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79)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79화(279/392)
< 운명의 수레바퀴 (3) >
굳게 닫혔던 문이 갑작스레 열렸다.
“······!”
“······!”
근처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알렉세이와 아나스타샤는 집무실에서 나온 니콜라이 2세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알렉세이!”
“예. 아버지.”
알렉세이는 살짝 겁먹은 표정을 한 채로 제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손님이 온 상황에서 집무실을 기웃거렸다.
당연하게도 한 소리 들을 상황이다.
“네 어머니와 할머니를 모시고, 내 집무실로 돌아오거라.”
하지만 니콜라이는 호통 대신, 다른 명령을 알렉세이에게 내렸다.
“예? 아, 예! 그리하겠습니다. 아버지.”
이에 알렉세이는 잠시 당황하다가 얼른 뒤를 돌아 제 어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나타샤(아나스타샤)!”
알렉세이를 불렀을 때와는 다르게 니콜라이의 목소리는 한결 더 부드러워졌다.
그가 사랑하는 막내딸.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나스타샤가 지금 니콜라이의 앞에 있어서다.
“예. 아버지.”
“오, 우리 귀여운 딸. 너도 침실로 돌아가서 언니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아 주겠니?”
“네.”
잠시 후.
“아버지 부르셨어요.”
“니키, 무슨 일에요?”
니콜라이의 가족들이 집결했다.
알렉세이를 제외하면 죄다 금발의 여성들뿐인 상황.
“그래, 무슨 일이냐?”
“어머니.”
이중 니콜라이는 제일 어른인 그의 어머니를 잠시 바라본 후 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 제가 아주 중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를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 이곳에 잠시 집결하라 일러두었는데 말입니다.”
“무, 무슨 결단을 내렸단 말이냐?”
니콜라이는 불안해하는 그의 식구들 앞에서 한 가지를 고백했다.
“오늘부로 러시아를 떠날 생각입니다.”
황태후 마리의 표정이 잠시 밝아졌다.
그는 니콜라이의 손을 꼭 잡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런던에 있는 조지가······ 우리들의 망명을 허락해 준 거냐?”
“아닙니다. 어머니.”
하지만 이 기쁨은 10초도 되지 않아서 끝나 버렸다.
니콜라이 입에서 실망스러운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영국 역시 상황이 좋지 않은지라, 저희의 망명 신청은 반려되었다고 합니다.”
“······.”
“어머니. 너무 절망하지는 마십시오. 다행히도 아직 우릴 받아주는 곳이 남아 있답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니콜라이의 정비 알렉산드라가 반걸음 앞으로 나오며 그녀의 남편에게 물었다.
“니키. 그곳이 어디예요?”
“알렉산드라. 우린 미국으로 향할 것이오.”
“미, 미국이요?”
“그렇소.”
“대서양 건너, 신대륙을 말하는 거죠? 유럽 대륙이 아닌?”
정말이지 뜬금없는 망명 장소다.
이에 알렉산드라가 기겁하는 표정을 지어 댔다.
“나의 사랑 알렉산드라.”
“······.”
“갑작스러운 결정에 많이 당황했으리라 생각하오. 하지만 국내외 여건이 우리에게 많이 불리하오.”
니콜라이는 돌아가는 국제정세를 알렉산드라에게 설명하며 그녀의 지지를 요청했다.
“보시오. 모든 유럽 국가들이 우리를 외면하고 있지 않소? 더욱이 우리를 눈엣가시처럼 보고 있는 볼셰비키의 세력이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소.”
“······.”
“이대로 이곳에서 시간만 보낸다면, 자칫 이 감옥 같은 궁궐에서 영영 한 발자국도 벗어나갈 수 없게 될지도 모르오.”
니콜라이가 알렉산드라의 손을 꼭 잡으며 그녀의 자녀들을 언급했다.
“우리는 몰라도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그런 삶을 물려줄 수는 없지 않소?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오. 그러니 부디 내 결정을 믿고 따라와 주시오.”
“니키.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는 정략결혼이 아닌 연애결혼으로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 부부는 다른 왕실 내 왕족들의 삶과는 다르게 굉장히 화목했다.
“당신의 결정을 따르겠어요.”
알렉산드라는 니콜라이의 결정을 따르기로 한 후, 그녀의 장녀를 찾았다.
“올가!”
“네. 어머니.”
“동생들을 데리고 얼른 방으로 돌아가렴.”
제 집안의 장남은 알렉세이지만.
그는 막내였고.
혈우병 때문에 몸이 약했기에, 장남 노릇을 제대로 못 했다.
그래서 장녀였던 올가가 장남 역할까지 대신 수행하는 일이 잦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알렉산드라는 가장 먼저 올가부터 찾았다.
“가서 간단히 귀중품만 챙기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네.”
알렉산드라는 고개를 돌려서 니콜라이를 바라보았다.
입은 열지 않았지만, 몇 시까지 돌아와야 하냐고 물었던 것.
“삼십 분 안에, 모든 것을 끝내셔야 할 것입니다.”
니콜라이 대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헐버트가 제한 시간을 알렸다.
“겨우 삼십 분요?”
“이곳에는 폐하와 공주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이들로 가득하니까요.”
헐버트는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안경을 살짝 만졌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눈치챈다면······ 외부에 연락을 취하지 않겠습니까?”
어릴 때부터 눈치가 빨랐던 올가는 여장부답게 그녀의 동생들을 통제하며.
넋 놓고 있던 셋째 동생의 팔을 꽉 잡았다.
“마리아. 뭐해! 시간이 없어.”
“아, 알렉세이는.”
막내는 니콜라이의 옆에 있었다.
그에게 따로 해 줄 말이라도 있는지, 아까부터 니콜라이는 막내의 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올가는 이를 알아차리고 일단 그녀의 자매들만이라도 데리고 침실로 향했다.
“폐하.”
“말하게.”
황후도, 태후도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헐버트는 니콜라이를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믿을 만한 시종이 아직 궁 내에 남아 있습니까?”
헐버트의 물음에 니콜라이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의 집무실 밖에 대기 중인 한 사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밖에 있는 앨버트는 어릴 적부터 나와 함께 자란, 내 가족과도 같은 자네.”
“그자를 시켜서, 궁 내에 설치된 전화선들을 모조리 끊어놓으라 명령하십시오.”
“전화선을?”
“예. 돌발변수는 제거하고 가는 것이 옳으니까요.”
동의한다.
전화만큼 편리한 통신 수단은 없으니까.
이에 니콜라이는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 온 시종을 호출했다.
“앨버트! 그리해 줄 수 있겠나?”
“예. 당장 이를 행하러 가 보겠습니다.”
니콜라이는 헐버트가 제안한 내용을 앨버트에게 지시했다.
앨버트가 이를 수행하러 건물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자, 이제 니콜라이의 집무실에는 진짜로 셋만 남게 되었다.
“그럼 잠시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까부터 니콜라이가 알렉세이를 힐끗힐끗 쳐다봤기에, 헐버트는 눈치 있게 자리를 피해 주었다.
“알렉세이.”
“예. 아버지.”
“잠시 이쪽으로 오너라.”
두 부자만이 남은 상황.
니콜라이는 그의 집무실에 자리한 비밀 금고를 아들과 함께 열었다.
* * *
금고에는 금덩어리들이 가득했지만, 니콜라이는 이를 본척만척했다.
금괴들은 무겁기 때문이다.
들고 갔다가는 방해만 될 물건.
그랬기에 니콜라이는 금괴를 외면한 채, 비밀금고 구석에 놓여 있는 서류뭉치를 꺼내 들었다.
“아버지. 이건 뭐예요?”
이에 알렉세이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제 아비에게 서류의 정체를 물었다.
“우리 가족을 지켜 줄 최후의 수단이다.”
“우리 가족을요?”
“그래. 예전에 너도 몇 번 보았을 거다. 저 멀리 대한제국에서 건너온 이 왕자라는 인물을 말이다.”
서류의 정체에 관해 물었는데, 뜬금없이 사람 하나를 거론한다.
알렉세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왕자라면······.”
시베리아까지 영토가 확장되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동양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알렉세이는 이강의 얼굴을 기억할 만했다.
하지만 그가 너무나도 어릴 적에 이강이 러시아에 방문했기에,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이 사진들을 보아라.”
니콜라이는 책상 서랍을 한편에 보관되어 있던 사진 하나를 알렉세이에게 건네며 아들에게 방금 언급했던 인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왕자는 요 몇 년간 우리 로마노프 황실의 자금을 관리해 왔다.”
“그건 알고 있어요. 올해 초까지, 러시아의 재정관리인으로 활동했잖아요.”
“그래.”
니콜라이는 오른손 검지로 막 비밀금고에서 꺼낸 서류뭉치를 톡톡 치며, 서류의 정체 역시 아들에게 설명했다.
“이 왕자는 나의 비자금 또한 운용해 왔단다.”
“비자금요? 아······.”
비로소 알렉세이는 깨달았다.
니콜라이가 들고 있는 서류가, 어째서 그의 가족들을 지킬 최후의 수단인지.
“이번에 영국 망명이 힘들어질 것을 알려 준 것도, 더불어 미국으로 망명 장소를 바꾸는 걸 추천한 것도 모두 그자 덕분이다.”
“이, 이 왕자가 아버지께 이를 알려 줬다고요? 미국으로 망명가는 것도 도와주고요?”
“그래. 이전에도 줄곧 내게 옳은 말만을 해 가며, 이 아비를 바른길로 인도하려고 무던히 노력하던 자다.”
니콜라이는 이강과 좋았던 오랜 인연을 제 아들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이에.
알렉세이는 한 인물의 이름을 거론했다.
“돌아가신 스톨리핀 총리처럼 말입니까?”
“그래.”
니콜라이는 잠시 회상했다.
스톨리핀이 살아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더불어 스톨리핀과 이강의 조언을 좀 더 경청했다면.
이리 아들이 모국을 떠나진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를 잠시 했다.
“이 왕자는 현재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며 미국에서 거주 중이다.”
니콜라이는 자신의 집무실 한편에 걸려있던 세계 전도에서 두 도시를 콕콕 집어 가며 아들에게 이강의 거처를 알려 줬다.
“미국에 무사히 도착하면, 그자부터 찾도록 해라.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테니, 무슨 일이 생기면 꼭 그자에게 연락해 상의하거라.”
니콜라이는 마치 자신은 미국에 있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해댔다.
이후 비밀금고에 보관했던 서류를 알렉세이에게 넘겼다.
“이걸 왜 제게 주시는 거예요.”
이에 알렉세이가 침울한 표정을 한 채 제 아비를 바라보았다.
“혹시나 해서다.”
“혹시요?”
“그래. 궁 밖을 나갈 때, 누군가가 이 아비의 몸을 수색할 수도 있지 않겠냐?”
“······.”
“이 아비는 그런 수모를 당해도, 너는 피할 수 있을 거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하지만 알렉세이는 제 아비의 핑계를 믿으려고 했다.
이를 믿지 않는다면, 가까운 미래에 그의 가족들이 미국에 도착했을 때.
니콜라이는 알렉세이의 곁에 없을 테니까.
“알렉세이.”
“······.”
“우리 가족 중에 남자는 너 하나뿐이다. 이 아비를 제외한다면 말이지.”
니콜라이가 알렉세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 가지를 당부했다.
“네가 네 엄마와 누나들을 지켜 줘야 한다. 남자는 무릇 제 가족들을 보호해야 하는 법이다.”
“······.”
“약속해 주렴. 무슨 일이 있어도 누나들과 엄마를 지키겠다고 말이다.”
알렉세이는 울먹이며 니콜라이에게 약조했다.
“약속할게요.”
“그래. 늦었구나. 너도 얼른 네 방으로 돌아가렴. 귀중품만 챙겨서 이쪽으로 바로 오도록 하여라.”
“예. 아버지.”
알렉세이는 불안감을 느끼며, 니콜라이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니콜라이는 그런 알렉세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
“저쪽입니다. 저곳에 폐하와 폐하의 가족들께서 타실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습니다.”
헐버트의 안내에, 니콜라이의 가족들이 부리나케 뛰기 시작했다.
“이쪽입니다. 이쪽에 올라타십시오.”
자리가 별로 넉넉하지 않았기에, 들고 왔던 일부 짐은 버려야 했다.
수많은 보석이 실린 가방들이 왕궁의 뒷마당에 내팽개쳐지는 가운데.
니콜라이의 가족들은 허둥지둥 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럼, 공주님들이 타신 차부터 출발시키겠습니다.”
“그래.”
니콜라이의 가족들은 총 8명이다.
대가족.
이중 올가, 타티아나, 마리아, 아나스타샤를 태운 자동차가 가장 먼저 출발했다.
이후.
황태후와 알렉세이, 그리고 황후 순으로 다음 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니키. 뭐 해요? 어서 타지 않고.”
니콜라이는 굉장히 느긋한 자세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남은 가족들이 차에 모두 올라탄 것을 확인하자, 문을 닫으려고 했다.
“니키!”
알렉산드라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자동차 문이 닫히는 것을 막았다.
“뭐 하는 거예요.”
“나는 이곳에 남아야 하오.”
“무,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는 거예요?”
당황하는 부인과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 알렉세이.
그리고 입술을 꽉 깨무는 태후를 바라보며 니콜라이가 고백했다.
“그야 조건부로 망명이 허가되었으니까.”
니콜라이는 워싱턴의 결정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나를 제외한 내 가족들만, 받아들이겠다고 하더군.”
니콜라이는 암군이다.
자국민을 학살한 최악의 군주.
아무리 자유를 사랑하는 미국이라도 이것만큼은 쉬이 용인할 수 없다.
더욱이 지금은 선거철.
야당 후보에게 꼬투리를 잡히면 큰일 나는 상황에서 휴즈가 제안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니콜라이 본인을 제외한, 니콜라이의 가족만을 받아 주는 일이었다.
“알렉산드라. 부디 다음 생애에서는 이런 감옥 같은 삶이 아닌 평범한 부부로 그대와 여생을 함께하고 싶소.”
니콜라이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알렉산드라에게 자신을 버리고 이만 가 보라 권했다.
“알렉시(알렉세이).”
이에.
알렉산드라는 니키가 아닌 남아 있는 아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누나들을 잘 돌봐야 해.”
“어머니! 안 돼요.”
문이 활짝 열리고 알렉산드라는 니키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 알렉산드라! 뭐 하는 짓이오.”
“니키. 당신만 홀로 남길 수는 없어요.”
“알렉산드라!”
“우리, 평생을 함께하기로 했잖아요.”
알렉세이도 자동차를 내리려고 했으나, 마리 태후가 죽을 힘을 다하여 손자를 꼭 껴안고 놔주지 않았다.
“뭐해요? 얼른 떠나지 않고.”
쿵-
그렇게 황제와 황후.
두 부부만을 남긴 채 자동차 문이 닫혔다.
“가, 알렉시. 어서.”
저 멀리.
경비들이 달려오고 있다.
우려대로 궁에서 일하는 이들 중 임시정부 소속 첩자들이 외부에 있던 병사들을 호출한 거다.
“차르가 도망친다! 차르 가족이 궁궐을 빠져나가려고 한다!”
“어서!”
이에 헐버트는 운전자에게 죽을힘을 다하여 자동차 페달을 밟으라고 권했다.
그렇게.
두 부부만을 남겨 둔 채, 니콜라이의 자녀들은 예카테리나 궁을 빠져나갔다.
그러고 보름이 지났을 무렵.
황태후와 다섯 남매는 뉴욕에 도착했다.
< 운명의 수레바퀴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