왕자님. 어떡하죠?”
지아니니가 근심 가득한 얼굴을 날 쳐다봤다.
그때였다.
왕자라는 단어에 주변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혹시······ 이 왕자님이십니까?”
“맞소만.”
“이거, 소살리토의 영웅을 이 자리에서 뵙다니. 영광입니다.”
이야.
좋은 쪽으로 유명해지니 좋네.
모르는 사람이 날 치켜세우며 내게 인사를 한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제가 더 영광이지요.”
“이 왕자님이시라고요?”
“그 일본에서 온?”
“일본 아니고 대한제국이야. 이 사람 헷갈리는 것 좀 봐.”
“그, 이번에 군인들과 함께 구조 활동을 도왔던 동양인들?”
“그래.”
“아, 아무튼. 아이고! 반갑습니다. 이 왕자님.”
한 놈이 반응하니, 주변에 있는 놈이 연달아 반응한다.
그놈과 인사를 하니, 또 다른 놈이 내게 접근하고.
‘이게 이미지 개선 효과인가?’
1900년대에 온 이후, 오랜만에 악의 하나 없이 낯선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시간이 흐르면.
혹은 다른 도시로 이동하면 또 들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선 나를 향해 칭챙총 등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이는 없었다.
“왕자님! 어서 오십시오.”
멀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무리를 이끌고 내게 다가왔다.
지아니니가 반걸음 앞으로 나서며 그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마드리 지점장?”
“오! 지아니니, 자네도 여기 있었구려.”
“씨벌, 재수 없게. 오늘따라 왜 이리 사근사근해. 마드리, 평소처럼 행동해.”
둘은 친해 보였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공적인 자리다.
마드리 지점장이 지아니니를 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여전히 자네 입은 걸걸하군.”
“남이야, 내 입이 걸걸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그는 지아니니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 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곤 정중하게 인사했다.
“왕자님. 오랜만입니다.”
그는 고개 숙이며 2층에 자리한 자신의 집무실로 날 데려가려 했다.
“오늘은 제가 특별히 왕자님의 청구 절차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쪽입니다.”
< 잿더미 위에 핀 새싹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