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78)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78화(278/392)
< 운명의 수레바퀴 (2) >
“······.”
“······.”
침묵이 이어졌다.
‘쯧쯧.’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제임스가 두뇌를 풀가동한다.
무언가를 계산하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리는 것 같다.
“아까 내가 말한 주장들 말일세.”
“······.”
침묵은 내가 깼다.
제임스에게 생각할 시간을 더 주지 않기 위해서다.
자칫 그가 발 빠르게 임기응변을 부려서 기발한 답변이라도 생각해 낸다면?
괜히 증거 없이 그를 채근했다고 역으로 공격당할 수도 있기에 서두른 거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그 배후에는 자네들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내 뇌리에 맴도네만.”
“이, 이 왕자님. 저희 영국은······.”
다소 무례할지도 모르지만, 제임스의 말을 끊으며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루마니아산 원유는 독일군의 생명줄과도 같은 지하자원일세.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 자금줄이 말라가는데도, 매달 대금을 꼬박꼬박 지불하고 있는 것을 보게. 이를 영국 정부 또한 이 거래를 아주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말이야. 내 말이 틀렸던가?”
루마니아산 원유의 중요성을 재강조해 대며, 동시에 품 안에 가지고 있던 증거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워싱턴에 머무는 내 지인 중 하나가 이 쪽지를 내게 전달했다네.”
“이것은······.”
메모 안에는, 대서양 건너에서 온 이들이 비서실장을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가 적혀 있다.
자칫.
감시한 것이냐고 버럭 화를 낼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워싱턴에 있는 식당에는 눈과 귀가 달렸다는 것을 제임스도 잘 알고 있을 터.
오히려 역정을 내었다가는 이를 인정하는 꼴이 되었기에.
제임스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잠시 테이블 위에 있는 쪽지만을 바라보았다.
“저희가······ 하나를 잊고 있었군요.”
“무엇인가?”
“워싱턴에는 이 왕자님의 친우분들이 참 많으신데 말입니다.”
이에 나는 휴즈가 전화한 시각을 거론하며, 이 만남이 딱 네 시간 전에 일어났다고 그를 계속 압박했다.
“본의가 살짝 왜곡된 것 같아서 이것부터 정정하려고 합니다.”
제임스는 결국 사실을 실토하기 시작했다.
다만, 끝끝내 자신들의 잘못은 바로 인정하지 않았다.
“왜곡?”
“예. 왕자님께서 곧 협상국 쪽에 합류하시지 않습니까?”
나는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다우닝가가 오지랖이라도 부렸다는 건가? 소칼 걱정을 나 대신 휴즈에게 하며?”
“예. 그렇습니다.”
참으로 뻔뻔하다.
하긴.
닳고 닳은 영국의 고위 외교관인데.
저런 낯짝 두꺼운 행동을 하는 것이 정상이겠지.
“저희 편에 서신다면, 독일에 원유 공급을 그만두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칫 소칼이 큰 피해를 볼 수도 있기에, 이에 관한 조언을 비서실장에게 했을 뿐입니다.”
이참에 잘되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임스는 참 뻔뻔하게도 내게 다음 제안을 해 댔다.
“이참에······ 독일로 보내는 원유를 중단시키는 것이 어떠십니까? 최근에 희생자가 또다시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를 기회 삼아, 빠르게 손절하라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누구 좋으라고.
아무런 대가로 없이 시추를 멈춘단 말인가?
“내 당장이라도 루마니아 유전 가동을 멈출 수도 있지만······.”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랬다가는 배임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네.”
“어째서 말입니까?”
“자칫, 내 결정이 소칼에 손해를 입힐 수도 있으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핑계였지만.
나 역시도 뻔뻔하게 굴기로 했다.
“자네 정부의 사정 또한 이해하네. 새 총리께서는 급하시겠지. 전임의 무능함을 지적하며 다우닝가의 안방 자리를 차지했는데. 아직 별다른 소득이 없으니까.”
“······.”
“만약 내게, 아니지 우리 소칼에 당근을 준다면······ 원유 공급 중단을 생각해 볼 수도 있네만.”
“다, 당근이라면?”
제임스가 잠시 고민한 후 내게 물었다.
“저희가 독일 대신 이것들을 사들이라는 뜻입니까?”
“그래 줄 수 있나?”
제임스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다르다넬스 해협이 오스만 놈들에 의해 봉쇄되어서, 그건 좀 힘듭니다.”
“굳이 이를 수입하지 않아도 되네. 유전 가동을 중지하는 대가로, 그에 맞는 보상만 해 준다면야······ 내 즉시 다우닝가가 기대하는 행동을 보이겠네.”
영국이 급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파병을 미루는 대가로 뭘 제시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었는데 말이다.
‘돈도 벌고, 시간도 벌고.’
영국으로서는 독일에 크게 한 방 날리고.
서로 도움이 될 협상이었기에, 제임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시다시피 우리 영국은 2년간에 걸친 전쟁으로 현물이 많이 바닥난 상태입니다. 런던에서 발행한 채권으로 이를 대체할 수 있다면야, 이에 관해 이야기를 좀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사병과 미군이 적절한 시기에 개입한다면, 승전국은 아마도 협상국 측이 될 거다.
그리 된다는 것은 영국의 전쟁채권이 휴지 조각이 되지 않는다는 뜻.
수용할 만한 제안이다.
“뭐, 제값만 쳐 준다면야······.”
프리미엄까지 모조리 받을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루마니아에서 생산되는 원유 생산량의 실태를 보고서로 작성해서 제임스에게 이를 넘기기로 합의했다.
“아! 두 가지 질문이 있으시다고 하셨지요? 나머지 하나는 뭡니까?”
일어나다 말고, 제임스가 내게 물었다.
이에 나는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자네들. 니키를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지?”
“······!”
“옛날 일이지만, 니키의 재정관리인으로서 묻고 싶군. 지난달에 니키가 런던에 망명을 신청했다던데, 자네들은 어찌 처리할 생각인가?”
* * *
“누나들, 누나들 거기서 뭐 해?”
화려한 호박 방이 유명했던 예카테리나 궁전에는 지금 니콜라이 2세의 가족들이 머무는 중이다.
반쯤 위리안치되어 있는 상태지만.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 삶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어, 타로? 이, 이거 해도 괜찮아? 어머니께서 미신이라면 이젠 질색하시잖아!”
바깥출입도 할 수 없다.
매일같이 행해졌던 파티는 이제 안녕이고.
고요한 정적 속에 따분함이 밀려온다.
니콜라이의 자녀들은 한때 시녀였던 여인이 건네준 놀잇거리 몇 개로 이 긴 세월을 견디며 사는 중이다.
“심심풀이로 하는 거지.”
“맞아. 안네가 이번에 새로이 가지고 온 것들인데 알렉세이 너도 한번 볼래?”
“누나들······.”
황후였던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는 라스푸틴을 많이 믿고 의지했다.
항간에는 라스푸틴과 불륜 행위를 벌인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
라스푸틴은 세간에 요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기에, 타로 같은 미신들은 자칫 이런 의심을 더욱더 증폭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놀이었지만.
“그래서 빠질 거야?”
“아냐. 나도, 나도 끼워 줘!”
너무나도 심심했던 알렉세이는 결국 누나들의 손에 이끌려서 그 역시도 타로점을 보게 되었다.
“알렉세이. 이 카드 중에서 하나를 뽑아 봐.”
“가까운 미래에 너의 운명을 보여 줄 거야.”
“그, 그래?”
알렉세이가 잠시 심사숙고한 표정을 짓다가 카드 하나를 뽑아 들었다.
“이건 뭐야?”
“어, 운명의 수레바퀴? 이 카드 또 나왔네?”
“아나스타샤. 네가 타로를 처음 뽑았을 때도 이 카드가 나왔었지?”
올가와 타티아나 그리고 마리아가 막내딸이었던 아나스타샤를 바라보았다.
“어 그랬었어.”
“누나들. 이 카드는 뭔데?”
알렉세이는 자신이 뽑은 카드의 해석이 궁금한 듯 연신 누나들을 보채며, 운명의 수레바퀴가 무슨 의미를 지녔는지를 물었다.
“알렉세이.”
“응. 아나스타샤 누나.”
네 자매는 막내를 한참 돌린 후에야 그 정답을 알렉세이에게 알려 줬다.
아나스타샤가 대표가 되어서 이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운명의 수레바퀴란 카드는, 운명의 변화무상함을 상징하는 카드야.”
“운명의 변화?”
“그래. 최근에 아버지께서 영국 왕실에 망명 신청을 요청하셨잖아.”
“아!”
알렉세이는 아나스타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새 삶을 살 수도 있다는 말이네.”
“그렇지.”
살짝 슬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후련하기도 하다.
정든 러시아를 떠나는 것은 슬프지만, 넉 달이나 계속되고 있는 지루한 감금 생활은 정말이지 그만하고 싶으니까.
“아, 아나스타샤 누나. 다른 누나들은 어떤 게 나왔어?”
“······.”
“뭔데? 무슨 카드가 나왔는데 그리 울상이야? 어?”
알렉세이가 보챘는데도 아나스타샤는 입을 꾹 다물 뿐이다.
알렉세이는 다른 누나들이 나쁜 카드로 뽑았나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휙 돌렸다.
궁궐에 손님이 찾아와서다.
“저자들. 누구지?”
니콜라이를 폐위시킨 임시정부의 하수인들이 궁궐을 지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외부인이 방문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글쎄? 처음 보는 사림인 것 같은데······.”
아나스타샤 역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방금 도착한 일행을 관찰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오랜만에 궁궐에 방문한 손님들은 니콜라이가 있는 집무실 안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이후.
활짝 열렸던 문이 다시금 굳게 닫혔다.
* * *
“어서 오게.”
니콜라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오랜만에 방문한 손님들을 반겼다.
“그래. 이게 내게 줄 선물인가?”
“예. 그렇습니다.”
편지는 이미 봉인씰이 뜯겨 있었다.
궁궐에 출입하기 전에.
이곳을 지키고 있던 이들에 의해 사전 검열이 된 거다.
“······.”
“······.”
하지만 니콜라이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중요한 내용은, 이곳에 오랜만에 들어온 손님.
이강의 메신저이기도 한 파란 눈의 노란 머리가 인상적인 서양인의 입에서 나올 테니까 말이다.
“영국이, 우리 가족의 망명을 불허할 것이라고?”
“예.”
이강은 니콜라이에게 보내는 특사로 한인을 고용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동양인들은 너무나도 눈에 띄는 인상착의를 보였기에, 이번만큼은 서양인을 메신저로 사용한 거다.
“아주 높은 확률로 거절될 것이 확실합니다.”
친서에는 그다지 좋은 내용이 적혀 있지 않았다.
니콜라이는 정말이야 하는 표정으로 애절하게 물었다.
“정말인가?”
“예. 그쪽 사정도 영 좋지 못하니까요.”
이강이 보낸 메신저는 헐버트였다.
고종의 측근으로 활약하다가 이제는 이강의 사람이 되어 버린 자.
고종의 비자금 여부를 물을 때, 그를 통해서 일을 진행했을 정도로 이강은 헐버트를 신임했다.
한동안 한반도에 머물며 고종의 신변을 지켜보다가 최근에 미국에 돌아와서 이강과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헐버트는 오랜만에 중요한 일을 수행하며 이강의 대리인 노릇을 다시금 행했다.
“전쟁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시민들도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에 총리가 교체된 것까지 거론하며, 헐버트는 혼란스러운 영국을 상황을 니콜라이에게 알렸다.
“그런 와중에, 폐하께서 영국으로 향하신다 생각해 보십시오.”
“······.”
“이리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대내외적으로 폐하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가 않습니다.”
니콜라이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다 내 업보 때문이겠지. 그간 잘못된 결정들을 반복해서 해 왔으니까.”
“······ 송구하옵지만 폐하의 말씀대로입니다.”
중요한 순간마다 니콜라이는 악수를 두었다.
집안에서는 따뜻한 가장이었지만.
군주로 있을 때 니키는 고종 뺨치는, 아니지 그 이상인 암군이었다.
자국민을 학살한 전제군주.
그의 망명을 반기는 국가는 그 어디에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여기에 적힌 방법만이 우리 가족들을 살릴 수 있단 말인가?”
“예.”
헐버트가 니콜라이에게 조금 더 다가가며 속삭였다.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니콜라이는 이강의 제안을 조심스레 경청하다가 이내 이를 수락했다.
“그래. 하겠네. 내 미국으로 가족들을 보내도록 하지.”
니콜라이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후 생각을 정리한 니콜라이가 헐버트에게 물었다.
“실행일은 언제인가?”
“아뢰옵기 죄송하지만, 오늘이 최적기인 것 같습니다.”
“오늘?”
준비할 시간도 없이.
바로 오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자고?
“예. 시간이 지체될수록 위험해지니까요.”
“어, 어째서지?”
“독일이 언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재개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
지지난 주에.
독일군의 공격으로 한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니콜라이 역시 접하게 되었다.
그랬기에.
니콜라이는 독일 잠수함의 위험성을 충분히 공감하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더하여 황궁을 감시하는 임시정부 친위대들의 감시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될 것입니다. 폐하께서도 보고를 통해 내부 사정을 정기적으로 듣고 계시지 않습니까?”
현 정권을 잡은 멘셰비키 세력들은 기본적으로 니콜라이에게 우호적이다.
그래서 그가 영국에 망명을 타진했을 때, 이를 못 본 척 눈감아주기도 했다.
“그, 그렇다고는 하네만.”
하지만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 세력이 점점 러시아 내에서 힘을 얻고 있다.
이들은 니콜라이는 물론이고, 그의 자녀들까지 모조리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기에.
자칫 레닌이 임시정부의 수반이라도 되는 날에는, 니콜라이의 목숨은 정말이지 거대한 태풍 앞에 놓여 있는 외로운 촛불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합니다. 저희와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이곳에 들리며 헐버트는 엄청난 뇌물을 근위대 일행들에게 뿌렸다.
더불어 들고 왔던 보드카와 고급 양주들을 경비대에게 나눠 주며 그들이 긴장을 풀도록 유도했다.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마지막 기회.
이에 니콜라이는 결단을 내렸다.
< 운명의 수레바퀴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