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77)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77화(277/392)
< 운명의 수레바퀴 (1) >
귓속이 간지럽다.
인상을 팍 구기며 오른쪽 귓바퀴를 후벼 파자, 비서실장이었던 최현우가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로 다가왔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눈을 깜빡이는 최현우.
나는 그런 최현우를 향해 피식 웃은 후, 집무실 책상 한편에 놓여 있던 면봉 뭉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아! 별일 아닐세. 오늘따라 유난히도 오른쪽 귀가 조금 간지럽구먼.”
이후, 면봉을 하나 집어 오른쪽 귀를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표정을 계속하여 풀지 않자, 최현우가 내 눈치를 살살 보며 내게 재차 물었다.
“마, 많이 불편하시면 의사를 부를까요?”
“괜찮네. 어디서 누가 내 욕을 한 바가지 쏟고 있나 본데······ 이 정도는 참을 만하네.”
농담으로 한 이야기인데.
내 대답에 최현우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누, 누가 감히 전하를 욕한단 말입니까? 그런 말씀은 거두어 주십시오.”
에이, 왜 이래.
대한제국을 냉큼 삼키고 싶어 하는 일본 놈들부터 시작해서 중화가 아시아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중국인들까지······.
이놈들만 해도 얼마인가?
나를 욕할 사람은 많다.
‘미국에 사는 백인 중 일부도 나의 성공을 아니꼬워하지.’
비단 인종차별주의자들뿐만 아니라, 같은 업체 종사자들도 슬슬 나를 경계하는 눈치다.
더불어.
세상에서 계급주의를 타파하고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는 공산주의자들도.
관료제라는 산물을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라고 생각하는 아나키스트들도 슬슬 내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왕족치고는 너무 성공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모든 세력에게 광역으로 이목을 끄는 중이었다.
‘어디에서 터질지 모른다. 휴- 거를 것이 없는 놈들뿐이군.’
성공할수록 고개를 숙이라는 옛 명언을 매일 같이 복기하고 있다.
TV 속에 나왔던 셀럽처럼 사교계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면, 앞서 언급했던 놈 중 하나에게 걸려서 몇 번 더 공격당했을 거다.
천수를 누리려면, 지금처럼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집안에서 콕 박혀 사는 것이 최선이겠지.
“그러니 나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것이네.”
“아, 알겠사옵니다. 전하.”
초반에는 ‘의사를 부를까?’ 하는 대화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교장 선생님 훈화가 되어 버린 것 같다.
꼰대 같은 상사로 비칠 수 있기에, 이쯤에서 그만할까 고민하던 차.
따르릉- 따르릉-
타이밍 좋게, 1층에서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에.
조금 전까지 내 집무실에서 충고를 듣고 있던 최현우가 부리나케 1층으로 내려갔다.
“무슨 일인가?”
전화를 받고 다시금 내 집무실로 돌아온 최현우.
조금 전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전하!”
“왜?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났는가?”
“도, 독일 놈들이······ 기어코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독일 놈들이, 설마?”
최현우가 침을 한번 꼴깍 삼킨 후,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았다고 설명했다.
“예. 전하의 예상대로, 독일의 잠수함이 대서양을 오가는 여객선을 공격했다 합니다.”
터질 때가 되긴 했다.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시작된 지 근 넉 달째 되어 가니까.
오히려 늦게 터진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했다.
“이로 인해 천 오백여 명에 달하는 승객들이 모두 익사했다 합니다.”
어이쿠.
많이도 죽었네.
타이태닉 때보다도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아무래도 폭탄의 위력이 빙하를 쓸고 지나가는 것보다는 몇 배나 더 커서, 순식간에 배가 침몰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하늘이 독일 편을 열심히 들어줄 만큼 들어주다가 결국에는 두 손 두 발 다 든 셈이로군.’
사람이 죽었다.
그랬기에, 나는 굉장히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최현우를 바라보았다.
“희생자 중에 미국인은 몇이나 있다던가?”
“약 팔백여 명 정도 된답니다.”
저런.
자세한 건 기억이 안 나지만, 원 역사보다도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 같다.
“······.”
“······.”
보고하던 최현우가 잠시 머뭇거렸다.
이에 나는 최현우를 채근했다.
“보고할 것이 또 있나 보군. 속 시원하게 나머지도 어서 고하게.”
“하, 한인 세 명이······.”
응? 한인이?
“이번 사고에 휘말렸답니다.”
* * *
사건이 터진 시점은 5월에서 이제 막 6월로 넘어가는 때였다.
각 당의 후보자들이 정해지며, 본격적으로 유세가 시작되는 선거철에 5등급 허리케인이 몰아친 셈.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공격으로 아국의 시민 800여 명 사망.』
『휴즈 대통령, 즉각적인 규탄 성명. 희생자 유족들을 위로하며 독일에 성의 있는 후속 조치 요구.』
『독일 정부, 무제한 잠수함 작전 전면 중단 선언. 미국에 재빨리 사과하다.』
『워싱턴, 베를린의 후속대책 즉각 수용. 더는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되는 것을 강조하며, 일을 마무리하다.』
짧은 시간 동안 미국인들은 희생자들을 기리며 분노했다.
독일 출신이 운영하는 가게들은 잠시 휴업을 선언할 정도.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한 가지를 외쳤다.
그것은 바로 반전이다.
“우리 아들을 유럽으로 보낼 수 없다!”
“보낼 수 없다!”
“유럽의 전쟁은 유럽인들끼리!”
“유럽인들끼리!”
미국인들은 반전을 외쳤다.
이는 이 나라가 건국할 때부터 고립주의라는 외교 노선을 아주 꾸준하게 밀었기 때문이다.
‘자국인이 죽었는데······ 그것도 천 명이나.’
독일이 사과 성명을 발표하기 전,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여객선 하나가 추가로 침몰했다.
이에 미국인 삼백여 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21세기 같았으면 미국 대통령이 TV 속에 나와서, 국민을 희생시킨 범인의 대갈통을 단박에 으깨 버리겠다고 소리쳤겠지만.
백 년 전 이 시대는 결이 좀 달랐다.
분하긴 했으나.
그래도 우린 이런 진창에 아직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게, 대다수 미국인의 생각이었다.
『[사설] 미국은 즉각적으로 세계대전에 참전해야 한다.』
『독일 정부가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지만, 이는 땜질식 처방에 불과. 앞으로도 비슷한 일은 계속해서 재발할 것이다.』
물론.
전쟁으로 떼돈을 쓸어 담고 있는 월가의 자본가들은 이번 기회를 빌려서, 세계대전에 미국을 참전시키고 싶어 했다.
원 역사였다면 휴즈 역시도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고 외쳤을 거다.
이 시대 공화당은 친기업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공화당 대선 후보로 뽑힐 때,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던 위치.
하지만 바뀐 역사에서 그는 이미 한번 대통령 선거에 나와서 당선이 된 정치 거물이다.
더욱이 지난 4년 동안 의회 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꾸준히 키워 왔다.
록펠러와 나 또한 그를 계속하여 지지하고 있고.
이 때문에 휴즈는 더는 뉴욕 자본가 측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그랬기에 휴즈는 본래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 이번 선거 때만큼은 기존 전략을 유지하며.
미국은 유럽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다시금 천명했다.
이에 급해진 측은 협상국 세력이었다.
이번 기회를 촉매 삼아 미국을 자신들의 우군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휴즈가 예상외로 담담한 대응을 했기 때문이다.
“전하. 전화가 왔사옵니다.”
“누구인가?”
협상국 측 로비스트들은 다들 엉덩이에 불이 난 것처럼 뉴욕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더 많은 파운드를 워싱턴과 뉴욕에 펑펑 쓰며 제발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돈으로 미국의 고위층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주미 영국대사인 제임스 대사입니다.”
“바꿔 주게. 아 그래, 오랜만이로군.”
『이 왕자님. 잘 지내십니까?』
그들은 예상대로 나에게도 찾아왔다.
『모레쯤 한번 찾아뵐까 하는데, 시간이 좀 어떠십니까?』
피 냄새가 가득한 초원에, 하이에나들이 몰려들 듯.
영국 놈들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우리 집 방문을 타진했다.
이에 나는 대문을 활짝 열었다.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우리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지 그 이유를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 * *
“아이고 이 왕자님.”
“······.”
“억울하게 희생당한 교민들 때문에, 많이 심란하실 텐데. 이리 만나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째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다.
영국의 대사 제임스는 지금 한창 속으로 웃고 있다.
“이 왕자님의 규탄 성명은 정말이지 감동적이었습니다.”
“일국의 왕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네.”
교민들이 희생당했다.
그것도 모르던 사람이 아니고, 이승만의 부인 박승선이 남편을 따라서 영국에 머물다가 미국으로 건너오는 길에 사망한 것.
‘미국에서 활동하는 교민들에게 조강지처를 챙기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이승만 역시 대한제국에 있던 그녀를 불러들였는데.’
왠지 나 때문에.
애먼 여인이 죽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그렇다.
더욱이 1908년에 태어난 이승만의 아들도 이번 사건에 휘말려 희생당했다고 한다.
나는 해당 소식을 듣자마자 이승만에게 이 소식을 전했으며 독일 측에는 유감 성명을 발표했다.
“평소에도 한인들을 아끼시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리도 한 사람 한 사람과 소통하고 계실 줄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그 밖에 성인 남자 하나가 희생되었다.
알고 보니 영국에서 활동하다가 뉴욕으로 귀향하던 익문사 요원이란다.
무심결에 던진 돌에 개구리가 복장 터지듯, 그는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 셋의 장례를 신경 써서 치러 주었는데, 이것에 감명받았는지 기억하기도 싫은 이야기를 자꾸 꺼낸다.
“저희가 이럴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하지만······ 유럽인들의 대표로써 왕자님께 고개 숙여 사죄드립니다.”
“······.”
독일을 향한 증오심을 아주 시기적절하게 끌어올린다.
“고맙군.”
“아닙니다. 이 왕자님.”
제임스 대사는 오 분 전에 건넨 밀크티를 홀짝였다.
이후에 무언가를 질문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댔다.
그랬기에.
나는 그보다 앞서서, 일단 내가 계획하고 있던 로드맵을 발표했다.
“내 당장 내 사병들을 풀어서 유럽으로 파병 가고 싶다만······ 멕시코 내전도 아직 안 끝났고, 남만주에 세울 괴뢰국 건국도 그 날짜가 늦어지고 있다네.”
“아, 그렇군요.”
“보고에 따르면, 가을 정도가 되어서야 궐기할 수 있다고 하네. 내 최대한 그 날짜를 앞당기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군.”
제임스가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어 댔다.
당사자가 아직이라는데.
뭐 어쩌겠어.
“자네도 알다시피, 남만주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은 과거 텍사스나 캘리포니아에 건국된 괴뢰국들과는 다르다네.”
“그, 그렇지요. 저희도 잘 알기에, 북중국에 파견 가 있는 저희 쪽 사람들을 시켜서 남만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들을 물심양면 지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처럼 계속 파병 시기를 미룬다면, 결국에는 눈 밖에 날 거다.
하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못하다.
영국이 좀 더 급해질 때.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야 파병의 효과가 극대화되기에.
나는 정말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대며, 제임스와 밀고 당기기를 계속했다.
“그보다 말입니다. 이 왕자님.”
“말하게. 듣고 있네.”
“휴즈 대통령께, 왕자님께서 조언을 하나 좀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내가? 휴즈에게?”
“예.”
제임스가 살짝 나를 구슬리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한인들이 곧 유럽에 파병됩니다. 일부는 후방에 배치될 수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이들도 더러 있겠지요.”
그렇지.
공병들이나 비행 교관들은 후방에 배치되겠지만, 폭격기 조종사들이나 특히 저격병들 같은 경우는 최전방에 배치될 수도 있다.
“본디 전장에서는 한쪽이 압도적일수록 피해가 적습니다.”
“동의하네. 전의를 상실한 쪽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니까.”
“예. 그렇습니다. 우리 협상국이 서부전선 쪽에 압도적인 전력을 쏟기 위해선······.”
제임스가 갑자기 강의를 시작한다.
물론 한인과 관련된 이야기였기에, 나는 이를 집중하며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압도적인 머릿수를 동원할 수 있는 미국의 참전이 필수적이지 않겠습니까? 노련한 한인들의 활약도 기대되지만 말입니다.”
그렇지.
나 또한 그리 생각하기에, 괴뢰국의 건국 시기까지 미루며 뜸을 들이는 거다.
남의 전쟁에 아까운 우리 청년들이 희생되면 안 되니까.
“알겠네. 내 한번 휴즈에게 말은 해 보겠네.”
선거는 11월.
이전까지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휴즈는 반전 포지션을 고수할 거다.
‘그렇다고 해서 거절할 이유도 없지.’
이야기해 본다고 했지, 내가 언제 미국도 패키지로 이쪽에 합류시킨다고 했어?
제임스도 이를 잘 알고 있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러한 부탁을 할 터.
“아, 자네.”
여기까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대화였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추가 협상.
“내 자네에게 따로 두 가지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최근에 휴즈가 내게 묻더군. 독일에 수출하고 있는 원유 계약, 그거 계속 이행할 것이냐고 말이야.”
독일 측이 재발 방지를 약속했으나, 이것이 어디까지 지켜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알기로 원 역사에서도 루시타니아호 사건이 터진 다음에도 줄곧 여객선이 침몰했다고 했다.
우드로 윌슨은 반전 여론 때문에 별다른 움직임 없이 이를 넘어갔지만.
휴즈는 자신이 약해 보이는 걸, 극도로 꺼리는 남자였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참전하지는 않지만.
독일 측에 한 방 먹일 수 있는 비장의 카드를 하나 손에 쥐고 싶어 했는데.
루마니아 유전이 딱 이에 해당하였다.
‘석유는 목숨줄과도 같은 지하자원이니까.’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영국대사인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혹시나 해서 그런데, 자네들이 개입한 것은 아니겠지?”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무슨 말씀이긴.
백악관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이런 카드가 있다고 뒤에서 살살 꼬드겼던 것 같은데.
“이에 관해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어째 시간 좀 있는가?”
< 운명의 수레바퀴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