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14)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14화(314/392)
< 황가의 여인들 (1) >
“대부님.”
야심한 시각.
아직 극동으로 떠나지 않은 알렉세이가 우리 집에 방문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이리 대부님 댁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거린 후, 알렉세이 오른편에 서 있던 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공주께서도 오셨구려.”
“······예.”
알렉세이는 홀로 오지 않았다.
그의 첫째 누이였던 올가와 함께 우리 집에 방문했다.
“······.”
“······.”
주변에 고용인들이 서 있어서 그런 것일까?
올가는 말을 아끼며, 알렉세이 곁에 착 달라붙어 있다.
나는 이 둘은 집안으로 들였는데, 에델이 침실에서 나와 이들을 급히 환영했다.
“어서 오세요. 알렉세이 황태자. 어······ 오, 올가 공주께서도 함께 오셨네요?”
“예. 왕비 전하.”
“······.”
“······.”
공기가 미묘하다.
야심한 시각.
이 둘은 집안으로 데리고 오니, 배가 불룩한 에델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올가를 한껏 경계했기 때문이다.
“임신 축하드립니다. 이 왕비 전하.”
“······고맙습니다. 올가 공주.”
숨이 턱 막힌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만의 기 싸움이 우리 집 거실에서 펼쳐져서다.
“위층으로 올라가도록 하지.”
“예.”
나는 에델에게 이따가 대화 좀 하자고 양해를 구한 후, 알렉세이와 올가를 내 집무실로 들였다.
“그래. 무슨 일로 이 야밤에 내 집까지 찾아온 것인가?”
설마 최근에 체결된 협정들 때문인가?
국경과 방위조약에서 한발 양보했으니, 동청철도를 좀 더 비싼 값에 매각해 달라는 건가?
아니면, 내게 맡겨 두었던 니콜라이의 비자금이라도 찾으려는 것인가?
‘도대체 왜 온 거지?’
예상치 못한 방문에 내 머리가 복잡해져 갔다.
나는 쓱-
알렉세이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계속하여 올가를 힐끔힐끔 쳐다볼 뿐이다.
‘응?’
알렉세이가 저런 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필시 이번 방문이 올가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나는 조용히 팔짱을 끼며 올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예상대로.
한 십여 초쯤 시간이 흐르자, 굳게 닫혀 있던 올가가 알렉세이를 대신하여 대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대부님.”
“그래.”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무례를 무릅쓰고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죄송해요.”
사회생활을 좀 해 보면, 눈치라는 것이 생긴다.
아무리 발랄하게 머리에 꽃을 꽂고 사는 황실의 여인일지라도.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된다는 거다.
‘더욱이 올가는 여타 유럽의 왕실 일원 중 예부터 머리가 똑똑하기로 유명했지.’
러시아 혁명을 거치며 궁궐에서 반쯤 감금 생활을 강제로 해야 했기에, 누구보다도 눈치가 빨랐다.
에델이 그녀를 경계하는 것을, 도착한 직후부터 느끼고 우리 집에 얼씬조차 하지 않는 것이 증거지.
그런 올가가 지금 내게 부탁을 하고 있다.
에델의 경계심이 한층 더 두터워질 것을 감수하고서라면······.
꽤 곤란한 부탁일 것 같은데.
“부탁이라······.”
“예.”
“일단 들어 보고, 내 할 수 있다면 들어주겠다.”
조건부 승낙에, 올가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나는 그런 올가와 시선을 교환하며, 머릿속에 떠오른 예상 질문부터 던져 보았다.
“혹, 네 결혼 문제 때문이냐?”
나는 니키의 자녀들을 뉴욕에서 거둔 후, 네 여식의 혼처를 빠르게 알아보았다.
에델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는 본래 왕족끼리, 더욱이 타국의 상대와 결혼하지 않는다고 누차 이야기를 했지만······.’
에델은 불안해했다.
자신보다 나이도 어리고, 예쁘고, 게다가 러시아의 공주이기도 한 여인들이 넷이나 이웃이 되었으니까.
이에 나는 네 공주 중 첫째였던 올가의 신랑감을 빠르게 수소문했다.
‘올가는 올겨울,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과 결혼한다.’
알렉세이는 니키의 유일한 아들로서 정통성 있는 후계자지만, ‘혈우병’을 앓고 있다.
의료 기술이 현대와 비교해 아직 한참이나 뒤떨어진 이 시대에, 그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폭탄.
그렇기에 차순위 후계자가 존재해야 했는데, 가장 유력한 이가 바로 올가다.
‘똑똑하고 당차지만 올가는 여성이야.’
러시아 황실 규범상 여성 또한 황제 자리를 이을 수 있지만, 남자 후계자들이 존재치 않을 때나 가능하다.
볼셰비키의 발흥으로 러시아 내부가 혼란한 상황에서 후계자 문제로 잡음이 생긴다면 언제 어떻게 백군이 단번에 몰락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올가를 로마노프 왕가의 일원이었던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과 결혼시켜서 이를 해소하려고 했다.
올가 역시도 러시아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려 했지만.
본디 이 시대 여인의 마음은 갈대다.
특히나 평생의 반려자를 선택하는 시간에는 더더욱 숙고하는 경우가 많기에, 나는 올가가 이 문제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결혼식 문제 때문에 온 것은 맞습니다. 대부님.”
“그래? 혹여 상대가 마음에 안 든다면, 내 다른 이를 알아보마.”
본인이 싫다는데, 강요할 수는 없는 법.
혹여나 내가 올가를 팔아먹는다고 하는 이상한 풍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이때다 하고 나를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올가가 원한다면 다른 신랑감을 추천할 의향도 있었다.
“제 결혼식 말고요. 제 동생인 마리아의 결혼식을 막아 주세요. 대부님.”
“응?”
뭐라고?
올가 네가 아니고 마리아라고?
‘마리아라면······.’
세간에서 흔히들 니콜라이 2세의 자녀들을 두고 ‘O.T.M.A.A.’라고 한다.
마리아는 다섯의 자녀 중 딱 가운데 해당하는 셋째.
‘누구랑 맺어 주려고 했더라?’
빠르게 그 상대방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올가에게 물었다.
“마리아의 결혼 상대라면, 루마니아의 왕세자가 아니더냐?”
“예.”
“어째서지? 왜 이를 막고자 하느냐?”
“카롤은······ 바람둥이예요.”
올가가 과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터지기 전.
올가는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루마니아에 방문했는데.
그때 처음 카롤을 만났다고 한다.
“카롤의 결혼 상대는 원래 저였어요.”
그렇지.
올가의 반대로 결국에는 무산되긴 했지만.
“소문이 좋진 않았지만, 부모님께서 강력히 추천하여 카롤과 결혼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직접 만나 보니, 확신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는 바람둥이예요.”
“······.”
“마리아가 그와 결혼한다면 불행해질 거예요.”
나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카롤에 대해 뭐라고 변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부디 카롤과 마리아의 결혼을 반대해주세요.”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루마니아 왕실과의 관계도 그렇고.
정작 결혼 당사자인 마리아 본인이 강력하게 이 결혼을 원했기 때문이다.
“마리아 본인은 생각이 다르던데······.”
“알아요. 하지만 이는 부모님 때문이에요.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서 인접국의 왕실과 결혼을 급히 서두르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루마니아는 이번 세계대전을 통해 영토가 크게 확장하였다.
더불어 국력 또한 많이 성장하였는데, 올가는 이를 거론하며 마리아의 선택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흠.”
지난주.
에델을 끼고, 마리아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마리아는 분명, 이 결혼을 적극적으로 원했었다.
“중매 결혼이 싫다면 너희 셋 다 결혼식을 파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건······.”
파리에 있던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이 뉴욕으로 오며, 올가는 결혼식 전부터 드미트리와 데이트를 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 역시 내가 중매를 서지 않았더라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운명이다.
더하여 둘째인 타티아나 역시 영국의 왕세자 에드워드와 혼약이 오가고 있다.
세계대전이 끝날 당시만 해도, 러시아 왕가의 이미지가 개차반이라서 에드워드와 타티아나의 혼약은 어려울 것 같았으나.
소비에트가 발흥하고, 자식들만 홀로 떠나보낸 니키의 사연이 영국의 매체에 의해 전달되면서.
두 사람 간의 결혼이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다섯 손주와 함께 탈출한 황태후 또한 타티아나와 에드워드의 결혼을 찬성하는 상황에서.
마리아의 결혼만을 꼭 집어서 반대하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다.
“알겠으니 오늘은 그냥 물러가거라.”
뭐.
마리아의 혼인 상대는 루마니아 왕실 말고도 많다.
그리스 왕가나 덴마크, 벨기에 왕가도 있으며, 가까이는 미국의 최상류층도 이들을 노리고 있지 않은가?
좀 더 생각해봐도 되었기에, 일단은 이들을 물리고자 했다.
“아, 알렉세이. 너는 극동으로 떠나기 전에 나와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떠나기 전.
단단히 경고할 셈이거든.
우수리에 도착하자마자 죽기라도 하면, 매우 곤란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기에.
자나 깨나 그의 신변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일러둘 작정이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알렉세이와 올가가 우리 집을 나섰다.
하지만 나는 바로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해야 할 일이 남아서다.
* * *
“무슨 이야기를 이 야심한 시각에 한 것이에요?”
눈은 웃고 있지만, 하관은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에델이 내게로 다가왔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녀는 자지 않고 나를 기다렸다.
그냥 넘어갔다가는 두고두고 오늘 일을 회상할 것 같았기에, 나는 속 시원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결혼 문제 때문에······ 올가 공주가 고민이 많더군.”
“왜요? 드미트리 대공과 결혼하기 싫다던가요?”
평소보다 살짝 더 신경질적인 반응이다.
임신해서 호르몬이 요동쳐서 그럴 수도 있겠고.
아니면, 올가 공주가 직접적으로 호명되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네.
나는 빠르게.
무표정한 표정을 지으며 아까 들었던 이야기를 에델에게 했다.
“아니오. 자신의 예정된 결혼식은 그대로 올리겠다고 하였소.”
“그래요? 그럼 무엇을 두고 고민을 하던가요?”
“마리아와 카롤 왕세자의 결혼식을 막아 달라고 하더군.”
에델이 고개를 갸웃한다.
미국의 많은 여성은 왕실의 일원들과 결혼하길 꿈꾼다.
에델도 그중 하나로서 나와 결혼까지 했다.
“올가 공주가요?”
“그래.”
카롤은 왕자 중 다음 보위를 이을 수 있는 왕세자다.
미국의 여성으로 태어났다면, 지금쯤 로또를 맞은 기분일 텐데.
‘어째서 마리아의 결혼을 막아 달라는 거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에델이 눈살을 찌푸렸다.
“루마니아는 전하께서 공들이고 있는 국가예요. 거의 다 성사된 국혼을 함부로 깨면, 전하께도 피해가 갈 텐데요.”
더욱이 에델이 말했듯 루마니아는 동유럽에서 나와 가장 많이 협력 중인 국가다.
소칼이 루마니아 유전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루마니아 왕실과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 중인데.
이 때문에 이전에 한 번 파기 되었던 러시아 왕실과 카롤과의 결혼도 다시금 논의될 수 있었다.
“하루하루 벌어먹으며 사는 하층민들도 툭하면 바람을 피워 대는데······ 왕실 일원들치고, 다른 여자에게 눈을 안 돌리는 이들이 있나요? 바람기 때문에 혼인을 물려 달라니, 참······.”
현대 여성들이 알게 되면,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이지만, 에델은 21세기 사람이 아닌 20세기 여인이다.
더욱이 이 시대 어느 미국의 상류층들이 그렇듯, 그녀는 왕가의 일원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다른 이들도 그리 생각하리라 여겼다.
그런데 공주들이 저런 말을 하니, 배가 불러서 저딴 투정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흠. 나는 다른 여성들에게는 눈길 하나 주지 않는데······.”
에델의 말을 듣다가 한 가지 수정해야 할 사항이 있는 것 같아서, 헛기침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에 에델이 화들짝 놀라며 내 옆으로 와서 팔짱을 껴댔다.
“아, 전하께서는 예외죠. 전하의 친우이신 니콜라이 폐하도 그렇고, 이렇게 가끔은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이들도 존재하긴 하죠. 암요.”
에델은 한층 더 풍만해진 가슴을 내 팔꿈치 쪽에 딱 붙이며, 아까 뱉은 말을 수습하려고 노력했다.
“남의 자식 결혼식 때문에······ 우리 전하께서 이리 고생하시니, 마음이 참으로 가슴이 아파요. 얼른 이 일이 해결되었으면 하네요.”
예정대로 일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하자, 에델은 안도의 한숨을 쉬어 가며 나를 쓰다듬었다.
이에 나는 나를 걱정해 주는 에델을 바라보며, 두 손을 꼭 잡았다.
“대부로서, 니키의 여식들을 시집보내며······ 내 몇 가지 느낀 것이 있다오.”
“느낀 것이요?”
“그렇소.”
나는 한숨을 내쉬며 걱정했다.
“남자들은 전부 늑대인 것 같소. 내 소중한 아이들 또한 언젠가 내 품에서 떠나야 할 텐데······ 내, 참으로 불안하오.”
익문사를 통해 유럽 각국의 왕실 일원들은 물론이고 미국의 최상류층들의 사생활 또한 수집하고 있다.
기독교 국가들의 지도층들이라서 다들 성경 속 청빈한 삶을 살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소돔과 고모라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유부남들이 애인들을 끼고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사생아에 남색까지.
별의별 짓거리를 다 하고 다닌다.
이들에게 내 자식들을 보내야 하니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그래도 모건의 막내아들 헨리는 꽤 괜찮지 않아요? 빌헬미나 여왕의 외동아들인 율리우스 왕자 또한 예의 바르게 크고 있고요.”
그거야 아직 어리니까!
라고 목구멍까지 말이 나오다가 순진한 에델의 눈빛에 나는 그만 이를 삼켰다.
“둘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여기, 우리의 막내는 또 어찌 될지 모르잖소?”
에델이 피식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어머, 딸인 것 같으세요?”
“모르겠소. 사실 아들도 좋고, 딸도 좋다오.”
이미 아들이 셋이나 있고, 딸도 둘이나 있는데.
진짜로 막내의 성별은 내게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건강하게 태어나기만 바랄 뿐이오.”
“건강할 거예요.”
에델은 내 손을 꼭 잡은 다음, 자신의 배로 가져갔다.
아직은 석 달밖에 안 되었기에, 태동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한동안 에델만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 본국에 전하의 여동생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에델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아이는 어떻게 자라고 있다던가요? 그보다, 그 아이 사진은 있나요?”
< 황가의 여인들 (1) > 끝