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80)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80화(280/392)
< 롤모델 (1) >
“이 왕자님! 뉴욕 월드의 토마스 매켄지 기자입니다.”
“······.”
“알렉세이 황태자는 건강합니까? 본국에서도 종종 지병을 앓지 않았습니까?”
아메리카 신탁에서 우리 집으로 퇴근하는 길.
회사 본사 건물부터 기자들이 쫙 깔려 있다.
어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참으로 징그럽다.
“다른 네 황녀는 무사히 이 왕자님 댁에 도착했습니까?”
“······.”
“입국할 때, 마리아 황녀의 안색이 별로던데, 알려 주십시오. 이 왕자님, 침묵만 하지 마시고 답변해 주십시오!”
“······.”
“이 왕자님! 이 왕자님!”
미국의 기자들은 나에게 다섯 남매의 근황을 물어 댔다.
왜냐고?
그야, 현재 니콜라이의 다섯 남매가 우리 집에서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휴. 포기할 줄을 모르네.’
미국 언론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선거철이 다가옴에 따라 기자들이 죄다 워싱턴으로 몰려가야 했다.
하지만 다섯 남매 갑작스러운 깜짝 방문 덕분에, 황색언론들은 물론이고 정론지들까지 합세하여 우리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저 쓰레기들······.’
저들이 저리 발광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진짜!
왕족들이 미국에 ‘짠’ 하고 나타났으니까.
‘우리 집에 머무는 OTMAA는 진또배기니까.’
왕족은 왕족일 뿐이지.
동양, 서양 구별하냐고 되물을 수도 있지만.
이 시대는 기본적으로 인종차별주의 사상이 베이스로 깔린 시대다.
더욱이 러시아는 유럽의 소국도 아니고 한때 영국과 자웅을 겨루었던 초강대국.
이번에 망명 온 다섯 남매는 방계도 아니고 직계다.
더욱이 알렉세이는 혁명이 터지기 전까지 다음번 황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었기에.
온 관심이 이곳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전하.”
무수한 인파를 뚫고, 우리 집으로 향하니 또 다른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뭔 놈의 전화가 이리도······.”
“······.”
“다 O.T.M.A.A.(니콜라이의 다섯 남매)의 안부를 묻는 전화였다고?”
“예. 그렇습니다.”
잠시 출근했을 동안인데, 전화가 이리 많이도 왔다니.
‘당분간은 글렀네.’
바쁜 일이 생기면 사람을 보내 옆집에 부탁해야겠다.
전화 좀 빌리자고 말이다.
“죄송합니다. 이 왕자님.”
우리 집에 머물던 알렉세이는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로 다가왔다.
부모님과 헤어졌고.
오랜 항해 끝에 낯선 곳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과한 관심까지 어린 소년에게 쏠리는 상황.
멘탈이 부서질 만도 한데.
아직도 저리 씩씩하게 견뎌 내고 있는 것을 보면, 얘도 보통은 아닌 느낌이다.
“저 때문에 이 왕자님의 평화로웠던 일상이, 엉망이 된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군요.”
봐봐.
계속 저리 어른스럽게 말하는 것 좀 보아라.
‘정치는 개판을 쳤지만, 가정 교육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시켰나 보네.’
최악의 군주라지만, 최고의 아버지라는 이야기가 세간에 돌던데.
니콜라이는 정말이지 딱 그런 놈 같았다.
1904년생.
고작 12살밖에 안 된 소년이 저리 의젓한 것을 보면 말이다.
“아닙니다. 알렉세이 황태자. 그대가 이곳에 방문하지 않았어도, 저들 중 상당수는 우리 집 앞에 진을 치고 사진기 셔터를 연신 눌렀을 놈들입니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린 애 앞에서 칭얼거려서야 쓰겠는가?
“일부 양키(일부 미국인들을 비하하는 호칭)들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영혼까지도 파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에 먼저 온 망명 선배로서,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조언을 알렉세이에게 해 주었다.
“밖에다 버린 쓰레기까지 뒤져 가며, 뉴스거리가 있나 어슬렁거리는 놈들이 바로 저놈들입니다. 초원에서 서식하는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지요.”
“그, 그렇습니까?”
“예. 황태자께서는 이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미국에서 계속 머무실 것이라면요.”
“가, 감사합니다. 이 왕자님.”
황태자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굉장히 예의 바르게 날 대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정말이지 인성 하나는 제대로 된 아이 같다.
혈우병에만 걸리지 않았다면, 좀 더 성격이 밝아져서 더 완벽했을 텐데.
나는 알렉세이에게 피의 저주를 유전시킨 빅토리아 여왕을 떠올리며, 그녀의 업보가 내 앞에 있는 소년에게 집중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역시 세상은 불공평해.’
정작 그 벌을 받아야 할 후손들은 영국에서 이래저래 잘 지내고 있는데 말이다.
“아! 그대가 내게 건넨 인장과 계좌증서는 바로 확인했소이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알렉세이가 내게 건넸던 서류들을 언급했다.
“솔직히 그대가 뉴욕에 방문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방금 언급한 절차는 생략할 수 있지만······ 잔고를 확인하려면, 원칙상 본인이 직접 본사에 방문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럴 상황이 안 된다.
그렇기에.
내가 알렉세이의 대리인이 되어서 현 니콜라이의 재정 상황을 그의 가족에게 알려 줄 생각이었다.
“예외를 두면 계속해서 자신도 빼 달라는 이들이 생겨나기에, 이리 빡빡하게 절차를 지키는 것이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말아 줬으면 합니다.”
알렉세이는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 생각하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이 왕자님.”
알렉세이는 반걸음 앞으로 다가오며 내게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저는 좀 더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
“아버지께서 이 왕자님을 대부처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조언대로 저는 이 왕자님을 대부처럼 따를 것이니, 부디 이 왕자님께서도 저를 편히 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니콜라이의 행동은 TV 속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집안이 망하고, 아는 지인에게 자식을 맡길 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주며 다른 도시에 있는 친척에게 의지하라고 하지 않던가?
딱 그 모습이었다.
“흠······.”
애잔하다.
더욱이 니콜라이 때문에 적지 않은 이득을 보았기에, 그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니키가 그렇게까지 말했다고 하니, 노력해 보겠소이다.”
“감사합니다.”
“물론, 사적인 자리에 한해서겠지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계속하여 예의를 차렸다.
남들에게 흠 잡힐 수도 있고.
나 하나 몸 간수하기도 힘든데, 다섯 사람의 후견인을 자처하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해서다.
“예. 그리해 주십시오.”
알렉세이는 활짝 웃었다.
이후 그는 갑자기 무언가 잊고 있던 것을 기억해 낸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안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 제가 이것을 까먹었군요.”
“이건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입니다. 이걸 이 왕자님께 건네라 하셨습니다.”
알렉세이는 또 다른 문서 하나를 내게 건네었다.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도 꼭 함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흠.”
나는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알렉세이를 바라보았다.
“알렉세이, 그대도 이 안에 있는 내용을 읽어 보았소이까?”
“아닙니다. 감히 제가, 이 왕자님이 먼저 확인하시기 전에 어찌 이것을 읽어 볼 수 있었겠습니까?”
알렉세이가 건네준 서류는 크게 두 개.
첫 번째는 연해주에 있던 황실 소속 광산들을 내게 넘기겠다는 것.
이미 상당수의 자산은 임시정부 측에 몰수되었다지만.
서류상으로는 러시아가 몰락하기 전에 이를 내게 양도한 것으로 되어 있기에.
차후 분쟁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다.
‘둘째는······.’
대한제국의 영토와 관련한 이야기였다.
러시아는 청으로부터 1858년, 그리고 1860년에 아이훈 조약과 베이징 조약을 맺으며 동북쪽 영토를 그들에게서 건네받았다.
‘대한제국의 동쪽 영토가 토문강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고, 이를 보상코자 한다.’
뭘 보상하겠다는지.
정확한 목적어가 없다.
‘하지만 쓸모는 있겠군.’
해당 문서는 외교문서니까.
그것도 공식.
‘이번 직인도 그가 퇴위당하기 직전에 막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군.’
내게 도움이 될지, 아니면 해가 될지는 차후에 생각해도 될 터.
아무튼.
마지막에 이리 아낌없이 주는 것을 보니, 니콜라이가 알렉세이를.
그리고 그의 네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감정이 전해지는 것 같다.
‘아이들을 살리려고 노력한 것은 결국 내게 좋은 결과로 돌아오려나.’
인간적인 정도 있고.
연해주에 한인들의 나라를 세우려는 계획도 있기에.
나는 니콜라이는 몰라도 알렉세이는 살리려고 했다.
내게 이미 돈은 많으니까.
니콜라이의 비자금은 상당하지만, 내 재산은 이를 훨씬 뛰어넘고.
차후에도 더 많이 벌어들일 자신이 있었기에.
나는 결국 알렉세이를 구하는 선택을 했다.
“저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기자들 때문에 많이 피곤하셨을 텐데······ 다음에 다시 들리겠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회상하자, 잠시 피곤이 급히 몰려왔다.
이에 알렉세이는 내 표정 변화를 눈치채고, 재빨리 그가 머물고 있던 손님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아! 알렉세이.”
“예. 이 왕자님.”
“내 그대가 뉴욕에 있을 때 편히 머물 곳을 구해 놓았소이다.”
“예?”
혹시나 오해할까 봐 빠르게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그대는 몰라도 그대의 누이들이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아······.”
“바로 옆옆집입니다. 부디 내 호의를 받아주었으면 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이 왕자님.”
꾸벅 인사를 하는 알렉세이를 향해 내가 한 사람을 지목했다.
“저녁 먹고 조심스레 한번 방문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최 비서실장이 이를 안내해 줄 것입니다.”
알렉세이는 이에 기쁜 얼굴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조만간 다시 이곳에 들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 * *
“최 비서실장님.”
“예. 알렉세이 황태자님.”
늦은 밤.
알렉세이는 최현우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다.
바로 옆옆집이지만.
담장 너머에는 기자들로 가득했기에.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에, 정체를 숨긴 채 자동차를 타고 바로 옆옆 건물로 이동한 거다.
“최 비서실장께서는 이 왕자님과 함께 유학을 시작하셨다 하던데 말입니다.”
“맞습니다. 의왕께서 미국으로 건너오셨을 때, 처음부터 그분의 곁에서 비서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알렉세이는 최현우에게 몇 가지 질문을 계속해댔다.
어디서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강과 최현우의 과거 인연을 거론하며 이강과 관련된 질문들을 마구마구 던졌다.
“세간에서는 그때의 이 왕자님의 처지가 나와 매우 비슷하다고 말하던데 말입니다. 최 비서실장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최현우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답을 내놓았다.
“완전히 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조건이 많이 겹치긴 합니다.”
“그래요?”
“예.”
알렉세이는 희망 가득한 표정으로 최현우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나 또한 이 왕자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
“이곳에서 이 왕자님처럼 거물이 될 수 있냐는 것입니다. 더하여······.”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알렉세이는 제법 의젓했다.
하지만 살짝 흥분했는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며 최현우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고국에 계신 나의 부모님을 구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참으로 어려운 일인지라······.”
최현우는 이강의 최측근이다.
거의 모든 정보가 그를 통해 이강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러시아의 국내상황 역시 최현우에게 일차적으로 보고되고 있었기에.
최현우는 알렉세이의 바람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다만······.”
“다만?”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예. 유학 초반에 의왕께서는 현 상황에 많이 낙담하고, 반쯤 생을 포기하시며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십니까? 미국에서 대재벌이 되었고 어엿하게 가정도 꾸리고 계십니다.”
알렉세이가 제법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왕자께서 그리 사셨다고요?”
“예. 하지만 의왕께서는 어느 날 마음을 고쳐먹으셨습니다. 정확히는 적진 깊숙이, 일본의 수도였던 동경에서 깨달음을 얻으셨지요.”
최현우는 이강이 막 빙의되었을 때를 회상했다.
물론 그 사실을 몰랐기에.
정신을 차린 것으로만 인식하고 있었지만.
아무튼.
거짓이나 과장 하나 없이 이를 알렉세이에게 알려 주며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조언했다.
“물론 일부 조건이 황태자 전하께 많이 불리하긴 하나······.”
쉽지는 않을 거다.
그의 아버지는 자국민을 총칼로 학살하라고 명령했던 최악의 군주.
더욱이 세계대전으로 천만 이상의 국민이 사망하였는데.
이 모든 것이 차르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라고 생각되었기에.
그 업보를 알렉세이가 이겨 내야 한다.
“황태자 전하 옆에는 저희 의왕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
“언제든 힘든 일이 있으면 찾아오시지요. 의왕께서는 의리가 있으신 분이십니다. 더불어 허언도 안 하시고요.”
최현우는 이강의 사람이다.
결국에는 이강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그의 업무.
최현우는 알렉세이에게 이강은 믿어도 된다고 조언하며, 그의 업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조언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아, 도착했군요. 금방이지요? 자자, 이쪽입니다.”
옆옆집에 마련된 별채는.
러시아식 실내장식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대저택이었다.
마치 그들이 살던 궁궐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했기에.
알렉세이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동안 그 광경을 감상만 했다.
“누님들과 할머니께서 좋아하시겠네요.”
“그렇습니까?”
“에. 아주 많이요.”
* * *
“수고가 많았소. 짧은 시간 안에 내부를 싹 뜯어고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다섯 남매와 마리 태후는 우리 집에서 조금 더 머물다가 내가 마련해 준 이웃집으로 이동하였다.
나는 이 과정에서 에델의 도움을 크게 받았기에, 자기 전에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아니에요. 거의 고아나 다름없는 아이들인데, 제가 도와야지 누가 돕겠어요.”
에델의 얼굴은 굉장히 복잡했다.
시원하면서도 걱정하는 표정.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 좀 더 확실하게 알아두기 위해 계속하여 시선을 교환했는데.
“혹, 아쉬운 것은 아니죠?”
“뭐가 아쉽다는 말이오?”
한 십여 분 정도 이야기했을 때.
에델이 속에 있던 이야기를 내게 했다.
“우리 집에 미녀가 넷이나 들어왔잖아요.”
“그래서?”
“그래서라니요. 일개 평민도 아니고 무려 공주들이 넷이나 방문했는데······.”
러시아 공주들이 우리 집에 방문할 수도 있다고 처음 말했을 때.
에델은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어 댔다.
그때.
고아가 될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걱정하느라고 저런 표정을 짓는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짚은 듯했다.
“혹시 질투하는 것이오? 저 어린아이들에게?”
“······.”
에델이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백했다.
“공주들이잖아요. 태어날 때부터 왕족인······.”
미국의 최상류층들은 유럽 귀족들에게 콤플렉스가 있다.
1차, 2차 대전 이후.
유럽이 몰락하고.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오르며.
그들이 가지고 있던 열등감은 자못 사그라들지만.
지금은 그 콤플렉스가 최고조에 달할 때였다.
에델 역시도 미국의 최상류층.
나와 결혼을 하게 되어서,
의왕비.
혹은 이 왕자비라는 새 신분을 가지게 되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귀족인 자들과 결혼을 통해 작위를 받게 된 여성의 지위는 애초부터 시작 선이 다르다.
에델은 이를 언급하며.
그녀의 속에 있던 열등감을 내게 표현했다.
“그대는 가끔 나를 서양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소.”
“그게 무슨······.”
“나는 조선에서 태어났다오.”
생전 나를 처음 보는 이들은 나를 동양인으로 대하지만.
제법 많이 말을 섞은 이들은 다른 그들과 동일시 혹은 유럽의 왕족들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를 꼭 집어서 말하며, 우리들의 결혼은 하나도 흠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한제국은 물론이고 일본과 청(중국), 타이(태국) 등은 유럽같이 타국의 왕족과 혼사를 맺는 경우가 드무오.”
“······!”
“아니지. 오히려 꺼린다오. 타국에서 간섭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 그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에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니 내게는 공주든 평민이든, 신분 따위는 중요치 않으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중매 결혼이긴 했으나.
나의 결혼 생활은 이전에 박병준으로 살 때보다도 훨씬 더 평온했고, 행복했다.
이 점을 에델에게 알려 주며, 안심해도 된다고 그녀를 달렸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네요.”
에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안 한구석에 쌓여 있는 짐들을 눈빛으로 가리켰다.
“아, 짐은 다 싸놨어요. 이번 주말에 서부로 향하신다고 하셨죠? 휴즈 대통령과 함께.”
“그렇소. 선거철이지 않소? 휴즈가 서부 쪽에 집중 유세를 할 예정인가 본데, 내 도움이 필요한가 보오.”
정확히는 내 조언이, 더 나아가서는 내 돈이 필요한 것 같았지만.
뭐, 그게 그거니 굳이 이를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
“아, 그대의 누님 되는 분이 요즘 사교계에서 대한제국을 많이 언급한다던데.”
“아…”
에델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금방 이해했다.
“나름 도움이 되려고 그런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 같아요.”
“그래?”
“예.”
에델은 다시금 나와 시선을 교환하며 눈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왕자님께서 서부에 가면, 한동안은 우리 못 보겠네요.”
“아쉽소?”
“아쉽죠. 한시라도 떨어져 있기 싫은데.”
이에 나는 그녀를 꼭 안으며 속삭였다.
“그럼 오늘 밤 더 많이 사랑을 나누고 가면 되지 않겠소?”
“애, 애들이 깨면 어쩌려고요.”
“그럼, 조용히 사랑을 나누면 되지.”
< 롤모델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