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11)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11화(311/392)
< 두 쪽 나는 러시아 (2) >
익문사의 수장이었던 이위종은 일주일 전쯤, 태평양을 횡단하는 배편에 올라탔다.
연해국의 수도, 해삼위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리 앉게나. 내 자네에게 급히 할 말이 있다네.』
그가 이리 급히 대한합중국으로 향하게 된 것은.
열흘 전.
이위종의 주군이었던 이강이 그에게 급히 한 가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내,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어젯밤, 황태자가 날 찾아왔네.』
『알렉세이가 말입니까?』
『그래.』
여름이지만, 저녁이라서 그런지 바닷바람은 선선했다.
이위종은 갑판으로 나와서 지난날의 대화 장면을 회상하며, 제법 심각한 얼굴로 연신 술잔을 기울이던 이강의 모습을 떠올렸다.
『황태자와 무슨 대화를 하셨기에, 전하의 표정이 이리도 어두우신 것입니까?』
『알렉세이 그놈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내게 선언을 했네.』
『고, 고향이라면 러시아로요?』
『그래. 백군의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곳을 떠나겠다고 싶다더군.』
근대로 들어오며 많이 희석되긴 했지만, 군대의 사기는 여전히 중요하다.
문제는 황태자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
『앓고 있던 불치의 병이 아직 완전히 낫지도 않았는데······ 그리 주장했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래도 제 목숨이 귀한 줄은 아는지, 최전방이 아닌 후방에서 백군을 돕고 싶다는군.』
저 멀리.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이위종은 생각에 잠겼다.
‘한창 신경 써야 할 일이 태산인데······.’
이제 갓 14살이 되어가는 어린아이의 ‘똥받이’나 하고 있어야 하니, 마음이 심란하다.
『······그렇다는 말은, 곧 동시베리아로 떠나겠다는 것이로군요.』
『아마도?』
『저런, 그 추운 곳에서 무슨 생고생을 하려고.』
『내 말이.』
이강은 그때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놈이 시베리아의 맹추위를 경험하지 못해서 저런 생떼를 부리는 것이라며 혀를 연신 차기도 했다.
『전하께서 만류하셨는데도 요지부동입니까?』
『그렇다네. 한창 사춘기가 아니던가? 어디, 남의 말이 귀에나 들어올 시기던가?』
내 자식이었으면 한 대 쥐어 패거나, 꽁꽁 감금해 바깥출입을 금했을 거다.
하지만 상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
더욱이 한때 영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했던 러시아의 적통 후계자다.
그랬기에 이강은 무리수를 두기보단 알렉세이를 속 시원하게 제 품에서 독립시키려고 했다.
본디 이 시기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 하니까.
이위종 또한 최근에 아이가 생겨서 그런지, 이강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식도 내 마음대로 통제 못 하는데, 어찌 남의 행동을 내 뜻대로 쉬이 조종할 수 있단 말인가?
‘빌어먹을 영국 놈들······.’
다만, 이위종은 주먹을 꽉 쥐며 반성했다.
알렉세이의 집에 잡상인이 함부로 드나들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 치들도 첩보 부대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엎어진 물이지만.
반성 없이 넘어갔다가는 똑같은 일이 또다시 반복될 거다.
이위종은 영국의 비밀정보국을 경계해야 한다 생각하며 일주일 전에 나누었던 이강과의 대화 회상을 끝냈다.
* * *
해삼위에 도착했다.
이위종의 친부인 이범진이 그를 마중하기 위해 해삼위 항구에 나와 있었는데.
그는 오랜만에 보는 부친과 시선을 교환하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
“오랜만이로구나. 그래 몸은 좀 괜찮냐?”
“예.”
3년 만에 만난 자식이다.
좀 더 자신에 관한 안부를 물어봐도 좋을 텐데.
“전하께서는 무탈하시고?”
이범진은 국내외에서 내로라하는 애국자가 아니랄까 봐, 이강의 안부부터 그의 아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예. 독일 독감 때문에 지난봄에도 조금 고생하셨지만, 금세 나아지셨습니다.”
“그래?”
이위종의 얼굴을 보았을 때만 해도 이범진의 얼굴은 어두웠다.
하지만 이강의 신변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자, 이범진은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제 아들을 바라보았다.
“다행이구나. 전하께서는 이 나라의 미래를 밝히시는 유일한 등대다.”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던 등대가 사라진다면, 밤바다에 떠 있던 배들이 우왕좌왕하기 마련.
이범진이 이를 언급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어 댔다.
“바로 역으로 이동할 수도 있지만,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다. 자자- 차를 타고 가며, 마저 못한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예.”
살짝 섭섭할 만도 했지만, 이위종은 이범진을 원망하지 않았다.
따로 그의 안부를 추가로 묻지는 않았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의 오른손을 이범진이 꼭 잡고 있었으니까.
말하지 않아도 아버지인 이범진이 이위종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기에.
그는 조용히 뒤따랐다.
“아버지.”
“응?”
“저곳이 최근에 새로 조성되었다던 러시아인 마을인가요?”
차로 이동하며 이위종이 한 곳을 가리켰다.
이범진은 저 멀리 새로이 조성되고 있는 신시가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기 연기를 내뿜고 있는 공장들이 보이느냐?”
“예.”
이범진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사이에 조성된 산업단지를 가리키며, 확장되어가는 해삼위의 풍경을 소개했다.
“이화양행과 힐 제약의 제2 공장이, 최근 저곳에 들어섰단다.”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에는 십여 년 전부터 작은 제약공장이 난립했다.
알렉세이 황태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니콜라이 2세가 이강과 함께 제약 연구소를 차리며 연구소가 세워졌기 때문이다.
“저쪽에는 연해 대학과 해삼위 공과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연구동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 지금보다 2배는 더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하니. 조만간 동양에서 제일가는 대학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군요.”
“아, 저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보이지? 저곳에 제철소가 들어설 예정이란다. 내년 연말쯤이면 완공되겠구나.”
현재 대한제국이 소유하고 있는 무산에는 아시아 최대의 노천 철광이 존재한다.
비단 무산 철광뿐만 아니라 연해주와 간도 인근에는 크고 작은 철광과 탄광이 무수히 많이 존재했는데.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제철소와 화력발전소가 필요했다.
그 때문에 연해국 인근에는 계속하여 공장들이 세워지고 있었다.
‘즐거워 보이시는군.’
이위종이 느끼기에 그의 부친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목소리 톤이 더 올라가서 그리 느낀 듯한데.
이범진 또한 제 아들의 시선을 느껴서 그런지 살짝 부끄러워하며 목소리 톤을 다시금 원래대로 낮췄다.
“이 아비는 전하의 명을 수행하며 러시아인들의 대한합중국 정착을 돕고 있다.”
연해와 동해 왕국은 이위종의 계략으로 러시아에서 독립했다.
이후 이범진은 제 아들의 뒤를 이어받아서 그곳에서 일하며 해당 지역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물론.
옆 동네에는 이범윤이 이곳은 이범진이 미국의 주지사처럼 권한을 행사하고 있기에.
일부 독립운동가들은 이씨 일가들이 다 해 먹는다며 불만을 표출하곤 하지만.
이들은 외부의 청탁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부정부패 없이 해당 지역을 발전시키고 있었기에.
이강은 현재 이범진과 이범윤 형제를 누구보다 신임했다.
이범진도 이를 아는지.
최근 그의 움직임을 비판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거론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일부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지만, 이 아비는 전하의 의견에 동의한단다. 귀화한 러시아인들이 아국의 공업 발전에 얼마나 이바지하고 있는지를 안다면, 너 또한 이 아비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테다.”
“예. 아버지.”
그때였다.
자동차가 섰다.
목적지에 도착한 거다.
“내리자꾸나. 우수리 역에 도착한 모양이다.”
우수리는 예전에 우수리스크라고 불렸던, 해삼위 인근 북쪽 위성도시다.
시베리아 철도가 다니는 곳.
이범진이 이위종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은 열차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하기 위함이다.
“알렉세이 황태자가 다음 달 초순쯤에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에 당도한다고 했었지?”
“예.”
“그렇다면, 최종 목적지는 하바롭스크겠구나.”
“그렇겠죠?”
하바롭스크는 극동에 남아 있는 러시아 도시 중 가장 큰 도시다.
송화강 본류와 맞닿아 있는 대도시로 최근에 유럽에 살던 러시아인이 많이 유입된 곳이기도 하다.
“몸도 성치 않을 텐데 걱정이 되는구나.”
“그러게요. 만에 하나 황태자가 후계도 없이 사망한다면······ 백군이 아주 개판이 될 터인데. 참으로 걱정입니다.”
니콜라이의 남동생인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도 소비에트 반군에 잡힌 상태.
왕조를 이을 재목이 없기에, 이대로라면 공중 와해할 수도 있다.
“러시아의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이범진은 지난 십 년 동안 러시아에서 거주하며 전반기는 대한제국의 공사로, 후반기는 익문사의 러시아 현지 요원으로 일했다.
그보다 러시아 사정을 잘 아는 조선인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이위종은 우수리에 도착하고 알렉세이 이야기를 꺼내자, 이범진의 표정이 단박에 어두워진 것을 보고 걱정했다.
“저도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지만, 아버지만큼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아버지의 고견을 경청하고 싶습니다.”
사사롭게는 부자 관계이지만 둘은 왕년에 한 기관의 기관장과 지부장 사이였다.
이범진은 이위종을 바라보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솔직히 어렵다고 본다. 서방의 지원에 분투하고 있다지만, 민심이 이미 돌아선 지 오래다.”
니키가 워낙 개차반으로 국정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막판 자국 시민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한 것이 컸다.
더욱이 막판에 러시아를 떠나려다가 걸린 것이 괘씸죄로 적용되어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의 로마노프 왕조의 지지율은 현재 최악이었다.
“하지만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각지에 흩어졌던 러시아 귀족들이 하나둘 제 재산을 헌납하며 적군과 싸우고 있다.”
다만.
인기가 별로라는 것은 러시아에서 70% 정도에 달하는 농노들 사이에서나 있는 일이고.
자본가들과 귀족들.
상인들로 이루어진 20-30% 시민들이 백군을 지지하고 있다.
이범진은 이들을 거론하며, 이들의 전력 또한 만만치 않다고 밝혔다.
“소비에트와 국경을 마주하는 것만큼은 피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이범진의 부정적인 예상에 이위종이 잔뜩 찡그리며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에 이범진이 이위종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아국이 최선을 다하여 백군을 돕고 있지 않더냐?”
소비에트는 일본과 더불어 대한제국의 적이다.
연합왕국의 구성체인 대한합중국.
자본주의와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새 나라를 세우려는 이강과 소비에트는 상극이니까.
그렇기에.
대한합중국은 협상국 주요 국가들과 함께 적백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만일 적군이 유럽 쪽을 평정하는 기세를 보인다면······.”
“아군은 폭격기를 동원하여 바이칼 호수 인근에 부설된 시베리아 철도 노선을 끊겠죠.”
시베리아 철도를 부설할 때, 가장 인부들을 애먹게 만든 구간은 바이칼호 인근 구역이다.
산세가 험하여 철도가 쉬이 다닐 수가 없어서다.
그래서 초기에는 쇄빙선과 페리를 통해 호수 동서를 오가며 사람과 짐을 날랐다.
“이후 대치를 하며 동서 분할을 유도하겠군요.”
“그렇지.”
물론.
남의 전쟁에 끼어드는 것은 좋지 못한 선택이지만.
소비에트와 직접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은 피해야 했기에, 이강은 억만금이 들어도 백군을 지원하여 그들이 최소한 바이칼호 동쪽 지역을 차지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미국 역시 소비에트 세력이 태평양에 진출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기에, 백군에게 지원을 아낌없이 퍼주고 있는 상황.
“장기전으로 간다면, 레닌 역시 손을 내밀 거다.”
내전으로 러시아 국민의 삶이 많이 피폐해졌다.
더욱이 레닌은 체제 경쟁을 벌이게 되면, 소비에트가 다른 자본주의 왕국들과 비교하여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군대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며 소비에트에 합류하리라 여긴 것.
이 때문에 바이칼호 인근에서 대치를 이어 나간다면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으리라고 익문사 현지 요원들은 예상했다.
“주변 국가들에 신경 써야 할 때가 다가오는군요.”
“그렇지.”
1911년에 진즉 독립한 몽골.
지금도 북경 정부와 투쟁하며 협상을 벌이고 있는 내몽골.
그리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봉천 정부와 북경 정부까지.
신경 써야 할 이웃들이 제법 많다.
개중 몽골은.
소비에트 국가가 정식으로 들어서면 가장 영향을 받을 나라였기에, 현재 익문사의 최우선 관찰 국가다.
‘으으. 정말이지 할 일이 많군.’
일단은 아버지인 이범진과 함께 하바롭스크에 들여야 할 것 같았다.
그곳에서 현재 백군의 총지휘관 되는 자를 만나야 하니까.
이위종은 자신의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며, 북으로 이동하는 기차에서 눈을 잠깐 붙였다.
< 두 쪽 나는 러시아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