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88)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88화(288/392)
< 솎아 내기 (1) >
이 세상은 모순덩어리다.
누군가에게는 비극이 되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극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가까운 예로 슬럼가에서 대규모 화재가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오래된 구도심일수록, 보통 집들이 밀집되어 있다.
그에 비해 방재 시설은 미비해, 화재가 발생한다면 다른 지역보다 더 빠르게 주변으로 번진다.
그로 인한 재산과 인명 피해는 오로지 그곳에 사는 이들의 몫.
언론에서는 이런 사건이 터지면, 비극적인 모습만을 연신 조명하며 애도를 표한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다른 한편에서는 카지노에서 잭팟이 터진 것처럼 뒤에서 열심히 환호를 질러 댄다.
슬럼가에 땅을 소유하고 있던 지주들로서는 그야말로 신의 축복과도 같은 희소식이니까.
기존에 거주하던 임차인들의 이주 문제로 재개발이 차일피일 미루어지는 찰나에, 대규모 화재 사건이 발생한다면?
걸림돌이 싹 제거되는 꼴이다.
남은 것은 재개발뿐이니, 기존의 지주들은 졸지에 떼부자가 될 터.
정말로.
누군가에게는 비극이, 다른 누군가에겐 희극이 된다는 말이다.
“들어오게.”
“예.”
가정 말고 작금의 현실 속에서도 이러한 모순은 계속되고 있다.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만으로 2년째.
유럽의 국가들은 각자 그 정도는 다르나 엄청나게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저 멀리 아시아 끝자락에 걸쳐 있는 일본은 그야말로 개국 이래 최대의 초호황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비대한 군부 때문에 비정상적인 재정 운용으로 고통받아야 했던 일본은 이제 안녕이다.
과거의 초라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고위층 일부가 주장하던 뜬구름 잡는 낙수효과 또한 일본 경제에 고루고루 나타나고 있으니까.
“이쪽에 앉게나.”
“예. 총리 각하.”
하지만 일본의 총리였던 오쿠마 시게노부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개선되고 있는 일본의 국내경제 사정과는 다르게, 외부 변수들은 하나둘씩 그들에게 불리해지고 있어서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말이다.
“미국과 영국이 우리에게 또다시 경고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쾅-
평소 인자한 인상과 다르게 오쿠마는 연신 씩씩거렸다.
최근 자신의 최측근이자 외무대신이었던 가토 다카아키의 보고 이후로 쭉 그래 왔다.
“우리를 아직도 지네들 뒷마당을 지키는 개새끼 취급하고 있군. 빌어먹을.”
미국에 막 파견된 고노 주미대사가 급히 전보를 도쿄로 보냈고 이를 다시금 총리에게 전달한 것인데.
그 내용이 참으로 기가 막혀서 이를 어떻게 대처할까 한창 논의 중에, 또 다른 비극적인 소식이 이렇게 오쿠마의 귀에 울려 퍼진 거다.
오쿠마 시게노부는 뜨거운 콧김을 한참이나 내뿜다가 가토 다카아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토 다카아키는 그런 총리를 바라보며 전전긍긍 앓았다.
“그래, 뭐라던가? 어디, 그 개소리. 한번 들어나 보세.”
오쿠마는 한창 열을 올리다가 이내 한숨을 크게 쉬고 진정했다.
이후 외무대신을 바라보며 오쿠마가 굳게 닫았던 입을 열었다.
“여태껏 해 왔던 경고들이지만, 살짝 결이 달라졌습니다.”
“그래?”
“예. 총리 각하. 혹시 어디부터 보고해야 합니까?”
덜 나쁜 소식을 먼저 듣냐, 아니면 더 나쁜 소식을 먼저 듣냐의 차이.
개인마다 취향에 따라 갈릴 수 있는 선택지다.
오쿠마는 예부터 전자보다는 후자를 먼저 듣기를 선호했다.
그랬기에 그는 아직 동맹이었던 영국의 경고보다는, 이강이 똬리를 튼 워싱턴 소식부터 듣기로 마음먹었다.
“미국부터 듣지. 지금 미국의 대통령이 이강 그놈에게 홀라당 넘어간 상태가 아닌가?”
“······그, 그렇지요.”
“그래, 양키들은 뭐라고 지껄이던가?”
가토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조는 비슷합니다. 이전부터 경고했던 사항을 절대로 어기지 말라 하였습니다.”
미국이 일본에 주문했던 요구 사항은 십여 년 전부터 한 가지였다.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지키라.』
“빌어먹을.”
필리핀과 한반도를 맞교환했던 이 밀약은, 일본이 그토록 바라던 한반도 점유를 가능하게 만든 외교적 승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 밀약 때문에 북방 확장이 가로막혔다.
간도와 연해주에서 활동하는 의용군을 토벌하려고 할 때마다 미국은 이 밀약을 거론하며, 일본군이 북쪽으로 진군하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거절한다면?”
“밀약을 파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차후 막대한 경제 제재 조치가 뒤따를 것이라 하였습니다.”
오쿠마는 외교와 정치 쪽에 어느 정도 특화된 인재였다.
그렇기에 지금 미국의 경고가 굉장히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외교 용어는 본디 돌려 말하는 것이 원칙이다.
상대방이 잘못 해석하여 두 나라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 안 되니까.
그렇기에 웬만해서는 강렬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휴즈는 ‘파기’라는 강력한 표현을 외교 용어로 사용했다.
더불어 후속 조치도 있을 것이라는 그들의 표현은 정말이지 오쿠마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파기?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파기하겠다고?”
“예.”
“그리되면 미국 또한 손해를 입을 텐데? 괜찮다던가?”
하지만 오쿠마는 한 나라의 수장이다.
다른 나라의 협박 아닌 협박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신의 부하들이 그를 업신여길지도 모른다.
예부터 무신이 정권을 잡았던 일본은 이러한 경향이 더욱더 강했다.
더욱이 정치구조 개편으로 막부가 폐지되고 총리제가 실행되며, 툭하면 총리 자리가 갈리는 상황이다.
그랬기에 오쿠마는 속으로는 잔뜩 긴장했지만, 겉으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얼굴로 가토 다카아키를 보며 물었다.
“자네는 그 치들이 정말로 그리 행동하리라 생각하는가?”
가토 다카아키 역시 일본의 정치인이다.
다만 지금 그의 위치는 외무부의 상관이 아닌 총리의 부하 위치.
그랬기에 약간은 약한 모습을 보여도 됐다.
“우리와 미국은 사정이 다릅니다.”
“어떻게?”
“미국이 관리하는 필리핀은 현재 치안이 상당히 많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래?”
“예. 현지 고위층들을 완전히 매수했으니까요. 더불어 기존에 스페인 자본가들이 가지고 있던 플랜테이션 기업 농장 지분을 미국 자본가들이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
오쿠마는 잘 알겠다는 표정을 들었다.
아직 핵심을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들은 정보만으로도 가토의 입에서 무슨 주장이 나올지 대충 그려졌기 때문이다.
“약아빠진 양키놈들. 고새, 돈이 되는 알짜배기는 죄다 쏙 빼먹은 모양이군.”
“예.”
경제적 침략은 이미 끝났다는 뜻이다.
더욱이 현지 우두머리들 또한 매수해 놓은 상황이었기에, 미국은 필리핀에서 발을 빼도 별 손해가 없다.
아니지.
오히려 이득이다.
통치 비용을 아낄 수 있으니까.
미국은 일본과 다르게 필리핀을 완전히 미국화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시장.
반면 일본은 다르다.
미국은 슬슬 필리핀 열도에서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지만, 일본은 영원히 한반도에 머무르고 싶어 했으니까.
“그렇다면 영국은?”
두 골칫덩어리 중 남은 하나를 오쿠마가 언급하자, 가토가 한숨을 쉬며 답했다.
“그들도 전과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군사지원을 해 준다면, 대한합중국을 향한 우리의 행동을 어느 정도 용인해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파병.
그놈의 파병이 뭐라고.
눈 딱 감고 해 줄 수도 있지만, 일본 내의 여론이 너무 안 좋다.
그동안 빚쟁이가 추심하듯, 일본을 탈탈 털어먹었던 이들이 바로 영국과 미국이다.
반영, 반미 감정이 극에 오른 상황에서 그들을 위해 자기들의 자식을 저 먼 유럽까지 보내야 한다면.
어느 누가 찬성할까?
“그놈의 파병 이야기를, 또 지껄였군.”
“송구하옵게도 그렇습니다.”
가토는 눈치를 보며 영국 대사가 그에게 했던 말을 고대로 총리에게 전했다.
“달라진 점이 하나 있긴 합니다.”
“뭔가?”
가토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이 입수한 정보를 오쿠마에게 실토했다.
“그들의 기준에 만족하지 못한 파병을 계획 중이라면······ 적어도 방해는 하지 말랍니다.”
“방해?”
“예.”
그게 무슨 말일까,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오쿠마.
하지만 이내 기분 나쁜 표정을 지어 댔다.
지난날 회의에서 언급되었던 한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의 해상봉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예. 대한합중국의 세계대전 파병을 방해한다면, 크나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쾅-
사흘 전 토의했던 내용이 영국 대사의 귀에 들어갔다는 것도 분하고.
이걸 또 간섭하겠다는 영국의 행동 역시도 괘씸했다.
“이놈들이······.”
가토는 연신 오쿠마의 눈치를 보며, 영국이 지금 뒤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도 고했다.
“소문에 따르면, 영국놈들이 이강에게 셸사의 지분을 넘겼다는 말이 있습니다.”
“셸사라면, 동남아에 유전을 가지고 있는 석유회사가 아닌가?”
“예.”
일본의 석유 수급처를 이강이 거의 전부 장악했다는 뜻이다.
오쿠마가 부들부들 떨며 눈을 크게 떴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마음에 안 드는 짓만 하는군.”
“······.”
“내, 자네에게 한 가지를 묻고 싶네.”
“말씀하십시오. 총리 각하.”
오쿠마가 팔짱을 끼며, 뜨거운 콧바람을 연신 내뿜었다.
“우리 일본이 영국이나 미국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
“······.”
“왜 말이 없어.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 보게.”
오쿠마와 가토.
둘만 있는 자리.
가토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이내 속내를 밝혔다.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멀었다?”
“예. 88함대가 완성되기까지는 자중해야 합니다.”
“······.”
“물론 일부 군부 출신 인사들은 다르게 생각하겠지만요. 하지만 대다수 정신이 멀쩡한 관료들은 저와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동의한다.
오쿠마는 적어도 십 년.
아니지.
이십 년.
아니지.
삼십 년 이상은 미국과 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점만큼은 가토와 같은 의견이었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 쪽을 바라보고 턱을 살며시 올렸다.
“으······ 알겠네. 이만 나가 보게.”
가토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쿠마에게 마지막 말을 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다행?”
“두 나라 모두 우리 일본 정부가 북사할린을 점령하는 것까지는 용인하겠다고 합니다.”
“······러일전쟁 승전 배상금을 뒤늦게 찾아가는 셈으로 치부하겠다는 뜻인가?”
그런 셈이다.
대신 타타르 해협을 건너지 말라는 이야기를 가토가 한 번 더 하자 오쿠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빌어먹을 새끼들. 쳇, 알겠네. 알겠으니 그만 나가 보게나.”
“예. 총리 각하.”
“후.”
오쿠마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결국, 이강 그놈 때문에······ 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생겼군.”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위기는 넘길 수가 없을 것 같다.
대한합중국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군부가 발광할 테고.
그렇다고 전쟁을 일으켰다가는 자칫 패전국의 수장이 되어 버릴 테니까.
오쿠마는 담배를 태우며 연기를 하늘 높이 뿜어 댔다.
“뭐, 이 정도면 오래 재임하긴 했지.”
오쿠마의 주장대로다.
그는 단명하는 일본의 총리치고는 꽤 오랫동안 재임한 총리였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덕수궁에 심어 놓은 여인을 활용할 때가 왔군.”
물러날 때 물러나더라도.
일본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자칫 대한제국을 대한합중국에 홀라당 빼앗길 수도 있었기에, 고종을 꼬드겨 볼 생각이다.
이희(고종)는 그의 둘째 아들에게 오랫동안 열등감을 느꼈던 군주였기에.
잘만 하면 둘 사이를 영영 회복하지 못하도록 갈라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
오쿠마는 그래서 그동안 준비해 왔던 패 하나를 사용해 볼 생각이었다.
“날세.”
그는 비열한 표정을 지으며 조선 통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후, 그가 생각해 둔 바를 그에게 명령했다.
* * *
“에델!”
“엠마?”
아래층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에델의 큰언니였던 엠마 록펠러가 방문한 것 같았다.
“언니가 무슨 일이야? 어머, 형부도 오셨네요.”
“이 왕자비님. 왕자비께서는 날이 갈수록 이뻐지시는 것 같습니다.”
“뭐야. 왜 안 하던 짓을 해.”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들이 아래층에서 오간다.
나는 집무실 방을 나와서 천천히 아래층으로 향했다.
“이 왕자님.”
“집안에 계셨군요.”
몰랐던 것처럼 반응했지만.
저 두 부부는 알았을 테다.
내가 오늘만큼은 집에 있다는 것을.
‘아까 에델과 전화하는 걸 들었거든.’
그 사실을 모르는지.
엠마의 부군이었던 맥알핀이 계단을 오르며 내게로 다가왔다.
“달링. 나는 이만 위층으로 올라가 볼게.”
봐라.
내 처형의 남편.
그러니까 형님 되는 맥알핀 박사가 저리 나와 이야기하러 쪼르르 위층으로 바로 올라오지 않던가?
분명 내게 용건이 있다는 뜻이겠다.
“언니.”
“응?”
“형부는 뭘 저리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거야?”
에델의 물음에 나는 맥알핀 박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는 한쪽 옆구리에 무언가를 끼고 있었다.
“그게······.”
에델의 큰 언니였던 엠마는 아주 작게 그녀의 동생에게 귓속말해 댔다.
뭐.
맥알핀 박사가 들고 있는 것은 곧 나 역시도 보게 될 터기에.
굳이 에델이나 엠마에게 이를 물어보지는 않고, 맥알핀과 함께 집무실로 이동했다.
“오랜만이오.”
“그,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맥알핀 박사가 눈알을 팽글팽글 굴리며 내 눈치를 본다.
원체 눈치를 많이 보는 인간이지만, 대한합중국이 건국한 다음에는 더더욱 저리 행동하는 느낌이다.
나는 속으로 혀를 쯧쯧 차며, 형님인 맥알핀에게 물었다.
“들고 온 것은 무엇이오?”
“아, 이것 말이지요.”
박사가 히죽거리며 들고 있던 선물상자를 내게 건넸다.
“곧 있으면 왕위에 오르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소소한 축하선물을 하나 준비해 왔습니다.”
맥알핀은 서류 더미를 내게 건네며 방긋 웃었다.
“공화당은 이 왕자님께서 꽉 잡고 있지만, 민주당 쪽은 좀 아니지 않습니까?”
맥알핀이 연신 눈알을 굴리며 내게 건넸던 서류의 정체를 알려 줬다.
“일부는 재활용도 못 할 쓰레기들이지만, 개중에는 구제할 자도 몇몇 있어서······ 이리 명단을 추려 왔습니다.”
< 솎아 내기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