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85)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85화(285/392)
< 쪼개지는 아시아 (1) >
“우남(이승만). 뭐가 그리 재미나길래, 땅이 꺼지게 쳐다보고 있는가?”
박용만은 모시옷을 입고 연신 부채를 흔들어 대는 이승만을 향해 다가갔다.
이에 이승만은 그의 옆에 있던 접시에서 수박 한 점을 쥐어 들며, 그의 오랜 친구에게 권했다.
“오늘 아침에 나온 신문 기사를 읽고 있었네. 우성(박용만), 자네도 이 기사들 좀 읽어보겠는가?”
“좋지.”
미국물 좀 먹는 남자답게, 이승만은 영어신문을 읽고 있었다.
박용만 또한 오랜 기간 미국에서 살았다.
그랬기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친구가 읽던 신문 기사 내용을 쉬이 해석할 수 있었는데.
『주초에 레닌이 발표했던 깜짝 선언, 전 러시아 내 민족 권리 전문. 제4면에 전체공개.』
박용만은 이승만이 읽고 있는 국제사회면 중 한 단어를 가리키며, 그의 오랜 친우에게 물었다.
“레닌이라는 놈. 전하께서 말씀하셨던, 그놈이지?”
“그렇네. 이놈이 빨갱이들의 수괴라고 하더군.”
박용만은 팔짱을 끼며 이승만이 들고 있던 신문을 계속하여 곁눈질했다.
『러시아 내 소수민족들을 향한 레닌의 깜짝 선물. 슬라브족을 제외한 소수민족 일원들에게 민족의 자결권과 자치권 보장하다.』
『서방 언론들. 레닌의 행동을 평가 절하하다.』
『임시의회와 본격적인 싸움을 앞두고, 소수민족을 아군으로 포섭하기 위해 깜짝 발표를 했을 터.』
『러시아 내 소수민족. 레닌의 발표에 환호. 뜨거운 열기에 열강들 긴장.』
박용만은 처음에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연신 지어 댔다.
하지만 신문 속에 실려 있는 내용이 그의 마음에 점점 드는지, 곧 은은한 미소를 잔뜩 머금었다.
“이야. 이놈. 똥구멍이 아주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모양이로군.”
“······.”
“그러지 않고서야 일국의 수장이 이런 발표를 했겠는가? 아니 그런가?”
제국주의 시대는 힘이 곧 정의다.
약한 놈은 강한 놈에게 붙들려서 제 고혈을 쪽쪽 빨리는 것이 이 세계 원리다.
하지만 지금 레닌은 소수민족에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밀고 있었다.
그만큼 급했기 때문이다.
임시정부 요인들, 그리고 기존의 기득권들이 중심이 된 백군이 레닌의 볼셰비키에 맞서서 러시아 곳곳에서 대항하고자 반군을 일으키고 있다.
더욱이 영국이 독일과 단독강화를 시도하려는 레닌을 때려잡기 위해, 백군 일파들과 손을 잡는다는 소문이 페트로그라드 전역에 퍼지면서 그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한다.
그래서 평시였다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겠지만, 저리 민족자결주의라는 단어가 러시아 수장의 입에서 나온 거다.
박용만은 이를 언급하다가 미국에 있는 한 인물을 거론했다.
“전하께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셨던 것도, 레닌의 이번 발표를 예상하셨기 때문이었겠지?”
훈춘에서 행해졌던 대회의는 진즉 끝이 났다.
남만주에 괴뢰국이 당장 세워져도 이상치 않은 상황.
하지만 훈춘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은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들의 실질적 우두머리였던 이강이 그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강은 원 역사에서도 레닌이 윌슨에 앞서서 이 선언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이리 잠시 시간을 지체한 거다.
『우크라이나, 핀란드. 즉각적인 독립선언. 볼셰비키 측 러시아 내 소수민족들의 빠른 대응에 당황하는 기색 감추지 못해.』
이는 신생국이 향후 러시아 혹은 소련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 타자는 본래 갖은 원망을 다 사게 되어 있으니까.
연해주에 있던 한인들이, 레닌의 선언 이전에 독립하겠다고 서방 언론에 발표했다 쳐 보자.
차후에 레닌은 앙심을 품고 있다가 이를 보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핀란드가 한인들보다도 먼저 나섰으니, 이를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레닌의 눈은 이미 서쪽으로 향해 있으니까.
“전에 내 한 번 이야기했었는데 말이야. 한 달 전 술자리에서의 일, 기억 안 나는가?”
이승만은 과거 이야기를 슬쩍 하며, 자신 역시도 이를 예상했다고 박용만에게 슬그머니 제 지식을 자랑했다.
이에 박용만은 뒤늦게나마 친우의 과거 발언을 칭찬했다.
“아! 그러고 보니 자네가 해 줬던 말을 싹 까먹고 있었구먼. 우남, 자네의 통찰력이 새삼 부럽네. 전하께서야 원래부터 미래를 잘 예측하셨다지만, 이번에 그런 전하의 숨은 속뜻을 꿰뚫은 자는 러시아에서 활동했던 이 특사(이범진)를 제외하면 자네가 거의 유일했네.”
박용만은 제 친구를 부럽다는 듯 쳐다보며 이승만의 기다란 가방끈을 칭찬했다.
“왜 그리 박사 나부랭이에 집착하나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군. 역시 배움이 최고야.”
“그래. 내 전공이 국제법이지 않은가? 그쪽 공부를 좀 하면서 외교 쪽에도 식견이 쌓인 모양이네.”
“크. 역시.”
박용만은 이승만이 들고 있던 신문을 더는 곁눈질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제 친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에게 대놓고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우리 이 박사님께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 묻고 싶군.”
“뭐가?”
“앞으로 국제 정세가 어떻게 흘러갈 것 같냐는 말일세.”
본디 점을 볼 땐, 복채를 던져 주는 법.
하지만 박용만은 맨입으로 이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승만은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졌다.
“뭐, 정해진 수순대로 일이 진행되겠지.”
“정해진 수순?”
이승만은 머리에 동아시아 지도 하나를 떠올려 보았다.
“그래. 의왕 전하의 계획대로 만주와 연해주에, 신생국들이 줄줄이 생겨날 것이란 말일세. 일부는 우리와 상관없는, 독립된 길을 걷기도 하겠지.”
위안커원의 봉천 군벌도 제 나라를 세우겠고 한참 용을 쓰고 있다.
내몽골의 군벌 세력들도 북경 정부와 각을 세우고 영국에 자신들의 독립 지지를 부탁하고 있고.
“지난날, 훈춘에서 모였던 다섯 의용군 세력이 각자 괴뢰국을 곧 만들겠지. 더불어 가까운 시기에 하나로 뭉치겠고.”
박용만은 그때 회의 내용을 복기하며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단일 왕국도 아니고 합중국이라니······ 거, 본국을 먼저 독립시켰다면 이런 수고스러운 일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이승만은 남은 수박 조각을 제 입에 털어 넣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대한제국을 ‘독립’시키는 것이 아니네.”
“그, 그렇지. 명목상으론 대한제국을 신생국으로 ‘편입’시켜야 하니까.”
박용만은 골치가 아픈지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 대며 인상을 팍 썼다.
“으- 그놈의 영국 놈들 때문에, 신생국의 정부체계가 전례 없는 이상한 형태를 띠게 되어 버렸네.”
“전례가 없지는 않지. 미국과 멕시코도 합중국 체계를 유지하고 있고, 영국 또한 살짝 결은 다르지만 연합왕국을 유지하고 있다네.”
이승만은 합중국과 연합왕국 정치체계의 이로움을 설명하며, 이강이 무슨 뜻으로 이런 일을 추진하는지 그 배경을 설명했다.
“하나로 통일된 법체계가 주는 장점도 있지만, 지역별로 각자 자신들의 사정의 맞게 법을 집행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네.”
간도 지방에 생겨나는 괴뢰국인 간도국과 그 위 목단강과 흑룡강 인근에 세워지는 발해국.
이 두 지방의 농지 사정은 각각 틀리다.
간도국은 한인들이 소작농으로, 중국인들이 지주로 있기에 농지개혁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발해국은 땅이 남아돌기에 경자유전의 법칙이 적용되면, 그 지방 개발에 해가 될 수도 있다.
그랬기에, 각각 다른 법이 적용되어야 하는 필요성이 제기된 거다.
“동의하네. 농지법도 그렇고 다른 법들도 그 지역에 맞게 입법해야 한다 생각하네.”
“그렇지. 솔직히 몇몇 결정은 내 마음에 썩 들지 않지만······ 어쩔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수의 결정이 곧 법이 되니까.”
이승만은 한 예를 들었다.
“의왕 전하께서도 이번에 통과되었던 몇몇 안건은 탐탁지 않아 하신다지?”
“아, 표준단위였나? 뭐, 아무튼······.”
박용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강의 왼팔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우현식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때였다.
“아이고. 이 박사. 여기 계셨구려. 어? 우성 선생도 여기 계셨소이까?”
이승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연해주 지방에서 이름 좀 날리는 최씨 집안 사람들이 그의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무슨 일입니까?”
“그게, 이 박사 건강이 걱정되어서 먹을 것 좀 싸 왔습니다. 이것 좀 한입 잡수어 보십시오.”
박용만이 살짝 부럽다는 듯 이승만을 흘겨보았다.
“요즘 들어 자네 인기가 많아졌군.”
“뭘······ 마누라랑 자식놈이 독일 놈들의 손에 비명횡사한 탓에, 내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겠지.”
그렇다.
사람들이 이승만을 이리 챙겨 주는 것은 독일 놈들의 공격 때문에 이승만의 가족이 객사했기 때문이다.
“······.”
“······.”
잠시 침묵이 오갔다.
이승만은 이런 불편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조금 전 최씨 일가가 건네온 인절미를 바닥에 탁- 하고 내려놓고 박용만과 함께 나누어 먹고자 했다.
“나도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네를 다시 보았을 것일세.”
“······.”
“사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끝까지 나라와 우리 민족만을 생각하지 않았던가? 자네는.”
“······.”
“내 자식놈과 마누라가 그리 갔다면, 나는 아주 눈이 뒤집혔을 것일세.”
사실 이승만은 그리 많이 슬프지는 않다.
그가 미국으로 막 떠날 때, 아내에 대한 애정이 사그라졌기 때문이다.
조강지처를 챙기라는 이강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금 재결합했을 뿐.
이강의 권유가 없었다면, 이승만은 죽을 때까지 그의 아내를 다신 보지 않았을 거다.
다만 그의 아들은 가끔 이승만의 꿈에 나오곤 했다.
아내를 사랑하진 않아서, 막 태어난 아들마저도 외면했었는데.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뒤늦게 생겨난 부성애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따금 아들의 얼굴이 떠오른 거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지.”
이런 구역질 나는 이야기는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네.”
말없이 인절미를 나누어 먹던 박용만과 이승만.
접시가 고새 비자 그들은 서로의 미래를 예상하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아, 자네는 이제 어찌할 것인가? 이곳에 계속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미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자넨? 어찌할 생각인가?”
“나는 상해로 다시금 이동할 생각이네.”
“그 후에는?”
“이 일을 마무리한 후, 의용대를 아니지 신군을 이끌고 세계대전에 참전할 생각이네만.”
박용만이 냉수 한잔을 마신 후, 이승만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떤가?”
“나는······.”
이승만은 잠시 고민하다가 제 포부를 밝혔다.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네.”
“미국?”
“그래.”
“의왕 전하 곁에 남겠다는 뜻인가?”
“그래.”
이승만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의 주변에 듣는 귀가 더 있나 살폈다.
이후에 박용만에게 속삭이며 왜 미국행을 선택했는지 속뜻을 고백했다.
“이곳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갈 것일세. 더욱이 나를 딱히 필요로 하는 곳도 없어 보이네.”
“······.”
“자네도 내 의견에 동의할 것일세. 그러니 자네 역시도 상해로 돌아가고자 하겠지. 내 말이 틀렸는가?”
동간도와 서간도, 연해주 등.
국경 인접 지역은 십여 년간 의용군에 의해 다스려졌던 지역이다.
이곳에 연고가 없는 이승만으로서는 그야말로 굴러 온 돌이나 다름없는 신세.
거물이었다면 박힌 돌들을 쉬이 빼낼 수 있겠으나, 이승만은 그 정도까지 성장하진 못했다.
“맞네. 다들 워낙 끈끈해서, 나조차도 파고들 틈이 없는 것 같으이.”
“그래. 나 또한 그리 생각하네.”
이승만은 팔짱을 낀 후, 마루에 벌러덩 누었다.
그 뒤 새파란 여름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했다.
“의왕 전하 곁에서 최 비서실장처럼 시중이라도 들 생각인가?”
“글쎄.”
누구의 시중을 드는 것은 별로다.
이승만은 좀 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의왕 전하께서는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기로 유명하신 분이시니······ 내가 빛날 수 있는 곳에, 분명 나를 기용하시리라 믿네만.”
남만주와 연해주에 괴뢰국이 건국했다.
대한제국을 독립시키기 위해, 막 첫 단추를 낀 셈.
앞으로는 더한 고난이 그들의 앞에 있을 터.
이승만은 이 과정에서 분명 자신이 중히 쓰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뭐, 그렇겠지.”
이는 이승만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거다.
그의 곁에 있던 박용만도.
미주 교민들과 본국의 의용군들을 연결해 줬던 안창호 역시도.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로군.”
“그러게.”
힘든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깨달으며 그들은 한시라도 빠르게 대한제국을 일본의 마수에서 해방하고자 했다.
* * *
『동유럽에 이어, 동아시아에서도 신생국들이 우수수 생기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한 연해 왕국 이달 7일을 기점으로 건국.』
『연해 왕국 북쪽에 자리한 동해국 역시도 이번 주말 건국 선언할 듯.』
『한인들이 중심이 된 두 국가, 일주일 전에 개국한 이웃 국가인 남만주, 간도 발해국과 연합할 듯.』
『다섯 개의 신생 국가 수반, 블라디보스토크에 모여. 대한 합중국 결성하기로 만장일치 합의.』
『입헌군주로 미국에 있는 이강을 추대하기로.』
< 쪼개지는 아시아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