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293)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93화(293/392)
< 압도적인 물량으로 (1) >
“독일 놈들은 참으로 일머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동의하네. 그토록 중요했던 기밀 정보를 중간에서 탈취당한 것도 어이가 없는데, 대응 방식 또한 영 별로더라고.”
제법 닳아버린, 연식이 좀 있는 서류 가방에서 이위종이 관련 보고서를 꺼냈다.
이후 나를 힐긋 한번 쳐다보고는 이를 내게 건넸다.
“약아빠진 영국인들과 동일 선상에 놓고 보면, 그 점이 더더욱 부각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라면······ 강력하게 부인했을 텐데 말입니다.”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렸다.
나 또한 그리 생각하니까.
“나 또한 그리 행동했을 것일세.”
해당 사건은 이리 커질 일이 아니었다.
나는 독일 측 외교관으로 빙의한 채, 처지를 한번 바꿔 생각해보았다.
“아니지. 나였다면 오히려 역공을 취했을 것일세. 영국 놈들의 협잡질이라고 흥분을 잔뜩 하며 역정을 냈겠지. 그동안 영국놈들이 세계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분란을 일으켜왔는가?”
국제 정세 중 좀 이상하다 싶으면, 보통은 영국이 끼어있다.
영국의 혐성질은 20세기 초에도 이미 다른 나라들에 널리 알려져 있었기에, 나는 이를 이위종에게 언급했다.
“과거의 이력을 쭉 나열하며 다른 나라 외교관들을 설득했더라면, 그 치들도 어느 한쪽 편을 그리 쉽게 들지 못했을 것일세.”
간악한 영국놈들이 궁지에 몰려서 또 무슨 짓을 벌였구나, 그리 생각하며 속으로 욕을 해댔겠지.
같은 편이었던 프랑스조차도 그리 생각했을 거다.
그 정도로 영국은 신뢰가 없는 국가였다.
그렇기에 이 모든 것은 영국의 계략이라며 끝까지 발뺌했더라면, 최악의 상황까지는 안 갈 수도 있었다.
“입수한 문서의 출처를 문제 삼으며, 주제를 묘하게 도·감청 쪽으로 돌렸으면······ 자칫 커다란 역풍이 불었을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렇지.”
영국이 백악관을 도청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만방에 알려졌다면?
뭐, 그 뒤는 뻔하지.
그동안 같은 앵글로색슨족이라고, 은연중에 군수 물품을 좀 더 싸게 공급해줬었는데 말이다.
적어도 더는 이런 혜택을 받지 못했겠지.
“정 그렇게까지 하지 못했더라도······ 적어도, 침묵하거나 발뺌을 해야 했다면 이 정도까지는 여론이 나빠지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독일의 외무 장관이었던 치머만은 최악의 악수를 두고 말았다.
들키자마자 X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뻔뻔하게 공식 석상에서 멕시코에 이를 진짜로 제안해버린 거다.
물밑 접촉도 하나 없이 말이다.
‘쯧쯧. 병신들.’
외교란 본래 수면 아래에서 협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온갖 더러운 것들은 꼭꼭 숨기며, 대중에게 공개할 것들만 이쁘게 포장해야 하는 것이 바로 외교니까.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공식 석상에서 하는 발표는 두 나라 사이에 거래가 완전히 끝났을 때나 하는 거다.
그런데.
독일은 그 중간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급발진을 해버렸다.
‘아주 당연하게도 멕시코는 독일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지.’
급습해도 미국을 이길까 말까인데, 이렇게 손에 쥐고 있는 패가 상대에게 보인다면?
더욱이 내부도 뒤숭숭한데, 상대가 국경에 군대를 잔뜩 주둔 중인 미국이라면?
정신이 나간 미친놈이나 한판 싸우자고 덤비지, 제정신이면 차마 못 한다.
봐라.
멕시코 대통령 또한 당장 그날 선언하지 않았던가?
미국과 싸울 의도가 전혀 없다고.
망상병에 걸린 독일 외교관의 일방적인 구애였다고 헐뜯으며 말이다.
“뭐,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우리 대한합중국 또한 큰 이익을 보았으니. 궁극적으로는 잘된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군.”
치머만의 발언으로 미국이 생각보다 빠르게 세계대전에 합류하게 되었다.
더불어 한 가지 또한 덤으로 얻었다.
솔직히 후자 때문에 나는 한동안 계속하여 웃어댔다.
“그렇긴 합니다. 지금도 주미 일본 대사가 워싱턴을 이리저리 쏘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 오해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네.”
치머만은 멕시코에만 이러한 제안을 하지 않았다.
태평양 건너에 있는 일본에도 같은 제안을 했다.
“일본 정부 역시도 이를 빠르게 부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향한 불신감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지.”
독일은 레닌을 풀어주며, 몇 가지를 제안했다.
그중 하나가 영토에 관한 조항이었는데, 카이저는 뜬금없이 북사할린을 일본에 양도하라고 레닌에게 권유했었다.
‘참 마지막까지 아낌없이 퍼준단 말이야.’
처음 이 정보를 입수했을 때.
영국과 프랑스는 이를 두고 독일의 이간질 행위라고 해석했다.
관련 밀약 조항이 새어나갈 것을 염두에 두고 일본과 협상국 사이를 벌리기 위한, 카이저의 모략이라 여긴 거다.
하지만 치머만의 발언이 또 한 번 국제사회에서 회자하면서 그들은 다시금 생각을 고쳐먹고 있었다.
진짜로.
일본이 뒤통수를 치려다가 말았나? 하며 의심하기 시작한 거다.
물론.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카이저가 황화론을 줄곧 언급하며 일본을 견제해야 한다고 힐난했기에.
진짜로 독일과 일본이 손을 잡으리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는 않았지만.
일본을 향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라서 그런지 몰라도, 영국과 프랑스는 우리 쪽에 접촉하며 일본의 지난 과거사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이웃 국가였던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겠지.’
뭔가 영·프 수뇌진들 사이에서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네.”
카이저와 독일제국이 마지막 힘을 다하여 내게 떠먹여 주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봐서라도 이번 기회를 살려야 한다.
‘최대한 협상국과 일본 사이를 벌려놓아야 해.’
당장은 고양이 발이라도 아쉬워서 일본을 찾을 수밖에는 없지만, 그건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나 해당하는 일이고.
전쟁이 끝난다면 외교 관계 역시 재편된다.
지금부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것이 재편될 수 있게, 빌드업을 쌓아가야 한다.
‘마지막 선물은 고맙게 써야지.’
나는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이위종을 바라보았다.
이위종 또한 내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빠르게 해석하였기에 그는 서둘러서 짐을 챙기고 워싱턴으로 떠났다.
* * *
“오랜만이로군.”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때, 나와 함께 네덜란드로 떠났던 삼인방.
그중 한 명이었던 이상설 또한 우리 집에 방문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삼인방은 대한합중국 건국을 위해 잠시 미국을 떠나 만주와 간도 등지에서 활동했다.
미국으로 바로 돌아온 이위종과는 다르게 이준과 이상설은 초대 제헌의회 의원으로 남아 대한합중국의 헌법 제정에 힘을 보태고 있었는데.
신년을 맞이하여 제헌의회가 임시로 휴회를 선언하는 바람에 잠시 미국에 들른 것 같았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간 있었던 작은 헤프닝을 이상설에게 설명하자, 이상설 역시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런. 의왕비 마마께서는 괜찮으십니까?”
“괜찮을 리가······.”
“······.”
의학이 발전한 21세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자연유산은 흔한 일이었다.
다만.
흔하다고 해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으로 타격 또한 주기에, 이상설은 에델을 굉장히 걱정했다.
“하지만 극복할 것일세. 내가 곁에서 함께 하고 있으니까.”
“이번이 두 번째라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네.”
“지난번에도 극복하셨으니, 의왕비께서는 훌훌 털어버리시고 쾌차하실 것입니다.”
세쌍둥이를 낳은 후에도 한 번 이런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최측근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사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상설은 빙의 초반 헤이그로 떠났을 때 나와 함께 온갖 갖은 고생을 함께한 자다.
그랬기에 그는 나의 가정사를 다른 이들보다는 훨씬 더 잘 꿰고 있었다.
“아, 맞다. 내, 자네 소식 또한 들었네.”
어두운 주제를 계속 이야기하니 분위기가 축 늘어진다.
나는 고용인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내오라고 명령한 후,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영구히 귀국할 준비를 하고 있다던데? 사실인가?”
커피가 나왔다.
이상설은 예전에 헤이그에서 봤던 대로 우유는 넣지 않고 설탕만을 두 숟가락 첨가한 채로 커피를 홀짝였다.
그 후에 그는 반 박자 템포를 쉰 후,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예. 맞습니다.”
“어째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이지? 그간 미국에서 잘 지내지 않았나?”
이상설은 한 번 더 커피를 홀짝인 후 내게 말했다.
“고국으로 돌아갈 때가 왔으니까요.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제가 따로 남아 할 일이 없습니다.”
“흠. 자네 전공이 뭐였지?”
이상설은 다양한 학문에 소질을 보였다.
과거에 합격한 자이니, 유학에 정통한 것은 기본.
근대 학문 쪽에선 수학, 화학, 법학 쪽에 두각을 보였다.
“법입니다.”
“아! 우남과 함께 국제법 쪽에 능통했었지?”
“예.”
이상설이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은 후 내게 말했다.
“미국에 돌아와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생각해보았습니다. 결론은 하나더군요.”
“무엇인가?”
“남은 대업은 전후 협상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밖에 없습니다.”
이상설은 한숨을 한번 크게 내쉬며 내게 고백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 일은 전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서, 소인은 미국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 판단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래서 본국으로 돌아가겠다?”
“예.”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대한합중국의 제헌의회 의원들의 명단을 회상했다.
“듣자 하니 제헌국회 내 근대 법률 전문가가 그다지 많지 않다던데. 이런 사정 때문이라도 서둘러 돌아가려는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이상설이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더욱이 소인은 그간 미국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때론 과하게 죄인을 엄벌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는 유럽의 대륙법과 미국, 영국의 영미법 차이를 회상하며 내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절대로 용서치 못할 죄가 존재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사람을 해치는 놈들과 더불어 나라를 팔아먹은 놈들은 갱생할 수 없는 쓰레기 종자들이지.”
“예.”
이상설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소인 또한 그리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네 정서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미국의 헌법을 한번 한반도와 만주에 이식해볼 생각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대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겠네. 그리하도록 하게나. 내가 귀국하기 전에, 자네가 대한합중국의 법치 체계 기틀을 완성해 주게나. 아! 그래. 이준 선생 또한 훈춘에 있지 않던가?”
“예.”
“여러 명사와 함께 대한합중국 법치 구축에 초석이 되어주게나.”
“예. 믿고 맡겨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슬슬 대화가 끝났기에, 이상설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였다.
“전하.”
“듣고 있네.”
“전하께서도 아시고 계시는지는 모르지만, 일각에서는 전하의 선택을 두고 말이 많았습니다.”
“선택? 무슨 선택?”
“그간 협상국 쪽보다는 독일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 쪽에, 알게 모르게 혜택을 주지 않았습니까?”
아아.
그 일 말이구나.
“일부 명사들은 더 나아가 독일과 손을 잡고 일본을 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땐 그게, 일본에서 독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처럼 보였을 테니까.
이상설이 제법 비장한 표정을 지어대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말로 그자들의 생각대로 행동했다면, 자칫 쪽박을 찰 수도 있었습니다. 이곳에 도착한 지 며칠 안 되었지만 말입니다.”
이상설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렸다.
“소문에는······ 약 백만의 대군이 대서양을 건넌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어쩌면, 그 이상이 파병될 수도 있다는 말도 있고요.”
하원에서 이미 관련 법안이 통과되었다.
상원 역시도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고, 야당인 민주당 역시도 당내에서 독일의 무모함을 성토하고 있기에.
이번 주 내에 통과될 거다.
“그렇지. 미국이 움직임으로서 무게추는 이미 협상국 쪽으로 넘어왔지.”
가장 민감한 척도인 국채 시장을 봐도 그렇다.
독일 전쟁채권의 값이 단 한 순간에 폭락하지 않았던가?
이상설이 이 또한 언급하며 나를 치켜세웠다.
“소인은 다시 한번 전하의 혜안에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의심의 눈초리로 이를 지켜보던 소수의 분탕 종자들도, 이번 일을 계기로 전하의 혜안에 다시 한번 감복할 것입니다.”
“뭘······.”
이제 시작인데 말이야.
‘드디어 전쟁이군.’
< 압도적인 물량으로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