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71)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71화(271/392)
< 뉴욕회담 (3) >
“땅! 선금으로 내가 원하는 땅을 주게! 그렇게만 해 준다면, 내 당장 오늘이라도 그 자리에 나의 괴뢰국을 세우도록 하겠네.”
제임스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바로 뒤에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머릿속에 그려졌기에.
나는 재빠르게 다음 말을 덧붙였다.
“저기- 남태평양에 있는 피지섬 같은 곳 말고. 우리 한인들이 잠시나마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진짜 새 터전을 주게나.”
20세기 초 미국은 백인 위주로 돌아가는 나라다.
아무리 한인들이 노력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말.
‘지도자는 항상 최악을 생각해야 한다.’
플랜B는 기존 계획과는 다르게 가시밭길이다.
전후, 한반도를 독립시키지 못할 확률이 존재한다는 뜻.
‘최소한 다른 한인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피신처 하나쯤은 만들어야 해.’
그랬기에 나는 이번 기회를 살려서.
영국에게 선금으로 남만주 땅을 받고 싶었다.
“조금 전, 자네는 이리 말했네. 가능한 나를 최대한 돕겠다고. 아주 단언했었지.”
마치 맡겨 두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작금에 상황에서 내게 필요한 것은 오직 땅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인심 쓰는 김에 아주 화끈하게 날 밀어주게나.”
선금 없이는 더는 협조할 수 없음을 천명했다.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세계 전도를 오른손 검지로 딱딱 쳐 댔다.
“······.”
“······.”
어느 한 곳을 딱 부러지게 꼬집지는 않았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계속하여 내가 원하는 남만주 땅을, 톡톡- 가리키며 이를 유도해 보았다.
껌뻑껌뻑.
이에 제임스는 내 손끝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모르쇠로 일관한 거다.
‘내가 확정해 주길 원하는군.’
속 시원하게.
원하는 영역을 제임스에게 알려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제임스는 당장 그 영역부터 축소하려고 들 테다.
그게 외교고, 협상이니까.
밀고 당기기를 하며.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되, 파병 일자를 당기라는 식으로 분명 거래를 제안할 터.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못 한다. 답답한 건, 제임스 너니까.’
초강대국인 영국을 상대로 내가 언제 이리 배짱 장사를 해 보겠나?
이런 기회는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니었기에, 나는 제임스의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을 생각이었다.
“우리가 오늘 대화를 시작할 때, 그때 자네가 했던 말이 기억나는가?”
눈치껏 먼저 제 입으로 말하길 기대했는데.
상대가 이리 나온다면, 나 또한 다음 단계로 나가야 한다.
“자넨 내게 물었네. 나만의 새 나라를 세울 거냐고.”
지도에서 손을 떼며 나는 소파 쪽으로 몸을 뉘었다.
이후 팔짱을 끼며 오늘 처음 나누었던 대화들을 복기했다.
“예. 그랬지요.”
“그런데 자네 혹시 그거 아는가? 내, 개인적으로 이 계획을 오직 단 한 사람에게만 흘렸다네.”
제임스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그런 제임스를 속으로 봉을 잡았다고 쾌재를 외쳤다.
* * *
“휴즈.”
“······예?”
“아까 내가 개인적으로 이 계획을 알렸다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아메리카합중국의 대통령인 휴즈일세.”
나는 다리까지 살짝 꼬아 가며 협상에서 임하는 외교관치고는 제법 건방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무언가.
다 안다는 표정을 지어대며 제임스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들었든, 몰래 염탐하여 입수했든. 그거야 내 알 바 아니고.”
“어허. 여, 염탐이라니요. 이 왕자님.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
제임스가 급히 내 말을 정정한다.
민감한 단어가 나오자, 손사래까지 치며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어 대기도 했다.
나는 그런 제임스의 반응을 무시하며, 하던 말을 이어 갔다.
“됐고. 앞전 이야기를 들었으면, 그 뒤에 했던 대화 내용도 분명 입수했을 터.”
“······.”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제임스를 향해 나는 하이에나가 사냥감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 듯이 그를 계속해서 압박했다.
“아니라고 부인하진 않겠지?”
“······.”
“이미 다 알고 왔으면서 계속 모른 척을 하시겠다?”
“······.”
나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한껏 지어 대며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부터 계속하여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구먼. 이거, 자꾸 나를 기만하는군. 그렇다면 내 오늘 이 자리에서 바로바로 전화를 돌리도록 하지. 상대는, 그래. 신문사보다는 백악관이 좋겠군.”
“······!”
“휴즈 대통령님. 잘 지내십니까? 다름이 아니고 내 영국 대사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전에 긴밀이 상의했던 괴뢰국 설립안을 제임스 대사가 언급하지 뭡니까? 아, 대통령님께서도 다른 이들에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고요? 허허, 의외로군요. 저 또한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요.”
“이, 이 왕자님.”
나는 제임스의 부름을 무시하고 하던 말을 계속해서 연기 톤으로 이어 갔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혹시 백악관에 쥐새끼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도 제집을 단속해 보겠으니 대통령님께서도 한번 내부를 정비해 보시는 것이 어떠하십니까? 선거도 다가오는데, 집안 단속부터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 미래가 아주 재미있겠다 예상하며 제임스를 보며 히죽댔다.
“내게도 이를 공을 들이는데, 미국에는 나보다도 더 공을 들이고 있겠지.”
“······.”
“나보다는 백 배나 더 쓸모 있는 상대니까. 아닌가?”
내가 이리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실제로 백악관에 첩자가 하나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대사관에 정보를 몰래몰래 흘리는 모양인데, 휴즈가 이를 알게 되면?
그는 어찌 반응할까?
‘뭐, 한동안 둘 사이가 안 좋아지겠지.’
아깝다.
이를 미끼로 독일이 승리하도록 이어 가려고 했는데.
빌어먹을.
융커 놈들이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수행해서 다 물거품이 되었다.
아직 미국인이 죽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비보가 들려올 터.
백악관에 첩자가 하나 있다는 것은 매우 불쾌한 사실이나, 이것이 트리거가 되어 미국이 동맹국을 도와주는 것까진 이어지지 않을 테다.
하지만 미국인이 죽는 것은 이보다는 훨씬 더 심각한 사항이었기에.
나는 아쉽게도 이 카드를 버려야 했다.
“내가 진짜로 휴즈에게 가서 따지기를 원하는가?”
슬쩍.
벽에 걸려 있는, 정각마다 뻐꾸기가 나오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십 분밖에 안 흘렀네.’
그 십 분 사이에, 제임스는 십 년은 더 늙은 것 같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일상생활 속에서 다시 한번 증명되는 순간인 것 같았다.
“목단강 동안 유역. 좀 더 무리한다면 압록강 이북, 그러니까 천산산맥 이남 땅까지 노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결국, 제임스는 백기를 들었다.
자꾸 숨기고 모르쇠로 일관하면, 백악관에 다 일러바칠 거야.
내가 휴즈를 얼마나 잘 쥐고 흔드는 거 알지? 하고 몇 마디 툭툭 던지니.
지레 겁먹고 포기한 거다.
‘역시······.’
이리 상대가 말해 주니 편하네.
괴뢰국을 세울 영토도 원계획보다도 더 크게 말해 주고.
‘하긴. 이번 전쟁에서 영국이 이기려면, 미국의 도움이 필수니까.’
실제로 영국은 지금도 미국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팎으로 엄청난 로비를 해 대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
다 된 밥에 재가 뿌려질 수도 있기에, 제임스는 조심조심 흥분한 나부터 일단 진정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방금 제가 언급한 만주 땅들은 대한제국 유민들이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들었습니다.”
“그렇네. 그곳은 우리의 고토지. 더욱이 목단강 동안은 18세기부터 문서상으로 우리 땅이었네. 백두산 정상 인근에 자리한 정계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네.”
방금 언급한 백두산정계비 같은 경우에는, 청나라 관리가 잘못하여 두만강을 토문강으로 오기한 것 같았다.
정황상.
‘근데, 어쩌라고?’
이 바닥에서 중요한 것은 팩트가 아니다.
오직 힘.
‘외교는 본디 명분 싸움이지.’
이러한 명분을 토대로 힘 있는 강자가 약자를 빨대 꽂고 피 빨아먹는 시스템이 바로 작금의 현실 세계다.
나는 이를 언급하며 나는 지금 당연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영국 대사를 설득했다.
“그 지역에 괴뢰국을 세우시겠다고요?”
“그래.”
영국이 전 세계를 쑤시고 다니며 무슨 짓을 했는가?
사실, 발칸에서 시작된 세계대전 또한 영국이 동유럽에 의도적으로 퍼트린 민족주의 때문이 아닌가?
그 민족주의란 무기를 나도 한번 이참에 사용해 보려고 한다.
“아! 미국과는 좋은 방향으로 협의가 이어지고 있다네.”
여기서 또 한 번.
미국을 언급했다.
이번에 세워질 괴뢰국과 미국은 한 묶음이라는 것을 강조한 거다.
괜히 다우닝가가 딴지 걸지 않게 하려고 사전에 밑 작업을 열심히 친 것.
“자네가 입수한 정보가 언제 유출된 지는 모르겠다만······.”
움찔.
긴장을 풀 때, 또 한 번 옆구리에 단검을 콱 박으며.
나는 제임스에게 인맥 자랑을 해 댔다.
“최근 휴즈와 통화를 하며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네.”
“그, 그러셨군요.”
“이번에 세울 괴뢰국 말이야.”
“예.”
“그곳의 모든 광산과 철도, 항만 시설에 외국인 투자를 전면 개방할 생각이네.”
제임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또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냐는 눈빛이다.
“현지 지분이 1/3 이상이라면, 모두 허락할 생각이네. 신규로 발전소나 면직공장, 화학 공장들 등 모든 분야를 개방할 생각이지.”
어차피 대공황 때 다 회수할 수 있으니까.
풀 수 있을 때, 화끈하게 다 풀 생각이다.
“일본과는 다르게 말입니까?”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합리적인 이유까지 제시했다.
“나야 미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이지만······ 이번에 세워질 괴뢰국, 더하여 대한제국은 저기 아프리카의 식민지들만큼이나 가난하겠지.”
“그렇죠. 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니니까요.”
“교육 시설을 확장하고, 새롭게 교통 인프라를 확충하려면 외국 자본이 필요하네. 더하여 대한제국을 독립시킨다면, 또 그 지역도 개발해야 하지 않던가?”
“그, 그렇죠.”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이를 위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영국과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고 있지 않던가?”
“이 왕자님께서는 개발 자금이 필요하시고요.”
“그래. 이보다 궁합이 맞는 파트너는 찾기 힘든 것 같네. 기가 막힌 영혼의 한 쌍이라고 말할 수 있겠군.”
제임스는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댔다.
우리를 정말 믿고 맡길 수 있냐는 표정이다.
“왜? 내 이야기가 타당치 않다고 생각하나?”
“아, 아닙니다.”
살짝은 밍밍한 표정을 짓는 제임스.
나는 그를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쏴댔다.
“설마 일본과 벌써 밀약을 체결한 것은 아니겠지?”
“예? 그럴 리가요!”
“휴즈가 많이 걱정하고 있네.”
“무, 무슨 뜻입니까?”
역시.
‘휴즈’만 언급하면 눈이 커진단 말이지.
나는 속으로 한껏 제임스를 비웃은 후 그를 향해 내 주장을 설파했다.
“수많은 미국 시민들이 우려 섞인 눈빛으로 다우닝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지 않던가?”
“미국인들이 말입니까”
“그래.”
나는 ‘그것도 몰랐어?’ 하는 표정으로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자넨, 신문도 안 보는가? 이곳 언론은 매일같이 일본과 영국이 손을 잡고 미국을 칠지 모른다고 난리이네.”
“······설마, 이 왕자님께서도 황색 언론의 황당한 주장을 믿으신단 말입니까?”
물론이지.
그거 내가 기레기들에게 떡값까지 쥐여 주며 몰래몰래 뿌려 대고 있는 건데.
“그 때문에, 엄한 우리 교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네. 양키놈들도······ 참. 눈 좀 작고 얼굴 좀 노라면 죄다 일본인인 줄 안다니까.”
아! 맞다.
이 주제가 아닌데.
나는 다시금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임스를 보며 미국인들이 영국인들을 왜 그리 의심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다.
“나야 누구보다 그대의 조국을 잘 알기에, 그리 생각하지 않지만. 평범한 미국인들은 다르네. 그들은 영국이 일본의 중국 진출을 묵인한다고 생각하네. 워싱턴에 있는 일부 연방의원 역시도 소수지만 그리 생각하고 있고.”
“어찌하여······.”
난감해하는 제임스를 향해 내가 그 이유를 풀어 설명했다.
“본래 영국은 회수 이남 쪽만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던가? 북경을 위시한 북중국 땅은 예부터 모두의 공용지였네.”
나는 근대 중국사를 강론하며.
제임스에게 지금 북중국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설명했다.
“그런 땅을 영국은 일본에 홀라당 내어 줬네. 21개조로 일본 놈들이 이를 못 박고 있는데 영국의 정치인들은 뭘 하고 있나?”
“······.”
“미국의 정치인들은 이를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지만, 영국은 그놈의 파병 때문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네.”
“······.”
“뭐, 나였으면 한 번쯤은 대사를 불러서 초치 정도는 했을 텐데. 아무튼 이에 관해 아무런 피드백도 없으니, 미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이 모든 오해는 다 영국 탓이라고 에둘러 돌려 깠다.
“초기에 심드렁했던 휴즈가 왜 내 계획에 동의했겠는가?”
“······.”
“이러다간 진짜로 북중국이 일본에 넘어갈 수도 있기에, 만주에 한인들을 세워 장벽을 하나 만들고자 함이네.”
“일본을 견제하고자 말입니까?”
“그래.”
“으-”
제임스가 괴로워한다.
뭔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협상이 안 흘러가서겠지.
“남만주에 괴뢰국을 세우는 것은, 제가 이 자리에서 당장 확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목단강 동안 지역이 괴뢰국 후보지로 거론되었는데, 이를 논의조차 안 했단 말인가?”
나는 콧방귀를 끼며, 살짝 삐진 척을 해 댔다.
“그렇다면 실망이군. 나를 피지 따위에 만족해하는 머저리로 생각하다니······.”
“그, 그런 것은 아니고.”
당황해하는 제임스.
1시간 전까지 매의 눈으로 먹잇감을 노려보던 제임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지금은 그저 내가 진짜 휴즈에게 전화를 할까 봐 살짝 걱정하는 눈치.
‘좋았어. 분위기를 탔군.’
노련한 협상가도 본디 한번 기세가 말리면 초짜처럼 어버버 거리기도 한다.
현재 제임스의 모습이 딱 그랬다.
‘좀 더 털어먹어도 좋을 것 같은데.’
이 기세를 타고, 얻어낼 것이 또 뭐가 있나?
‘아, 그게 있었네.’
나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제임스를 노려보았다.
이에 제임스는 겁에 질린 양처럼 몸을 부르르 떨며, 나를 바라보았다.
* * *
제임스 대사는 질린다는 표정을 한껏 지으며 이강의 뉴욕 별채를 쳐다보았다.
“으······.”
그 후, 그는 한껏 영혼이 털린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타고 왔던 자동차로 향했다.
“대사님.”
깜짝이야.
이곳에 올 때 새로이 파견된 대사관 직원인 척 함께 왔던, 비밀정보국의 국장 맨스필드 스미스-커밍.
그가 아직도 차 안에 앉아 있었기에, 제임스는 잠깐 흠칫한 표정을 지어 댔다.
하지만 능숙한 외교관답게, 이내 본래의 친근한 할아버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낯선 손님을 응대했다.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시지, 계속 여기서 기다리셨습니까?”
“보는 눈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보다 협상은, 어떻게 끝났습니까?”
제임스는 맨스필드의 정확한 직위를 모른다.
한 가지.
그가 총리의 서신을 직접 들고 뉴욕까지 왔기에, 다우닝가와 매우 밀접한 관계라고만 추측할 뿐이었다.
“완전히 말렸습니다.”
그렇기에.
제임스는 맨스필드를 어려워하며, 살짝 난감해야 하는 표정을 지어 댔다.
“저런······ 기어코 이 왕자가 피지 대신 남만주에 괴뢰국을 세우고 싶다고 제 뜻을 밝혔나 보군요.”
“예.”
제임스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어 댔다.
“더욱이 한 가지 또한 더 요구해 댔습니다.”
맨스필드는 제임스의 넋두리를 경청하며 제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동맹 체결을 원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영국이 이를 보증해 주지 않으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일본이 바로 쳐들어온다나 뭐라나.”
제임스가 살짝 흥분하며 커밍 국장에게 하소연했다.
“당장 영일동맹을 파기해 달라고 주장하더군요.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거절하자, 그 대안으로 동맹을 체결해 달라며 떼를 쓰지 뭡니까?”
“그래서, 뭐라고 답변하셨습니까?”
“확답은 피했고 일단은 다우닝가에 한번 제안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커밍은 조금 전 들었던 이강의 제안을 회상하며 이를 평가했다.
“살짝 무리한 요구 같지만······ 또 어찌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는 주장 같기도 하군요.”
커밍이 긍정적인 표정을 지어 보이자, 제임스는 아까까지만 해도 부정적이었던 자신의 의견을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
“그런가요? 하긴, 제 땅도 못 지키는데, 어찌 남의 영토에 군대를 보낸단 말입니까?”
그런 제임스의 태도에.
커밍은 살짝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
제임스 대사는 또 이를 잘못 해석하여, ‘아, 이제 나는 망했구나!’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사님.”
“예.”
“너무 상심하진 마십시오.”
“······.”
“다우닝가에서도 이해할 것입니다.”
“그럴까요?”
“예.”
커밍은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는 제임스를 진정시켰다.
“이강은 달변가이지 않습니까? 현 총리께서도 이 왕자와 전에 한 번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렇기에 이를 잘 아시고 계십니다.”
“그, 그렇죠?”
제임스는 제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상대가 너무 말을 잘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영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놈이, 영어를 어찌나 잘 구사하던지. 그놈을 상대로 얼마나 힘든 협상을 했는지 커밍 중령께서는 모르실 것입니다.”
제임스는 커밍의 손을 꼭 잡으며 부탁했다.
“아무튼, 총리께 잘 좀 말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커밍 국장은 영국 대사관 앞에서 내린 후, 자신이 기거하고 있는 근처 호텔로 이동했다.
“아일랜드 놈들도 그렇고, 무능한 대사 놈도 그렇고. 그나저나, 뭘 이리도 많이 내준 것인지······.”
기밀 정보까지 물어 줬는데.
이 꼴이라니.
협상 결과를 보며, 넋두리하는 사이.
비밀정보국의 일반 요원 하나가 커밍 국장 근처로 접근했다.
“국장님.”
“그래.”
현장 요원은 아주 재미난 소식 하나를 영국에서 물고 왔다.
“현 내각이 붕괴하고, 새 총리선출 투표가 행해질 것이라고?”
“예.”
“새 총리께서는 이 결과물을 두고 어찌 반응하실지, 자네가 한번 말해 보게.”
커밍은 눈을 가늘게 뜨며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에.
현장 요원이었던 윌리스는 빠르게 답했다.
“대부분 수락하시지 않겠습니까?”
커밍은 고개를 끄덕이며 현장 요원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커밍은 윌리스가 건네준 또 다른 서류 봉투를 확인하다가, 살짝 거슬리는 것이 있는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이런! 레닌 암살 작전이, 실패했다고?”
“예. 안타깝게도, 우리 쪽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크.”
커밍이 자신의 양복 안에서 안주머니를 뒤적였다.
오늘따라 담배가 참으로 당겼기 때문이다.
“맛이 쓰군.”
커밍은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연기를 한껏 폐부로 빨아 댔다.
신대륙도 그렇고, 아시아도 그렇고, 유럽의 상황도 어째 영국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작금의 상황이, 대영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에.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저 담배를 다 태웠다.
‘보름달이군.’
밤하늘에 우뚝 솟아 있는 보름달을 보며, 커밍은 그렇게 입에 남은 마지막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 뉴욕회담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